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사랑의 본질
환상적 사랑과 현실의 사랑
텔레비전 광고를 보고 있노라면 환상적인 사랑의 시나리오를 그릴 수 있다.
미인은 잠꾸러기라니까 대낮까지 실컷 자고 일어나 그 유명한 샷시 문을 열고 낮바람을 쐰다.몸이 날아갈 것 같다는 식물성 건강음료를 마시며 긴 머리를 쓸어 올린다. 체중기에 올라가 체중을 재고 거울을
들여다보며 피부를 체크한다. 예쁜 속옷과 잠옷을 입고 품위 있는 소파에 앉아 새큼한 오렌지 쥬스를 마시고 있다가 강아지가 집어다 주는 무선 전화기를 받고 데이트 준비한다. 매끄러워진다는 샴푸로 머리를 감고 향상 애인같다는 화장품으로 화장을 하고 개성이 돋보이는 옷을 고르기 위해 이옷 저옷을 입어본다. 얼마후 빵빵하는 클랙숀 소리에 밖을 내다보니 센스있는 양복을 입은 잘생긴 그이가 꽃다발을 들고 있다.
뛰어나가 그이 품에 안기자 그이는 긴 드레스가 휘날리도록 몇 바퀴를 돌려준다.여름엔 사람도 많이 없는 바닷가에 가서 수영도 하고 일광욕도 한다.그이가 선텐 크림을 발라주면 그윽한 미소를 짓는다. 둘이 바닷물을 따라 괜히 뛰어간다. 그리곤 갑자기 넘어지자. 그이가 얼른 와서 일으켜 안아준다. 저녁 노을이 지면 둥이 몸을 맞붙이고 머리를 휘날리며 모래사장을 거닌다.
가을이 되면 낙엽이 떨어지는 길을 따라 바바리를 입은 남녀가 말없이 걷는다. 산속에 통나무로 만든 산장이 있고 그곳에 들어가면 벽난로도 있다.
그대의 향기 oo커피가 나오고...
아이고, 꿈을 깨야지. 침도 닦고.
꿈많은 처녀들은 이런 환상적인 사랑을 바라고 기다린다.
그러나 현실의 사랑은 그렇지 못하다.
순간순간을 나비처럼 옮겨다니며 쪼가리로 즐길 순 있지만 한 사람과 오래도록 이런 식으로 살아지진 않는다.좋은 것을 사고 꿈 같이 즐기려면 돈을 벌어야 하는 생활이 있기 때문이다.
잠깐씩 사귀는 것도 아니고 연애나 결혼처럼 일정 기간을 함께 지내려면 좋은 일만 있는게 아니다. 단점과 실망, 질병과 사고, 인내와 고통도 있다.
지속되는 만남엔 굴곡이 있는 것이다.
좋을 때, 너무 좋았을 때, 별로일 때, 나쁠 때,위기를 맞을 때가 굴곡의 그래프를 만든다.
신혼 때는 기대도 많은 만큼 실망도 커, 좋고 나쁜게 급격하다.오랜 세월을 함께 겪은 노인이 되면 굴곡은 완만해진다. 평화로운 강처럼,크게 기뻐할 일,슬퍼할 일도 없는 것이다.
이런게 현실의 사랑이다.
텔레비전 광고는 너무 좋을 때만 골라서 찍은 것이다. 너무 좋은 장면만 입력해 줄거리를 만들면 환상적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혼율의 증가는 현실적인 사랑에 대한 준비 없이 환상적인 사랑을 꿈꾸는데서 오는게 아닐는지?
찾는게 아니라 만드는 것
결혼한지 16년째.
나는 지금 행복한가? 행복한 것 같다.
남편을 사랑하는가? 사랑한다.
같은 질문을 결혼 전반전에 했다면?
대답은 불행하다,사랑하지 않는다고 했을 것 같다.
왜 그럴까?
사랑의 본질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결혼 전반기에는 나는 사랑을 '찾은 것'에 두었다.
둘이 마음이 맞아 신이 날 때에는 "나는 남편을 잘 만났어,참 잘 찾았어"라고 했다.그러나 한바탕 싸우고 나서는 "어떻게 저런 사람을 만났지? 내가 눈이 삐었지.정말 잘못 찾았어"라고 했다.연애할 때의 모습, 약속했던 말들,믿었던 인격과 신념 등 결혼을 결심하는데 동원되었던 모든 근거들을 떠올려 잘한 선택인지 아닌지를 따져보곤 했다. 속았다는 심정으로 남편을 미워하고 괴롭혔고, 참을까 헤어질까를 고민했다. 참기로 햇을 때는 1주일을 드러놉고 말도 안하고 인상을 썼다. 헤어질 마음이 더 많았을 때는 툭 하면 가출을 했다. 1년을 가출한 적도 있다.
정말 사랑은 요지경이던 것이 사회활동을 하고서부터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사회 활동은 바라고 요구만 하던 의존적인 나를 뭔가 만들어보겠다는 주인다운 자세로 바꾸어 놓았다. 남들에게 변화를 믿게 하고 변화를 위해 자신부터 변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할수록 내가 부끄러워졌다.점차 남편과의
문제도 내가 적극적으로 변화시켜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정적인 계기는 어떤 역사 소설을 읽게 되면서이다.
일본 식민지 시대 항일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생활과 삶을 그린 소설었는데 가정에 문제가 많은 남성이 부인과 불화로 일에 방해 받자 상급 지도자에게 고민을 털어 놓았다. 한참을 심각하게 듣고 있던 지도자는 말 했다.
"가정의 평화와 행복이 유지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을 진정으로 원하는 사람이 먼저 변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운동이 귀중한만큼 더욱 가정의 변화에 힘써야 한다."
나는 그 대목에서 책을 놓았다.
나보고 하는 소리 같았다.
원인과 길을 함께 찾은 것 같은 감동에 가슴이 메어지고 눈물이 쏟아졌다.
왜 나는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
바라고 기대고 원망만 하던 세월이 아까웠다.
문제의 원인을 나에게 찾으니 그전에 안보이던 많은 것이 보였다.
우선 남편의 장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남편을 괴롭히는 주변 환경도 보이기 시작했다.남편을 괴롭히는 주변 환경도 보이기 시작했다. 나의 단점과 버릇도 보였다.
조용한 사랑의 변화와 개혁이 시작되었다.
단점과 갈 등을 변화의 계기로 삼아 더욱 성숙해 가는 사랑이기에 나는 지금 행복하다.자신의 단점을 인정하고 노력하는 남편이기에 나는 남편을 사랑한다. 이제 나는 사랑을 찾는게 아니라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12번선을 보아 최상급의 남성을 찾았어도 문제는 남는다.여전히 만들어야 할 것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7년을 연애해서 결혼해도 그렇다.
사랑의 본질은 찾는게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사랑의 조건
남편과 결혼하기로 작정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많은 것이 잘 통한다는게 제일 큰 이유였다. 크게 신념과 낭만이라 할 수 있다.
대학 시절 겨울, 여름 방학마다 가는 농촌활동을 빠지지 않고 8번 참여하면서 나는 졸업 후 농민 운동을 할 결심을 하였다. 간호학과를 졸업하면 간호사가 되지만 난 농촌에 더 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애기받는 전문인(산파,조산원)이 되기로 했다.졸업하자마자 조산원 훈련을 받기 위해 부산에 있는 전문 병원으로 내려왔다.서울에 있는 부모형제와 떨어져 힘든 훈련을 받으면서 사회 활동도 하였는데 농민 운동을 하는 모임속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 상록수를 읽은 후로 나는 채영신같은 여자가 되는 것이고 남편은 박동혁과 같은 사람을 만나는게 꿈이었다. 남편에 대한 첫 인상은 박동혁 같지는 않았지만 같은 뜻을 가졌기에 관심이 갔다.
1년 남짓 사귀면서 끌려온 것은 낭만적인 면이었다. 날씨가 을씨년스러운 날 영화가 보고 싶었는데 영화를 보자고, 화창한 날이면 들로 나가고 싶었는데 야외로 가자하고 기가 막혔다.
뜻과 마음이 맞는데야 더 이상 볼게 뭐 있겠는가?
결혼한 지 두달쯤 되었을까?
어린시절 시골에서 쑥과 냉이를 캐던 버릇이 남아 봄이 되면 나는 돋아나는 새싹를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쭈그리고 앉아 "어머, 싹이 난다. 세상에서 이것 좀 봐."하며 새싹을 어루만진다. 싱그러움에 눈물이 돌기도 하면서.
연애 시절 내가 그러고 있으면 남편도 옆에 와 "정말, 싹이 나네" 하곤 했다.
그날도 둘이 나들이를 하면서 새싹을 본 나는 또 그렇게 하였다.
"여보야,여기 싹이 난다. 이리와 봐.
얼른 뛰어와 쭈그리고 앉아야 할 남편이 갑자기 꽥 소리를 쳤다.
"천지가 풀이구먼 뭘 그래쌌노? 시간 없다. 빨리 가자".
놀래 자빠질 뻔 했다.
그 잘 통하던 '낭만' ,낭만이 어데로 갔노?
그 후 살면서 나는 낭만을 아주 포기해버렸다.
재작년 여름이던가 남편이 낭만을 찾기 시작했다. 무더운 여름 휴가철 바쁜 교육 일정속에 피곤했던 나는 낮잠을 자고 있었다. 뭔가가 툭툭거리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남편이 짜증이 나는지 방바닥에 널려있는 물건들을 발로 차고 있었다. 남편의 중얼거리는 소리.
"사는게 뭐 이렇노. 낭만이 있어야지, 낭만이."
아니, 낭만이라니? 나는 안떠지는 눈을 비벼가며 낭만을 위해 밀양 표충사 여행길에 올랐다. 몇 년만에 찾은 낭만이던가?
많은 사람이 결혼을 하면서 조건을 따진다.
외모 성격 학벌 재산 가문 종교 낭만 소신...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조건은 무엇일까?
거의 다 변한다. 낭만도 변하고 성격도 변한다. 돈도 있다가 없어지고 없다가도 있어진다. 학벌이 한이 되면 쉽진 않지만 검정고시라도 본다.
외모가 날씬하다가도 퍼지고, 퍼진 사람도 살도 뺀다.
조건만을 따지는 사랑은 불안정하다. 만들어가려는 생각과 의지없이 조건만 보고 시작한 사랑은 조건이 바뀌면 휘청거리기 때문이다.
조건은 조건일 뿐이지 사랑의 본질은 아니다. 조건이란 사랑을 보다 풍요롭고 재미있게 만들어가기 위해 참고할 사항이다. 사실 학벌의 차이가 너무 크고 재산 차이도 크면 사랑이 힘들어지기도 한다. 현실적으로 편하고 재미있는 사랑을 만들기 위해 조건은 참고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용기있는 사람들은 악조건을 뚫고 멋진 사랑을 만들어가기도 한다.
만드는게 우선이지 조건이 우선은 아닌 것이다.
'속았다'에서 '왜 그럴가' 로
사실 남녀간의 다툼은 커다란 문제보다는 생활에서 나오는 잔잔한 것이 더 많다,
나 또한 제일 많이 다투고 힘들어 한 것은 남편의 신경질이었다. 남편의 신경질은 예측할 수가 없고 내 기분과 생각을 헝클어놓기 일쑤였다. 조금 지나친 신경질에 대해서 결혼 전반전에는 그 신경질 자체를 가지고 싸움을 많이 했다.
"도대체 왜 그러는데? 내가 뭘 잘못했어요? 말해 봐요".
"그만 시끄럽다!"
"왜 소리는 치고 그래요? 정말 웃겨."
"그만 둬. 그만 하랬잖아!"
억울해서 참을 수 없는 나는 문을 쾅 닫고 집을 나와 동네에 뒷산으로 올라간다.
몇 시간이고 앉아 곱씹고 꼽씹은 끝에 복수를 결심한다.
'일주일간 말을 하지 말아야지. 누가 아쉬운가 보자. 밥은 해줘? 말어?'
말없이 일주일을 버티기가 얼마나 힘들던지. 그러나 방침을 정했기에 버텨보려한다.
며칠 후 남편의 사과로 마음을 풀면서 다시는 신경질을 내지 않기로 약속을 한다.
그러나 그 다음에도 신경질은 또 터진다.
"속았다, 속았어. 다시는 안 그런다고 해 놓고. 저 사람은 안돼. 안되는 사람이야."
되풀이되는 그 비생산적인 소모전. 지긋지긋했다.
이젠 이렇게 한다.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남편의 눈치가 심상치 않다. 눈치를 살핀 나는 아무 소리없이 가게에 가서 맥주 두병을 사온다. 오징어를 구어 술상을 받쳐들고 들어가 말없이 잔을 채운다. 두 잔쯤 마셨을 때 남편은 말문을 연다.
"자식, 건방진게 까불어..."
가만히 듣고 있다가 가끔씩 '왜' '그래서' 의 삽입어를 넣는다.
사연이 풀어헤쳐진다. 같이 토론도 하고 평가도 한다.
기분도 풀리고 사연도 알았고 둘의 공감대도 넓어졌다.
생산적인 대화였다.
내가 이렇게 변하게 된 것은 앞에서 말한 역사 소설을 읽은 이후이다.
변화해야하니 이유를 알아야 했다.
결혼 7-8년만에 처음으로 신경질에 대해 왜 그럴까를 생각해봤다.
남성들이 가진 일반적인 특성과 그 사람만이 가진 특성으로 분석되었다.
남성들의 주 관심사는 사회나 직장에서의 자기 실현인 것 같다.
밖에서 능력을 인정받거나 뭔가를 성취했을 때는 패기있게 큰소리도 치고 가족들에게 여유를 부린다. 부인이 잘못한 일이 있어도 '사람이 살다보면 다 그럴 수도 있는 거지 뭐' 하며 오히려 위로를 해준다. 바다같이 넓은 남편을 다시 쳐다보게 된다.
그러나 밖의 일이 잘 안되고 고통이 심할 때는 모든 것이 변한다.
여자들처럼 쫑알쫑알 얘기라도 하면 좋은데 남성들은 잘 안된 일은 여성에게 말하지 않는다. 자존심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별것도 아닌 일에 짜증을 내고 떠드는 아이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소리를 치고 대들기라도 하면 난리가 난다. 이놈의 집구석 어쩌구 하면서 하여간 편한데라고는 한구석도 없다고 한다.
원인도 모르고 온 식구가 숨죽일 수 밖에 없다. 나는 사회 활동중에 남성들을 많이 접하면서 이런 특성을 알게 되었다.
사화와 직장이 안정되고 밝아야 우리 남편들이 가정을 평화롭게 할 수 있음을 알았다. 가장의 역할을 제대로 하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도 알게 되면서 '슈퍼맨의 비애'라는 노래를 열심히 따라 부르고 있다.
이런 일반적인 것을 고려한다 해도 우리남편의 신경질은 유난한 것 같다.
시어머니로부터 남편의 어린 시절을 듣게 되었다.
남편은 일곱 살 때쯤 중병을 앓았다 한다.
거의 죽은거나 다름없는 애기를 살려냈다 한다. 시골 국민학교는 많이 걸어가야 하는데 몸이 약해 1--2년간 형님에게 업혀서 학교를 다녔단다.
이제 모든 것이 이해되었다. 한창 뛰어놀 개구장이 나이에 남편은 학교도 혼자 갈 수 없었다니 얼마나 짜증과 신경질이 났겠는가?
일단 그 속썩이던 남편의 신경질에 대해서 원인은 분석된 것이다.
우리들 사랑의 맹점은 문제의 현상에만 매달리지 원인까지 헤아려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술 바람 노름 폭력 바가지 등 그 자체에 진저리치지, 왜 그럴까를 생각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이유가 있긴 있을 것이다.
원인 분석은 변화 의지가 있을 때에먀 가능하다.
만들어 가는 사랑이 되려면 '속았다' '당했다' '몰랐다' 에서 '왜 그럴까'로 바뀌어야 한다.
참는게 아니라 고치며 사는 것
남편과 싸우고 친정에 가면 어머니는 별 일 없었냐고 묻는다.
처음엔 별 일 없었다고 대답하다가 끝내는 못참고 싸운 일을 얘기하게 된다. 얘기가 끝날 때까지 묵묵히 듣고 계시던 엄마가 함숨을 크게 한 번 쉬시고는 말씀하신다.
"야, 네가 그냥 참어.남자들 다 그래.그게 어디 하루이틀 된 버릇이냐?
나이들고 철들면 조금씩 나아져. 다 그러구 사는거지. 빤한 사람 하나도 없어.그러려니 해. 네가 좋아서 한 결혼인데 어쩔거야?네 팔자다 생각하고 살아야지."
크게 기대한 건 아니지만 엄마는 내 부아를 더 돋구어 놓고 있다.
"아이구 내가 여기 온게 잘못이지. 엄마는 무슨 말을 좀 하면 시원하게 해줄 생각은 안하고 매일 참아라, 참아라 밖에 몰라. 누군참을 줄 몰라서 안 참나? 참아서 될 일이 아니니가 그렇지.아이,신경질 나 죽겠네."
"너도 문제야. 여자가 좀 찬찬하고 다소곳해야지. 성질이 그래가지고선 나라도 네 서방같으면 못 참을거야. 여자가 같이 핏대를 세우고 씩씩거리는데 어떤 남자가 좋다하겠니?
하여간 둘 다 성질은 똑 같다니까."
이건 내가 친정에 뭐 하러 왔는지 모르게 되었다.
엄마에게 위로받으러 왔는지 엄마와 싸우러 왔는지.
내 성질은 나도 안다. 하지만 지금 그 대목이 나올 때가 아닌 것 이다.
남편 문제를 집중 분석해 해결책을 구하자는 대목에서 왜 헷갈리게 내 문제가 나오는냐 말이다. 엄마는 문제를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있다.
얼마후 풀이 죽어 있는 나에게 엄마는 위로의 말을 건넨다.
"너 ㅇㅇ엄마 알지? 왜 우리 이사 오기 전에 살던 동네. 그 쌀가게 옆집 처녀 있었잖아? 글세 그애가 시집와서 바로 저기 옆에 산다. 얼마전에 우연히 길에서 만났는데 반갑다고 자주 놀러오고 그래. 그런데 참 사는게 딱하더라. 글세 사흘도리로 얻어터지고 있어. 패도 아주 심하게 팬다네.
온몸에 멍이 들어 와가지고는 목을 놓아 울더라. 참 안됐어. 애가 연년생으로 둘이나 있는데 헤어지지도 못하고 살고 있어. 별사람 다 있어 얘.그거에 비하면 너는 아무 것도 아니다. 뭐."
아무리 애가 있어도 그렇지 어떻게 그리 맞고 살아? 바보같이.
위로는 커녕 가슴만 더 답답할 뿐이다.
엄마 마음만 들쑤셔놓고 친정을 떠난다.
동창에게 전화나 해봐야지.
동창은 얘기도 끝나기 전에 헤어지란다.자기 같으면 벌써 헤어졌단다.
그 애도 웃긴다. 나보다 더 심각한 문제로 얼마전 내게 이혼을 의논해 왔으면서도 이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나를 불쌍하게 여기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동창 말에 나는 벨이 꼴리고 오기가 나서 "응 됐어.그만해. 네가 생각하는 정도는 아냐. 저번에 너 울고불고 하던 네 고민에 비하면 난 아무것도 아니지 뭐.그냥 심심해서 전화 한 번 해 본 것 뿐이야."
참는다고 될 것도 아니고 헤어진다고 될 것도 아니다.
뭘 어떻해야 되겠는가?
정면 돌파.고치며 살아야 할 것 같다. 고칠 수 있는 한 고치며 살아야겠다.
'하늘의 절반'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나는 확신했다.
아흔살이 다 되어가는 중국 할머니가 열살짤리 손녀에게 한자를 배우는 것을 본 프랑스 기자는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 손이 덜덜 떨리시는데, 그러면서도 글을 배우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어디에 쓰시려구요?"
할머니는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한다. 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렇게 배우는 것이다."
사람이라면 죽을 때까지 성숙하고 발전해야 하는 것. 모르는게 있으면 배우고 잘못이 있으면 고쳐야지. 나도 고치고 그이도 고치고, 고치며 사는게 사람이다.
사랑은 과학
어떤 사십이 넘은 부인이 상담을 하러 왔다.
영세한 기계설비 공장을 하고 있는 남편이 요즈음 바람을 피는 것 같다고 했다.가득이나 공장이 망해 지금 사무실에만 나가 뒷정리를 하고 있는 마당에 바람까지 피고 있으니 기가 막히단다.
확실하냐고 물으니 정활을 설명했다.
자신을 대하는 태도, 애인이라는 말을 자주 쓰는 것, 늦은 귀가와 외박, 돈의 아귀가 안맞는 것과 수상한 전화 등 몇가지의 근거는 있었지만 확증은 없었다. 부인은 노이로제 비슷하게 의심하고 상상하는데 빠져 있었다.
나는 부인에게 뒷조사를 해서 사실을 먼저 확인하라고 했다.
평소에 성실했던 남편이라 사실이 아닐 수도 있었고, 공상만 하고 앉아 있는 것보다 발로 뛰는게 더 건강할 것 같았다.
일주일후 부인은 조사 결과를 가지고 다시 왔다. 셜록 홈즈보다 더 뛰어난 추리로 뒤도 밟고 조사도 했는데 그 결과 바람피는게 사실로 드러났다.
어떤 술집의 마담이었는데 생긴 건 자신보다 못하더라는 것이다.자신보다 예쁘다면 이해가 가지만 그렇지도 않은데 왜 그 여자를 좋아하는지 모르겠단다. 아무튼 이젠 사실 확인이 되었으니 앞으로 어떻게 할지를 정해야 한다.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아줌마,어떻게 할래요? 두 가지밖엔 없어요. 복수냐 변화냐.둘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해요."
눈을 깜박이며 듣고 있던 부인은 "두개 다 하면 안돼요?"했다.
"그건 안되죠. 푸는 방법이 다르니까요."
"미워 죽겠지만 어떻해요. 애들도 있고. 다시 안 그런다고 하면 변화를 시켜야죠.그런데 어떻게 방법이 있겠습니까?"
나는 때아닌 질문 공세를 펼쳤다.
"아줌마, 아저씨가 바람 필 즈음에 퇴근해 들어오면 아줌만 남편에게 무슨 말부터 했습니까?"
"그야 돈을 안 갖다 주니까 당연히 오늘 돈 좀 가져왔냐라고 했지."
"그러면 아저씨가 출근할 땐 뭐라고 했습니까?"
"오늘은 얼마라도 돈 좀 가져오라고 했지. 밀린게 많아 미치겠다고."
"만약 아저씨가 그 술집에 갔다면 마담은 뭐라고 했겠습니까?"
"그야 술 팔아먹을려고 별 소리 다했겠지. 얼마나 힘드냐,사람이 살다보면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다면서 아양을 떨었겠지 뭐."
"아저씨 마음은 어땠을 것 같아요 집에 들어올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함참을 생각한 부인은 힘없이 말했다.
"힘들었을 거예요. 사업이 망해 빚쟁이한테 시달리고 정리하는라 정신없었을 건데 나는 돈얘기만 하고 애들도 돈 달라고만 하니 집에 오기가 싫을 수도 있었겠네요. 나도 머리로는 아는데 부드럽게 안되요.
나중엔 반 쯤 미쳐 악다구니만 쳤으니까요."
"좋은 생각이 있어요.아줌마가 돈을 버세요. 아저씨한테는 바람피는거 모른척 하시고요.파출부든 공장을 가든 돈을 벌어요. 몇 푼되지는 않겠지만 첫 월급을 타서 전부 아저씨에게 주세요.감동어린 편지와 함께요. 사업이 망했는데 얼마나 괴로우냐고 도움도 못주고 바가지만 긁어 미안하다고 작은 돈이지만 빚갚는데 보태라고요.그리고 용기를 잃지 말고 다시 일어서자고. 아줌마도 돕겠다고요. 아이들 한테도 엄마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세요. 난 아저씨가 상습적인 바람둥이도 아니고 너무나 괴로워서 그랬던 것 같아요. 아줌마를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니잖아요. 너무 힘들땐 마음 편한곳만 찾게 되거든요. 술팔아 먹으려고 그랬는진 모르지만 어쨌든 그곳이 집보다 더 편했을 거 같아요. 이젠 부인으로서 남편을
위로하고 도와주세요.그러면 아저씨는 진심으로 뉘우치고 돌아올거예요."
물론 모든 바람피는 남편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 이렇진 않다.어쨌든 그 부인은 공장에 다녔고 첫 월급을 타서 남편에게 주었단다.
그리고도 얼마후 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밝은 목소리로 "우리 일 정리 잘 됐어요.고마와요.한 번 찾아가야 할텐데."
사랑은 과학이다.
문제의 원인과 해결 방안이 있는 과학.
과학으로서의 사랑은 전략과 전술이 필요하다.
전략과 전술은 적과 싸우는 전쟁 용어인데 사랑에 있어서의 적은, 남성 여성 사람이 아니라 둘의 사랑을 방해하는 갈등과 문제이다.
갈등과 문제를 풀어가는데에 전략과 전술이 필요한 것이다.
전략은 중장기적인 목표를 실현하는 방침이고 전술은 그 과정에서 부딪히는 문제를 효과적으로 풀기 위한 방법이다.
우리 남편의 신경질은 30여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것이기에 전략적인 목표가 세워져야 한다.
오래된 버릇은 목표를 70세로 정했다. 칠순 잔치 때까지는 신경질을 고치리라.그 때까지 부딪힐 신경질에 대해서 지치지 않고 여유있게 대처할 전술적 지침은 어떤게 있을까?
나는 무관심과 미소 작적을 병행해 쓰기로 했다.
헌데 효과가 좋아 전략적인 목표를 환갑 잔치로 앞당겨야 할 것 같다.
금방 생긴 버릇이나 잘못은 즉시 고쳐야 한다.
갓 결혼한 남편이 양말을 벗어 빨래통에 넣지 않고 매일 쓰레기통에 대고 슛골인을 한다면 빨리 고쳐야 하지 않을까?
재밌다고 색시도 같이 골인, 노꼴 하고 있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평생 버릇이 될 것 같다.
이왕 '만드는 사랑'을 하기로 했으면 제대로 해야하지 않겠는가?
문제와 갈 등의 원인을 찾고 문제 성격에 따라 전략과 전술을 세워 좀 과학적으로 해봐야 하지 않을까?
웃음도 나고 재미도 나게 생동감 있는 사랑을 만들어 보자.
사랑과 이혼
환상적인 사랑의 꿈을 못버려서 하는 이혼,변화를 위한 노력도 없이 쉽게 하는 이혼과는 다르게 더 이상 패폐화되지 않기 위해해야만 하는 이혼이 있아. 상습적인 가정내 구타, 심한 의처증,알콜 중독같은 고질적인 문제가 이미 자리잡혔을 경우이다. 초기에 강력한 대처와 치료로 해결하지 못하고 고질화되었으면 변화를 만들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당하는 사람까지 병들게 된다.
아는 언니가 있었다.
성격이 조용하고 깔끔한 언니였는데 마흔이 넘어 결혼을 했다.
부인과는 사별하고 딸아이를 혼자 키우며 사는 남성과 중매로 만났다.
가족들이 집들이에 초대되어 가보니 언니 창찬을 늘어놓으며 자상하게 배려해주는 모습이 정겨웠단다.
늦게 한 결혼이고 아이까지 있는 여건이라 가족들은 많은 걱정을 했왔는데 눈녹듯이 마음을 풀어준 것이다.
얼마 후 임신도 했다. 더욱 깨가 쏟아지겠거니 했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남성은 의처증 환자로서 그동안 무척이나 언니를 괴롭혀왔단다.
이 사실은 어니가 그 집을 탈출하는 과정에서 알려졌다.
너무너무 잘 해주다가도 갑자기 밖으로 나가자 해서 나가면 어두운 곳으로 끌고가서 언니를 패고, 패다가 사람 소리가 들리면 얼른 팔짱을 끼고 했단다.
반 병신을 만들 정도로 패고 나서는 눈물을 흘리며 자신이 미친놈이라고 하면서 상처를 쓸어주고 핥아주고 한단다.
분만 예정일이 지나 병원을 가려해도 못가게 붙잡고 마침내 양수가 터져 위험한 지경이 되었는데도 문마다 못을 쳐서 가두어 놓았단다.
방벽 높이 창문이 하나 있었는데 밥상을 올라타고 어쩌고 해서 언니는 탈출을 했다. 이웃집에 들어가 도움을 청해 가족들에게 연락을 했다.
가족들과 함께 우선 병원에 가서 분만을 해야 했는데 양수가 터진지 너무 오래돼 염증이 심했다.난산 끝에 아이는 죽어서 나왔고 언니는 몸고생이 심했다.
남자는 끈질기게 굴었다. 옷이나 살림살이도 못가져가게 하고 만날 때마다 다시는 안그러겠다고 하면서 사랑한다고 했다.
1~2년을 폐쇄적으로 당하고만 산 언니는 마음의 중심을 못잡고 가족들이 권하는 이혼을 망설였다. 그간 지내온 정분, 막연한 변화의 기대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심리적인 의존성과 무기력증이 언니를 흔들리게 하는 것 같았다. 어느새 언니도 같이 병들어 있었던 것이다.
너무나 명백한 문제인데도 흔들리는 언니에게 나는 말했다.
"언니, 그건 사랑도 부부도 아니야.사랑은 상식과 인격 위에 있는 거야.
이유도 없이 병적으로 패는데 어떻게 살아. 같이 병자가 될 뿐이야.
이혼하고 자유롭게 살아.언니가 있을면 그 사람은 더 악화될 것 같아. 그 사람이나 언니,둘 다를 위해 이혼을 하는게 좋겠어."
가족들의 도움으로 언니는 이혼했다.
몇 년간 열심히 일하면서 상처도 점차 회복했고 자신감도 생겼다. 일년전 오십이 다 된 나이에 친척의 중매로 좋은 사람과 결혼해 행복하게 살고 있다.
환상적인 사랑의 꿈을 못버려서 하는 이혼, 변화를 위한 노력도 없이 쉽게 하는 이혼과의 다르게 더 이상 피폐화되지 않기 위해 해야만 하는 이혼이 있다.상습적인 가정내 구타, 심한 의처증,알콜 중독같은 고질적인 문제가 이미 자리잡혔을 경우이다. 초기에 강력한 대처와 치료로 해결하지 못하고 고질화되었으면 변화를 만들기는 쉽지 않다.오히려 당하는 사람까지 병들게 된다.
어떤 경우에 이혼이 옳다 할 수 있을까?
당사자가 더 억압이 되느냐 아니면 더 자주적이 되느냐에 따라 이혼의 타당성은 주어져야 할 것 같다.또한 관계된 가족들 모두가 특히 아이들이 더 질곡이 되느냐 아니면 발전이 되느냐에 대해서도 따져봐야 한다.
자주와 발전의 관점에서 이혼을 했다면 당당할 수 있고 밝게 살 수 있다.
당사자가 자주성이 높아 그런 조건에서도 병들지 않고 오히려 치료와 변화를 모색한다면 그 이상 훌륭한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변화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는데도 억압이 계속될 때, 변화 의지조차 가질 수 없는 짐승같은 삶을 살 때는 이혼이 자주적인 삶의 출발이 된다.
이혼을 사랑의 전제인 자주성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이혼이 사람답게 살기 위한 일이 된다.
동물같은 삶에 인간만이 누리는 '사랑'이라는 말을 쓸 수는 없다.
사랑엔 최저선이 있는 것이다.
인간 선언의 선, 최저선을 뚫어내야만 사랑을 쟁취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답게 살기 위한 방도로서, 올바른 사랑을 실헌하기 위해 행해지는 이혼에 대해서는 우리는 편견을 버려야 하고 사회적으로는 뒷받침되어야 한다.
사랑의 문턱에서
남녀의 만남에는 세가지 형태가 있다.
자유로운 만남 연애 결혼이다.
지속적인 관계로 이루어지는 연애와 결혼을 사랑이라 한다면 서로를 알고 배우는 자유로운 만남은 사랑을 준비하는 사랑의 문턱이라 할 수 있다.
재작년 ㅇㅇ대학교에서 살인 사건이 있었다.
남학생이 3년째 사귀어 오던 여학생을 때려서 숨지게 한 사건이었다.
한 밤중 술을 먹고 그것도 혼자가 아니라 친구 두명과 함께 학교 잔디밭에서 저질러진 사건이다.
숨진 그 여학생은 그 학교에서 최고라 할 정도로 예뻤다고 한다. 둘은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사귀기 시작해 학내에선 캠퍼스 커플로 공인되다시피 한 관계였다고 한다.
갈등은 2년 중반부터 시작되었는데 여학생이 다른 선배 남성을 좋아하기 시작했단다 아마 그때부터 여학생은 사귀던 남학생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던 것 같은데 3년이 되면서 여학생은 자주 맞았던 것 같다.
사건이 나기 얼마 전에는 몹시 맞았는지 다리도 절고 팔에 멍도 들었단다.
사건 당일 남학생은 그녀의 자취방 앞에서 늦도록 기다렸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그녀를 끌고 학교 잔디밭으로 와서 친구와 함께 패기 시작했다.
3~4시간을 맞은 그녀의 시신은 부검 결과 참혹했단다.
안구가 튀어나오고 폐에는 피가 차 폐울혈이 되었고 아랫배는 너무나 짓이겨져 가지색의 피명이 들어있었단다.
지역 신문에도 나고 학내 대자보로도 알려진 탓인지 두 번째 성교육에 참여한 학생들의 분위기는 침울했다.
나는 그런 분위기에 밝고 신나는 내용의 성교육을 할 수가 없어서 먼저 그 사건에 대한 얘기를 함께 나누었다.
이미 그 여학생은 죽어 화장한 뒤이고 남학생은 구속되어 있는 마당에 확실한 정보도 없이 그 사건을 분석 정리할 수는 없었다.
다만 그 사건을 통해 우리가 교훈 삼아야 할 문제들을 짚어 보았다.
그 남학생은 왜 죽도록 팼을까?친구들은 무엇 때문에 합세했을까?혹시 '너는 내 것' '너는 ㅇㅇ것'의 명분은 아니었을까?
남성들의 문화에서 속칭 '도장 찍기'라는게 있다.
예쁜 여성을 파트너로 갖는다는 것은 남성 세계에서 능력 있는 것으로 통한다. 미모의 여성과 가까워지면 남성은 그 관계를 확실히 하고 싶어지고 공인받기를 원한다. 선배들의 충고와 경험자들의 사례에 위하면 가장 확실한 방법은 도장을 팍 찍는 것이다.여성이 원했든 원치 않았든 도장을 찍어놓고는 '이제 너는 내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여성이 다른 남성을 좋아한다면 남성의 자존심에 금이 간다. 참기가 어렵다.그 여성은'화냥년' '배신자' '죽일 년'이 된다.주변 친구들이 위로하며 성숙한 제안으로 도와주지 않고 '그걸 그냥 놔 둬?손 좀 봐야지' 한다면 그 남성은 자극이 되어 참을 수 없게 된다. 몇 번 손을 봐도 말을 안 들을 때는 포기한는 사람도 있겠지만 집요한 성격의 사람은 극단적인 형태로 나갈 수도 있다.
우리가 교훈으로 따져봐야 할 것은 살인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내 그 출발점, 그 씨앗의 내용이다.
많은 남녀 관계에 녹아져 있는 도장 찍기, 소유물로의 생각들. 따먹었다, 정복했다, 사냥했다는 얘기들.
인격과 변화를 무시하는 만남들.가만히 안둔다,손 본다, 죽여버린다느 얘기들.찍었다와 찍혔다,골랐다와 뽑혔다는 얘기들. 푸는 성, 패는 사랑......
우리 각자 반성할 점은 없을가?
왜 그 여학생은 심하게 당해오면서도 주위에 말하지 않고 죽음을 맞았을까? 혹시 순결의 문제는 아니었을까?
다리를 절 정도로 맞아오면서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면 무서워서라도 가족에게 알리게 된다.만약 어머니에게 말을 한다고 하자.
"엄마,ㅇㅇ가 나를 때려요.어떻게 좀 해주세요."
"아니, 네가 왜 맞냐? 맞은 이유가 뭐야?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거야?"
"저...사실은 그런 관계였는데 내가 변했다고..."
대부분의 엄마들은 그 말에 퍼쩍 뛴다.욕도 한다.팰 수도 있다.
"미친년.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엉뚱한 짓이나 하고 돌아다녀....잘한다. 꼴 좋다."
그러나 한 참을 흥분하다가도 단호히 말할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맞고 살 순 없다. 미친놈 지가 뭔데 애를 때려?싫다면 그만이지 때리긴 왜 때려.많이 맞았냐?좀 자세히 말해봐."
그래서 긴 의논과 고민 끝에 휴학을 시키든지 남자를 만나 조치를 할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안 일어났을까? 그 여학생에게는 !
"사실 그런 관계였는데..."를 말 할 용기가 없지 않았을까?
여성에게 둘러쳐진 순결관은 가혹하기까지 하다.맴도는 말을 하지도 못하고 심각해져오는 폭력을 고스란히 받아 안을 정도로. 싫지 않은 남성이 잘 해줄 때 여성은 부담없는 만남을 이어갈 수 있다.
대학교 1학년.남성을 얼마나 알겠는가?
믿었던 남성에게 의외로 당할 수도 있었겠고 원해서 성관계를 했을 수도 있다.일년 반을 사귀다 보니 상대의 단점도 보였겠고 반대로 다른 남성의 매력도 더 크게 보였을 수 있다. 새로운 관계에 쏠리면서 사귀던 남성에게 고백을 했든지 들켰든지 아무튼 사귀던 남성이 알게 된다. 그 남성이 괴롭히면 괴롭힐수록 새로운 남성에게 풀고 위로받고 그래서 더 맞고 악순환이 되어간다.
용기가 필요했다. 있었던 사실을 담담히 인정하고 앞으로의 삶을 성숙하게 살고자 결의하는 용기.
당시에는 최선을 다한 것 같았어도 나중에 보면 허점투성이임을 깨닫는 것 자체가 성숙 하닌가?
자신도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깨달아놓고 좌충우돌하는 젊은이들을 한심하게 보는 어른들이야말로 우습지 않은가?
물론 순간순간 최선을 다 해야하지만 그 최선의 질과 내용도 나이에 따라 다른 것이다. 순결의 문제 또한 그런 것이다.
결혼할 관계로 약속도 하고 스스로도 확신한 상태에서 성관계를 맺었어도 이후 많은 변화들 속에서 헤어질 수밖에 없는 경우도 천지로 있다.
그런 사람은 다 순결하지 않은 것일까?
여성을 성적인 대상과 노리개로 취급하는 성문화 속에서 순결의 문제는 더욱 신중히 거론되어야 한다.
순결에 대해서 자유로운 남성들은 그 자유를 누구와 함께 누렸는가?
같이 순결을 지키든지 아니면 순결에 대해 입을 다물어야 하지 않는가?
우리들은 함께 결론을 내렸다.
진정 자유로운 만남이 되기 위해서는 출발점이 중요하다고.
그 출발점은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자유로운 사람 그 자체라고.
그리고 많은 변화가 예상된는 만큼 상처를 줄이고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 자유로운 만남의 시기엔 가능한 성관계는 맺지 말자고.
확신하는 사랑의 단계까지 참아내자고.
사랑의 문턱에서 정말 자유로운 만남을 통해 멋진 사랑을 준비하자고.
나는 학생들에게 말했다.
죽은 사람은 할 수 없고 구속되어 있는 남학생에게 편지를 보내자고.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를 정리할 수 있도록,올바른 변화할 수 있도록 애정어린 편지를 보내자고.
연애를 준비하면서
자유로운 만남의 시기.
연애와 결혼,사랑을 준비하면서 어떤 기준들을 가져야 할까?
연애와 결혼 생활에 접어든 사람들은 이미 맺어진 관계라는 생각에 변화를 만들려는 노력에 보다 충실할수 있다.그러난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이 움트는 만남의 시기에는 변화에 대한 노력보다는 매력과 조건을 찾는데 더욱 집중하는 것 같다.
탤런트와 가수,농구 선수를 앞에 놓고 그들은 자신을 알지도 못하고 좋아하지도 않는데 자신은 누군 싫고 누가 좋다고도 한다. 외모와 매너와 분위기. 학벌과 인기도를 따지며 이상형을 조립한다.좋아하는 것은 자유니까 뭐라 할 수는 없지만 현실에서 사랑할 관계를 만드는 데에는 조금 따져봐야 할 것이 있다.
사랑의 본질은 찾는게 아니라 만드는 것이라고 했을 때 보다 풍부하고 안정적인 사랑을 위한 조건은 분명해진다. 지속적인 관계가 유지되려면 둘이 좋을 때보다도 실망스럽고 갈등이 있을 때를 잘 넘겨야 한다.
둘이 바닷가를 뛰어다니며 넘어지고 일으켜줄 때는 무슨 갈등이 있겠는가?
오른발로 뛰자, 왼발로 뛰자의 갈등은 있을지 몰라도 헤어질만큼의 갈등은 없을 것 이다. 그러나 미처 몰랐던 단점이 보이고 고질적인 버릇이 나타나며 실수와 잘못을 저질렀을 땐 갈등이 생긴다.
한 번의 지적으로 고칠 수도 있지만 계속 반복되는 경우도 많다.
어떻게 할건가?헤어져야 하나, 계속 만나야 하나? 판단의 근거는 무엇이어야 하나?
판단의 근거는 진실과 성실 이어야 한다.
단점과 잘못을 인정할 줄 아는 것이 진실이다.
인정한 것을 잘 안되더라도 고치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성실이다.
자신을 인정하고 변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다른 점이 부족하더라도 만들어가는 사랑의 전망은 밝을 수 있다.
상대가 진실과 성실을 갖춘 사람이가, 그리고 자신을 진실과 성실을 갖춘 사람인가를 곰곰 따져보고 O.K 라는 판단이 설 때 현재 단점이 맣은 사람이라도 그 관계는 지속될 수 있다.
자유롭고 다양한 만남들을 통해 진실과 성실의 중요성을 확인해가며 진실과 성실을 가려낼 수 있는 안목을 키우고, 진실하고 성실한 관계를 직접 만들어보면서 사랑을 준비해야 한다.
선배들의 교훈
조금 추상적이라 할 수 있는 진실과 성실에 대해서 경험이 많은 선배들은 구체적으로 얘기한다, 이런 것은 진실과 성실을 어렵게 만든다고.남성들의 경우 세가지를 검토해 보라 한다.
첫째,고질적인 버릇들이다.
술만 먹으면 개판이 되는 경우.
의지가 약해 노름이나 오락에 너무 빠지는 경우
툭하면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 등이다.
둘째,돈과 땀에 대한 개념이 흐린 경우.
돈도 벌지 않으면서 돈을 우습게 알고 돈을 헤프게 쓰는 경우이다.
땀방울의 대가로서 돈을 귀중히 알아야 생활의 성실성이 보장된다.
아무리 집안의 부자라도 본인이 성실한 생활로 돈을 벌지 않으면 집안은 엉망이 된다.
셋째, 지나치게 왜곡된 여성관, 인간관이다.
우리 옆집에 사는 아저씨는 부인을 부를 때마다 구구단이(2*9)이 섞은 욕을 한다.초등학교 다니는 아들도 똑같이 엄마를 부르며 그 욕을 한다.
우리 아들이 그 집에 생일 초대를 받고 다녀와서 놀래 자빠졌다.
여성을 너무 무시하고 학대해온 집, 더럽다고 증오하는 집,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오락용 두더지 판으로 대하는 집 등 여러 형태로 나타나는 이런 경우는 가정환경에서 비롯되기 쉽다.
환경이 그랬다고 다 그렇다는 건 아니다.
그러난 뼈저린 자각과 결의 없이는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진실,성실과는 무관한 오히려 방해를 하는 요소들에 대해 잘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여성에게도 살펴볼 요소가 있다.
여성의 경우 경제적 자립이나 사회적 자립이 어려워 의존적인 삶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첫째,지나친 이기주의와 소심함이다.
자기 것밖에 모르로 그것이 침해당했을 경우 팔팔 뛰고 분을 못 풀어 뒤로 넘어지기도 한다. 남들에 대해 넉넉히 봐주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으며 꼬집어 뜯는 얘기만 할 때, 대화 자체가 안되며 진실을 풀어놓을 수도 없다.알뜰함과 이기주의는 다르다.
둘째,허영과 사치다.
화려함과 허영은 다르다. 많은 남성들이 그것을 구별하지 못하고 고생을 한다. 허영의 병은 깊다, 굶어도 꾸며야 하고 빚을 내서라도 누려야 한다.
허영과 사치로 집안을 들어먹은 여성도 많다. 성실하기가 어렵다.
셋째, 자아 도취와 모사꾼이다.
우리의 성문화가 만든 것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미모에 대해 자아 도취되어 많은 남성 편력과 즐기는 생활 방식이 자리잡힌 경우이다.
또한 머리고 잘 돌아가고 수단도 좋아 일을 꾸미고 벌이는 경우이다. 남성의 심리도 잘 알아 얼르고 뺨친다.
장영자처럼 큰 일을 저지를 위인이다. 주로 돈 중심의 가치관에 젖어 있다.
생활 방식으로 고질화된 여성의 이런 요소들은 변화하기가 힘들다.
이런 것을 가려 볼 수 있는 남성의 안목이 필요하다.
진실과 성실과는 거리가 먼 남녀의 이런 요소들이 만남 속에서 발견될 때 우선은 뜨거운 남녀의 에너지로 변화를 시도해 봐야 한다, 그래서 변화된 사람도 있으니까.
그러나 그 시도가 힘겹고 왜곡될 대는 사랑의 관계로 접어들기전에 결단을 내리는게 좋다, 헤어질 경우 그 사람의 문제에 대해 분명히 얘기해 주는 것이 좋겠다. 또 한 번 변화의 계기가 될 수도 있으니까.
이런 치명적인 것이 아닌 단점과 잘못들은 누구든 다 가지고 있는 것이고 변화 가능한 것이기에 진실과 성실의 믿음만 있다면 풍부한 사랑을 만들어 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