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강해 제7강 (최종 피날레)] 아스데네이아(Ἀσθένεια)와 뒤나미스(Δύναμις): 육체의 가시와 약할 때 강함 되시는 그리스도의 권능
(본문: 고린도후서 12장 - 13장)
고린도후서 12장과 13장은 신자가 도달할 수 있는 영적 성숙의 최고봉이자, 인간의 강함과 자랑을 완전히 장사 지내는 기독교 신학의 위대한 금자탑입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의 거짓 사도들은 자신들이 겪은 환상과 계시를 자랑하며 바울의 영성을 비하했습니다. 바울은 그들의 영적 교만을 꺾기 위해 자신이 경험한 최고의 초자연적 계시를 진술하지만, 정작 그 계시 뒤에 찾아온 '육체의 가시'야말로 사도직의 진정한 보증임을 천명합니다. 사도는 자신의 철저한 무능력(약함) 속에 그리스도의 신적 '권능'이 도리어 완벽하게 폭발한다는 영원무궁한 복음의 역설로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1. 하르파조(Ἁρπάζω)와 아레토스(Ἄρρητος): 인간의 언어를 초월하는 낙원의 계시와 교만의 차단
바울은 어쩔 수 없이 무익한 자랑을 고백한다며, 14년 전 자신이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강력하게 영계에 포획되었던 초자연적 사건을 진술합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하르파조)... 그가 낙원(파라데이소스)으로 이끌려 가서(하르파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아레토스 레마)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만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하지 아니하리라" (고후 12:2, 4-5)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하르파겐타, ἁρπαγέντα)!"
원어 '하르파조'는 독수리가 먹잇감을 낚아채듯, 혹은 군대가 영토를 벼락같이 강탈하듯 신적 주권에 의해 '강력하게 사로잡혀 채여 올라간 상태'를 뜻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으로 우주의 가장 깊은 처소인 낙원(파라데이소스)에 입성하여, 인간의 지성과 언어적 구조로는 도무지 담아낼 수 없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비밀의 선언(아레토스 레마, ἄρρητα ῥήματα)'을 직접 들었습니다.
머레이 해리스(Murray Harris)의 고도의 주해처럼, 바울은 이 엄청난 영적 스펙을 가졌음에도 14년 동안이나 침묵했습니다. 왜냐하면 기독교의 참된 사역자는 초자연적 체험을 간증거리로 삼아 신비주의적 추종자들을 모으는 영적 장사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신적 체험에 도취되어 스스로 왕 노릇 하던 거짓 사도들의 천박함을 비웃으며, 자신이 진정으로 자랑할 유일한 무대는 오직 역사 속에서 겪는 비천함과 '약함'뿐임을 명확하게 선포합니다.
2. 스콜롭스(Σκόλοψ)와 아르케오(Ἀρκέω): 사역자의 살점을 찢는 사탄의 가시와 은혜의 족함
사도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찬란한 계시를 보여주신 직후, 그의 영혼이 영적 교만에 빠지지 않도록 그의 육체 속에 잔인한 신적 안전장치를 찔러 넣으셨음을 폭로합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스콜롭스)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아르케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고후 12:7-9)
"내 육체에 가시(스콜롭스 테 사르키, σκόλοψ τῇ σαρκί)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원어 '스콜롭스'는 장미 가시 같은 사소한 찌름이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고대 전쟁터에서 적군의 진격을 막기 위해 바닥에 박아놓던 날카로운 '말뚝, 나무 창' 혹은 인체의 살점을 관통하는 '말뚝 고문틀'을 뜻합니다. 바울의 살점 속에는 평생 그를 처절하게 괴롭히던 치명적인 질병(심각한 안질이나 간질 등)이라는 사탄의 사자가 박혀 있었습니다.
사도는 이 말뚝을 뽑아달라고 목숨을 걸고 세 번이나 간절히 엎드렸으나, 보좌에서 들려온 주님의 응답은 단호했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아르케이 소이 헤 카리스 무, ἀρκεῖ σοι ἡ χάρις μου)!"
데이비드 가랜드(David E. Garland)의 날카로운 주해처럼, 주님의 '아르케오(충분하다, 족하다)'는 가시를 뽑아주지 않으시겠다는 거절이자, 동시에 그 가시의 고통을 넉넉히 압도하고도 남을 신적 에너지를 매 순간 주입해 주시겠다는 완벽한 공급의 선포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종이 교만이라는 지옥의 죄악에 빠지지 않도록 육체의 가시라는 아픈 도구를 사용하사 그를 철저한 겸손의 자리에 묶어두시는 주권적 사랑을 베푸십니다.
3. 에피스케노오(Ἐπισκηνόω)와 뒤나토스(Δύνατος): 약함의 파산 위에 쳐지는 그리스도의 권능의 장막
바울은 주님의 이 준엄한 거절의 응답을 받자마자, 탄식을 멈추고 구속사 최고의 역설적 사자후를 우주 앞에 터뜨립니다.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뒤나미스)이 내게 머물게(에피스케노오)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뒤나토스)이라" (고후 12:9-10)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에피스케노세, ἐπισκηνώσῃ) 하려 함이라!"
원어 '에피스케노오'는 구약 시대 광야의 성막 위에 하나님의 찬란한 쉐키나 영 영광의 구름이 내려와 '장막을 치고 좌정하시는 상태'를 뜻합니다. 온 우주의 창조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 전능하신 권능(뒤나미스)은, 인간 목회자가 자신의 똑똑함과 스펙을 자랑하며 카리스마를 과시하는 강단에는 결코 장막을 치지 않으십니다! 주님의 권능은 오직 자신의 철저한 무능력과 비천함, 약함을 뼈저리게 고백하며 파산 상태로 엎드린 사명자의 그 '약함(아스데네이아)' 위에 비로소 거룩한 군사적 장막(에피스케노오)을 치고 좌정하십니다.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뒤나토스, δυνατός)이라!"
기독교 구원론과 사역론의 최종 대완성입니다. 존 맥아더(John MacArthur)는 이 구절을 향해 피를 토하듯 외쳤습니다. "인간이 강할 때는 자기 힘으로 일하므로 하나님의 능력이 배제되지만, 인간이 철저하게 약해져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는 오직 하나님의 능력만이 단독으로 일하시기에 가장 강한 권능이 폭발한다!" 신자의 참된 권능은 내 안의 자아를 완전히 장사 지내고 내 안의 그리스도만이 왕 노릇 하시게 만드는 십자가의 역설적 초승리임을 묵직하게 찔러 넣습니다.
4. 도키메(Δοκιμή)와 카리스(Χά리스): 자기를 시험하는 정결한 신앙과 삼위일체의 송가
13장에 이르러,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세 번째 방문하기 전,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사도의 권위를 시험하려는 자들을 향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방식을 대입하며 최후통첩을 보냅니다.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 계시니 우리도 그 안에서 약하나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와 함께 살리라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도키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카리스)와 하나님의 사랑(아가페)과 성령의 교통하심(코이노니아)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고후 13:4-5, 1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온 우주의 통치자이신 예수께서도 인간의 눈에는 가장 비참하고 무력한 '약함'의 모습으로 골고다 사형틀에서 육체를 찢기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약함의 대속을 통해 사망 권세를 부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부활의 주님이 되게 하셨습니다. 사도의 사역 역시 이 십자가의 궤적을 그대로 따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향해 사도의 자격을 시험하려 들지 말고, 도리어 "너희 자신 속에 진짜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시는지 믿음을 철저히 시험하고 증명(도키메, δοκιμή)하라"며 그들의 영적 교만을 가차 없이 내리칩니다.
그리고 고린도후서 전체 서사를 닫으며, 오늘날 전 세계 교회가 예배의 축도로 사용하는 가장 장엄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송가(13:13)를 선포합니다. 우리를 부요케 하시기 위해 스스로 파산하신 그리스도의 '은혜(카리스)'와, 독생자를 아낌없이 제단에 내어주신 아버지의 '사랑(아가페)', 그리고 그 보혈의 효력을 우리 심장 속에 날마다 유통하시는 성령의 '교통하심(코이노니아)'만이 교회를 보존하는 유일한 반석임을 천명하며 위대한 고린도대강해의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5줄 최종 요약 결론]
참된 사역자는 셋째 하늘의 낙원의 계시(하르파조) 같은 화려한 영적 체험을 가졌을지라도, 인간의 교만을 차단하기 위해 이를 결코 과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자만하지 않도록 육체의 말뚝 같은 사탄의 가시(스콜롭스)를 박아두시나, 이는 십자가의 은혜의 족함(아르케오)을 배우는 도구입니다.
그리스도의 전능하신 권능(뒤나미스)은 인간이 자신의 힘을 빼고 철저한 무능력과 약함을 고백할 때, 그 위에 거룩한 장막(에피스케노오)을 치고 좌정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신적 권능으로 부활하셨듯이, 사명자의 진짜 권세는 '내가 약한 그때에 강함(뒤나토스)'이 되는 역설입니다.
강단은 인간의 강함과 카리스마를 자랑하는 기만을 멈추고,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혜(카리스)와 사랑과 교통하심만을 전 존재를 던져 선포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