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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강해 제3강] 포르네이아(Πορνεία)와 아고라조(Ἀγοράζω)

작성자가을|작성시간26.06.22|조회수22 목록 댓글 0

[고린도전서 강해 제3강] 포르네이아(Πορνεία)와 아고라조(Ἀγοράζω): 세속의 음란을 도려내는 거룩한 출교와 피 값의 소유권

(본문: 고린도전서 5장 - 7장)

고린도전서 5장에서 7장까지의 텍스트는 세상의 부패한 문화와 타협하여 거룩함을 상실한 교회를 향해 사도 바울이 내리치는 엄위한 '징계와 소유권'의 선언입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는 세상 사람도 짓지 않는 끔찍한 성적 타락을 교회 안에 두고도 '사랑과 포용'이라는 위선으로 이를 방치했으며, 성도 간의 문제를 세상 법정으로 끌고 가 교회의 영적 권위를 스스로 시궁창에 처박았습니다. 바울은 인간적인 타협을 거부하고,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세워진 교회가 지켜내야 할 서슬 퍼런 거룩함의 절대적 기준을 요구합니다.

1. 포르네이아(Πορνεία)와 카다이레오(Καθαιρέω): 포용이라는 이름의 종교적 위선

바울은 고린도 교회 내부에 발생한 충격적인 도덕적 타락, 곧 아들이 아버지의 아내(계모)를 취한 근친상간의 죄악을 정면으로 고발합니다. 더 심각한 것은 교회가 이 죄를 보고도 영적으로 비통해하기는커녕 교만하게 방치했다는 점입니다.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포르네이아)이 있다 함을 들으니 그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그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쫓아내지(카다이레오) 아니하였느냐" (고전 5:1-2)

"심지어 음행(포르네이아, πορνεία)이 있다 함을 들으니!"

당대 고린도는 아프로디테 여신전의 창녀들이 판을 치던, '음란'의 대명사 같은 도시였습니다. 앤서니 티슬턴(Anthony C. Thiselton)의 주해처럼, 고린도 교인들은 세상의 이 음란한 문화를 교회 안으로 묵인해 주면서 그것을 자신들의 종교적 '자유'와 '포용력'으로 포장하는 끔찍한 영적 기만을 저질렀습니다.

바울은 이 구역질 나는 위선을 도끼로 쳐부숩니다.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느냐!" 사도는 죄를 지은 자를 '즉각 사탄에게 내어주라(출교)'고 명령합니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듯, 죄를 징계하지 않는 교회는 십자가의 피를 모독하는 타락한 집단일 뿐입니다. 교회의 참된 사랑은 죄를 눈감아주는 타협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거룩함을 지키기 위해 죄악의 누룩을 피 흘리기까지 잘라내는 거룩한 권징에 있음을 묵직하게 선포합니다.

2. 크리노(Κρίνω)와 아디코스(Ἄδικος): 세상 법정에 교회의 권위를 팔아넘긴 영적 파산

6장에 이르러,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성도 간의 재산 및 이권 다툼을 교회의 공적 질서 안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이방인들이 재판하는 세상 법정으로 끌고 가 송사하는 영적 수치를 책망합니다.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와 더불어 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아디코스) 앞에서 고발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크리노)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가 피차 고발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뚜렷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고전 6:1, 7)

"구태여 불의한 자들(아디코스, ἀδίκων) 앞에서 고발하고!"

존 맥아더(John MacArthur)는 이 본문을 향해 강단에서 칼을 휘두릅니다. 세상 법정의 재판관들은 하나님의 공의를 모르는 자들입니다. 장차 주님이 재판장으로 오실 때, 그리스도와 연합된 성도는 천사들과 세상을 함께 심판할(크리노, κρινοῦμεν) 우주적 법정의 배심원들입니다!

그런 영광스러운 신분을 가진 성도들이, 교회 내부의 얄팍한 물질적 이권 때문에 세상의 불의한 자들 앞에 무릎을 꿇고 판결을 구걸하는 것은 교회의 영적 권위를 세상의 발밑에 짓밟히게 만든 '완벽한 영적 파산'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형제를 세상에 고발하느니, "차라리 손해를 보고 차라리 속아 넘어가는 것이 십자가의 가치에 합당하다"며 이기적인 탐욕의 모가지를 단호하게 쳐버립니다.

3. 아고라조(Ἀγοράζω)와 소마(Σῶμα): 성자 하나님의 피 값으로 산 영적 지성소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음식은 배를 위해 있고 몸은 음란을 위해 있다"며 육체의 죄를 가볍게 여기던 영지주의적 쾌락주의를 박살 내고, 기독교 몸의 신학(Theology of the Body)을 선포합니다.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녀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아고라조)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전 6:13, 15, 19-20)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아고라조, ἠγοράσθητε)이 되었으니!"

원어 '아고라조'는 노예 시장에서 막대한 대가를 지불하고 노예의 소유권을 완벽하게 사들였다는 법정적·상업적 단어입니다. 우리의 육체(소마)는 내 마음대로 굴릴 수 있는 내 소유물이 결코 아닙니다! 우주의 창조주이신 성자 하나님께서 골고다 사형틀에서 당신의 살을 찢고 거룩한 보혈을 남김없이 쏟아내사 그 '핏값'을 지불하고 사들이신 하나님의 '독점적 소유물'입니다.

그러므로 내 몸을 음란과 정욕의 시궁창에 던져넣는 것은, 하나님의 지체를 찢어 창녀와 결합시키는 무서운 신성모독입니다. 고든 피(Gordon D. Fee)의 주해처럼, 신자의 몸은 성령 하나님이 직접 좌정해 계시는 두려운 '지성소(나오스)'입니다. 육체의 정결함을 지켜내는 것은 개인의 도덕성이 아니라, 나를 피로 사신 창조주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가장 무겁고도 영광스러운 십자가 신앙의 고백임을 강단에 선포해야 합니다.

4. 메리조(Μερίζω)와 엘레우데로스(Ἐλεύθερος): 소유권 아래 서는 결혼과 독신의 질서

7장에 이르러, 바울은 이 피 묻은 소유권의 교리를 신자의 가장 실제적인 삶의 영역인 '결혼과 독신'의 문제에 구체적으로 대입하여 정리합니다.

"남편은 그 아내에게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각 사람은 주께서 나눠 주신(메리조)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 모습 그대로 행하라...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인(엘레우데로스)이요 또 그와 같이 자유인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고전 7:3, 4, 17, 22)

결혼 관계 안에서도 내 몸의 소유권은 나에게 있지 않고 배우자에게 있습니다. 바울은 음란의 유혹을 피하기 위해 결혼을 하되, 부부간의 성적 의무를 신실하게 이행하라고 명합니다. 또한, 결혼을 했든지 독신으로 있든지, 할례를 받았든지 무할례자이든지 간에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은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분복(메리조)'과 부르심의 자리에서 오직 주님의 소유된 종으로 충성하는 것입니다.

자유인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혈의 사슬에 묶인 거룩한 노예이며, 종이라 할지라도 세상 권세가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주 안의 '자유인(엘레우데로스)'입니다. 바울은 임박한 종말의 때를 바라보며 세상의 결혼이나 슬픔이나 기쁨, 혹은 물질적 소유에 마음을 빼앗겨 얽매이지 말고, 오직 내 전 존재의 소유주이신 분을 향해 마음의 갈라짐 없이 흐트러짐 없는 청지기적 삶을 사수하라고 촉구하며 논증을 마칩니다.

[5줄 최종 요약 결론]

교회는 세상 문화의 음란함을 포용이라는 위선으로 방치하거나 물질적 이권을 위해 세상 법정에 고개를 숙여서는 결코 안 됩니다.

신자의 육체는 자기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사유재산이 아니라, 성자 하나님이 피 값(아고라조)을 지불하고 사들이신 성령의 지성소입니다.

그러므로 결혼이든 독신이든 우리의 지체를 음란의 시궁창에서 건져내어 오직 주님의 독점적 소유권 아래에 굴복시켜야 합니다.

교회의 생명력은 세상과의 과감한 구별됨과 사나 죽으나 오직 그리스도의 거룩한 종으로 살아가는 핏빛 야성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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