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취쌈으로 저녁밥을 먹고서 언덕을 내려갔다.
유월이지만 산 등의 밤은 매우 추웠다.
첫추위 때처럼 칼바람이 살속으로 파고들었다.
허씨에게는 잠잘 채비가 따로 있었다. 아마도 빨치산의 비트가 이랬을 것이다.
골을 바라본 옴팡진 터에 모자챙처럼 튀어나온 조그만 바위를 지붕 삼아서
무성한 섶이 울타리를 쳐준 둥지가 하나 있었다.
이미 다른 누가 다녀갔는지 둥지 안 바닥은
마른 낙엽이 푹신하게 깔렸고 두꺼운 비닐 포대가 단정하게 포개져 있었다.
우리는 지금부터 소위 비브왁(산악인들이 텐트 없이 방풍용 덧옷만 걸치고 잠을 자는 노숙을 말함)을 하려는 것인데, 그의 채비는 참으로 간단하고 용의주도하였다.
나는 고어텍스로 된 덧옷을 입고서 허씨를 걱정하였으나,
비닐자루를 덮어쓴 허씨는 오히려 내 걱정을 하였다.
서로를 걱정하면서 잠들기 전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사장은 어쩌다가 사업 길로 들어섰남? 선생을 했으면 마침맞을 사람인디
남의 살을 뜯거나 피를 빨아대는 사업 판에서 워치케 견딜라고 그러는지 알 수가 없어.
사업에는 도통 걸맞지가 않다는 말이여.”
내 아픈 속을 제대로 꿰뚫는 그는 약초꾼이 아니라 도인이었다.
사람의 본성을 직관하는 신통력의 소유자였다.
그러지 않아도 나는 여태 살아온 내 삶에 깊은 회한을 느끼고 있었다.
어떤 한 순간의 어리석은 판단으로 삶의 방향이 굴절된 채
질질 끌려온 지난 십 수 년이 늘 내 목을 죄며 아직도 치미는 본능을 막고 있었다.
내 소망은 학교에서 국어나 역사를 가르치는 선생이었다.
중학교 2학년 때 담임이었던 송 선생은 국사를 가르쳤다.
첫 시간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교과서를 덮어둔 채 칠판 가득 다음글을 써 갈겼다.
[조선 상고사 서문]
역사란 무엇인가? 인류 사회의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 시간으로 발전하고 공간으로 확대되는 심적(心的)활동 상태의 기록이니, 세계사라 하면 세계 인류가 그렇게 되어온 상태의 기록이요, 조선사라 하면 조선 민족이 이렇게 되어온 상태의 기록이다.
무엇을 “아” 라 하며 무엇을 “비아”라 하는가? 깊이 팔 것 없이 얕이 말하자면, 무릇 주관적 위치에 서 있는 자를 아라 하고, 그밖의 것은 비아라 한다. 이를테면 조선인은 조선을 아라 하고 영(英).로(露:러시아).법(法:프랑스).미(美) 등을 비아라고 하지마는 영.로.법.미 등은 저마다 제 나라를 아라 하고 조선을 비아라고 하며,무산(無産)계급은 무산 계급을 아라 하고 지주나 자본가를 비아라고 하지마는, 지주나 자본가는 저마다 제 붙이를 아라 하고.무산 계급을 비아라 한다.
이뿐 아니라, 학문에나 기술에나 직업에나 의견에나, 그 밖의 무엇에든지 반드시 본위(本位)인 아가 있으면 따라서 아와 대치되는 비아가 있고, 아 가운데 아와 비아가 있으면 비아가운데에도 아와 비아가 있다. 그리하여 아에 대한 비아의 접촉이 잦을수록 비아에 대한 아의 분투가 더욱 맹렬하여 인류 사회의 활동이 쉴 사이가 없으며, 역사의 전도가 완결될 날이 없다.그러므로 역사는 아와 비아의 투쟁의 기록인 것이다...
송선생의 별난 강의와 뜻마저 아리송한 문장에 어리둥절한 급우들에 반하여 나는 담박에 신채호 선생님의 글임을 알아차렸다.
나는 정치학을 전공한 큰 형(24년 띠동갑)의 서재에서 역사와 철학책을 보고 읽은 터라서 단재 선생을 조금은 알고 있었기에 담임의 뜻을 바로 알아차렸다.
우리역사가 일제의 앞잡이들에게 갈갈이 찢긴 채 누더기로 꾸며져 있음을 벌써 알고 있던 나는 그날부터 송선생의 수제자가 되었다.
입시를 위한 학과공부는 멀리한 채 송선생은 우리의 상고사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구부러진 채 숨겨진 역사를 따로 가르쳤다.
사회일반에서 추앙받던 여러 사람들이 일제에 어떻게 동조했다는 사실을 깨우쳤고,
교과서를 감수하는 국사편찬위원들이 모두 친일사관에 물든 친일파들임을 알았다.
학과시간보다 방과 후 과외시간을 기다리며 기뻐했던 송 선생의 지도는 길게 가지 않았다.
그러는 송 선생을 교장과 교감이 싫어했고, 부유한 배경을 가진 송 선생도 교장을 싫어했다.
1학기를 마치자 송 선생은 집안에서 운영하는
운수회사(경기도 전역을 운행한 여객 버스 회사)의 중역이 되어 학교를 떠났다.
나는 크게 실망하였지만 다행이도 그 짧은 기간에 무슨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송 선생은 깨우쳐 주었다.
형의 서가에는 내가 원하는 책은 무엇이든지 다 있었다.
그런 책들에 푹 빠진 나는 또래 애들과는 동떨어진 세계관을 가지고 고민하는
애늙은이가 되어가고 있었고, 친구들은 이런 나를 이상한 아이로 보았으며 오래 전(내가 6살 때)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하는 형(꿈을 접은 채 봉급쟁이로 주저앉았음)조차도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쓸 데 없는 책만 본다고 꾸짖으며 내 공부를 한사코 방해하였다.
이런 갈등은 시간과 비례하여 동기간의 틈을 벌려놓으며 끝내는 대화마저 단절시키고 말았으나 나는 형의 서재 대신 도서관을 들락거리며 내맘대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