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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티 트랜서핑> 인디고 아이들

작성자작약|작성시간12.08.02|조회수171 목록 댓글 1

 

 

 

새로운 현실이 가장 생생하게 발현되는 모습 중 하나는 '인디고 아이들 현상'인데, 이것은 리 캐롤과 얀 토비가 쓴 같은 제목의 책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이 용어는 투시 능력자인 낸시 앤 테프가 사용하기 시작했다. (1982년 낸시는 <색깔을 통한 삶의 이해>라는 책에서 처음으로 새로운 아이들의 행동 패턴을 소개했다.) 그녀는 사람들의 성격과 그들의 오라 색깔 사이의 상관관계에 대해 연구했다.

 

1970년대 초반 낸시 테프는 평범하지 않은 현상을 갑자기 만나게 된다. 새로운 부류의 아이들, 예전에는 본 적이 없는 새로운 색인 인디고(남색) 오라를 지닌 아이들이 나타난 것이다.

 

인디고 아이들은 성격 특성에서 나머지 사람들과 구분된다. 그들이 특별히 다른 점은 기본적으로 과잉행동장애주의력 결핍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은 자기의 개인적인 관심사가 아닌 일에는 한자리에 앉아 있지 못한다. 모든 인디고 아이가 이런 특성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그들은 모두 제각각이다.

 

개인의 가치에 대한 그들의 타고난 감각은 자유에 대한 갈망에서 하나로 합쳐졌다. 인디고들은 자신의 진가를 알고 있고, 이 땅의 삶에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확신하고 있는 듯하다. 참 대단하지 않은가!

 

이 아이들의 마음은 어른들을 놀라게 한다. 그들은 나이에 걸맞지 않게 의식이 발달해 있고 세상을 꿰뚫어 보는 투명한 눈이 열려 있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권위에 고개 숙이지 않는다. 

 

인디고 아이들은 보수적인 것을 수용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용인된 기준과 규칙을 습관적으로 따르는 반면에, 그들은 전혀 다른 방법으로 그 일을 해야 한다고 느낀다. 

 

그들은 유순한 아이들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교육적 관점에서 볼 때 그들은 '통제불능'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들은 교활할 만큼 영리하고 말썽꾸러기이다. 이것은 어느 정도까지는 새롭게 출현한 세대가 보여주는 당연한 특징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인디고 세대는 그 새로움의 정도가 특히 두드러진다. 

 

지난 수천년 동안 세대교체는 일정한 간격을 유지해왔고 그 변화의 리듬도 일정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새로운 세대가 출현하는 과정이 단축되는 것이 관찰되고 있다. 후대 사람들이 이전 사람들에 비해 더 급격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인디고 세대에서는 이미 부모들을 능가하는 특성을 지닌 아이들이 생겨나고 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인간 의식의 혁신적인 변화 과정은 어떤 특별한 이유 없이는 스스로 일어날 수 없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자연과 사회에서는 모든 존재가 균형을 지향하고 있다. 그러므로 의식의 혁신은 뭔가 다른 과정에 의해 균형에 이른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 과정이 어떤 것인지를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최근 10년간 정보 통신망의 발달과 아울러 펜듈럼의 강력한 망이 동시에 형성되었으며, 그것은 견고하게 지구 전역을 뒤덮고 있다.

 

과학기술의 진보 그 자체는 그다지 위협적인 것이 아니다. 펜듈럼의 발생과 존재를 위한 터전을 만들어주는 그것의 정보적 요소들이 위협적인 것이다. 같은 방향으로 사고하는 지지자들의 그룹이 크면 클수록 펜듈럼의 힘은 더욱 커진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사람들을 지배하는 영향력도 더 커지는 것이다.

 

대중의식을 지배하려면 유명한 영화 <매트릭스>에 나오는 것처럼 그들에게 흡착판을 붙여 배양기에 집어넣을 필요까지도 없다. 전 세계에 펼쳐진 정보망을 만들어놓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러면 사람들은 각자가 스스로 알아서 그물코에 있는 자기 자리를 찾아가게 되어 있다.

 

정보망 속에서 각각의 그물코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사회적 요소'라고 불리는 것으로서, 그것의 의식은 기본적으로 매트릭스와 같은 조직 안에서 그들이 차지하는 위치에 조건지워져 있다.

 

조직은 눈에 띄지 않지만, 그 사슬은 특정한 생각과 행동의 고정된 틀로써 마치 그림자처럼 그 일원들을 낱낱이 장악하고 있다. 사람은 자신이 자기 의지대로 자유롭게 행동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자유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 왜냐하면 그의 의지는 조직에 의해 이미 '환경설정'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이미 정해진 자기 의지에 따라 강요된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각자는 자신의 의지대로 원하는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을 자유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사람은 오직 조직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만을 원할 수 있다. 조직은 사람들을 조직에 필요한 것만을 원하게끔 가르친다.

 

이 과정에서 의지(의도)의 노예화가 생겨난다. 이 과정은 본질적으로 공동작용에 의한 것이다. 다시 말해, 펜듈럼은 스스로 의식적인 의도를 갖지 못하므로 이 과정은 저절로 형성되는 것이다. 그것은 얼음이 얼면서 결정체를 이루는 과정처럼 저절로 일어난다. 펜듈럼의 그물은 기생식물의 군집과 비슷하여 지구의 모든 생물권을 휘감는다.

 

두려운가? 아니면 우스운가? 당신 맘대로 생각하라. 사람들은 이런 고찰에 무관심하여 그것을 그저 환상으로 치부해버린다. 그러나 일상의 현실이 낯선 모습을 하고 나타날 때, 그것의 엄연한 현실성은 가장 감쪽같은 환상을 능가한다.

 

 

자, 다시 인디고 아이들로 돌아가 보자. 의지를 노예화하려는 경향성은 그에 대한 반작용을 불러일으킨다. 독립과 자유에 대한 갈망을 품은 아이들이 나타난 것이다. 이것은 당연한 자연현상이다. 펜듈럼의 그물이 확장됨에 따라 그 응답으로서 균형력의 작용이 나타난 것이다.

 

한쪽에서는 펜듈럼이 세상을 정돈하여 사람들을 매트릭스와 같은 구조체 속에 몰아넣으려고 애쓴다. 다른 쪽에서는 인디고들이 펜듈럼의 힘을 균형잡고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마치 미리 정해진 미션을 수행하는 것과 비슷하다. 인디고 아이들의 행동은 펜듈럼이 정리해놓은 것을 망가뜨리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그들은 자유를 향해 고정관념과 조건화된 틀을 깨고 나오려고 애쓴다.

 

모든 아이들, 특히 인디고들은 잉여 포텐셜에 매우 민감하다. 예컨대 그들은 어떠한 위선도 금방 알아차린다. 그들 앞에서 아첨을 하면 바로 무례한 말을 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칭찬하면 바로 떼를 쓴다.

 

정리정돈된 것은 모두 양극성을 창조하며, 아이들은 그것을 깨뜨리려고 애쓴다. "안 잘거야! 밥 먹기 싫어! 나 혼자 할래!" 아이들이 말을 안 듣거나 불손한 경향이 있는 것은 성질이 못돼 먹어서 그런게 아니라, 외부의 조종에 자유로워지고 싶은 자연스러운 욕구의 결과인 것이다.

 

간혹 아이들이 어떤 일을 악의적으로 저지른다고 여겨질 때가 있다. 이런 경우에 그들은 고의가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행동을 계획하지 않고, 의도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자연스럽게 저절로 일어나는 것이다. 어른들이 자기 아이들에게 주입하려고 애쓰는 정돈된 삶에 대한 응답으로서 균형력의 행동이 나타날 때도 그렇게 저절로 일어나는 것이다.

 

자유를 향한 인디고들의 노력은 종교와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리 캐롤과 얀 토버는 자신들의 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새로운 아이들은 현대의 교회를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인디고들은 자신이 신의 아이라는 굳건한 확신과 강한 자존감을 가지고 이 세상에 왔다." 그런 입장에 있는 그들이 신과의 중재자가 필요할까? 그럴 리가 없다.

 

인디고 아이들은 마음보다 가슴의 목소리에 따라 움직인다. 성인들은 올바르게 행동하는 것이 잘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아이들은 영혼의 이끌림을 따라 사랑과 함께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만약 언젠가 전생에서는 당신의 아이들이 당신의 부모였고, 그리고 지금 서로 위치가 바뀐것이라면 어떨까? 이 오래된 영혼들은 당신에게 수많은 심오한 지혜를 가르치는 일을 다시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인디고 아이들의 분별력 있는 이성은 그들의 수준높은 의식의 산물이다. 그들은 주위에서 무슨일이 벌어지는지와 누가 누구인지를 명료하게 알아차린다. 외부세계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주의의 초점이 맞추어질때 의식이 각성된다. 만일 사람이 밖으로부터 강요되는 걱정에 완전히 매몰되면 그는 온통 무의식의 게임에 빠지게 된다. 펜듈럼의 그물에 걸려 있는 사람들이 갖는 '의식의 마취' 경향성에 대비되는 것이 바로 인디고 아이들의 의식이다.

 

모든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다양하고 분명한 개성으로 서로 구별된다. 어린 시절에 그들은 매우 아름답고 매력적이다. 아이들이 갖는 매력의 유일한 비밀은 영혼과 마음의 조화로운 일치에 있다. 그들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인다. 그래서 최초의 영혼의 아름다움이 마음의 거짓된 가면으로 왜곡되지 않는다.

 

 

왜 이런 훌륭한 피조물에게 좋지 못한 특성과 나약한 측면이 나타나는 것일까? 그들은 신의 아이들이 아닌가? 그래서 유아기의 유약함에도 불구하고 마치 신과 같이 아름답고 전능하지 않은가? 그들은 애초부터 창조자의 힘을 가졌고, 새로운 현실을 창조하는 능력이 있다. 그러나 신의 아이들이 가진 능력은, 현실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펜듈럼이 그들의 신성한 힘인 영혼과 마음의 일치를 빼앗아버리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이 세상으로 올 때 신뢰감을 가지고 구슬 같은 눈동자를 크게 열어 세상을 바라본다. 그들에게 삶은 모든 것을 약속하는 완전한 희망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세상은 "분리하라! 지배하라!"는 원리에 따라 행동하는 펜듈럼이 다스리고 있다.

 

펜듈럼은 사람들의 생각과 열망을 획일화하여 개인의 독창성과 온전함을 파괴해버린다. 마음이 영혼으로부터 분리되면 신의 아름다움과 힘은 상실된다.

 

시간이 갈수록 크고 작은 희망들은 무너진다. 어떤 이들에게는 이 과정이 별 고통 없이 서서히 지나가고 운 나쁜 사람들에게는 빠르고 잔인하게 지나간다. 고아원에 있는 아이들의 눈동자를 살펴보면 공존할 수 없을 것 같은 두 가지의 모습, 곧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눈에는 이런 대답 없는 질문이 엉겨 있는 듯하다.

 

"정말 희망은 없는 걸까요?"

 

펜듈럼의 세상은 아이들에게 늘 그들의 연약함과 불완전성을 보여준다. 그러면 그들의 의식 속에는 먼저 의심이 생겨나고, 그 다음에 두려움이 단단히 자리 잡으면서 습관으로 굳어진다. 그러나 거기서 놀라 도망가서는 안된다. 어떻게든 이 파괴적인 환경을 견뎌내야 한다. 신의 아이들은 조직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 존재하면서 그 조직체의 한 요소가 되어야만 한다.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같아지지 않는 것을 두려워하기 시작한다. 같아지지 않으면 '모두와 같은' 사람들이 그들을 '왕따'로 만들고 괴롭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일은 종종 벌어진다. 군중 속에서는 안전하다. 그런데 군중 밖으로 나가면 당신은 이탈자가 된다. 이리하여 아이들은 타고난 선물을 조금씩 잃어가는 것이다. 자유, 의식, 직관, 개성을.

 

 

인디고 아이들에게는 이런 모든 것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러나 조직체에게는 이것은 죽음과도 같다. 그래서 의지를 예속시키려는 획책을 더욱 강화할 것이다. 이 싸움에서 누가 이길지는 알 수 없다.

 

우리에게 중요한 한가지는, 아직 조직이 결정적으로 승리를 거두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지금 이 삶에서 신이 우리에게 부여한 힘을 일부분이나마 반드시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트랜서핑은 우리가 이것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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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작약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08.02 앞으로 우리 아이들이 커가며 어쩔 수 없이 부딪히게 되는 좌절과 굴욕에서도 당당히 일어날 수 있는 각자의 내적힘을 기를 수 있는 방법들을 많은 분들이 함께 고민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저도 많이 고민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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