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한의자료

<손영기> 차라리 나는 소박한 원시인이 되고자 한다

작성자작약|작성시간12.06.16|조회수71 목록 댓글 0

차라리 나는 소박한 원시인이 되고자 한다

 

 

항상 입으로만 떠들어 온 까닭에 본인을 무슨 한의학韓醫學의 도사道士처럼 생각하는 후배들은 다음의 질문을 한다.

 

"어떻게 해야 한의학韓醫學을 제대로 공부할 수 있습니까?

어떤 책을 가지고, 어떻게 공부해야 한의학韓醫學의 진수眞髓를 맛볼 수 있습니까?"

 

5년이 지난 지금도 방황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헤맬 것이 예상되는 나에게 이런 질문은 황당하다.

차라리 선배님은 그동안 어떻게 공부해 오셨고 앞으론 어떤 방향으로 탐구해 나가실 것인지를 묻는 것이라면 몰라도 이러한 질문은 막연하기에 답할 필요조차 못 느끼나 후배의 열의와 정성에 감복하여 그동안 느낀 바를 조심스레 말한다.

 

 

"철학!

철학의 바탕없이 세워진 학문은 모래위의 집처럼 오래가지 못하는 법이야. 이는 실용학문인 의학醫學도 마찬가지인데 특히 우리 한의학韓醫學에서 철학의 중요성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지. 따라서 우리들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구. 침자리 외우고, 약물 이름 외우기에만 모두들 혈안이지 도대체 그 이외의 것들은 고민하길 싫어해. 혈허血虛엔 사물탕四物湯, 기허氣虛엔 사군자탕四君子湯, 담성痰盛엔 이진탕二陳湯 등등 그 처방 외우고 구성약물 기억하는 데엔 열심히들인데 진작 그 근원적인 문제들에 대해선... 혈血이 뭐지? 기氣가 뭐지? 담痰이 뭐지? 허虛하다는 것이 뭐지?... 혈血을 모르면서, 기氣를 모르면서 사물四物, 사군자四君子만 찾는 것이 우습지 않아? 철학이 부재된 상태에서의 이같은 공부는 모래땅에 심겨진 사과나무 앞에 쭈그리고 앉아 평생 사과 열리기만을 기다리는 짓이라구. 모래땅에다가 아무리 물주고, 비료를 줘봤자 맛있는 사과가 열리기는 커녕 나무도 곧 썪어버리는 거야. 이렇게 죽어버린 나무 앞에서 자신의 무지는 인정치 않은체 한의학韓醫學은 과학科學으로 설명할 수 없는 미신이야라고 치부해 버린다면 이 얼마나 비참한 일이겠어. 그래서 나는 한의학韓醫學을 제대로 하려면 철학하는 정신을 먼저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나의 일장 설교에 후배들은 동일한 반응을 보인다. 쉬운 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더니 더 힘든 말만 하네하는 표정들이다. 한의학韓醫學하기에도 힘든 판인데 게다가 고리타분한 철학까지 하라니 이건 혹 떼려다가 혹 붙친 경우라고 생각들을 한다. 애써 '철학'이라고 거창하게 표현하니 거부감부터 드는가 본데 사실 철학은 쉽게 말해 '생각하는 것'이다. '왜?'라는 의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끝임없이 고뇌하고 갈등하는 작업이다. 그러나 철학, 즉 생각하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나도 한가지 의문이 생기면 풀릴 때까지, 나름대로 그 문제의 의미가 합리화될 때까지 온종일 머리속에 맴돌면서 나의 살을 깎아 먹는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 문제가 풀려버릴 때, 합리화될 때 느끼는 희열감 때문에 지금도 나는 피 말리는 생활을 한다.

 

 

강의를 듣다가, 책을 보다가,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영화를 보다가, 생각없이 길을 방황하며 걷다가 문득 스치는 한 가닥의 생각은 그동안 머리 속에 가득차 맴돌았던 의문점들을 터트려 버린다.

순간 느껴지는 환희! 쾌감! 희열! 이러한 내 모습은 비정상이다. 김용옥 선생의 <동양학東洋學 어떻게 할 것인가>나 한동석 선생의 <우주변화宇宙變化의 원리原理>를 보면서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동의보감東醫寶鑑>은 외면한 체 노자老子 <도덕경道德經>을 들고 설치는 내 모습은 비정상적이다. 그래 누군가의 말처럼 나는 아직 진화가 덜 되었다. 한의대 생활 5년 쯤이면 누구나 접어버리는 음양오행陰陽五行에 나는 아직 매달리고 있다. 사물탕四物湯과 사군자탕四君子湯 이전에 기氣와 혈血의 신비에 아직도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한번은 두리내리 예과 일학년들에게 사서四書 공부를 시킨적이 있었다. 한문 공부보다는 동양적 사고의 힘을 기르는 것이 주목적이였다. 그러나 결과는 형편없었다. 오히려 부작용만 생겼다. 너무나 과학적인 두뇌를 소유하신 후배님들은 극히 비과학적이고 미신적인 나의 원시적 두뇌를 용납하질 못했다.

 

그들은 고리타분한 공자왈, 맹자왈보다는 침 쑤시고 약 쳐먹이는 법부터 배우고 싶어 했다. 잘 나간다는 동아리에 들어와 보니 이건 돈 잘버는 명의名醫보다는 조선시대에나 어울릴 노인네를 만들려 한다고 온종일 불평들이다. 아! 한의학韓醫學의 종말이여. 나는 그들의 모습을 통해 모래밭에 우뚝 솟은 사과나무에서 사과 열리기를 기다리는 한심함을 보았다. 그들의 눈에는 내가 영원한 원시인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나는 모래밭에서 사과 열리기를 맹목적으로 기다리는, 과학적인 두뇌를 소유한 현대인보다는 아직도 한손엔 심지 않은 사과나무를 들고 있지만 기름진 옥토를 찾아다니는 원시인, 비록 내 시대엔 그 열매를 볼 수 없지만 언젠가 우리 후세들은 맛보길 바라는 소박한 원시인이 되고자 한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