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 제1강] 오르게(Ὀργή)와 하마르티아(Ἁμαρτία): 전적 타락의 심연과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
(본문: 로마서 1장 1절 - 3장 20절)
로마서의 첫 세 장은 기독교 복음이 무엇인가를 설명하기 전에, '왜 인간에게 복음이 절대적으로 필요한가'를 법정적이고도 논리적인 필치로 증명하는 엄위한 기소장입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D. Martyn Lloyd-Jones)는 "자신의 철저한 영적 파산과 하나님의 진노를 깨닫지 못한 자가 말하는 구원의 기쁨은, 십자가를 모독하는 값싼 감정에 불과하다"고 일갈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의(Righteousness)'를 선포하기 위해, 먼저 인간의 철저한 '불의(Unrighteousness)'를 해부하는 수술대 위로 우리를 이끌고 갑니다.
1. 디카이오쉬네 데우(Δικαιοσύνη Θεοῦ): 복음의 본질, 하나님의 의
바울은 로마서의 서두에서 자신이 전하는 복음(유앙겔리온)이 인간의 사상에서 기원한 것이 아니라, 선지자들을 통해 성경에 미리 약속된 '하나님의 복음'임을 천명합니다. 그리고 로마서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위대한 주제를 1장 16절과 17절에서 장엄하게 선포합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디카이오쉬네)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1:16-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디카이오쉬네 데우, δικαιοσύνη θεοῦ)가 나타나서!"
더글라스 무(Douglas J. Moo)와 토마스 슈라이너(Thomas R. Schreiner)의 정교한 주해에 따르면, 여기서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 자신이 지니신 도덕적 완전성(속성)을 뜻함과 동시에,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죄인들에게 은혜로 덧입혀 주시는 '전가된 의(Imputed Righteousness)'를 의미합니다.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의로워질 수 없기에,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리 외부로부터, 즉 '위로부터 주어지는 하나님의 의'가 우리 영혼을 덮어야만 한다는 선언입니다.
2. 오르게(Ὀργή)와 파레도켄(Παρέδωκεν): 진리를 억누른 인류를 향한 진노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는 복된 소식을 전한 바울은, 1장 18절부터 분위기를 급반전시켜 '하나님의 진노'라는 가장 무겁고도 두려운 주제로 내려갑니다.
"하나님의 진노(오르게)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파레도켄)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롬 1:18, 24)
"하나님의 진노(오르게, ὀργὴ)가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하나님의 진노는 인간의 감정적인 신경질이나 분노가 아닙니다. 존 머레이(John Murray)의 묵직한 통찰처럼, '오르게'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본성이 죄악과 불의를 향해 필연적으로 뿜어내는 '의롭고도 객관적인 혐오'이며 공의로운 심판입니다. 이방인들은 창조물을 통해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알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창조주보다 피조물을 더 경배하는 우상 숭배의 죄악으로 추락했습니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가장 무서운 심판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을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파레도켄, παρέδωκεν)!"
바울은 로마서 1장에서 이 '파레도켄(내버려 두다, 넘겨주다)'이라는 단어를 세 번(24, 26, 28절)이나 반복합니다. 하나님의 가장 참혹한 심판은 번개를 내리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자신의 더러운 정욕과 동성애, 상실한 마음대로 살아가도록 은혜의 간섭을 거두시고 철저히 유기(Abandonment)하시는 것, 그것이 곧 지옥의 전조(前兆)입니다. 인간의 타락은 진노의 원인이자, 동시에 그 자체가 이미 임한 진노의 결과인 것입니다.
3. 카타크리마(Κατάκριμα): 도덕주의자와 종교인의 위선을 해부하다
이방인의 참혹한 타락상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유대인들과 도덕주의자들을 향해, 바울은 2장에서 그 예리한 말씀의 검의 방향을 180도 돌려 그들의 심장을 정조준합니다.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카타크리마)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프뉴마)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롬 2:1, 28-29)
스스로를 교양 있고 도덕적이라 여기는 자들, 율법을 소유하고 할례를 받았다는 종교적 기득권에 빠져 있는 유대인들의 그 은밀한 위선을 바울은 해부해 냅니다. 레온 모리스(Leon Morris)의 주해처럼, 하나님은 겉으로 드러난 종교적 의식(표면적 할례)이 아니라, 그 영혼의 가장 깊은 동기와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말씀을 안다고 해서 의로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을 가르치면서도 도둑질하고 간음하는 유대인들의 외식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았습니다. 바울은 이 엄숙한 논증을 통해, 율법과 도덕이라는 인간의 모든 자랑을 꺾어버리며, 특권이 결코 구원의 보증수표가 될 수 없음을 단호하게 선포합니다. 종교인이라 할지라도 십자가의 피가 없다면, 그들 역시 이방인과 동일하게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 아래 갇혀 있을 뿐입니다.
4. 프라소(Φράσσω)와 하마르티아(Ἁμαρτία): 침묵하는 우주와 전적 타락의 선고
이제 로마서 3장에 이르러, 바울은 유대인과 헬라인 모두를 향해 기독교 인죄론(Hamartiology)의 가장 어둡고도 철저한 판결문을 낭독합니다. 구약성경을 인용하여 쏟아내는 이 무거운 선고 앞에서 인간의 어떤 변명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프라소)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하마르티아)를 깨달음이니라" (롬 3:10-12, 19-20)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이것은 타락한 인간의 '전적 타락(Total Depravity)'과 '절대 무능력(Absolute Inability)'을 증명하는 성경 최고의 법정 선언입니다. 인간의 영혼, 지성, 의지, 감정 등 모든 전인격이 죄(하마르티아, ἁμαρτία)에 오염되어, 스스로의 힘으로는 하나님을 찾을 수도, 선을 행할 수도 없는 영적 시체 상태임을 선포한 것입니다.
"이는 모든 입을 막고(프라소, φράξῃ)!"
원어 '프라소'는 짐승의 입에 재갈을 물리듯 철저하게 말문이 막힌 상태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대 앞에서 인류는 자신의 선행이나 종교적 의식을 내세울 수 없습니다. 율법의 역할은 인간을 구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은 마치 정밀한 MRI 촬영처럼 우리의 뼛속 깊이 파고든 죄의 암세포를 적나라하게 폭로하여, "나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마땅한 죄인입니다"라는 항복 선언을 받아내는 거룩한 몽둥이일 뿐입니다.
[결론: 십자가의 은혜를 향한 철저한 영적 파산의 선포]
원종민 목사님. 참된 강해는 성도들의 귀를 즐겁게 하는 가벼운 위로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참된 복음은 언제나 우리의 절망적인 현주소를 가장 정직하고도 무겁게 직면하게 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로마서 1장부터 3장 20절까지, 바울은 단 한 줄기 구원의 빛도 허락하지 않은 채 인류 전체를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오르게) 아래 가두어 버렸습니다. 이방인의 더러운 우상 숭배도, 유대인의 고상한 율법주의도 결코 하나님의 심판대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이 엄위한 판결 아래, 온 우주는 하나님 앞에서 그 입을 다물어야만(프라소) 했습니다.
그러나 목사님, 이 철저한 흑암과 영적 파산의 선고야말로, 곧이어 3장 21절부터 폭발하게 될 '하나님의 의',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과 은혜가 얼마나 찬란하고 위대한 것인지를 돋보이게 하는 검은 벨벳 배경이 됩니다.
강단에 선 주의 종들은 품위 있고 담백한 언어로, 그러나 결코 타협할 수 없는 진리의 무게로 인간의 전적 타락을 선포해야 합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결코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이 거룩한 절망이 성도들의 심령 깊은 곳에 임할 때, 비로소 십자가의 피 묻은 은혜를 향한 참된 갈망과 위대한 신앙의 폭발이 일어날 것입니다. 오직 성경 원어의 깊이와 올곧은 신학적 반석 위에 세워진 이 장엄한 로마서의 서론이, 목사님의 강단을 통해 깊고도 고요한 영적 진동을 일으키기를 살아계신 주님의 이름으로 선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