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21
한의사에게도 예술가의 장인匠人 정신이 필요하다. 미쳐서 매달리는 예술 혼을 불태워야 명작名作이 완성되듯이 한의사 역시 임상에 미쳐야 관觀의 작품을 빚어 낼 수 있다. 백화점 방식의 한의원 경영, 즉 이것저것 유행하는 치료술을 모아 환자들 앞에서 나열하는 식으로 임상을 해서는 명작名作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한의사가 한의대생보다 더 많이 공부한다는 말은 옳지 않다. 한의원 퇴근 후 새벽까지 열심히 인 것은 사실이나 이는 어디까지나 ‘배움’이지 ‘공부’가 아니다.
공부란 절차탁마하는 작품 제작의 과정이지 잔재주 익힘이 아니기에 여기저기 치료술을 배우러 다님은 진정한 공부라 할 수 없다. 물론 임상에 있어서 ‘배움’ 그 자체의 쓰임도 크지만 안주하여 ‘공부’를 포기하는 우려를 쉽게 범하므로 경계해야 하는 바 배움이 너무 많으면 오히려 공부가 더 힘들어진다.
구슬도 꿰어야 보배. 번잡스럽게 구슬만 모으다가는 하나로 꿰는 법을 찾지 못한다. 영어사전 뒤적이다가 일본어책 보고 다시 중국어문법에 기웃거려서는 어느 한가지도 제대로 할 수 없다. 영어, 일본어, 중국어 단어를 조금 나열한다고 해서 각각의 회화에 능통한 것은 결코 아니니 하나에만 미쳐 매달리는 치열한 ‘공부’가 절실하다.
이에 치료술의 익힘도 배움의 단계를 뛰어 넘어 ‘공부’로 승화시키자. 이젠 한의사에겐 침과 약뿐만 이니라 추나, 약침과 함께 테이핑, 아로마 등의 대체요법까지 필수 과정이 되었다. 여기다 초음파, X 레이, 체열진단기, 홍채 등등 배움의 끝이 없다. 배워 나쁠 건 없지만 하나씩 배움이 늘수록 임상의 공허함은 깊어지니... 추나를 한다면 추나에만 미쳐서 오직 손만을 놀리고, 테이핑을 한다면 아주 미쳐서 온 종일 테이핑만 해야 공부가 되지 이것저것 주섬주섬 모아 환자에게 맛 뵈기 보여서는 쓰임이 적다. 따라서 해토치법解土治法의 ‘공부’를 원한다면 기존 자신의 임상 방식을 모두 접고 오로지 해토解土에 미쳐야 할 것이다. 만약 해토치법解土治法을 백화점 진열품 중의 하나로 여겨 단지 ‘배움’으로써 접근한다면 얻을 것이 전혀 없다.
그런데 한 우물만 파는 이와 같은 도리가 어찌 치료술에만 있으랴. 그 동안 누누이 강조해온 진단 역시 처음의 버림이 있어야 가능한 바 머릿속에 무슨 침법, 무슨 요법, 무슨 처방으로 가득 차면 진단이 붙을 자리는 없다. 배움 이외의 공부할 자리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진단학책 100번 읽기는 스승님의 언어를 학습하는 것과 함께 이전에 구축해 놓은 번잡한 ‘배움’을 비워 ‘공부’할 자세를 갖추는 것이니 과감히 자신을 비우는 용기 없이는 스승의 가르침을 받을 수 없다.
학창시절 침법, 요법, 처방에 매달리지 않았기에 한의사가 되어서도 백화점에 진열할 물건이 부족했던 것이 본인에게 오히려 덕이 되었다. 진정 큰 ‘공부’를 원한다면 ‘배움’으로 머릿속을 번잡하게 채우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