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한의자료

<손영기> 한의대 교육의 문제

작성자작약|작성시간12.06.16|조회수64 목록 댓글 0

언어 29

 

 

생리, 병리, 진단, 본초, 침구 등의 구슬을 실 하나로 꿰어 만든 목걸이. 입문, 경악, 보감 등과 같은 의서醫書들은 한의학의 목걸이이다. 이러한 목걸이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하나의 실’이니 이는 저자著者의 관觀으로서 언어력과 해석력을 의미한다. 즉 이천은 자신의 관觀으로 생리, 병리, 임상을 하나로 꿰어 <의학입문>이라는 목걸이를 만들었고, 장경악과 허준도 같은 방식으로 <경악전서><동의보감>의 목걸이를 만들었다. 이에 우리는 의서醫書를 통해 낱개 구슬보다는 전체 목걸이를 느껴야하는 바 이를 위해선 저자著者의 관觀; 언어력과 해석력을 파악해야 한다.

 

 

한의대 교과서가 비판받음은 낱개 구슬들만을 중시하기 때문인데 옛 선배들이 애써 만든 목걸이를 일일이 끊어내어 분리된 구슬들 중에서 비슷한 모양의 구슬을 다시 모아 놓았으니 예컨대 ‘입문’ 목걸이를 끊어 ‘생리’ 구슬을 취하고, ‘경악’ 목걸이를 잘라 비슷한 ‘생리’ 구슬을 얻는 방식으로 각각 의서醫書 목걸이에서 ‘생리’의 형태를 지닌 구슬을 모아 놓은 것이 현 한의대의 ‘생리학 교과서’인 것이다.

 

 

지금의 교과서는 이처럼 ‘목걸이’가 아닌 구슬만 모은 ‘구슬 주머니’이니 번잡스런 구슬 주머니에서 체계적인 목걸이를 연상해내기란 불가능이며 목걸이 전체를 느끼지 못하기에 실제 임상의 쓰임이 없는, 이론과 임상이 단절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와 같은 총체적인 부실은 의사학醫史學을 중시하지 않는, 언어력 상실과 해석력 부족에서 야기되는 바 교과서의 편저자編著者가 이전 의서醫書들에서 수집해 온 구슬들을 자신의 관觀에 따라 새롭게 엮어 또 다른 목걸이로 만들 능력이 없다면 차라리 교과서 대신에 의서醫書 자체를 온전하게 배워야 할 것이다.

 

 

한의학의 답답한 문제들을 해결할 열쇠는 오직 ‘해석’에 있다. “한의학 방법론 연구”에서 반복되어 논의된 관觀 역시 해석의 의미이고 이 글에서 음양오행陰陽五行을 언어로 규정하는 것도 해석을 강조하고자함이다. 옛 글을 현대어로 단순히 번역하는 것이 아니라 옛 글을 이해하여 현대말로 풀어내는 언어력을 가지고 자신의 관觀에 따라 개성있는 목걸이를 만드는 것이 바로 진정한 ‘해석’.

 

 

각각의 개성된 목걸이는 파派의 형태로 학문의 다양성을 이루니 목걸이의 개성을 끊어 분리시킨 구슬들을 모은 교과서를 통해 배운 우리들에게서 한의학의 다양성을 바라는 것은 애당초 무리이다. 따라서 옛 선배들의 다양한 목걸이 패션을 가지고 서로 주장이 다르니 한의학 이론 체계가 없다는 식의 비판은 ‘하나의 실’을 가지지 못한 체, 설사 실이 주어져도 하나로 꿰지 못한 체 구슬 주머니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모습일 따름이다.

 

 

그러나 이 책임은 허우적대는 우리들이 아니라 서양학문의 시각으로 선배들의 목걸이를 감히 끊어내는, 그래서 구슬 주머니만을 대량 생산한 우리의 현 교육 풍토에 있다. 옛것을 익혀 새롭게 하는 동양학의 ‘해석’을 무시한 우리 한의대 교육이 이토록 한의학을 힘없이 서양의학의 그늘 속에서 움츠리도록 만들었고, 한의사와 한의대생 스스로 자신의 학문에 자신 없게 만들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