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2
한 나라 전체를 이해하려면 그 나라의 언어부터 알아야 하듯이 한의학을 이해하려면 사용되는 용어부터 파악해서 익숙해져야한다. 예과 1학년 때 '한의학 용어'를 배우는 까닭이 여기에 있는데 음양오행陰陽五行은 가장 대표적인 용어, 바로 한의학 나라의 국어國語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자유로운 언어구사 없이는 한의학을 이해할 수 없겠다.
그러나 주위엔 음양오행陰陽五行을 시대 유물로 보아 임상에선 쓸모 없는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한의대 시절 통과의례로 잠시 배웠다가 졸업하면, 아니 본과만 되어도 잊어버려야 할 대상이 되는 음양오행陰陽五行. 이는 10년 이상을 배우고도 미국인과 대화조차 못하는 우리 나라 영어교육의 실태를 연상케 한다.
음양오행陰陽五行... 임상에서 쓸모 없이 여기거나 신격화神格化를 통해 지나치게 쓸모 있게 여기는 과부족過不足의 양극화 속에서 중도中道를 찾는,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올바른 자리 매김은 '언어'로서의 이해를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언어학자, 영문학자가 되려는 것보다는 국제화 시대에 뒤쳐지지 않으려는 것이 영어를 배우는 목적인 것처럼 음양오행陰陽五行 역시 그 자체의 학문적 의미보다는 한의학의 이해수단으로서 요구된다.
그러나 생활 속에서 쉽게 접하는 영어와 달리 음양오행陰陽五行은 무척 낯설다. 낯설고 어려우며 때론 너무 단순해 임상에 쓰임이 없을 것으로 생각되어 한의대 예과시절이 지나면 곧 잊혀지니 이는 중, 고, 대학교 때 알파벳, 단어암기, 문법공부 하다가 사회 나오면 실제 쓰임이 없기에 소홀히 하는 영어의 현실과 다를 바 없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제 국제화가 강조되면서 영어를 모르고는 사회생활을 할 수 없어 영어를 제2 국어로 삼자는 주장까지 등장한다는 점. 영어학원이 직장인으로 넘치고, 영어회화 서적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등 영어교육의 열풍이 생존과 결부되어 더욱 거세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음양오행陰陽五行은 어떠한가. 한의학의 제2도 아닌 제1 국어이면서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모국어를 잊어버린 재외교포 2, 3세대가 한국을 제대로 알고 있을까? 겉모습이 한국인이라서, 부모님이 한국인이라서 한국말도 못하는 그들이 과연 한국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을까? 설사 한글을 좀 알고, 몇 마디 문장을 구사한다해서 생각까지도, 꿈까지도 한국어를 구사하는 우리와는 같을 수 없다.
한의학의 과학화라느니, 세계화라느니 동서의학東西醫學 결합이라는 허울 좋은 명목으로 양진한치洋診韓治를 하는 우리 현실은 몸은 한국인이지만 모국어를 잊어 버려 외국어로 생각과 의사소통을 하는 재외교포 신세대의 모습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