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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행복의 조건(2)(시편 122:1~9)

작성자섬김이|작성시간20.01.14|조회수49 목록 댓글 1
행복의 조건(2)(시편 122:1~9)

개역개정

1.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2. 예루살렘아 우리 발이 네 성문 안에 섰도다


3. 예루살렘아 너는 잘 짜여진 성읍과 같이 건설되었도다


4. 지파들 곧 여호와의 지파들이 여호와의 이름에 감사하려고 이스라엘의 전례대로 그리로 올라가는도다


5. 거기에 심판의 보좌를 두셨으니 곧 다윗의 집의 보좌로다


6.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7. 네 성 안에는 평안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함이 있을지어다


8. 내가 내 형제와 친구를 위하여 이제 말하리니 네 가운데에 평안이 있을지어다


9.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너를 위하여 복을 구하리로다

  • 본문 해석

      하바드대학의 조지 베일런트 교수는‘행복의 조건’이란 책에서 하버드대학생 268명과 서민남성 456명, 여성천재 90명을 72년간 추적 연구한 후 ‘인생의 운명을 좌우한 것은 부와 학벌과 명예가 아니며,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관계이며 행복의 결국은 사랑’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행복은 소유가 아니라 관계입니다. 하나님과는 바른 예배자로 살아야 하며, 사람들과는 섬기는 자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어진 환경에서 늘 자족하며 살아야 합니다(잠17:1). 바울은 어떤 환경에서도 감사하고 자족하며 살았기에 항상 기뻐하며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빌4:10-13). 이상의 세 가지 관계정립이 잘되면 나타나는 현상이 있습니다.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이 평안은 편안과는 다릅니다. 편안은 돈과 지위와 명예로 살수도 있고 잠간 누릴 수 있지만, 평안은 위로부터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얻고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성숙해 집니다. 성숙은 외적 성장이 아닌 내적 인격과 성품이 다듬어 지며 신앙적으로 그리스도처럼 자라나는 것입니다(엡4:13). 

      그리고 사명적 삶을 살아갑니다. 똑같이 가정과 직장과 사회활동을 하지만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사는 것이 아니라, 이 일들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확신으로 하니 보람되고 행복합니다. 이 행복은 교회를 통해서 누릴 수 있습니다. 때문에 교회는 크기나 구성원들의 능력과는 상관없이 이 세상의 희망이며 대책입니다. 함께 신앙을 고백하는 공동체,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실현하는 공동체, 복음을 위해 핍박과 고난을 함께 나누는 그 공동체를 통해 이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1). 

      교회는 사람을 살리는 곳으로 어떤 기관과 단체도 사람의 영혼을 살릴 수 없습니다. 교회는 병든 영혼을 고치고 죽은 영혼을 살릴 수 있습니다. 교회가 귀하고 아름다운 것은 생명을 구원하는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이것입니다(4). 건강한 교회가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6). 교회는 축복의 근원입니다. 교회를 사랑하고 잘 섬기면 개인과 가정과 자손만대 복을 받게 됩니다. 교회를 통해 그 성읍과 도시가 평안하고 형통하게 됩니다(7). 행복은 보이는 것이나 물량적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관계에 있습니다. 교회를 통해 이 충만한 행복 마음껏 받아 누리게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결단과 적용

    - 하나님을 향한 사명의 삶을 지향해야 하는데, 내가 추구하는 삶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 내 삶에 평안과 내적 성숙함이 있는지, 그렇지 않다면 그 원인을 생각해 보십시다. 

    - 교회를 사랑하고, 부흥을 위하여 기도하는 신앙인이 되기 위해 도우심을 간구하십시오. 

  • 오늘의 기도

     거룩하신 주님, 주님과의 좋은 관계에서 살아감으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행복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나의 삶이 하나님 나라를 향한 사명을 가지고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을 기뻐할 때 하나님께서 나의 삶의 소원을 이루어주심을 믿게 하시옵소서. 

인문학 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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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아! 너 참 부럽다
인문학 나눔

“‘개고생’이란 말은 있어도 ‘고양이 고생’이란 말은 없다. 

‘개팔자가 상팔자’라지만 정작은  ‘고양이 팔자가 상팔자’다.  

쥐를 잡으라고 닦달을 하나,토끼를 뒤쫓으라고 닦달을 하나,

도둑이나 마약 밀수범을 찾아내라고 닦달을 하나,

세상일로부터 초탈한 이 녀석의 팔자를보고 있으면 은근 부아가 나기도 한다(중략).  

〈톰과 제리〉에서 영악한쥐새끼 제리에게 고생을 좀하긴 하지만 

그래도 고양이 팔자만 한 것이 없다. 고양아,너 참 좋겠다. 부럽다!”김보일 

저(著) 《황혼은 어디서 그렇게 아름다운 상처를 얻어 오는가》

(빨간소금, 156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남의 것은 다 부러워 보입니다.  남의 떡이 더 커보입니다.  

남의 잔디가 더 푸르러 보이고,  남의 밥에 든 콩이 더 굵어 보입니다.

그러나 믿음이란, 남의 것을 바라보지 않고 주님이 내게 주신 것을 감사하며 사는 삶입니다.  

달팽이는 빨리 달리는 노루를 부러워하지 않고,  행복한 컵라면은 짬봉을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소금은 설탕을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쥐 잡는 데는 천리마보다 고양이가 낫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존재는 자신의 역할이 있고 존재의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면 주께서 주신 나의 길이 보입니다.  

나의 길을발견한 사람은 불평과 열등감을 벗고, 빛같이 살고 소금같이 살 수 있습니다.

기독 메시지

그림 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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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 2장 2절
베드로전서 2장 2절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Like newborn babies, crave pure spiritual milk,

so that by it you may grow up in your salvation,(NIV)

도서 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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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 눈이 열려야 가능한 것이다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서 

자기 아들을 죽여야 하는 상황이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보통 아버지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 아들을 결박하여 제단에 올려놓고

 죽이려고 칼을 들었다. 

그 순간 하나님께서 이를 중지시키면서 

대신 수양을 준비해 주셨던 것이다.

 이 때 아브라함이 그 땅을 "여호와 이레"라고 불렀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아브라함은 영의 눈이 열렸기 때문에 

이 아들을 번제물로 드리면 

하나님께서 또 아들을 주실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영의 눈이 열려야 가능한 것이다.

-정판수 목사의 ‘하갈아 두려워 말라’에서 - 

 

 육신의 생각으로는 아들을 자기 손으로 죽여

 번제물로 드릴 수 없습니다. 

영의 생각이라야 가능한 것입니다.

 반석 같은 믿음의 생각이라야 가능합니다.

 그래서 욥은 욥기 1:21에서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아무나 이런 고백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으로 영의 눈이 열려지기를 기도하십시오.

    영의 눈이 열린 사람만이 이런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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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예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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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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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섬김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0.01.14 어제 밤에 간절한 기도를 올려드렸더니 몸 컨디션이 최고조입니다.
    여러모로 축복해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오전엔 내과에 가서 링거를 맞으며 건강을 체크해 보고자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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