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사랑의 전제
'사랑'이라고 하려면 적어도 세가지가 전제되어야 한다.
지속성,사람 대접,차이 인정 등이다.
1년이든 평생이든 일정한 기간 동안 이루어진 관계로 지속적인 관계가 전제되어야 하고,대상이나 수단으로 대하는게 아니라 인격을 가진 사람으로 대하는 거, 그리고 개성을 가진 존재로서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어야 한다.
거짓과 배신으로 지속성이 유지되지 않거나, 무시하고 억압하여 사람으로 대접을 해주지 않을 때,지배와 간섭으로 상대방을 구속할 때 사랑의 관계는 깨진다.
결혼해서 같이 살지만 사랑한는 건 아니라고 할 때는 이 세가지 측면에 문제가 있다고 할 수있다.
지속성
밤 11시가 되어 집에 돌아오니 아들이 책을 읽고 있었다.
"엄마,이책 좋은책 같아요."
"왜?어떤 면에서?"
"사랑,뭐 그런게 나와 있어서요.그런데 이상한게 있어요."
아들은 '날마다 크는 아이'라는 책을 펼쳐 보이며 나보고 읽어보라고 했다.
이성 친구가 좋아하게 하려면 먼저 모든 일에 성실하고 다음으로 남을 이해하고 배려해주라고 적혀 있었다.
"맞는 말이야.이 책 정말 좋은 책이네."
아이는 머리를 갸우뚱하더니 "그런데 우리반 여자애들은 안그런 것 같아요. 공부 잘하고 잘 생긴 남자를 좋아하는 것 같던대요?"
한참을 생각한 나는 말했다.
"네 말도 맞고 이 책에 나온 것도 맞아. 처음에 아무래도 공부 잘하거나 잘 생긴 아이가 눈에 띄고 호감도 가겠지. 그렇지만 조금만 사귀어 봐라.
오랫동안 친구가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공부 잘한다고 건방지게 굴고 남을 무시한다면 오래 가겠니? 또 서로 약속을 지켜야 되는데 약속도 어기고 불성실하다면 넌 계속 사귀겠니?
오래 사귀려면 성실하고 남을 존중하는 진실함이 있어야지."
아이는 명쾌하게 정리되는 모양이었다.
얼굴이 예뻐서, 몸매가 좋아서, 이정재를 닮아서 호감을 가졌던 관계가 오래 가지 못하는 것은 지속성에 필요한 요소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순간의 포착이 사랑을 만들지 못한다.
일정 기간을 유지하려면 진실과 성실이 요구된다.
많은 것을 함께 겪어 단점을 안 후에도 진실과 성실의 믿음이 있다면 우린 사랑을 할 수 있다.
상대가 큰 잘못을 했다해도 솔직하게 말하고 고치려는 노력이 보인다면 지속적인 관계는 굳어진다.
지속성은 단순한 시간의 개념이 아니라 진실과 성실, 장점과 단점, 배려와 믿음을 담고 있는것이다.
이런 것들이 담겨질 만큼 일정한 기간을 겪을 때에야 사랑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다.
사람대접
결혼해서 7--8년간은 참 많이도 싸웠다.
나는 남편에게 늦게 오지 말라,술먹지 말라, 돈 많이 가져와라, 전화해라, 성질내지 마라,자주 안아줘라 등 작동만 시키면 척척 알아서 해주는 자동 기계같은 역할을 요구했다.
남편은 나에게 아침밥 좀 챙겨라,빨래 밀리지 마라, 집안 일을 완벽하게 하고서 활동해라, 아이에게 신경써라,시댁에게 잘해라,잘난체 하지 마라,그일은 하지 마라 등 원하는대로 따라주는 노예같은 여자의 역할을 요구했다. 부당하다고 대들면 이젠 문제의 초점이 바뀐다.어디 반성하지안고 여자가 대드냐며
공포 분위기가 조성된다. 물리적인 힘을 느낄 때처럼 비참한 건 없다.
물리적인 힘을 앞세우는 것은 사람의 할 짓이 못된다.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때의 나의 대응 방법은 가출이었다.
10번도 넘는 가출에서 뼈저리게 느낀 것은 '사람대접' 이었다.
내가 한 행동이 잘 했다는 게 아니라 나를 사람으로 생각한다면 이해할 수도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사람 이전에 여자로 보니까 문제가 되는 것 같았다.
설령 잘못이 있다해도 조용히 설득을 하면 좋을텐데 신경질과 폭언으로 대한다는 것은 나를 사람으로 대접하는게 아니다.나의 의견을 들어봐야 하지 않는가? 이유를 설명하려는게 아니다. 나의 의견을 들어봐야 하지 않는가? 이유를 설명하려면 그것을 말대답으로 받아들이니 꽉꽉 막혀오는 심정이었다.
아무튼 우리의 싸움을 요약하면 남편은 전지전능한 신,자동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이고,나는 시키는대로 해주는 노예같은 여자가 아니라 많은 것을 스스로 실현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서로가 사람 대접을 받고자 싸운 것이다.
사랑은 '사람'인 남녀가 정을 통하는 것으로 사람 사이의 관계다.
사람이란 스스로 주인이 되고자 하는 자주성을 가진 존재이다.
그러기에 남성 여성, 모든 사람을 억압과 지배를 싫어하며 자유의지를 가지고 많은 것을 실현하고자 한다. 노예나 기계처럼 시키는대로 하지 않고 본인 스스로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깨닫고 뉘우치고 연구해서 성숙해 간다.
사랑이란 똑같이 자주성을 가진 남성 여성 사이의 관계이기에 그 관계는 동등해야 하고 서로를 무조건 존중해야 한다.서로가 자주성을 가진 큰 존재로 봐야 배울게 있고 대화할 수 있으며 참고 기다려줄 수 있다.
무시하고 동정받는 것, 지시하고 순응하는 것,몰아 세우고 눈치 보는 것은 사람들 간에 할 짓이 못된다.
사람 대접이 전제되어야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차이 인정
얼마전 텔레비전에 둘다 발레를 하는 잉꼬 부부가 나왔다.
조금 유명한 사람들이었는데 주로 그들의 생활을 보여주며 대화를 하는 프로였다. 부부의 아침 일과를 보여주는 대목에서 부인은 침대에서 잠을 자고 있고 남편은 일어나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야채 써는 솜씨며 후라이팬을 다루는 모양을 봐서 촬영을 위한 연기는 아닌 듯 싶었다.
내가 괜히 다 부끄러워지고 몸둘 바를 몰라했다.
뭔가 자기 일을 한다는 여자들은 저렇게 기본적인 일에 무심하고 게으르다는 말을 듣게되지나 않을까 해서 조마조마 했다.
사회자도 그냥 넘어갈 수 없었는지 남편에게 정말 매일 저렇게 하느냐고 물었다. 남편은 태연하게 그렇다고 말했다.
"나하고 처는 잠버릇이 다르다. 난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편이고 처는 아침잠이 많아 힘들어 하기 때문에 일찍 일어난 내가 식사준비를 하는 것이다. 식사 준비가 끝날 때쯤 일어나 같이 식사를하고 그 후엔 처가 집안을 치운다. 서로 창의적인 일을 구상하고 연구하는 직업이라 생활 리듬이 중요한데 우린 그렇게 합리적으로하고 있다."
아무리 무용이라는 특수한 일을 한다지만 뭔가 사고방식이 다른 것 같다.
잠버릇까지 차이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은 처음 보는 일이었다.
언뜻 잉꼬부부의 비결은 차이를 인정하는 것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남녀가 싸우는 이유에는 사실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데서 비롯된다.
"난 그 꼴 못봐." "내가 그렇게 하지 말랬지?" "난 그런거 싫어.싫으니까 하지마." "어디서 그렇게 배웠어?" "어디 네 맘대로 해봐라." "어째 그것밖에 못하니?" "그래 난 그런 사람이다.어쩔래?"
우리가 싸울 때 많이 쓰는 말들이 아닐까?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식들도 제각기 다른데, 커서 만난 남녀야 얼마나 다르겠는가?
남성과 여성은 놓여진 처지와 구조가 다르다.
남성은 주로 사회적인 일을 통해 가장의 역할을 해왔고, 여성은 집에서 가사일을 해왔다.
직장여성도 고도의 창의적인 일보다는 단순직이 더 많다. 이런 구조에서 비롯되는 고민과 고통,스트레스도 다르다.
또한 여성과 남성은 길들여져 온 역사가 다르다.
남성은 '큰 일꾼'을 요구받으면서 보다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성향으로 길들여졌다. 여성은 집안에만 머무는 '작은 존재'로서 순응하고 의존적인 성향을 요구해왔다. 이런 역사에서 비롯되는 정서와 취향, 일하는 자세와 방식이 다르다. 고민이 있을 때 푸는 방식과 내용도 다르다. 게다가 서로 살아온 가정 환경과 문화도 다르다. 같은 것보다는 다른게 더 많다고 할 수 있겠다.차이를 인정하지 않고는 공감대르 만드는 사랑은 시작될 수도 없는 것이다.
동그레지는 온쪽이
흔히 남녀를 비유해서 '반쪽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원래 한몸이었던 남녀가 어떤 신의 조화로 떨어져 반쪽이 되었다는 서양의 신화에서 비롯된 말이다.나는 이젠 그 신화도 바꾸어야 한고 반쪽이라는 말도 바뀌어야한다고 생각한다.
남녀 각자는 '온쪽이'이다.아직 성숙이 덜 된 찌그러진 온쪽이.
그러나 같이 살면서, 사랑하면서 다듬어지고 채워져 가는 동그레지는 온쪽이.동그란 원에는 구심점이 있다. 바로 자주성이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구심점, 자주성을 가지고 있다.
반쪽는 반쪽을 만나야 원이 되고 구심점을 갖게 되는데 혼자 신나게 사는 사람들은 반쪽이기에 원이 될 수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부족한 게 있을지는 몰라도 독립적으로,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살 수 있다.
결혼했다 이혼하고 또 재혼한다면 온쪽에서 반쪽으로, 또 온쪽으로 되는 그런게 아니다. 찌그러진 오쪽이가 이혼 재혼을 거치면서 보다 성숙한 원에 가까운 온쪽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원래 남녀 모든 사람은 반쪽이가 아니가 온쪽이이기 때문이다.
원래 자주성을 가진 다양한 남녀가 따로 따로 살고 있었다.
조금 색다른, 차이가 나는 상대와 관계도 맺어보고 잠시 동안 살아보기도 했다.어떤 여성은 남성과 관계도 맺지 않고 혼자 살다 죽기도 했다.
오랫동안 이래저래 살아보는 속에 서로가 더 풍요롭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 가장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결혼할 짝을 찾게 되었다.
이것이 내가 생각한는 '온쪽이'의 신화다.
남녀 사랑의 전제는 이와같이 차이를 인정하고 그 속에 자주성 지속성이 들어있는 온쪽이의 신화에서 비롯된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