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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마스타 과정 대 강해 제5강] 프뉴마(Πνεῦμα)와 독사(Δόξα): 결코 정죄함이 없는 성령의 승리

작성자가을|작성시간26.06.19|조회수30 목록 댓글 0

[로마서 강해 제5강] 프뉴마(Πνεῦμα)와 독사(Δόξα): 결코 정죄함이 없는 성령의 승리와 우주적 영광

(본문: 로마서 8장)

로마서 8장은 7장의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라는 사망의 절규를 단 한마디로 종식시키며,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신자가 성령 안에서 누리는 영원하고도 완벽한 영적 대승리를 천명하는 구원론의 최종 선언입니다. 더글라스 무(Douglas J. Moo)와 마틴 로이드 존스(D. Martyn Lloyd-Jones)는 이 장이 신자의 안전보장(Eternal Security)과 장차 나타날 우주적 영광을 개혁주의 구속사적 지평 위에서 웅장하게 노래하는 신학의 최고봉이라고 묵직하게 증언합니다.

1. 카타크리마(Κατάκριμα)와 프뉴마(Πνεῦμα): 정죄의 사슬을 끊어낸 성령의 법

바울은 8장의 포문을 열며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도 단호한 법정적 선언을 우주 앞에 선포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카타크리마)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프뉴마)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롬 8:1-3)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우덴 아라 뉘니 카타크리마, οὐδὲν ἄρα νῦν κατάκριμα)!"

원어의 구조는 '결코(우덴, 단 0.1%도)'라는 부정어가 문장 맨 앞에 튀어나와 정죄의 가능성을 완벽하게 소멸시켜 버립니다. 7장에서 육신의 연약함 때문에 처절하게 넘어지고 탄식했던 신자라 할지라도, 그리스도 예수의 터 위에 서 있다면 우주의 최고 재판장이신 하나님으로부터 그 어떤 '정죄(카타크리마)'도 받지 않는 법적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토마스 슈라이너(Thomas R. Schreiner)의 정교한 주해처럼, 율법이 인간 육신의 부패함 때문에 결코 이룰 수 없었던 그 의로운 요구를, 하나님께서 당신의 독생자를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사 십자가에서 완전히 찢어 제물 삼으심으로 단숨에 성취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생명의 성령(프뉴마, πνεῦμα)의 법'이 우리 심장 속에 뚫고 들어와, 죄와 사망이 결코 우리를 소유할 수 없도록 영원한 해방(칭의와 성화)을 확증해 버리신 것입니다.

2. 아바(Ἀββᾶ)와 텔로스(Τέλος): 종의 두려움을 찢는 양자의 영과 탄식

성령을 모신 신자는 이제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떠는 정죄의 종이 아니라, 창조주를 친근히 부르는 친자녀(양자)의 특권을 누리게 됩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아바 호 파테르)라고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독사)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롬 8:15-17)

"아빠 아버지(아바 호 파테르, Ἀββᾶ ὁ πατήρ)!"

갈보리 십자가의 피 비린내 나는 대속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감히 '아빠(아바)'라 부를 수 있는 친밀한 양자의 신격을 얻었습니다. 존 머레이(John Murray)는 이를 구원의 가장 높은 법적, 특권적 정점이라고 칭송했습니다.

그러나 이 영광스러운 신분에는 반드시 십자가의 흔적이 따릅니다.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파데마)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바울은 장차 나타날 그 압도적인 '영광(독사, δόξα)'에 비하면 현재의 고난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가벼운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피조물 전체가 죄의 저주 아래서 썩어짐의 종노릇하며 고통의 탄식을 쏟아내고 있고, 거듭난 신자 역시 몸의 속량(영화)을 바라보며 속으로 탄식하지만,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친히 중보하시는 성령의 견인(Perseverance)이 있기에 신자는 이 세상의 고난을 능히 견뎌내는 것입니다.

3. 프로그노스코(Προγινώσκω)와 도사(Δόξα): 구원의 황금 사슬, 끊어지지 않는 작정

바울은 이제 신자의 안전과 구원이 결코 흔들릴 수 없는 근원적인 이유를, 시간과 우주를 초월한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 속에서 찾아내어 선포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프로그노스코)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독사조) 하셨느니라" (롬 8:28-30)

이것이 바로 개혁주의 신학의 심장, '구원의 황금 사슬(Ordo Salutis)'입니다!

제임스 몽고메리 보이스(James Montgomery Boice)는 이 구절을 향해 "인간의 자유의지와 공로주의의 관짝에 마지막 대못을 박아버리는 주권적 은혜의 절대적 선언"이라고 갈파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시기로 창세 전에 '미리 아시고(프로그노스코, προέγνو)', 작정하사 '예정'하셨다면,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부르심(소명)'이 임하고, 부른 자를 십자가의 피로 반드시 '의롭다 하시고(칭의)', 의롭다 하신 자를 기어이 종말론적 우주 영광의 자리인 '영화(독사조, ἐδόξασεν)'의 단계까지 끌고 가십니다! 바울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영화를 이미 이루어진 '과거형' 단어로 단호하게 사용합니다. 하나님의 작정 속에서 신자의 구원은 단 한 명의 탈락자도 없이 이미 100% 완벽하게 완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4. 휘페르니카오(Ὑπερνικάω): 하나님의 맹렬한 사랑과 절대적 승리의 포효

로마서 8장의 대미를 장식하며, 사도는 전 우주의 법정과 세상의 환난을 향해 십자가의 피 묻은 깃발을 꽂으며 장엄한 승리의 사자후를 터뜨립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휘페르니카오)" (롬 8:31-33, 37)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사탄이 우리의 연약함과 죄를 들추며 아무리 고발해도 소용없습니다. 우주의 최고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내가 내 아들의 피를 보고 너를 의롭다 했다!"라고 판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누구도 이 법정적 선언을 뒤집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휘페르니카오, ὑπερνικῶμεν)!"

원어 '휘페르니카오'는 겨우 이기는 수준이 아니라, 대적을 완벽하게 짓밟고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는 '초(超)승리(More than Conquerors)'를 뜻합니다. 세상의 환난이나 기근이나 핍박이나 칼, 심지어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그 어떤 피조물이라 할지라도, 골고다 십자가 위에서 당신의 육체를 찢으시며 확증하신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맹렬한 사랑'에서 우리를 단 1밀리미터도 끊어낼 수 없다는 절대적 안전의 대폭발입니다!

[결론: 정죄를 부수고 영원한 황금 사슬에 묶인 승리의 교회]

목사님. 기독교의 구원은 인간의 연약함에 따라 취소되거나 흔들릴 수 있는 가벼운 낙엽이 아닙니다. 현대 교회의 강단이 성도들의 행위를 율법적으로 쥐어짜며 구원의 확신을 흔들어놓는 것은 십자가의 완벽한 결제(테텔레스타이)를 모독하는 죄악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육신의 연약함(사르크스) 때문에 탄식할 수밖에 없는 자들이지만, 우리 안에는 결코 정죄함이 없도록 보호하시는 생명의 성령의 법(프뉴마)이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내가 하나님을 붙든 손의 악력이 아니라, 창세 전부터 미리 아시고 예정하사 영화의 자리까지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끌고 가시는 '하나님의 끊어지지 않는 황금 사슬'에 묶여 있습니다.

강단에 선 주의 종들은 품위 있고 담백하게, 그러나 온 우주를 진동시키는 묵직한 영적 권위로 이 십자가의 절대적 안전과 성령의 초승리(휘페르니카오)를 선포해야 합니다. 어떤 고난과 환난 앞에서도 결코 끊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그 맹렬한 사랑이 성도들의 심장을 장엄하게 사로잡을 때, 교회는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는 무적의 군대로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이 압도적인 영광의 찬가를 지나, 이제 인간의 모든 자유의지를 완벽하게 쳐부수고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 선택을 해부하는 개혁주의 신학의 가차 없는 칼날! [로마서 강해 제6강. 에클로게(Ἐκλογή)와 프로데시스(Πρόθεσις): 인본주의의 숨통을 끊는 하나님의 주권적 예정 (본문: 롬 9-11장)]의 거친 고지를 향해, 오직 목사님과 한마음으로 진리의 검을 굳게 쥐고 진군할 준비를 결연히 대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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