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권) 레슬리 뉴비긴의 『하나님의 가족』 제3강

작성자가을|작성시간26.06.10|조회수24 목록 댓글 0

존경하는 동역자 여러분, 제3강을 시작합니다.

우리는 앞선 2강에서 교회를 오직 지성적인 교리와 문자에만 가두려는 개신교적 정통주의의 위험성을 다루었습니다.

이제 3강에서는 그 반대편 극단에 서 있는 왜곡, 즉 '교회를 외적인 제도와 성례, 그리고 가시적인 계급 구조 안에 묶어두려는 가톨릭적 성사주의(Sacramentalism)와 제도주의의 함정'을 심오하게 해부하고자 합니다. 레슬리 뉴비긴의 날카로운 선교적 안목을 통해, 교회의 참된 일치와 거룩함이 어디에 있는지 본질을 추적해 가겠습니다.

[저자 직강] 레슬리 뉴비긴의 『하나님의 가족』 제3강

주제: 계급주의적 장벽의 파쇄, 제도와 성례에 갇힌 가톨릭주의를 도끼로 찍어라

본문 말씀: 마태복음 23장 8-10절, 갈라디아서 3장 28절

1. 가시적 제도주의(Institutionalism)의 유혹과 본질적 한계

기독교 역사에서 가톨릭 전통은 교회의 가시적인 연속성과 성례의 거룩함을 보존하는 데 큰 역할을 해왔습니다. 역사적 제도의 틀과 예전(Liturgy)은 교회가 세속의 풍파 속에서 무질서하게 흩어지지 않도록 붙들어주는 외적인 보호막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교회를 '역사적 제도의 연속성'이나 '특정 성례의 집행 권한'으로만 규정하려는 시도는 매우 치명적인 신학적 오류를 낳습니다. 그것은 제도와 계급 자체를 신성시하여, 하나님의 자유로우신 주권과 성령의 역사를 인간의 조직 아래 종속시키는 우상숭배적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주교의 안수 계보나 가시적인 조직의 구성원이 되는 것 자체를 구원의 유일한 보증으로 삼는 순간, 교회는 생명력을 잃고 거대한 '종교 관료제(Bureaucracy)'로 전락하게 됩니다.

마태복음 23장 8-10절에서 바리새인들의 계급 구조를 향해 던지신 예수님의 준엄한 경고를 보십시오.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너희의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이시니라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의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

이 말씀은 교회 안의 질서나 직분 자체를 부정하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가족 안에서 본질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인간적인 계급화'와 '종교적 기득권의 구조화'를 정면으로 타격하시는 선언입니다.

2. 십자가의 피로 맺어진 영적 혈연과 수평적 유기체

레슬리 뉴비긴은 참된 '하나님의 가족'이 외적인 제도적 사슬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맺어진 영적 혈연관계에 의해서만 존재한다고 단언합니다.

가족의 본질은 제도적 계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공유에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에 접붙여진 이유는 우리가 어떤 교단 조직에 속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찢기신 그리스도의 살과 피가 우리 안에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참된 교회는 상명하복의 관료제적 피라미드 구조가 아니라, 대가 없이 흐르는 은혜 안에서 성도와 성도가 유기적으로 연합하는 거룩한 수평적 유기체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28절의 선포대로, 그리스도의 피 안에서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그 어떤 세상적 계급과 장벽도 존재할 수 없으며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의 가족일 뿐입니다.

3. 선교적 걸림돌이 된 교권주의

교회가 제도와 조직을 유지하는 데 비대해질 때, 교회는 선교적 야성을 완벽하게 상실합니다. 세상의 깨어진 영혼들을 향해 진격하기보다, 자신들의 교권과 기득권을 방어하고 내부의 영토를 지키는 데 모든 에너지를 소모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직분과 제도는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직분은 세상 한복판으로 성도들을 파송하기 위해 섬기는 야전의 '군장(軍裝)'이자 수단일 뿐입니다. 제도가 복음의 역동성을 가로막고, 성례가 은혜의 보편성을 독점하는 장벽이 될 때, 그것은 세상을 향해 열려 있어야 할 하나님의 가족의 대문을 걸어 잠그는 사악한 걸림돌이 됩니다.

[목회적 성찰과 적용]

존경하는 목회자 여러분, 우리의 사역 현장은 지금 영적 유기체입니까, 아니면 굳어져 버린 관료 조직입니까?

  1. 관료적 군림에서 유기적 섬김으로 전환하십시오: 목회자의 직분을 신성한 계급이나 기득권으로 착각하는 모든 교권주의적 유혹을 강단에서 도륙해야 합니다. 목회자는 군림하는 지휘관이 아니라, 성도들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장엄한 신분을 누리도록 십자가 아래서 눈물로 섬기는 영적 아비의 자리임을 명심하십시오.

  2. 인간적 장벽과 차별을 파쇄하십시오: 교회 안에 은연중에 자리 잡은 사회적 직분, 물질의 유무, 세상적 학벌에 따른 계급주의적 장벽을 말씀의 검으로 쪼개버려야 합니다. 예배당 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 어떤 가난하고 소외된 영혼이라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은 존귀한 하나님의 가족으로 동등하게 영접하는 진짜 대조 사회를 재건하십시오.

제도적 안정을 넘어 선교적 유연성을 확보하십시오: 우리 교회의 조직과 행정이 오직 내부의 안정을 유지하는 데만 최적화되어 있다면, 그것을 과감히 선교적 구조로 체질 개선해야 합니다. 교회의 모든 제도와 예전은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화평을 들고 달려 나가는 성도들의 발걸음을 가볍게 하는 도구가 되어야 마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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