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강해 제2강] 에피스톨레(Ἐπιστολή)와 디아코니아(Διακονία): 인간의 추천서를 찢는 그리스도의 편지와 영광의 새 언약
(본문: 고린도후서 3장 1절 - 4장 6절)
고린도후서 3장 1절부터 4장 6절까지의 본문은 신구약의 구속사적 불연속성과 연속성을 관통하는 기독교 사역론의 위대한 대헌장입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에 침투한 유대주의 거짓 사도들은 예루살렘의 유력자들에게서 받아온 화려한 '추천서'를 흔들며 자신들의 정통성을 과시했고, 시내산에서 모세가 받은 율법의 영광을 내세우며 바울의 사도직을 폄하했습니다. 바울은 이 외형적인 기득권주의를 향해 종이 추천서를 찢어버리고, 돌판에 새겨진 정죄의 직분을 넘어 영혼을 살리는 '성령의 직분'이 가진 압도적이고도 영원한 영광을 지성적으로 논증합니다.
1. 에피스톨레(Ἐπιστολή)와 멜란(Μέλαν): 종이 쪼가리를 비웃는 그리스도의 혈서
바울은 거짓 지도자들이 내세우던 외형적 기득권의 상징인 '추천서'의 허상을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존재 자체를 통해 완벽하게 해체합니다.
"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추천서(에피스톨레)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은 너희에게 받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 너희는 우리의 편지(에피스톨레)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 사람이 알고 외는 바라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에피스톨레)니 이는 먹(멜란)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고후 3:1-3)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에피스톨레, ἐπιστολὴ)니!"
원어 '에피스톨레'는 당시 공적 신분을 보증하던 서신입니다. 거짓 사도들은 사람의 손으로 쓰고 잉크, 즉 '먹(멜란, μέλαν)'으로 인쇄된 종이 쪼가리를 생명처럼 의지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내 추천서는 예루살렘의 권력자가 써준 종이가 아니라, 복음으로 변화되어 살아 움직이는 고린도 교회 너희 자신이다!"라고 천명합니다.
폴 바넷(Paul Barnett)의 통찰처럼, 참된 사역의 정통성은 외형적인 스펙이나 학위, 인간들의 추천서에 있지 않습니다.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령께서 사역자의 눈물과 선포를 도구 삼아, 죄인들의 굳어버린 심장박동(육의 마음판) 위에 그리스도의 보혈로 새겨 넣으신 구원의 열매가 진짜 추천서입니다. 인간의 먹물로 쓴 글씨는 세월이 지나면 바래서 썩어지지만, 성령이 치신 인(印)과 구원의 요동침은 영원무궁토록 살아남는 그리스도의 위대한 혈서임을 명확하게 찔러 넣습니다.
2. 그람마(Γράμμα)와 프뉴마(Πνεῦμα): 사람을 죽이는 문자론과 살리는 성령론
사도는 이제 추천서 논쟁을 신구약의 거대한 교리적 지평으로 확장하여, 율법의 직분과 새 언약의 직분의 가치를 준엄하게 대조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이같은 확신이 있으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디아코노스)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그람마)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프뉴마)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그람마)은 죽이는 것이요 영(프뉴마)은 살리는 것이니라" (고후 3:4-6)
"율법 조문(그람마, γράμμα)은 죽이는 것이요 영(프뉴마, πνεῦμα)은 살리는 것이니라!"
여기서 '그람마'는 인간의 행위적 의무를 외형적으로 규정하는 돌판에 새겨진 문자를 뜻합니다. 율법 자체는 거룩하고 선하지만, 타락하여 부패한 인간은 그 율법을 지킬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문자가 죄인에게 들이닥칠 때, 일어나는 유일한 결과는 죄를 폭로하고 영원한 저주와 사망을 선고하여 죄인을 '죽이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피로 뚫고 들어온 '새 언약의 영(프뉴마)'은 다릅니다! 성령은 율법이 정죄한 죄인의 심장을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수술하여 살려내시고(조오포이에오), 하나님의 법을 기쁨으로 순종할 수 있는 신적 에너지를 주입하십니다. 찰스 호지(Charles Hodge)가 선포했듯, 새 언약의 일꾼(디아코노스)들의 자격과 만족은 인간의 결심이나 종교적 훈련에서 나오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만 공급됩니다. 강단에서 복음을 제거한 채 "이것을 행하라, 저것을 지키라"며 문자(그람마)의 채찍으로 회중을 정죄하여 죽이는 율법주의적 독약을 완전히 도끼로 쳐 죽여야 함을 선포합니다.
3. 카타크리시스(Κατάκρισις)와 도사(Δόξα): 사라질 정죄의 영광과 영원한 의의 영광
바울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아 내려올 때 얼굴에 찬란한 광채가 나서 유대인들이 보지 못하도록 수건으로 가렸던 출애굽기 34장의 역사적 사건을 복음적으로 주해합니다.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율법 조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 때문에도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영의 직분은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정죄의 직분(디아코니아 테스 카타크리세오스)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디아코니아 테스 디카이오쉬네스)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 (고후 3:7-9)
"정죄의 직분(디아코니아 테스 카타크리세오스, διακονία τῆς κατακρίσεως)도 영광이 있은즉!"
인간을 심판하고 정죄하는 율법의 직분조차도 하나님의 공의를 드러내기에 장엄한 신적 '영광(독사)'이 임했습니다. 그러나 그 영광은 예수 그리스도가 오실 때까지만 한시적으로 기능하다가 폐해져 '없어질 영광'에 불과했습니다.
그렇다면 십자가의 피로 죄인을 완벽하게 무죄 선언하는 '의의 직분(디아코니아 테스 디카이오쉬네스)'과 영혼을 살리는 성령의 직분의 영광은 얼마나 더 압도적이고 장엄하겠습니까! 랄프 마틴(Ralph P. Martin)의 주해처럼,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새 언약의 영광은 모세의 얼굴에 머물던 영광을 100% 압도하여 소멸시켜 버리는 영원무궁한 영광입니다. 그럼에도 구약의 의식과 행위주의에 묶여 있는 자들은 오늘날까지도 그 마음이 완고하여 복음을 읽을 때에 그 심장에 '수건(칼룹마)'이 덮여 있어 진리를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주 성령께로 돌아가면 그 정죄의 수건이 단숨에 벗겨지며,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진정한 자유(엘레우데리아)가 임하느니라!"라는 위대한 해방 선언이 터져 나옵니다. 우리는 수건을 벗은 얼굴로 주님의 영광을 직시하며,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광에서 영광으로 이르러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찬란하게 변화(메타모르포오)되는 특권을 누리는 일꾼들입니다.
4. 아파우가스마(Ἀπαύγασμα): 어둠을 박살 내는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
4장에 접어들며, 바울은 이 엄청난 새 언약의 영광을 맡은 사명자로서 낙심하지 않고, 세상의 부끄러운 가식과 속임수를 끊어내며 오직 진리만을 선포하겠다고 격정적으로 결론을 향해 치닫습니다.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정하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고후 4:3-4, 6)
이 세상의 신인 사탄은 멸망할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만들어, 창조주의 본질이자 광채(아파우가스마)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빛을 보지 못하도록 영적 흑암을 들이붓고 있습니다. 율법주의와 세상 철학은 그 흑암을 단 1밀리미터도 걷어낼 수 없습니다.
이 절망의 암흑을 찢고 들어오는 우주적 기적은 무엇입니까?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창세기 1장 3절에서 "빛이 있으라" 한마디로 공허와 혼돈의 흑암을 징벌하셨던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택하신 백성들의 어두워진 심장 속에 초주권적으로 다이렉트로 비추어 버리셨습니다! 복음은 인간의 설득으로 깨닫는 지식이 아닙니다. 흑암 속에 임하는 하나님의 재창조의 명령이자 주권적 권능입니다. 강단은 오직 이 창조적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선포해야 함을 선언하며 논증을 마칩니다.
[5줄 최종 요약 결론]
참된 사역자의 추천서(에피스톨레)는 인간의 먹물(멜란)로 쓴 종이가 아니라, 오직 성령께서 성도들의 심장판에 새겨 넣으신 구원의 열매입니다.
행위를 규정하는 율법의 문자(그람마)는 죄인을 정죄하여 죽일 뿐이며, 오직 십자가를 통과한 새 언약의 성령(프뉴마)만이 영혼을 살려냅니다.
사라질 구약의 정죄의 직분도 모세의 얼굴에 광채가 날 만큼 영광스러웠거늘, 영원할 새 언약의 의의 직분의 영광은 이를 완벽하게 압도합니다.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정죄의 수건이 벗겨지는 위대한 자유(엘레우데리아)가 임하며, 신자는 주를 바라봄으로 그 형상으로 변화됩니다.
복음은 사탄이 들이부은 영적 혼미의 흑암을 찢고, 창세기적 빛을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통해 우리 마음에 초주권적으로 비추시는 하나님의 재창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