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3
음양오행陰陽五行을 진리가 아닌 ‘언어’로 규정한다해서 그 가치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진리를 객관적으로 약속된 언어를 통해 설명한다는 점에서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중요성은 충분히 인정된다. 언어는 인간의 의식意識을 지배하기에 진리의 자리가 아닌,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의 육감六感(six sense)이 존재하는 인식계認識界에서는 언어 자체가 진리로 받아들여지기도 하는데 이에 20세기 들어서 ‘과학’이라는 언어가 절대 진리로 숭배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말초감각의 인식계認識界에서나 유효한 것이다. 의식意識을 지배하는 언어인 동양의 음양오행陰陽五行이나 서양의 과학은 언어를 뛰어넘는 진리의 본질계本質界에서는 모두 쓰임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우리가 맹신하는 서구 과학도 진리의 자리에선 음양오행陰陽五行과 다를 바 없으니 음양오행陰陽五行을 언어로 규정함은 동양의 과학으로서 인정하는 것이고 미신으로서의 오해를 종식시키는 것이다.
진리를 깨닫기 이전에는 언어가 우리의 사고思考와 인식認識을 철저히 지배한다. 생각이 깊을수록 언어력이 풍부해지는 것이 아니라 언어의 쓰임이 넓을수록 사고력思考力이 증진된다. 즉 인간은 스스로 만든 언어의 틀 속에서만 사고思考하는 것이다. 부단한 연구와 경험으로 언어의 틀이 업그레이드 될수록 생각이 깊어지는 바 인간의 성숙은 언어의 학습과정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서로 언어의 틀이 다르면 결코 공통된 사고思考를 공유할 수 없고 이해와 설득조차 불가능하다. 따라서 한약사 제도나 의료일원화 문제로 벌어지는 약학계, 의학계와의 논쟁은 소모적이다. 애당초 언어의 틀이 서로 달라 사고思考와 인식認識 방식이 다르기에 각자 주장하는 논리가 상대편에겐 ‘소귀에 경 읽기’ 인 것이다. 한국인과 미국인, 서로 자기 나라 말로 떠들어 보았자 전혀 소용없다. 차라리 이럴 때 입다물고 손짓, 발짓이 도움되니... 지금처럼 극과 극으로 대립되는 상황에선 자신만의 언어로 핏대 올리기 보단 가장 원초적인 언어인 바디랭귀지가 필요하겠다.
한의계에선 협진을 통한 동서의결합東西醫結合 체계를 그 대안으로 삼는데 이는 각자의 언어 틀에서 독립된 사고가 서로 교류하는 진정한 의미의 협진이라 볼 수 없다. 과학이라는 언어의 틀 속에서 양방 사고를 하면서 치료도구로써 침과 한약을 쓰는 것이 과연 협진이고 동서의결합東西醫結合인가. 초음파 검진 시 지방간脂肪肝이라 하여, 혈액검사 시에 수치 이상이 있다해서 간肝을 다스리는 침과 한약을 쓰는 모습들. 이것은 동서의결합東西醫結合이 아니라 한의학의 종속이다. 그렇다고 초음파나 혈액검사 등 양방의 틀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니 우리에겐 우리의 언어가 가치가 있듯이 그들에겐 그들의 언어가 중요하다. 그런 까닭에 양방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판도 바람직하지 않다.
본인이 광분하는 것은 자신의 언어를 잊어버린 채 어설픈 다른 언어로 자신을 표현함을 당연하고 발전적으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영어가 세계화에 아무리 필요하다해서 국어를 버릴 수 없는 법. 영어가 그리 소중하다면 미국에서 살면 될 것을 굳이 한국에서 우리말 대신 혀 꼬부라진 소리하는 꼴불견을 보이고 있다. 입과 머리로는 양방을 논하면서 양손에 침과 한약을 들었다고 한의학의 세계화가 이루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물론 이 또한 의료의 새로운 형식이겠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양방의 한 형태이지 한의학이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교회에서 스님이 설법하고, 절에서 목사님이 설교하는 웃지 못할 현상이 현실에서 공공연하게 벌어지는 것은 우리의 언어, 음양오행陰陽五行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