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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지식

[스크랩] 약초꾼 허씨와 화개 사람들(3)

작성자우리민족333|작성시간12.05.01|조회수40 목록 댓글 0

봄이 노루꼬리만큼 남아 여름에 안 밀려나려고 안간힘을 쓴다.

밤꽃마저 다 떨어져 송충이 같은 잔해가 마당에 뒹구는 꼴이 보기에 흉하다.

밤꽃은 소박하지만 꿀이 넉넉하고 질이 좋다 했다.

그가 밤꽃을 닮았다고 지켜보는 내 속을 모르는 허씨는 밤꽃 잔해를 쓸어 치우느라

바쁘다.

드디어 몰려오는 여름을 맞아야 할 때가 되었다.


내일은 먹거리를 조금 더 갖추고서 길을 떠나자 하였다.

아마도 조금 더 먼 곳으로 가려나 보다 짐작하며 채비하였다.


해가 뜨기 전에 숙소를 나섰다.

피아골 연곡사 앞에서 등산로를 벗어났다.

절집 뒤란에서 길도 없이 무성한 숲을 무찔렀다.

허씨가 못 미더워서도 아닌데,

울창한 숲 속은 앞이 캄캄하고 냉기가 흐르며 소름이 돋았다.

겁이 버럭 나는 망상을 떨치려고 어금니를 지그시 앙다물었다.

"오싹하지러? 여기가 수백의 빨치산이 학살되어 흙이 되어 뿐 곳이여.

늘 다니는 나도 올 때마다 오싹하다니께." 

억울한 혼령들이 떠돌며 생사람을 놀라게 하는가 보았다.

가련한 넋들에게 위로의 묵념을 잠시 하였다.

빨치산이 산화한 흙은 기름졌다.

이 둘레의 약초와 산나물은 맛이 좋고 무성하여 약초꾼들이 좋아하는 곳이라고 했다.

고사리는 잎이 피어 사람 키를 넘어서고 줄기는 나뭇가지처럼 쇠어있다.

알이 굵은 더덕을 몇 뿌리 캐 담은 허씨가 산삼보다 더 좋은 것이라 하면서

팔뚝같은 더덕를 까주며 먹어보라고 한다.

보통 더덕은 혀끝을 아릿하게 쏘지만 동자삼을 닮은 이 놈은

달착지근할 뿐 사근사근 씹히는 맛이 참 좋았다.

빨치산의 영육이려니 생각하며 달게 먹었다.

삼지구엽초가 무성하게 자라서 내 키를 훌쩍 넘었다.

식생의 특성과 약효를 설명하다 말고 허씨가 갑자기 물었다.

"사업하는 이 사장이 이런 걸 배워 뭐할꺼여?"

"혹시 압니까, 돈 떨어지고 힘들면 약초나 캐서 밥을 먹게 될지...,"

무심코 대답을 하고 나서 아차 실언했구나, 하고 뉘우쳤다.

귀한 그의 생업을 나는 너무 가볍게 밥벌이 수단 삼겠다고

하찮게 말해 버린 것이었다.

경솔했던 말을 속으로 미안해하였지만 허씨는 벌써 무표정으로 돌아와 있다.

더덕과 삼지구엽초만 따 담고 다시 산 등을 탔다.


피아골은 깊은 골과 맑은 물에 울창한 원시림이 어우러져

산골의 참 맛을 자랑하는 넉넉한 물골이다.

그래서 등산객들은 계곡 길로만 다닐 뿐 능선 길은 있는지조차 모른다.

처음으로 올라온 산 등 위에 서서 온 둘레를 바라보며 나는 그만 넋이 나갔다.

코앞에 드러누운 광양 백운산이 엎드린 소의 등처럼 단순하여 정다웠다.

그 산자락을 감돌며 흐르는 섬진강 물빛이 옥띠처럼 빛났고,

강가의 매실 밭에는 열매를 따는 일꾼들이 개미처럼 돌아다녔다.

 

 

백운산 너머로 승주 조계산이 있을 것이고 조계산 남쪽은 벌교 순천으로 연결될 것이다.

여순 반란을 실패하고,

쫓겨 도망친 빨치산들이 숨어 지내던 자리에서 피아골 어귀를 내려다보고 있자니,

혼백으로 떠도는 그들의 외침이 들리는 것 같았다.

14연대와 이 현상, 김 지회, 지 창수 그리고 박 종하의 곡 소리가 귓전을 울리는지 징하는 이명(耳鳴)에 어지럽다.  

섬진강에서 피아골 앞 여울이 가장 얕고 물살이 순해서

그들은 피아골을 지리산 입구로 선택하였다고 했다.

그들의 넋은 이 땅을 맴돌다가 아무도 돌보지 않는 귀신이 되었다.

 

산 등 길은 편했다.

이제는 나도 조금 더 빠른 걸음에 익었으며

허씨가 조금 느리게 걷기 때문에 처음 같지 않게 우리는 잘 어울리는 한 쌍이 되었다.

가다 쉬다 하면서 산세에 발을 맞추었다.

비탈과 호흡이 맞으면서 산과 나는 한 몸처럼 편안해지고 무심해졌다.

섶이 바람을 맞아 휘파람을 불고 고사목이 드문드문 서 있을 뿐

인적이 없는 산 등에서 나는 그만 무아경에 빠졌다.

 

큼직한 소나무 그루터기에서 허씨는 언저리를 발로 굴러보더니

작대기 끝에다 쇠꼬챙이를 꽂아서 바닥을 쑤셔댔다.

이윽고 한 곳을 조심조심 파 들자 한자쯤 깊이에 참외만 한 검정 덩어리가 들어앉아 있다.

복령이라 하였다.

소나무에 기생하는 미생물이 송진과 죽은 소나무의 양분을 먹고 자란 것으로

탕약에는 감초처럼 꼭 들어가는 약재라고 하였다.

거죽의 검뎅이를 벗겨 내니 하얀 속살이 눈처럼 고왔다.


약초꾼들의 산길은 보면 볼수록 놀라웠다.

쌓여 있는 낙엽이 그대로 얌전하여 잘 들여다보지 않으면

그냥 숲으로 보일 뿐 사람의 흔적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 길은 그들만이 아는 지름길이면서 안전하고 편하였다.

산마루를 넘어서자 나타난 고개가 벽소령이란 것을 알고서는

나는 또 한 번 깜짝 놀라고 말았다.

계곡을 따라서 등산로를 타올랐다면 지금쯤 삼도봉에도 못 미쳤을 터인데,

어느새 벽소령 코앞에 닿았으니, 한나절이나 줄어든 노정에 기가 막혔다.

선비 샘 대피소에서 쉬며 밥을 지어 먹었다.


세석까지는 주 능선을 타고 갔다.

드넓게 펼쳐 자란 철쭉이 장관이었다.

연분홍 꽃봉오리가 곧 터지려 하였다. 이렇게 높은 지대에 드넓은 뜰 밭이 있고,

철쭉이 뒤덮은 이치는 아무리 봐도 사람의 뜻이 아닌 섭리가 있을 듯하였다.

신선들의 정원이었거나 선녀들의 놀이터였을까,

허튼 생각을 하며 속으로 웃었다.

대피소로 가는 줄 알았는데 허씨는 청학동 쪽 등산길로 앞서 나갔다.

그저 따라갈 뿐 이유는 묻지 않았다.

아직 해가 조금 남았으니 무엇을 더 캐려나보다 짐작했다.

삼신봉쪽으로 내려가다가 음양 샘 앞에서 오른쪽으로 비켜 들었다.

옛 집터로 보이는 다져진 마당 위에 깨진 사금파리들이 드문드문 하고

절구로 쓰였을 돌 확 하나가 삐뚜름하게 누워있다.

이렇게 높은 곳에서 사람이 살았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비스듬한 돌 확은 투박하고 거칠었으며,

이끼 낀 거죽에 먹고 품은 긴 세월은 옛 사람들의 생활모양을 처연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 집터 아래로 야트막한 구릉이 나오고

그 위로 펼쳐 자란 널찍한 풀밭이 허씨의 행선지였다.

나도 이제는 취 정도는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 풀들이 취 같으며 취가 아니라서

나서지 못하고 우물쭈물했더니 이것은 '곰취' 라고 하였다.

취나물 가운데 곰취를 으뜸으로 치는 것은

귀할 뿐 아니라 간장을 튼튼하게 하는 약효가 있어서 황달 치료에 쓰며

고혈압을 낫게 하는가 하면  맛이 뛰어나서 그렇다는 것이다.

높은 산 양지에서 자라고 이때 잠깐 새로만 먹기에 알맞고

더 지나면 잎이 쇠어서 먹을 수가 없게 된다며,

쉬지 않고 바로 곰취를 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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