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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강해 제1강] 파라클레시스(Παράκλησις)와 트리아움베우오(Θριαμβεύω)

작성자가을|작성시간26.06.22|조회수26 목록 댓글 0

[고린도후서 강해 제1강] 파라클레시스(Παράκλησις)와 트리아움베우오(Θριαμβεύω): 고난을 뚫고 터지는 신적 위로와 그리스도의 승리 전차

(본문: 고린도후서 1장 - 2장)

고린도후서 1장과 2장은 사도직의 진정성과 기독교인이 마주하는 고난의 본질적 의미를 신학적으로 정돈하는 장엄한 서론입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에 침투한 거짓 사도들은 바울이 겪는 수많은 감옥의 갇힘과 매 맞음, 환난을 보며 "저것이 사도의 약함과 실패의 증거"라며 비난했고, 바울이 사정상 방문 계획을 변경한 것을 두고 "경솔하고 신실하지 못하다"고 공격했습니다. 바울은 이 교만하고 얄팍한 세속적 성공주의를 인간적인 변명으로 대항하지 않고, 고난 속에 감추어진 '신적 위로'와 '그리스도의 주권적 승리'라는 복음의 우주적 역설로 그들의 지성을 완벽하게 제압합니다.

1. 파라클레시스(Παράκλησις)와 에투스카토스(Ἐσύχατος): 죽은 자를 살리시는 이만 의지하게 하는 고난의 역설

바울은 문안 인사를 마치자마자, 찬양의 대상을 선포하며 신자가 겪는 환난의 지성소로 회중을 이끌고 들어갑니다.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파라클레시스)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파라클레시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파라클레시스)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고후 1:3-5, 9)

"모든 위로(파라클레시스, παράκλησις)의 하나님이시며!"

원어 '파라클레시스'는 얄팍하게 뺨을 어루만지는 감상적인 동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곁으로(Para) 부르다(Kaleo)'라는 어원처럼, 극심한 전투의 현장 한복판에 사령관이 정예 부대를 이끌고 원군으로 뚫고 들어와 넘어진 군사를 일으키고 싸울 수 있는 강력한 용기와 '신적 힘을 주입하는 것(Fortitude)'을 뜻합니다.

바울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이 '힘에 겹도록 심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에투스카토스, 극치에 이르고)'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상태였다고 고백합니다. 데이비드 가랜드(David E. Garland)의 날카로운 주해처럼, 하나님이 당신의 사랑하는 사도를 영적·육적 파산의 한계 상황까지 밀어붙이신 목적은 명확합니다. 인간의 알량한 기득권과 자기 신뢰를 도끼로 완벽하게 박살 내고, 오직 "죽은 자를 살리시는 창조주 하나님 한 분만을 절대 의존"하게 만드시려는 주권적 섭리입니다. 신자의 고난은 실패의 증거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함으로 신적 위로를 경험하고 그 위로를 다른 고난당하는 자들에게 유통하는 거룩한 자격증(사도직의 흔적)임을 묵직하게 찔러 넣습니다.

2. 나이(Ναί)와 아멘(Ἀμήν): 인간의 변덕을 찢는 그리스도의 절대적 신실하심

사도는 고린도 교인들이 자신의 방문 변경을 두고 '경솔하게 예 예 하고 아니오 아니오 한다'며 신실함을 의심하자, 신자의 언어적 신실함의 근거를 오직 하나님 한 분의 신실하심과 그리스도의 구속적 성취 위에 굳게 세웁니다.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나이)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고후 1:18, 20-21)

인간 사역자의 계획은 상황과 성령의 인도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선포한 복음의 내용만큼은 결코 변덕스럽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구약적 약속과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화목제물 되심 안에서 단 0.1%의 오차도 없이 '예(나이, Ναί: 최종적 긍정)'로 확정되고 결제(테텔레스타이)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강단과 회중은 인간 사역자의 스펙이나 평판을 바라보는 유치함을 버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100% 성취된 그 신실한 진리 앞에 오직 확고한 복종의 연대인 '아멘(Ἀμήν, 진실로 그러합니다)'으로 화답하여 창조주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우리를 그리스도라는 단단한 바위 위에 굳건하게 접붙이시고 인(印) 치사 성령을 보증으로 주신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기에, 사도의 권위와 신자의 안전은 인간의 조건이 아니라 신적 신실하심에 매여 있음을 담백하게 논증합니다.

3. 트리아움베우오(Θριαμβεύω)와 유오디아(Εὐωδία): 개선전차에 묶인 포로와 사도의 죽음 가치

2장에 이르러, 바울은 눈물로 쓴 편지를 보낸 후 디도를 기다리며 겪었던 극심한 영적 마음의 고통을 진술하다가, 갑자기 성령의 감동에 휩싸여 전 우주적인 구속사의 장엄한 개선 행진곡을 터뜨립니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트리아움베우오)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유오디아)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고후 2:14-16)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트리아움베우온티 헤마스, θριαμβεύοντι ἡμᾶς)!"

원어 '트리아움베우오'는 고대 로마 제국에서 장군이 전쟁에서 완벽한 승리를 거두고 로마 시내로 진입할 때 거행하던 최고 영광의 예식인 '개선식(Triumph)'을 뜻합니다. 머레이 해리스(Murray J. Harris)의 고도의 주석적 해부에 따르면, 여기서 바울은 자신을 개선전차에 탄 장군으로 묘사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사도는 그리스도라는 개선장군의 마차 뒤에 두 쇠사슬에 묶여 압송당하는 '전쟁 포로(Captive)'의 자리에 자신을 위치시킵니다.

하나님은 사도를 세상의 눈에 철저히 정복당하고 도살당할 포로처럼 이리저리 끌고 다니시며 영적 무능력을 노출 시키십니다. 그러나 기이하게도 그 사형수 같은 포로들의 행진 대열 사이로, 로마 개선식 때 피우던 향방의 연기처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향기(유오디아, εὐωδία)'가 온 천하에 진동하게 만드십니다!

이 향기는 중립이 없습니다. 복음을 거부하고 세상 지혜를 자랑하며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그 향기가 곧 자신들이 처형당할 '사망의 피 비린내(냄새)'로 다가오지만, 십자가의 보혈을 믿고 구원받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의 향취'로 역사합니다. 사도는 스스로 영웅이 되려 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개선전차에 묶인 노예적 포로가 되어 죽어감으로써 복음의 영광을 온 우주에 폭발시키는 존재입니다.

4. 카페루오(Καπηλεύω): 야성을 잃어버린 가짜 사도들의 사기극을 폭로하다

바울은 이 웅장하고도 두려운 복음의 향기 앞에 서서, 자신이 왜 세상의 화려한 웅변가들이나 거짓 지도자들과 근본적으로 다른가를 서슬 퍼런 칼날로 선언하며 결론을 맺습니다.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카페루오) 아니하고 오직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고후 2:16-17)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원어 '카페루오'는 포도주에 물을 섞어 양을 불리거나 불량 식품을 명품으로 속여 파는 '시장바닥의 사기꾼, 잡상인(Peddler)'의 행위를 뜻합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에 들어온 거짓 사도들은 회중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복음의 거친 칼날과 십자가의 피 비린내를 제거하고, 세상의 화려한 철학과 처세술을 섞어 '물 탄 복음'을 비싼 값에 유통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부와 명예를 쥐는 비즈니스로 전락시켰습니다.

바울은 이 구역질 나는 종교적 사기극의 숨통을 끊어놓습니다. 참된 강단은 사람의 눈치를 보며 진리를 타협하는 시장바닥의 잡상인이 아닙니다. 오직 창조주 하나님께로부터 다이렉트로 위임받은 말씀을 단 1%의 인간적 기교도 섞지 않고, 코람데오(하나님 앞에서)의 두려움과 그리스도의 통치 안에서 있는 그대로 서슬 퍼렇게 쏟아내는 순전한 대언자(사명자)여야 함을 선포하며 논증을 닫아냅니다.

[5줄 최종 요약 결론]

  • 기독교인의 극심한 환난은 실패의 증거가 아니라, 인간의 자기 신뢰를 깨부수고 오직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만드시는 신적 위로(파라클레시스)의 통로입니다.

  • 하나님의 모든 구속적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 안에서 완벽한 '예(나이)'로 확정되었기에, 신자는 오직 '아멘'의 복종으로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 하나님은 사도를 그리스도의 개선전차 뒤에 묶인 '전쟁 포로(트리아움베우오)'처럼 낮추시나, 도리어 그 약함의 행진을 통해 그리스도의 생명의 향기(유오디아)를 우주에 폭발시키십니다.

  • 복음의 향기는 진리를 거부하는 자에게는 심판의 '사망의 냄새'로, 십자가를 믿는 자에게는 영원한 '생명의 냄새'로 역사하는 절대적 분수령입니다.

  • 그러므로 참된 강단은 사람의 귀를 즐겁게 하기 위해 말씀에 물을 섞어 파는 잡상인(카페루오)의 사기극을 멈추고, 하나님 앞에서 오직 순전한 피 묻은 진리만을 선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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