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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지식

[스크랩] 약초꾼 허씨와 화개 사람들(9)

작성자우리민족333|작성시간12.05.02|조회수32 목록 댓글 0

허 씨와 한 몸이 된 지겟작대기는 살아 숨 쉬는 나무토막이다.

그의 손때에 절어 반지르하게 윤이 나는 표면과 탄력이 넘치는 짱짱한 질감은

허씨의 팔과 다리의 근육과 상통한다.

나는 언제부터인지 허씨와 그 지팡이를 한 몸으로 인식하였고

지팡이를 놓고 다닐 때의 허씨는 몸 하나 어디가 빠진 불안정을 느끼게 되었다.


그 작대기의 재질은 월악산 물푸레나무인데,

생나무를 그늘 밑에서 이삼 년간을 말렸다가 다듬어 쓴다고 했다.

여벌로 여러 개가 더 있으나 그것만을 십 년이 지나도록 더불어 쓰다 보니

정이 들어서 여벌에는 눈길도 가지 않는다고 하였다.

물푸레나무는 도낏자루로도 쓸 만큼 재질이 질기고 단단하다.

내가 아는 이 나무는 휘기는 하여도 좀체 부러지지 않아서

군대시절에 패고 맞는 몽둥이로 쓰였다.

나는 병영에서 처음으로 물푸레나무를 알게 되었다.

강원도 원통 북방 전방의 그늘진 숲에는 대나무처럼 곧게 자란 물푸레나무들이

빼꼭하였는데, 병영의 신참들은 밑둥이 홍두깨만한 어린 놈으로 몇 다발씩 늘 준비 해두어야 했다.

맞을 도구를 스스로 장만해야만 하는 심정은 두렵고도 비참했었다.

고참들은 야구선수처럼 그 몽둥이를 휘둘러대며 낭창대는 탄성계수로

맞을 자세와 순종의 정도를 가늠하였다.

낭창대는 정도가 불만이면 그날 밤은 괘씸죄를 더하여 공매를 덤으로 얹어 주는 바람에

곡소리를 내야만 했었다.


허씨가 아끼고 쓰다가 아예 몸이 된 그 작대기를 만져보며 지난 시절을 돌이켜보자니

그 시절의 전율이 상기되었지만 이제는 온기마저 느껴진다.

그때 때리고 맞던 사람들이 지금까지 전우애를 주고받으며 희로애락을 나눈다면

누가 믿어 주겠는가.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시작한 인연을 아직 지키고 있고 평생을 이어 나가자고

전우애를 주고받고 있다.

 

말은 안해도 허씨와 그 작대기는 수많은 사연과 곡절을 간직하였으리라.

이미 내가 본 것만도 몇 차례의 고마운 쓰임이 있지 않았던가.

경허와 만공스님의 법장(法杖)도 이만치나 현실과 중생 구제를 하였을까.

불자도 아닌 허씨가 참된 불자요 산을 꾸밈없이 받드는 그의 생활이 바른 종교가 아닐까.

도를 합네, 종교를 합네 하면서 명예를 탐하고 재산에 눈이 먼 사이비들보다

더 거룩하고 고매한 향기를 허씨와 그의 지팡이에서 맡을 수 있는 것은 나만의 기쁨이다.

 

오늘도 지겟작대기를 짚으며 산으로 향하는 그의 뒷모습은 간결하고 공손하여

득도한 현자의 모습이다.

동행하지 못한 아쉬움 대신 경애하는 마음을 실어 보내며 허씨의 홀로 산행을 배웅하였다.

 

말복이 지나자 매미 울음이 구슬프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분다.

북적대며 소란떨던 도시 사람들도 다 돌아가고 화개골은 다시 평온해졌다.

우리의 사랑방은 제 기능을 회복하였고 그새 뜸했던 구성원들이 하나 둘 제자리로 돌아왔다.


한 여름내 안 보이던 양씨가 오랜만에 얼굴을 내민 것이 반가워서 모두 정답게 질문을 해댔다.

"제주도에 갔다가 시껍했다 아이가."라며 그의 제주도 탐방기를 말하였다.

관광을 겸하여 사업을 하러 한라산 밑을 훑고 왔다는 것이다.


그는 돌아오던 제주 공항에서 큰 봉변을 당했다 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당한 봉변이 아니라 오히려 공항 직원을 엄청나게 놀라게 한 사건이었다.

제주에서 잡은 뱀을 지리산 뱀으로 둔갑시키려 한 사이비 공수작전이 서툴러서 생긴 황당한 일이었다.

황색과 먹색의 큰 구렁이 두 마리와 잡뱀들을 몰래 비행기에 싣고 오겠다는 생각부터가 잘못이었다.

비닐망 양파 자루에 뱀들을 넣고서 라면상자에 대강 담아 검색대를 통과하려 했는데,

수상히 여긴 공항 직원이 그 상자 안에 그만 손을 넣어 본 것이었다.

"씨껍한 글마가 피할 새도 읍시 마 내 빰을 철푸덕 안 쌔리뿌나. 보는 사람도 만은디..."

숨도 안 쉬고 때때거리며 쏟아낸 사건의 경과였다.

요절복통하던 우리는 누구라 할 것 없이 모두다 한마디씩을 보탰다.

"거 아주 잘 맞았다."

"하모 그라제 그라제," 라면서 고소해 하였다.

뺨을 어루만지는 양씨는 아직도 얼얼하다며 억울해 하였다.

뒤에서 말없이 듣기만 하던 허씨도 모처럼 말을 거들었다.

"요참에 뱜장수는 작파혀 번져! 아들 같은 애들한테 싸대기꺼정 맞아가며 그게 무신 꼴이람."

"맞다 인자는 치아야 할란갑다. 무신 떼 부자 된다꼬..."

양씨의 제주도 탐방기를 듣다가 한나절이 휙 지났다.


하는 일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허씨와 양씨의 겉모양은 기름과 물이다.

성질이 급한 양씨는 모든 게 직선적이라 됐나, 됐재, 하는 식으로 행동하며

결과를 즉석에서 판정하였고,

침착하고 사려 깊은 허씨는 그 무엇도 쉽게 판단하고 평가하지 않았다.

그들 둘을 이어주는 공통점이라면 둘 다 욕심없는 바탕 위에 정직하고 부지런히 산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살생을 일삼는 양씨의 일을 허씨는 싫어하면서도 미워하지는 않는다.

양씨의 탕약 재료를 허씨가 독점으로 공급하는 것만 봐도 둘은 신사협정이 되어 있다.

 

며칠 뒤 이른 아침에 양씨가 자기 집으로 와 보라고 기별하였다.

영문도 모르고 허씨와 둘이서 그 집 마당에 들어서니 올무에 걸려서 죽은 멧돼지 한 마리를 양씨가 들먹이며,

"욜마가 고구마 밭을 엉망 맹글디마는 마 요래 죽으뿟네, 가 가서 이 사장 몸보신이나 하소." 하는 것이다.

만져 보았더니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것이 이제 막 숨이 떨어진 것 같았다.

올무에 걸린 주검치고는 잠든 것처럼 평온해 보였다.

굳이 값을 치러 주겠다는 내 제안을 딱 거절하는 양씨의 마음이 투명한 섬진강 같았다.


안 그래 보였던 허씨는 역시 산사람이었고, 전문가였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서 돝을 잡아 해체하고 분별하여 처치하였다.

특별히 쓸개와 앞 다리 한 벌을 따로 챙겨서 나에게 주었다.

쓸개는 독주에 담가 두었다가 조금씩 복용하면 술 마시는 속 풀이에 좋다 하였고,

앞 다리는 노인들 근력회복에 최고라면서 지금 바로 서울 어머니께 부쳐 올리라고 했다.

나머지 고기로 동네잔치를 벌였다.

그 잔치는 사흘간 이어지며 사랑방 식구들 모두를 기쁘게 하였다.

어머니한테서도 멧돼지 앞다리로 곤 곰국이 아주 맛있었다고 칭찬을 들었다.

보양 효과가 상당했던지 여름내 잃었던 입맛이 다시 살아났다고 했다.


허씨가 산짐승들을 돌보고 위하는 정도는 이미 알고 있었던 터라

그의 능숙한 고기 처치술이 궁금해서 물었다.

잔치를 치르거나 영양보충을 위해서 고향에서는 가축을 잡기도 하지만

어쩔 수가 없을 때에는 먹을 만치만 산짐승을 잡기도 했었다고 했다.

하지만, 배곯던 옛날 일이지 먹을 게 남도는 요새는 그럴 수 없다고 했다.

칼을 잡아본 것이 십수 년만이라며 피 묻힌 손을 어루만지는 모습이

뭔가를 죄송해하는 것만 같아서 아주 참 미안하였다.

양씨의 무욕과 허씨의 희생적인 봉사가 감동을 준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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