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22
얼마 전 한의사 보수교육에서 있었던 일이다. 형식적인 교육이라 생각하고 귀찮은 마음으로 참여한 그곳에서 뜻밖의 흥미로운 경험을 했다. “당뇨병의 한방치료”라는 주제로 강단에 선 이XX 원장님. 그분은 강의 시작에 앞서 자신의 스승 이름을 칠판에 나열하였는데 스승 소개를 통해 자신의 임상 방향을 제시한다는 그분 말씀에 “옳거니”하고 무릎을 쳤다. 임상의 언어력을 가지고 계신 분임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효과부터 언급하는 상투적인 임상강좌와 달리 먼저 자신의 언어를 밝힘은 그만큼 학문적 깊이가 있다는 의미다.
본인도 학술논의에선 김은하, 류희영 스승님의 제자임을 먼저 밝히는 바 이는 서로의 언어 다름으로 야기되는 불필요한 오해를 막기 위함이다. 상대가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지 미리 알아야 대화와 논쟁이 가능한 법. 이에 이원장님의 강좌에 앞선 스승소개는 소모적인 비판을 불식시키고, 비난으로 인해 흐트러질 수 있는 학문의 본질을 지키기 위함이다. 과거의 이기理氣 논쟁과 같은 진정한 토론은 사라지고 비판만을 위한 비난으로 현 학문풍토가 진흙탕처럼 변한 것은 각자 자신의 언어만을 주장하고 상대의 언어엔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양의사들의 한의학에 대한 일방적인 비난이 그 대표적인 경우인데 음양오행陰陽五行으로 표현되는 한의학의 기본회화와 전문회화를 모르고서는 비판 자체를 할 수 없는 것이다. 더욱 답답한 것은 한, 양방 사이에 논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니 이는 한의학의 언어가 점차 소실되어 양방에 흡수되어 간다는 증거인 바 논쟁이란 각자 언어를 가진 상황에서 형성되는 것이라고 볼 때 논쟁의 부재는 한쪽의 언어상실, 또는 언어의 동질화를 의미한다.
따라서 동서의東西醫 협진의 명목으로 진행되는 한의사의 양방화, 즉 음양오행陰陽五行의 고유언어 대신에 양방언어를 사용하는 현실에서 한, 양방간의 진정한 논쟁은 있을 수 없으며 한의계 내에서도 ‘공부’보다는 ‘배움’이 앞설 수밖에 없다. ‘배움’ 단계에서는 ‘학회’는 존재하나 ‘학파’가 없는 까닭에 한의학적 언어가 반드시 요구되는 것이 아니다. 효과만 있으면 될 뿐... 반만년 한의학의 역사 속에서 수많은 학파가 등장했음에도 현 시대에 ‘공부’하는 학파보다 배움의 ‘학회’가 득세함은 우리의 고유언어, 한의학적 언어 상실을 가리킨다.
이동원의 보토파補土派, 장자화의 공하파攻下派, 유하간의 한량파寒凉派, 주단계의 자음강화파滋陰降火派 등등의 파파파派派派... 치열한 공부를 통해 론論이 형성되는 파派 대신에 임상에서의 치료술을 배우는 회會가 우후죽순 번성하는 현실에서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언어가 발붙일 자리는 없다. 따라서 자신이 무슨무슨 학회의 소속임을 나열하는 것은 자랑이 아니니 한의학적 언어로서 독특한 임상회화를 가지는 파派의 결성이 절실하다. 토울론土鬱論의 해토파解土派. 학회學會가 아닌 학파學派로서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언어를 재해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