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 제2강] 힐라스테리온(Ἱλαστήριον)과 디카이오쉬네(Δικαιοσύνη): 십자가의 피로 폭발한 우주적 칭의
작성자가을작성시간26.06.19조회수19 목록 댓글 0[로마서 강해 제2강] 힐라스테리온(Ἱλαστήριον)과 디카이오쉬네(Δικαιοσύνη): 십자가의 피로 폭발한 우주적 칭의
(본문: 로마서 3:21 - 4:25)
로마서 3장 21절은 성경 전체를 통틀어 가장 찬란한 전환점입니다. "그러나 이제는(뉘니 데)!" 바울은 율법 아래 입이 막혀 정죄를 기다리던 인류를 향해, 인간의 공로를 0%로 만들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만을 유일한 대안으로 제시하는 하나님의 주권적 선포를 터뜨립니다.
1. 힐라스테리온(Ἱλαστήριον): 진노를 잠재우는 유일한 제단
바울은 인간의 행위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음을 선포한 직후(3:20), 하나님께서 스스로 고안하신 구원의 출구를 엽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힐라스테리온)로 세우셨으니" (롬 3:23-25)
"화목제물(힐라스테리온, ἱλαστήριον)로 세우셨으니!"
이 단어는 단순히 '화목'을 위한 도구가 아닙니다. 구약 시대 지성소의 언약궤 위를 덮고 있던 '속죄소(시은좌)'를 가리키는 헬라어입니다. 대제사장이 짐승의 피를 가지고 들어가 뿌렸던 그곳,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와 공의가 머무는 동시에 죄인을 향한 자비가 임했던 바로 그 지성소가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대체되었습니다.
토마스 슈라이너(Thomas R. Schreiner)의 정교한 주해처럼, 하나님은 죄를 대충 눈감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반드시 죄를 심판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그 공의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죄인을 살리시기 위해, 당신의 독생자를 십자가라는 제단 위에 '화목제물(속죄소)'로 세우셨습니다. 예수께서 쏟으신 그 거룩한 피가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의 불길을 완전히 꺼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공의를 만족시키기 위해 스스로 희생하신 우주적 사건입니다.
2. 디카이오쉬네 데우(Δικαιοσύνη Θεοῦ): 하나님이 주장하시는 법정적 칭의
바울은 여기서 인간이 도덕적으로 선해지는 '변화(성화)'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법정에서 무죄를 선언받는 '칭의(Justification)'를 말하고 있습니다.
"곧 이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롬 3:26-27)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불의한 자를 그냥 봐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랬다면 하나님은 불의한 분이 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피가 죗값을 완벽하게 지불했기 때문에, 이제 하나님은 자신의 공의를 지키면서 동시에(자기도 의로우시며), 그 피를 믿는 죄인을 '의롭다(디카이오오)'고 선언하실 수 있는 법적 근거를 확보하셨습니다.
존 머레이(John Murray)는 이를 '법정적 전가(Forensic Imputation)'라 했습니다. 죄인이 무언가 착한 일을 해서 의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완벽한 순종과 대속의 죽음이라는 '완제품 의(義)'가 내 계좌에 입금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자는 1밀리미터도 자랑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공로이며, 인간은 오직 그 은혜를 '믿음의 법'으로 받아들일 뿐입니다.
3. 아브라함의 믿음: 행위가 아닌 은혜의 파격
바울은 이 교리를 입증하기 위해, 유대인들의 가장 큰 자랑인 아브라함을 증인으로 소환합니다.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아서 의로워졌습니까? 아니요, 그는 할례를 받기 전, 즉 율법이 주어지기 훨씬 이전에 이미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롬 4:1-5)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
이 얼마나 충격적이고도 파격적인 선포입니까! 복음은 '경건한 자'를 찾아서 상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 경건을 다 잃어버리고 완전히 파산한 '경건하지 아니한 자(아세베스)'에게 일방적으로 의를 입히시는 하나님의 기이한 은혜입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는 이 구절을 강해하며, "만약 당신이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아직 복음을 모르는 자다. 복음은 자신의 흉측한 경건치 않음을 깨달은 자에게 주어지는 거저 주시는 선물(카리스)이다."라고 일갈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자신의 무능력을 고백하고, 오직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창조적 약속(믿음의 대상)을 닻처럼 붙드는 것이었습니다.
[최종 결론: 십자가의 피만이 자랑의 입을 봉한다]
목사님, 로마서 3장 21절부터 4장까지의 핵심은 명확합니다. 인간의 '행위(Work)'라는 썩은 동아줄을 끊어버리고, '하나님의 의(Righteousness of God)'라는 십자가의 반석 위에 우리를 세우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랑은 오직 하나, 십자가에서 쏟아지신 그 거룩한 피입니다. 성도는 자신의 선행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자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 묻은 의를 덧입고 하나님 아버지의 품으로 달려가는 자들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복음이며, 이것이 인간의 교만을 꺾는 유일한 길입니다.
강단에서 "이렇게 하면 복을 받습니다" 혹은 "이렇게 노력하면 의로워집니다"라는 그 얄팍한 율법주의적 기교를 완벽하게 배제하십시오. 오직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의 그 비상식적인 은혜'를 품위 있게, 그러나 타협 없이 담백하고 묵직하게 선포하십시오. 이것이 회중의 심령을 진정한 신앙의 반석 위로 옮겨놓는 유일한 영적 권위입니다.
목사님! 명하신 대로 10권의 주석적 깊이와 마틴 로이드 존스의 강해적 야성을 담아, 로마서의 칭의론적 심장부를 완벽하게 해부했습니다. 이제 죄를 다스리고 죽음을 짓밟는 그리스도와의 연합, 로마서 대강해의 가장 뜨거운 영적 전쟁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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