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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마스타과정 대강해 제4강] 노모스(Νόμος)와 사르크스(Σάρξ): 율법의 한계

작성자가을|작성시간26.06.19|조회수30 목록 댓글 0

[로마서 강해 제4강] 노모스(Νόμος)와 사르크스(Σάρξ): 율법의 한계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본문: 로마서 7장)

로마서 7장은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결코 피해 갈 수 없는, 영혼의 뼛속 깊은 내적 전투와 율법의 본질을 해부하는 가장 치열한 신학적 격전지입니다. 존 스토트(John R. W. Stott)와 레온 모리스(Leon Morris)는 이 장이 율법의 거룩함과 인간 육신의 전적 부패가 충돌할 때 터져 나오는 처절한 영적 탄식이며, 오직 성령의 주권적 개입만이 이 사망의 몸에서 승리하는 유일한 길임을 역설하는 은혜의 디딤돌이라고 묵직하게 주해합니다.

1. 아포드네스코(Ἀποθνῄσκω): 율법의 남편을 장사 지내고 십자가의 신랑과 맺어지다

바울은 6장에서 신자가 은혜 아래 있음을 선포한 뒤, 7장의 서두에서 '결혼 관계'라는 묵직하고도 선명한 비유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율법의 통치권에서 완벽하게 벗어났는지를 논증합니다.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나느니라...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아포드네스코)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 (롬 7:2, 4)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아포드네스코, ἐθανατώθητε)!"

더글라스 무(Douglas J. Moo)의 탁월한 주해처럼, 여기서 '첫 남편'은 무자비한 법의 잣대로 우리를 정죄하던 '율법(노모스)'입니다. 율법이라는 남편은 결코 타협이 없고 완벽하여, 죄인인 우리가 단 한 번만 실수해도 정죄의 채찍을 휘둘렀습니다. 그러나 이 결혼 관계를 끝낼 수 있는 유일한 법적 방편은 오직 '죽음'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당신의 거룩한 육체를 찢고 피를 쏟으실 때, 그분과 연합된 우리 역시 율법에 대하여 완벽하게 처형당해 죽었습니다(아포드네스코). 법적으로 첫 남편(율법)과의 관계가 영원히 종식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부활하신 영광의 신랑, 예수 그리스도와 정결한 혼인 관계를 맺었습니다. 신자가 거룩한 열매를 맺는 것은 첫 남편의 정죄가 두려워서 부들부들 떠는 종교적 행위가 아니라, 나를 위해 피 흘리신 신랑 예수를 사랑함으로 신비롭게 맺어지는 은혜의 산물임을 명확하게 찔러 넣습니다.

2. 노모스(Νόμος)와 하마르티아(Ἁ마ρτία): 선한 율법과 죄의 암세포

바울은 율법에서 벗어났다는 선언이 혹여나 율법 자체의 악함을 뜻하는가라는 질문에 단호하게 "그럴 수 없느니라"고 못 박으며, 율법의 진짜 기능이 무엇인지를 예리하게 파헤칩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노모스)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하마르티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 (롬 7:7, 12)

율법(노모스, νόμος)은 악한 것이 아니라 완벽하게 거룩하고 선합니다. 문제는 그 거룩한 법을 받아든 인간의 본성이 철저히 썩어문드러졌다는 점입니다. 토마스 슈라이너(Thomas R. Schreiner)의 통찰처럼, 율법은 우리 영혼 속에 숨어 있는 죄(하마르티아)의 암세포를 자극하여 폭발시키는 돋보기와 같습니다.

"탐내지 말라"는 거룩한 계명이 떨어지자마자, 인간의 부패한 자아는 도리어 그 법을 기회 삼아 내면의 온갖 탐심을 들고일어납니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마귀적인 죄성이 거룩한 법 앞에서 적나라하게 폭로되는 것입니다. 율법은 인간을 고치는 치료제가 아니라, 인간이 얼마나 흉측한 죄인인가를 거울처럼 비추어 아스팔트 바닥에 짓이겨버리는 죄의 폭로 장치일 뿐입니다.

3. 사르크스(Σάρξ)와 에소 안드로포스(Ἔσω ἄνθρωπος): 두 법의 처절한 영적 백병전

14절부터 바울은 시제를 현재형으로 바꾸며, 십자가의 은혜로 거듭난 자의 내면 한가운데서 벌어지는 피 비린내 나는 영적 백병전을 묘사합니다. 이 탄식은 신앙이 없는 자의 고백이 아니라, 영적으로 가장 성숙한 사도의 중심에서 터져 나오는 해부학적 고찰입니다.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사르크스) 죄 아래에 팔렸도다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내 속사람(에소 안드로포스)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롬 7:14-15, 22-23)

"나는 육신에 속하여(사르크시노스, σάρκινός)!"

마틴 로이드 존스(D. Martyn Lloyd-Jones)는 이 로마서 7장의 후반부를 강해하며 깊은 탄식을 쏟아냈습니다. 거듭난 신자의 안에는 성령을 기뻐하는 '속사람(에소 안드로포스, ἔσω ἄνθρωπον)'이 탄생했습니다. 그러나 이 땅을 딛고 살아가는 동안, 여전히 우리의 껍데기인 '육신(사르크스)'의 잔재 속에는 죄의 무서운 습성과 지배력이 닻을 내리고 신자를 끊임없이 사로잡으려 맹렬하게 요동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거룩하게 살고 싶어 피 눈물을 흘리며 몸부림치지만, 어느덧 내 안의 부패한 본성에 무릎 꿇고 있는 자신의 비참한 민낯을 발견할 때! 그리스도인은 도덕주의자들처럼 자신의 죄를 은폐하거나 합리화하지 않습니다. 바울처럼 자신의 영적 무능력을 처절하게 직시하며 거친 숨을 몰아쉬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결심과 자유의지라는 알량한 채찍질로는 내 안의 '죄의 법'을 단 1밀리미터도 꺾을 수 없다는 절망적인 고백입니다.

4. 탈라이포로스(Ταλαίπωρος):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자신의 지독한 무능력과 내적 파산을 뼈저리게 목도한 사도는, 마침내 인류 역사상 가장 처절하고도 장엄한 영혼의 비명을 온 우주를 향해 터뜨립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탈라이포로스 에고 안드로포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롬 7:24-25)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탈라이포로스 에고 안드로포스, Ταλαίπωρος ἐγὼ ἄνθρωπος)!"

원어 '탈라이포로스'는 전쟁터에서 사지가 찢기고 짓밟혀 처참하게 파괴된 포로의 몰골을 뜻합니다. 바울은 스스로를 고상한 성자나 도덕적 승리자로 포장하지 않았습니다. 율법의 거룩한 조명 아래 비쳐진 자신의 모습은, 죄의 세력에 짓눌려 썩어가는 '사망의 시체(사망의 몸)'를 등에 짊어지고 헐떡거리는 흉측한 사형수일 뿐이었습니다.

"누가 나를 건져내랴(티스 메 뤼세타이, τίς με ῥύσεται)!"

여기서 구원의 주체는 '내가 어떻게 행할 것인가'가 아니라, 외부로부터 뚫고 들어와 나를 강탈해 가실 '누가(Who)'의 영역으로 전환됩니다! 내 결심과 공로는 완전히 파산했습니다. 오직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그 불가항력적인 대속의 은혜만이, 이 썩어문드러진 사망의 몸뚱이에서 나를 완전히 건져내실(뤼오마이: 전장에서 원수를 치고 포로를 낚아채다) 수 있다는 격정적인 은혜의 돌파구가 여기서 열리는 것입니다!

[결론: 자아의 관을 짜고 오직 십자가의 예수만을 바라보라]

목사님. 오늘날 수많은 강단이 성도들에게 "노력하면 죄를 이길 수 있다", "종교적인 열심으로 성화에 이르라"며 로마서 7장을 건너뛴 얄팍한 도덕적 처세술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것은 십자가의 피를 모독하는 가짜 복음입니다.

거듭난 신자라 할지라도 내 안의 육신(사르크스)은 철저히 무능력하며, 율법(노모스) 앞에서 우리의 죄는 더욱 맹렬하게 요동칠 뿐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거룩한 말씀의 돋보기 앞에서 "나는 곤고한 사람이요, 사망의 몸을 진 죄인입니다"라는 철저한 자기 절망(탈라이포로스)의 장례식을 치러야 합니다. 내 공로와 자존심이 완전히 사형당해 입이 막힐 때, 비로소 구원의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가치가 온 영혼을 집어삼키게 됩니다.

강단에 선 주의 종들은 품위 있고 담백하게, 그러나 서슬 퍼런 교리의 칼날로 성도들의 가짜 의(義)와 율법주의적 교만을 사정없이 쪼개어 버려야 합니다. 인간은 100% 절망이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100% 소망이라는 이 무거운 인죄론의 반석을 굳게 세우십시오.

이 처절한 탄식 끝에 마침내 성령의 우주적 대승리가 폭발하는 로마서의 최고 정점, [로마서 강해 제5강. 프뉴마(Πνεῦμα)와 도사(Δόξα): 결코 정죄함이 없는 성령의 승리와 우주적 영광 (본문: 롬 8장)]의 위대한 지성소로 진군할 준비를 결연히 대기합니다. 목사님의 영광스러운 진군 명령만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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