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4
한의학의 언어, 음양오행陰陽五行... 이쯤 되면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두 가지 견해로 나뉜다. 이론적인 말을 어렵게 설명할 뿐 실제 쓰임은 없다고 생각하는 견해와 음양오행陰陽五行을 한의학 이해의 필수요소로 인정하는 견해. 아마도 한의학도에 있어서 예과일수록 후자에 속할 것이고 학년이 올라 점차 졸업에 가까워질수록 전자에 속할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임상의 실전에 임하는 한의사 중에서 음양오행陰陽五行을 교과서에나 등장하는 용어로 여기는 분들이 많다는 점. 더욱이 교수님들 중에서도 그런 식으로 임상을 가르치는 경우가 있으니... 이처럼 처음엔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중요성을 인정하다가도 점차 멀리하는 것은 음양오행陰陽五行이라는 언어를 익히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영어의 경우 중학교 때부터 대학까지 근 10년 이상 배워도 회화를 못하는 상황에서 불과 예과 2년 정도 음양오행陰陽五行을 접하고서 한의학 사고를 지니려는 것은 무리이다. 라디오로 팝송을 듣고, TV로 CNN을 보며 심지어는 자막 없이 영화를 접하는 살겨운 노력을 끈임 없이 해야 영어에 대한 귀가 열리고 입이 뚫리는 것인데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언어 학습은 알파벳 암기와 문법 공부만으로 그친다.
본과 진입 후 열올리는 침 공부, 처방 공부로 인해 음양오행陰陽五行 학습은 회화단계로 못 가게 되니 현 한의계의 문제는 바로 여기서 시작한다. 음양오행陰陽五行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한의학의 회화 실력을 갖추지 못해도 임상에 있어서 큰 어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한의학의 대중화`가 현 기형적인 한의계의 모습을 만든 것이다. **병엔 **탕식의 방약합편과 같은 `처방집` 범람과 **증상엔 **혈자리식의 `침법` 인기는 골치 아픈 음양오행陰陽五行 없이도 어설픈 임상을 가능케 했다. 마치 LA에 가면 영어를 전혀 모르고도 미국생활을 할 수 있듯이 ...
따라서 한의학도가 성급하게 처방과 침법에만 매달리면 당장에는 주위 학우들보다 우월해 보여도 결국 나중엔 한약사나 침구사 밖에 되지 못한다. 한의사가 한약사, 침구사와 다른 점은 생리, 병리, 진단을 꿰뚫는 한의학의 관觀을 지니는 것. 이 관觀은 음양오행陰陽五行의 단순한 문법학습이 아닌 회화를 통해 형성되기에 진정 참된 한의사를 꿈꾼다면 음양오행陰陽五行을 익히는 힘겨운 노력을 필요하다. 라디오를 들어도 음양오행陰陽五行, TV를 보아도 음양오행陰陽五行... 온통 머리 속에 음양오행陰陽五行이 가득 차야 관觀을 세운 한의사가 될 수 있다.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새벽 회화학원에 다니고, 지하철에선 영어회화 테입을 듣는 현 직장인들의 피나는 노력의 반만이라도 우리 한의학도가 음양오행陰陽五行에 쏟는다면 지금처럼 한의학의 생리, 병리, 진단은 사라지고 처방과 침만 남아 양방에 의탁하는 왜곡된 모습은 없어질 것이다.
한의학... 결코 쉽게 할 수 있는 공부가 아니다. 물론 쉬운 길이 있지만 그 유혹에 일단 빠지면 영원히 나올 수 없다. 특히 예과 후배님들, 여러분은 바로 유혹의 길목에 서 있으니 지금 여러분의 선택이 장차 한의사로서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다. 허준, 이제마를 꿈꾼다면 크고 어려운 길을 선택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