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권) 레슬리 뉴비긴의 『하나님의 가족』 제4강

작성자가을|작성시간26.06.10|조회수23 목록 댓글 0

존경하는 동역자 여러분, 제4강을 시작합니다.

우리는 앞선 강의들을 통해 교회를 오직 지성적인 교리에만 가두려는 개신교적 정통주의(2강)와, 외적인 제도와 성례의 틀에 묶어두려는 가톨릭적 제도주의(3강)의 한계를 심오하게 파헤쳤습니다.

이제 4강에서는 오늘날 전 세계 교회를 뒤흔들고 있는 또 다른 거대한 흐름이자 왜곡, 즉 '교회를 오직 개인의 신비한 영적 체험과 감정적인 은사의 유희로만 규정하려는 오순절적 은사주의(Pentecostalism)의 함정'을 레슬리 뉴비긴의 선교적 눈으로 매섭게 해부하고자 합니다.

[저자 직강] 레슬리 뉴비긴의 『하나님의 가족』 제4강

주제: 신비주의적 탈선의 진압, 감정의 유희에 빠진 오순절주의를 징벌하라

본문 말씀: 고린도전서 14장 33절, 요한일서 4장 1절

1. 성령의 주관주의(Subjectivism)가 가진 강렬함과 치명적인 맹점

오순절-은사주의 전통은 메마른 지성주의에 갇혀 있던 개신교와, 경직된 형식주의에 굳어 있던 가톨릭을 향해 '성령의 즉각적인 현재성과 역동성'을 일깨운 거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신앙은 박물관의 문서나 차가운 예전이 아니라, 지금 여기(Here and Now)에서 살아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불타는 에너지임을 증명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흐름은 매우 신속하게 극단적인 신비주의와 '영적 주관주의'의 늪으로 미끄러져 들어갔습니다. 그것은 '내가 느끼는 주관적인 감정의 고조, 신비한 초자연적 체험, 나에게 임한 은사 자체를 구원의 유일한 보증이자 영성의 척도'로 삼는 영적 교만입니다.

요한일서 4장 1절의 차가운 권면을 보십시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체험 그 자체는 결코 진리의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내가 받은 영적 카타르시스와 신비한 현상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객관적 계시와 교회의 공동체적 질서 아래 통제되지 않을 때, 그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 인간 자아의 광기이자 마귀적인 기만으로 전락하기 십상입니다.

2. 자아의 확장과 공동체적 질서(Order)의 파괴

레슬리 뉴비긴이 깊이 우려했던 것은, 은사주의가 교회를 '개인의 영적 만족과 황홀경을 구매하는 종교적 시장'으로 타락시키는 현상이었습니다. 참된 성령의 역사는 결코 개인의 영적 영웅주의나 과시를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성령의 가장 본질적인 사역은 신자를 그리스도의 주권 앞에 무릎 꿇리고, 그들을 거룩한 공동체적 연합으로 묶어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감정적 은사주의에 빠진 이들은 공동체의 질서와 역사적 연속성을 경시합니다. 자신이 받은 영적 직통 계시가 교회의 질서보다 위에 있다고 믿으며, 하나님의 가족을 분열시키는 우를 범합니다.

고린도전서 14장 33절의 서늘한 대원칙을 주목하십시오.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성령은 질서의 영이십니다. 참된 성령의 사람은 자아를 죽이고, 다른 지체를 나보다 낫게 여기며, 교회를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으로 함께 지어가기 위해 자신의 은사를 철저히 감추고 복종시키는 자입니다. 은사놀이에 취해 분열을 일삼는 공동체는 하나님의 가족이 아닌, 종교적 신비주의 동호회일 뿐입니다.

3. 선교적 탈선: 일상을 이탈한 영성

은사주의적 왜곡의 가장 무서운 결말은 '선교적 야성의 상실'입니다. 이들은 삶의 현장이라는 치열한 야전에서 죄와 싸우고 복음을 살아내기보다, 예배당 안의 뜨거운 열기와 감정적 흥분 상태에만 머물기를 갈망합니다.

성령의 은사는 우리끼리 신령한 영적 유희를 즐기라고 주신 장난감이 아닙니다! 은사는 세상 한복판으로 나아가 흑암의 권세를 찢고 영혼을 구원하라고 쥐여 주신 왕의 무기입니다. 체험과 감정에만 중독되어 일상의 사명을 팽개치는 영성은, 세상을 치유해야 할 하나님의 가족의 정체성을 완벽하게 배반하는 사악한 탈선입니다.

[목회적 성찰과 적용]

존경하는 목회자 여러분, 우리의 사역은 지금 감정의 자극입니까, 아니면 성령의 깊은 통치입니까?

  1. 감정적 흥분과 성령의 임재를 구별하십시오: 예배당의 뜨거운 사운드와 분위기가 주는 심리적 고조를 성령의 역사로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성도들이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예배당 문을 나선 후 자신의 일터와 가정에서 하나님의 주권에 얼마나 철저히 복종하는가입니다.

  2. 이기적인 은사주의의 뇌수를 쪼개십시오: 자신을 드러내고 자랑하려는 모든 영적 과시와 신비주의적 시도들을 강단에서 단호하게 징벌해야 합니다. 모든 은사는 오직 교회를 세우고(Edification) 이웃을 섬기기 위한 도구일 뿐이며, 가장 위대한 은사는 자아를 깨뜨리고 형제를 사랑하는 '아가페'임을 핏대 세워 가르치십시오.

성령의 능력을 세상 속으로 방출하십시오: 성도들을 예배당의 집회 중독자로 만들지 마십시오. 성령이 주시는 권능(Dunamis)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왕의 증인이 되게 하는 선교적 에너지입니다. 일상의 현장에서 묵묵히 십자가를 지고 예수의 생명을 흘려보내는 진짜 성령의 사람들을 길러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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