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이끈 창종자
김천 지음, 참글세상, 237쪽, 1만3800원
종교가 문제다.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살육의 역사와 아프가니스탄, 미국 오클라호마의 대참사, 가이아나 인민사원 집단자살, 오대양 사건, 사린가스 테러를 일으킨 이시하라 쇼코의 옴 진리교까지 세상에 충격을 준 사건의 배후엔 종교가 있었다. 그리고 세상의 아픔에 기꺼이 손을 내밀어 헌신하는 종교가 있다. 종교는 인간이 고안한 형이상학 체계 중에서 가장 실천적이고 전염성이 강하며 인간다운 신념 체계다.
과거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이 시대의 종교를 대표하는 달라이 라마, 틱낫한, 그리고 한국의 고승과 성직자들을 만나면서 종교집단과 종교적 가르침을 분리해 보는 관점이 생겼다. 특히 새로운 종교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발전하며 소멸하는지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됐다. 그리하여 시선이 닿은 것이 한국에서 만들어진 종교와 그 창종자들의 이야기다.
이 책은 모두 8개의 종교와 그 창종자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지금도 승승장구하는 통일교, 증산교, 원불교, 진각종 등과 위세는 꺾였지만 가르침의 등불을 이어가고 있는 천도교, 갱정유도. 시대를 불태웠던 영화를 뒤로하고 명맥을 이어가는 보천교와 대종교가 그것. 각기 다른 여덟 개의 종교와 여덟 명의 창종자이지만 그들은 비슷한 시대에 공감할 수 있는 고민을 했다.
구한말 이후 국가 붕괴와 외세 침탈은 그때까지 믿어왔던 모든 신념 체계와 국가, 사회, 도덕과 학문이 한순간 버려지는 충격적 사건이었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모두가 삶의 갈피를 찾지 못하며 방황하던 때 종교적 천재들은 서로 다른 장소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개인적인 각성을 이뤄낸다. 그 각성이 가르침의 외피를 입게 되고 사람들의 희망이 되며 종교로서 시대를 이끌어간 원동력이 된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선각자들의 영적인 시발과 성장의 흔적을 기록했다.
종교는 믿음의 이야기다. 믿는 이에게는 시대를 구원할 세계관이지만 국외자에게는 그저 넋 빠진 외침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종교적 가르침이 자신들의 울타리를 넘어 보편적인 가치와 구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믿지 않는 이에게도 삶의 지침이 되기에 충분하다. 위에 열거한 종교들에는 분명 비신자도 생각해볼 만한 온전한 인생의 가치들이 담겨 있다. 그 때문에 종교적 탐구는 윤리적이고 행복한 삶을 위한 바탕이 될 수 있다.
오늘에 이르러 종교들은 자신의 신도들만을 위한 가르침을 펴고 있다. 한데 종교적 천재들이 새로운 종교적 가르침을 펼치고 세상에 전할 때엔 그 배타성이 두드러지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묘한 공통점이 있었다. 광복 이후 불교와 기독교의 득세를 통해 우리 민족은 정신사의 많은 부분을 잃어버렸다. 단군은 신화가 됐고, 인간이 평등하게 서로를 감싸 안으며 살아가는 이화세계는 몽상가의 주장으로 치부됐다. 하지만 한국 창종의 신종교들이 주장한 해원(解寃), 상생(相生), 개벽(開闢)의 시대는 아직도 세상의 깊은 꿈으로 살아 있다.
김천 | 영화 ‘동승’ 시나리오 집필, 종교전문 다큐P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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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거짓 예언자들
엄상익 지음, 글마당, 328쪽, 1만4000원
여러 이단 교주의 모습을 봤다. 무릎을 꿇고 황홀경에 빠져 있는 신도들 앞에서 자신의 영혼이 몸에서 빠져나가 세상을 돌아보고 왔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하얀 옷을 입고 번쩍이는 조명 속에서 여신도들과 난잡한 춤을 추기도 했다. 왕관을 쓰고 수많은 신하의 경배를 받는 여왕의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고달픈 삶을 사는 사람들은 인간의 모습으로 온 신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판단 능력을 모두 그들에게 유보하고 평안을 얻기를 원하는 것 같았다. 이미 화석화한 제도권 교회에 그들은 절망했다. 교회 속에 오염된 세상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실종되고 교권과 이권 다툼에 정신이 없었다.
변호사로 이단 교주들을 법의 심판대에 올려놓는 일을 했다. 기성 교단의 법률 분쟁을 담당하기도 했다. 거기도 한심했다. 하나님을 믿으라고 말하면서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돈이었다. 그러나 세상이 그렇게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사람들이 구석구석에 보석처럼 박혀 있었다. 고물을 수집하며 신도를 정말 자기 양같이 사랑하고 돌보는 목사가 있었다. 예수의 영에 이끌려 광야에서 떠돌며 난민들과 함께 사는 무소유 수도사를 만나기도 했다. 노숙자로 전락한 모자가 마지막 가진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바치는 순결한 모습도 보았다. 같은 하나님과 성경, 그리고 믿음으로 시작한 사람들이 천사와 악마로 변하는 원인이 궁금했다.
이단 교주라고 해서 특별히 증오하는 감정을 갖지는 않았다. 대한민국 헌법은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썩은 나무토막을 믿어도 법은 허용한다. 내가 추적한 한 교주의 삶은 이랬다. 가난한 그는 어려서부터 성경만 읽었다. 나무하러 가서도 읽고 달밤에도 성경을 읽었다. 겨울 산 동굴 속에서도 그는 성경을 읽었다. 어느 날 그는 신비한 소리를 들었다. 그가 기도하는 산 아래 세계에서 사람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어 그를 예배하게 하겠다는 소리였다. 그 정체불명의 존재는 그에게 세상 모든 여자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한 미친 남자가 본 환상이라고 치부하기엔 현실이 특이했다. 몇 년 후 그는 진짜 교주가 되었다. 그 산 밑에 궁전 같은 건물들이 들어서고 세계 각국에서 그를 참배하기 위해 사람들이 찾아왔다. 그는 만나는 여자마다 확신을 가지고 당당하게 범했다. 그는 신이 된 것 같았다.
나는 그에게 소송을 제기했다. 그 남자는 다시 초라한 인간이 되어 도주하기에 바빴다. 가랑잎 떨어지는 소리에도 경찰관이 자기를 잡으러 오는 줄 알고 벽장에 들어가 숨었다. 그의 끝은 감옥이었다. 부패한 대형 교회 목사들도 교주 비슷한 우상으로 변질됐다. 예수님의 자리를 슬쩍 빼앗아 들어앉았 다. 그들이 섬기는 것은 돈이었다. 내가 발견한 성자들과 어둠의 자식들을 대비해서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 단순한 흥미거리로 써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불뱀과 전갈, 그리고 이리떼가 득실거린다는 성경 속 광야에 나가 글로 써도 되느냐고 그분께 물어보았다. 이상하게도 독충에 물려 죽음 직전까지 갔다. 경고 같았다. 그러고 나서 이 책을 썼다. 하나님의 붓이라는 생각을 하며 기록했다.
엄상익 | 변호사 |
<출처 : 신동아 이달의 추천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