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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애>사랑의 방향성

작성자작약|작성시간12.06.07|조회수146 목록 댓글 2

3)사랑의 방향성

 

만드는 사랑에는 방향이 있다.

이왕이면 잘 만드는 방향, 발전적인 방향이어야 한다.

공감대가 넓어지고 일치감이 높아지는 속에 사람의 격이 올라가는 방향이어야 한다.

잘 살아보자는 공감대가 넓어져 상식과 불법 등 물불을 안가리고 돈을 버는데에 일치감이 높은 사랑도 있을 수 있다. 혼자서 할 때보다 남녀가 힘을 합하면 더 잘 할 수 있다. 둘 사이에 갈등도 없이 손발이 척척 잘 맞는다고 치자. 우린 그런 사랑을 참사랑, 발전적인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사람의 격에 해당하는 내용, 가치관이 들어있어야 참사랑이 될 수 있다.

발전적인 사랑이란 사람의 격이 높아지는 사랑을 말한다. 남성 여성의 인격이 높아지고 그 높아지는 내용이 공감대를 이뤼며 그 공감대 속에 일치감을 느끼는 사랑이야말로 영원한 사랑이라 할 수 잇다.

영원하 사랑은 가능하다.

시작은 찌그러진 온쪽이로 출발하지만 서로의 노력과 격려고 점점 동그레지는 온쪽이가 되어 서로가 겹쳐도 들쑥날쑥한 것이 거의 없는 상태로 되는 것.

그것이 우리가 바라는 영원한 사랑의 방향성이다.

 

영원한 사랑은 인정받고 인정하는 단계에서 출발한다.

인정받고 인정하는 단계에서 출발해 존중받고 존중하는 단계를 거쳐 존경받고 존경하는 단계로 나아가는 것. 이것이 발전적인 사랑의 방향성이다.

인정에서 존중으로, 존중에서 존경으로 향하면서 사람의 격은 점점 높아진다.

 

인정받고 인정하기

 

나도 제법 중매를 잘 하는 편이다.

벌써 몇 쌍을 중매해 중매장이한테 해주는 옷도 몇 벌 받아입엇다.

그런데 나보다 더 잘 하는 중매장이가 있었다.

일찍부터 부모를 여의고 혼자서 꾿꾿하게 살아가는 노총각이 있었다.

직장도 비교적 안정적이고 나이도 들어 장가를 가려고 좋은 처녀를 소개해 달라 했다. 성실하고 진지한 사람이라 나도 몇 차례 애를 써 보았다.

그런데 결정적인 약점이, 보수적인 지방의 몇 대 종손이라 모셔야 할 제사가 많은 것이었다. 요즈음 여성들 치고 제사 많은 것을 달가와 할 사람은 거의 없다, 그래서 몇 번의 나의 노력도 수포로 돌아가버리고 말았다.나는 그 총각에서 선을 보면 서로 정이 붙을 때까지는 그 사실을 숨기라고 했다.조금 머리를 쓰자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 순진한 총각은 곧이곧대로 만나자마자 그 사실부터 말한다. 이래저래 답답한 나는 어느새 손을 놓아보렸다.

까맣게 잊고 있던 어느날 그 총각은 어여쁜 색시를 데리고 나타나 곧 결혼을 할 거라 했다. 깜짝 놀란 나는 궁금증에 빠졌다. 저렇게 인상이 좋고 착하게 생긴 여성과 결혼을 하기까지 도대체 어떻게 진행된 것일까?약점을 말한건지 안 한건지가 제일 궁금했다. 궁금한 걸 참으면 병이 되는 나는 다그쳐 물었다.색시가 수줍게 웃으며 말해 주었다.

색시 옆방에 살던 아저씨가 중매 아닌 중매를 선 것이었는데 그 아저씨는 딱히 선보라는 얘기도 없이 그냥 일년 동안 양쪽에다 중계 방송을 해줬단다.

집에 와서는 총각 얘기를 하고 직장에 가면 처녀 얘기를 했다.양쪽의 생활상을 비롯해 많은 것을 얘기하면서도 이 아저씨는 다른 중매장이와는 다르게 좋은 점만 얘기하지 않고 나쁜 점도 말해준 것이다.

총각에 대해선 의리가 좋아 공짜로 얻은 담배가 있으면 나눠 핀다는 친창도 해주면서 한편 더럽게 제사가 많다는 얘기도 해주었다. 여성에 대해선 구수하게 잘 한다는 얘기와 함게 조금 깔끔하지 않다는 얘기도 해주고 아무튼 서로에 대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일년동한 생중계를 해준 것이다.그러다보니 어느새 서로 안봐도 본 것 같은 정도가 되더란다.

그러던중 아저씨가 처녀와 총각이니 한 번 만나나 보라고 하기에 꼭 만나야 할 것도 없지만 꼭 안 만나야 할 것도 없어서 만나보게 되었다다.

처음 만남부터 대화 내용이 달랐다.

"제사가 많다면서요.?" "김치 부침을 잘한다면서요?"

이미 중계 방송을 통해 들은 이야기가 많아 새롭고 떨리고 할 것도 없더란다.몇 번을 만나다 결혼 말이 나왔다. 그 사람과 꼭 결혼할 이유는 없지만 꼭 안해야 될 이유도 없더란다.그래서 결혼을 하게 되었단다.

 

끝내주는 중매장이인 것이다.

모든 것을 있는대로 인정하게 만드는 중매장이가 몇이나 되겠는가?

돈도 없고 빽도 없는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면서 터득하는 삶의 자세와 지혜라 할 수 있다.거창하게 부풀릴 것도 없고 뻔한데 감출 것도 없는 것이다.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많은 남녀가 싸우고 헤어지는 것은 바로 있는 그대로의 인정이 안되는데서 비롯되는데 자신이 인정하고 싶은 것만 인정하고 자신이 인정받고 싶은 것만 받으려 한다.

 

남편과 내가 자주 다투는 문제도 그렇다.

남편은 술을 아주 좋아하는데 가끔씩 술을 많이 먹고 집에 늦게 들어온다.

다툼이 시작된다.

나는 귀가 시간은 상관하지 않는다.새벽에 들어와도 좋고 밤을 새도 좋다.

나는 초점은 술에 취하지 말라느 거다. 아무리 늦더라도 술취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나에게 달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남편은 초점이 다르다.

술먹고 술취하고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단다. 중요한 것은 누구를 만나서 무엇을 하다 왔느냐이다. 술을 먹게 된 사연과 늦게 된 그 이유가 중용한 것으로 생각해 나에게 그것을 설명하려한다. 나는 이유가 어떠하든 그게 중요한게 아니라 왜 취하도록 마시냐는 생각에서 남편의 얘기를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팽팽한 평행선이다.

서로 인정하는 내용과 인정받고 싶은 내용이 틀린 것이다.

여기서 보다 발전적인 사랑을 시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서로가 인정받고자 하는 내용을 일단 인정해야 한다.

술먹게 된 사연도 일단 접수하고 술취한 것도 인정해댜 그 다음 얘기를 할 수 있다. 이런 인정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러나 보다 발전적인 사랑을 만들려면 이런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야 한다.

그것이 영원한 사랑을 만드는 제일 빠른 길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아메바같이 단세포적인 존재가 아니라 고차원적인 존재로 복잡다단한 많은 것을 담고 있다. 장점과 단점, 생각과 의지, 감정과 감각, 자신감과 열등감,자존과 자기 비하, 용기와 오기 등 많은 것이 함께 어우러져 담겨 있는데 그 중에서 좋은 점과 긍정적인 면을 먼저 부각시켜야 다른 단점과 부정적인 면을 고쳐갈 힘이 생긴다. 단점과 잘못을 먼저 부각시킬 때는 좋은 점이 힘을 잃어,속으로는 인정이 되더라도 반발하고 방어하게 된다.

긍정적인 것 부정적인 것, 복잡다단한 것을 흘리지 않고 일단 다 담아내는 것, 그것이 바로 있는 그대로의 인정이다.그런 인정이 먼저 되어야 그 중에 좋은 점과 나쁜 점을 가려내고 좋은 점을 부각시켜 발전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팽팽한 평행선은 서로가 만나지 않듯이 같이 지향해야 할 일치점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술먹는 사연을 듣지 않으면 남편의 생각과 생활을 알 수 없을 뿐더러 변화를 위한 에너지도 놓치게 되어 일치점을 만들 수 없다.

또한 술취한 것을 인정하지 않고서 어떻게 허심탄회한 대화를 바랄 수 있겠는가?

 

일단 서로의 모든 것을 인정하자.

있는 그대로의 인정은 서로를 편안하고 자유롭게 해준다. 눈치볼게 없기 때문이다.

사람의 격을 높이는 존중과 존경의 내용은 이런 편안하고 자유로운 인정의 조건 속에서 꽃필 수 있다.

 

존중받고 존중하기

 

몇 년전 성교육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다.

교육 요청이 많이 들어오면 내가 점점 유명인사가 되는 듯이 뿌듯해진다.

그 포만감을 혼자 지니기 어려워 퇴근해올 남편을 무척이나 기다린다.

남편이 돌아와 앉기가 무섭게 나는 으시대며 말한다.

"여보 있지.나 오늘 ㅇㅇ서 교육 또 해달라고 한다? 아휴 바쁜데 자꾸 해달라고 야단이야.나 참."

순전히 자랑용이다.남편이 반색을 하며 다시 한 번 나를 우러러 봐주기를 은근히 바라건만 남편은 찬물을 끼얹는다.

"강사가 되게 없나보군,당신한테 해 달라는 것 보니까."

어느 날인가 교육 후에 학생들이 줄을 서서 사인을 요청한 적이 있었다.

집에 돌아온 나는 처음 해본 사인에 흥분되어 남편에게 자랑을 했다.

남편은 이번에도 나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야, 그 애들이 우리집에 와서 당신이 살림하고 있는 꼴을 봤으면 사인해 달라는 말이 잘도 나왔겠다."

웃으면서 하는 말이지만 말 속에 뼈가 있었다.

 

나는 남편에게 존중받고 싶었다.

점점 잘 나가고 있는 여자임을 내세워 존중받고 싶었다.

나의 일과 능력을 존중한다면 바쁜 나를 도와주고 받쳐주고 할 텐데. 존중은 커녕 인정도 안해준다.

이놈의 존중은 왜 이리 힘든 것인지?

결혼 서약에서 평생을 존중하기로 해놓고도 왜 남편은 나를 존중하지 않는건지? 남편에게 존중받으려고 이래저래 애도 많이 써봤으나 쉽지 않았다.

 

거기엔 이유가 있었다.

사랑하는 남녀간의 존중은 사회에서 받는 존중과는 달랐다.

사회에서 사람을 돈과 학벌, 빽, 이름이 난 것 등으로 존중한다.

모두에게 인사 잘하는 백화점에 가도 사람에 따라 점원의 태도가 다르다.

신용 카드도 등급에 따라 서비스가 다르다.

못 살아도 뭐 대학을 나왔다면 사람을 다시 쳐다본다.

또 누구누구와 친척이라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시 묻는다.

그러나 남녀 사이의 존중은 그런 식으로 되지 않는다.

물론 어떤 남성은 처가집이 잘 살고 빽이 있으면 마누라를 함부로 대하진 않는다. 그러나 진심으로 존중하는 것은 아니다.

남녀간의 존중은 돈이나 학벌, 사회적 권위난 명예로 되는게 아니라 단점보다 장점이 많을 때 이루어진다. 자신의 단점을 극복하여 장점으로 만들 때 존중은 찾아온다.

 

남편은 내가 아무리 유명해지더라도 코웃음이 나올 만큼 나에게 질린 것이 있엇다. 그것은 살림을 개판으로 하는 것이엇는데 특히 빨래가 밀리는 것을 아주 싫어했다. 빨래가 밀리다보면 어느새 갈아신을 양말이 없게 되는데 그 때는 한바탕 난리가 난다. 단순히 양말만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간 여러 가지 누적되어 오던 것이 같이 싸잡혀 문제가 되는 것이다.

 

밤샘하고 새벽에 들어와 자다가 늦어 아침밥을 못챙긴 것, 아이가 엄마 기다리다 울다 잠든 것, 설거지 밀린 것, 제 때 세금처리 안한 것 등 문제가 수없이 나열된다. 이럴 때 남편은 집을 집구석이라 한다.

어느 날인가 또 한바탕 싸움이 벌어졌다. 나도 바락바락 대들었다.

 

활동을 많이 해 알만한 사람이 어쩌면 그렇게 이해를 못하느냐?나같이 밤낮없이 활동하는 사람이 이렇게라도 유지하며 살기가 쉬운줄 아느냐?

빨래가 밀려도 빨긴 빨았으니까 지금가지 옷을 입은게 아니냐?

당신이 언제 한 번이라도 빨아봤냐? 밀려도 내가 빨았지.

나 정도 하는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고 그래!

기고만장 소리치는 나에게 남편은 성질을 눌러눌러 한마디 한마디 농축시킨 경고를 내렸다.

"당신! 내 말 잘 들어. 분명히 말하는데 앞으로 활동을 하려거든 집안일 완벽하게 히 놓고서 나가 해.하나라도 빵구나면 알아서 해. 알았지?"

 

남편은 코를 골며 자고 있는데 나는 잠이 안왔다.

축축하게 젖은 벼갯잇에 계속해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휘영청 달빛은 흘러들어오고 담밑의 개천에선 도랑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조용히 일어나 책상에 가서 앉았다. 날이 밝아올 때까지 생각하고 생각해 몇 가지를 정리햇다. 나를 돌아다 보았다.

변명과 합리화가 많았다.

사람이란 아무리 바쁘더라도 사이사이 틈을 비집고 일을 하다보면 어느새 단련이 되어 엄청난 일도 해치우는 능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생활의 기본인 밥과 빨래를 바쁘다고 미룰 일은 아닌 것이다.

정말 할 수 없을 정도로 바쁜 것일까?

 

그렇지 않다. 게으른 것이다. 거기다 이상한 여성해방 논리까지 있어 게으름을 더욱 가속화시켰다.

나의 단점과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극복해 보자.

밥과 빨래만이라도 제대로 챙기기로 쓰로 약속했다.

다음날 아침 성으껏 준비한 아침밥상 앞에서 남편은 괜히 미안해 했고 나는 담담히 나를 격려했다.

아마 그 즈음부터라고 생각된다. 부부 싸움이 줄어든 것이...

빨래는 아직도 밀리고 있지만 남편은 불만이 없는 것 같다.

많아진 교육 때문데 평균 일주일에 삼일 이상을 집밖에서 지내는데 남편은 바쁜 직장 생활 속에서도 나를 대신하여 아이 도시락을 싸주고 있다.

인상을 쓰며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기쁘게 하고 있다.

나와 나의 일을 존중해 주기 때문이리라.

지금 이렇게 남편의 존중을 받기가지 내가 변환 것은 나의 단점을 인정하고 고치려고 노력한 것뿐이다.

여전히 살림은 엉망이건만 남편은 나를 존중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단 하나. 단점을 극복하고자 노력하려는 내 마음을 알게 된건. 그것으로 존중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존중은 단점을 극복하여 장점을 많이 많이 만들어 낼 때 찾아온다.

최선을 다 할 때 통하는게 사랑이다.

 

존경받고 존경하기

 

연애 시절, 한참 좋을 때의 남성은 여성의 발톱에 낀 때조차 귀엽다고 한다. 많은 여성들이 바라는 영원한 사랑이란 바로 그 연애시절처럼 관심과 열정이 변함없이 지속되는 관계를 말할게다.

뜨거울 때의 남성은 여성을 '오 나의 여왕'으로 대한다.

푹 빠졌을 때의 여성은 남성을 '오 나의 왕자님'으로 대한다.

왕과 여왕이 되는지 왕자와 공주가 되든지 정말 변치않는 그런 관계가 될 수는 없을까?

어떻게 하면 그런 관계가 될 수 있을까?

여왕처럼 살고 싶다는 것은 존경받으며 살고 싶다는 것이고 왕자같은 남성과 살고 싶다는 것은 실망과 눈물 없이 존경하며 살고 싶다는 뜻이다.

여왕과 왕자는 원하고 바란다고 되는게 아니다.

 

여왕은 여왕다워야 한다.

먼저 여왕다운 품격이 갖춰져 여왕 대접을 받을 수 있다.

왕자도 왕자다운 품격이라야 왕자 대접을 해 줄 수 있다.

많은 여성들이 여왕같은 대접은 원하나 여왕다운 품격을 갖추는데는 소홀하다. 많은 남성들도 왕자같이 대접받기를 원하지만 왕자다운 품격인지는 고민하지 않는다.모두 존경을 받으려고만 하지 존경받을

조건을 갖추려고는 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영원한 사랑이 힘든 것이다.

자신은 존경받을 품격을 갖추고 상대는 존경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간다면 영원한 사랑은 가능하다.

존경받을 품격은 어떻게 해야 갖춰지나?

존경은 인정이나 존중과는 다른 개념이다.

김치, 깍두기를 맛있게 담그는 여성에게 존경한다고 하지는 않는다.

달리기나 농구를 잘하는 남성이라고 함부로 존경을 표하지도 않는다.

인정해주고 존중할 수는 있지만 인격과 무관한 재능이나 기술에 존경이라는 말을 쓰지는 않는 것이다.

 

존경은 사람만이 갖출 수 있는 것으로 가장 사람다울때, 사람의 격을 높일때 적용한다.상대가 이기주의자일 때는 혈서로 맹세를 했다해도 존경할 수 없다. 사람의 격을 높이는게 아니라 낮추기 때문이다.

 

가장 사람다운 것, 사람의 격을 높이는 내용은 바로 사람과 사람이 만들어내는 관계인 공동주의이다.

우리가 위인전을 읽으며 존경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만을 생각하지 않고 가족 이웃 인류를 위해 살았던 사람들이다. 사람의 진가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대목에서 우리는 감동하고 박수를 보내며 따라 배우려 하는 것이다. 그리고 진심으로 존경한다고 한다.

존경을 주고 받는 남녀의 관계도 그래야 한다.

 

이기주의와 공동주의

 

사랑하는 남녀가 존경을 받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기주의 때문이다.

이기주의에는 세가지가 있다.

개인 이기주의,가족 이기주의, 집단 이기주의이다.

개인 이기주의는 자신밖에 모르는 것이다.

남편이 돈을 많이 벌어오면 흥흥거리고 돈을 못벌면 구박한다.

남편이 어려워 허덕일 때 돕고 위로할 생각도 못한다. 오로지 받을 줄 밖에 모른다.아이가 공부도 못하고 말을 안들으면 두드려 패고 난리다.

아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요구와 바람을 위해서다.

 

존경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돈과 지위의 상징인 남성이 인정과 존중은 받아도 존경받을 수 없는 것은 자기 중심, 자기 위주의 사고방식 때문이다.

여성들이 남성을 미워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단순히 작은 일을 도와주지 않아서가 아니다.자신이 밖에서 일하면서 피곤하고 스트레스받는 얘기, 그래서 집에선 쉬어야 한다는 자기의 얘기만 주장한는데 있다. 여성의 입장에 서보려 하지 않고 자신과 현상적으로만 비교해 집에서 놀고있다느니 팔자가 늘어졌다느니 하고 말할 때 여성은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고 네 마음대로 하라는 식이 된다.개인 이기주의인 것이다.

 

가족 이기주의는 요즈음 우리 부부들 사이에 많이 나타나는 것이다.

남편과 자식,부인과 자식박에 모르는 것으로 시부모,처갓집 부모도 몰라라 한다. 돈을 주거난 도움이 될 때는 가족으로 넣었다가 돈이 안될 때는 가족에서 빼버리는 것이다.노인들의 눈물은 여기서 비롯된다.

가족 이기주의는 이웃과 동료도 없다.

이웃은 비교의 대상이고 동료는 경쟁의 대상이다.

남편이 동료들을 마음놓고 집에 데려오기가 쉽지 않다.물론 여성의 부담이 따르는 일이지만 그것을 넘어서서 함께 비비며 살려는 의지가 없는 것이다. 아이들 친구들이 집에 오면 얼마나 귀찮아 하는가?대부분 친구 엄마 눈치보는데 익숙해져 있다.잠자고 있던 아빠도 아이 친구들이 노는 소리에 "나가.밖에 나가서 놀아."하며 소리치기 일쑤다.

자신의 자녀가 너무 떠들어 이웃이 뭐라 하면 금방 어른 싸움이 된다.

자신의 자녀는 남에게 피해를 줘도 괜찮고 다른 아이들은 피해를 주면 난리다.이런 얘기가 부부 사이에 오고 갈 때 서로 존경이 되겠는가?

 

집단 이기주의도 심각하다.

'아들의 여자'에 나오는 어머니(여운계)는 가족 이기주의의 표본이다.

아들이 사랑하는 여자를 사람으로 보지 않고 가문과 지위,돈으로 본다.

돈,학벌,빽이 있는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아파트 평수에 따라 사람을 평가한다.

국민학교 반장, 부반장 엄마들은 그들끼리 친하고 다른 아이를 무시한다.

사무직 여성들은 생산직 여성들을 무시하고 4년제 대학 출신 간호사들은 3년제 전문대학 출신 간호사들을 무시한다.

 

존경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어디 있겠는가?

많은 남녀들이 서로 존경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던 이유는 바로 이런 이기주의의 모습 때문이다.

 

존경을 받으려면 이기주의를 버려야 한다.

공동주의란 거창한게 아니다.그것이 엄청난 노력을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니다.

거리로 뒤쳐나와 외치고 돌아다니고 하는게 아니라 우리가 맺고있는 주위의 관계들 속에서 이루어지는 소박한 것이다.남을 위한다고 자신이 무조건 희생하거나 헌신하는 것도 아니다.자신과 남을 합쳐서 생각하는게 공동주의이다.자신이 남의 입장에 서 봄으로서 남을 이해하고 돕게 되고 자신은 폭이 넓어져 성숙하게 되는 것이다.

공동주의는 사람과의 관계가 넓어지기 때문에 삶의 영역이 풍부하게 되고 사람 관계의 내용이 따뜻하기 때문에 삶의 질이 높아지며 그 결과로 자신은 성숙하고 발전하게 되는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오고가는 남녀의 대화는 서로를 우러러 보게 한다.

존경을 안 할래야 안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나의 경우도 그랬다.

결혼해서 남편은 나에게 기대가 많았다.

여성 혼자서 농민 운동에 뜻을 두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하여 졸업과 함께 객지 생활을 하며 노력하는 나를 자랑스러워도 했다.

그런데 시어머니를 대하는 것을 보더니 실망이 되는 모양이었다.

시어머니는 농촌에서 농사를 짓고 계셨는데 새로 본 며느리에 애정이 있어 가끔씩 쌀을 갖다주시러 오셨다.

삼교대 병원 근무 시간에 맞춰 퇴근 후 어머니와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만나기로 했다. 신혼 새색시라 그래도 세련된 옷을 입는다고 입고 뾰족 구두를 신은 채 나는 터미널에 간다. 넓은 광장 터미널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우리 어머니의 음성이 들려온다.우리 어머니는 음성이 아주 크신데 일찍 도착해 앉아계시다가 나를 발견하시고는 "야, 여기다!"하신다.졸고 있던 사람까지 놀라서 깨어 나를 쳐다본다. 시쳇말로 얼마나 쪽팔리는지.

머리로는 농민운동하지만 아직 피부로는 터득이 안돼 나는 농사짓는 어머니를 자랑스러워하기 보다는 창피해 했다.

어머니를 모시고 집에 와서는 없는 솜씨에 반찬을 만들어 힘겹게 상을 차리고 억지로 얘기도 하며 신경을 쓴다.

다음날 어머니는 가시겠다고 한다. 난 속으로 얼마나 좋은지.신경 쓰이고 불편해 죽겠는데 빨리 가신다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그러나 좋다고 어서 가세요 할 수는 없다.

"왜요?벌써 가시게요? 더 노시다 가시지요."한다

모든 과정을 지켜본 남편은 씁쓸해 한다.

 

농민운동을 하겠다는 사람이 진짜 농민인 시어머니를 일부러 찾아가 농촌 얘기도 듣고 농사일도 배워야 할건데 찾아오는 시어머니도 부담스러워 그렇게 꺼리느냐는 것이다.위선을 떨지 말든지 좀 잘 하든지

하란다.

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마음에서 우러나지 않는 걸 어떻게 하나?

남편과 나 단둘이만 지냈으면 좋겠다.솔직히 말하면 내가 시댁에 가기도 싫었고 시어머니가 오시는 것도 싫었다. 나와 남편 그리고 나에게 도움이 되는 친정 외에는 가족으로 생각하기 싫었다.가족 이기주의라고 할 수 있다.

남편에게 여왕처럼 존경받고 싶었는데 존경받을 수 없었다.

함께 결혼한 부인으로서 인정하고 존중은 해주었는데 존경받지는 못했다.

지금 시어머니는 일년 가까이 반신불수로 않아누워 계신다.

일년 가까이 치료비와 생활비를 대는라 우리집 경제는 쪼들린다.

일년 전 쓰러져 병원에 실려온 어머니께 나는 약속했다.

"어머니 제가 어머니를 살려낼께요.아무리 힘들어도 약속을 지킬께요."

약속을 지키기가 참 힘들다.

교육을 하느라 전국 각지를 쏘다니며 일주일이나 집에 못들어오는 날도 있다. 어쩌다 밖에서 집에 전화를 하면 혼자 있던 아들이 울면서 받는 때도 있다.

"엄마 빨리 와.깜깜해지니까 무서워 죽겠어.아빠도 바쁘대.저녁밥도 안먹었어." 가슴이 쓰리다.

 

밖에서 떠돌다 집에 들어오면 밀린 일이 나를 반겨준다.

아이를 울려가며 밤차로 새벽차로 뛰어다녀서 번 돈을 어머니에게 거의 쏟아넣는다는게 어떤 때는 허무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마음을 다시 바로잡는다.

남편 사업에서 진 빚,단칸방에서 두칸짜리 전세로 옮기며 진 빚도 여전히 남아있지만 나는 우선적으로 어머니를 위해 돈을 쓰기로 했다.

내가 진심으로 어머니를 생각하게 된 데에는 그동안 겪었던 사회 활동에서 느끼고 깨달은게 있기 때문이다.

 

결혼 후 농민 운동 단체에서 일하면서 어떤 농가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하루 일을 마치고 밤늦게까지 아줌마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하는 얘기마다 속 시원한 것은 하나도 없고 답답하고 힘든 얘기뿐이었다.

다 듣고난 후 나는 진지하게 물었다.

"아줌마,아줌마는 무슨 낙으로 삽니까?"

내 물음에 아줌마는 0.1초도 걸리지 않고 대뜸 큰소리로 말했다.

"낙은 무슨 낙?빨리 땅속에 묻히는게 낙이지."

죽는 것을 낙으로 아는 사람이야 없겠지마는 오죽하면 이런 말이 곧바로 튀어나올까?왜 그러냐는 물음에 아줌마는 힘겹게 말했다.

"농사짓는 우리들은 땅 노는 꼴이 못본다. 아무리 몸이 아파도 때를 놓치면 안되기 때문에 죽어라고 일한다. 그런데 뭐 재미본게 하나라도 있어야지.다 망하는데 일이나 안했으면 아프지도 않고 억울하지나 않지.

일은 일대로 하고 남는 건 빚과 병뿐이니 죽어야 옳지.땅 노는 꼴도 못보겠고 수지도 안맞고.죽는게 낙이지 뭐.난 죽어도 아쉬울 거 하나 없어.

유언도 다 마련해 놨어.내 무덤을 콘크리트로 발라라가 유언이야.

새끼들한테 남겨줄 건 없고 고생이나 덜 시켜야지.풀이라도 덜 뽑게 해줘야될 것 아냐. 내 무덤까지 풀 뽑을게 뭐 있어. 콘트리트로 싹 발라버리면 풀도 안날거 아냐."

그 때 내가 귀찮아하고 불편해 하던 우리 시어머니가 생각났다. 시댁에 갈 때마다 한 번도 놀고 계신적이 없었다. 사다드린 새 런닝은 어디 두었는지 매일 다 떨어진 속옷을 입고 머리는 귀신같이 하고서 밭에서 논에서 일만 하고 계셨었다.

"아이구 다리야.다리 아파 죽겠다."가 인사다.

그리고 우리를 볼 때마다 돈걱정을 하셨다.나는 그래서 시댁에 더 가기 싫었었다.

 

아줌마 말을 듣고 보니 그게 바로 우리 시어머니 얘기였다.

땅이 있는 한 놀지도 못하고 병과 빚밖에 남는게 없고 똑같다.

멀리서 어머니께 용서를 빌었었다.

그때부터 나는 우리 시어머니를 시어머니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땅에서 일하며 사는 농민 중에 더 고생이 많은 여성 농민으로 생각한다.

마땅히 정부에서 농민을 위해줘야 하지만 농민 정책은 더욱 나빠지고 있고 건강하고 젊은 지식인인 나라도 뭔가를 해야 한다.내가 둘째 며느리라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건강하고 젊은 지식인으로 생각한다.

 

사회 활동은 나에게 사회적 인식을 주었다.

사람을 대할 때도 사회적인 존재로 보게 되었다.

시부모님,친정 부모님을 노인으로, 남편을 가족을 부양하는 한국의 남성으로, 아이를 차세대로, 나를 지식인으로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되었다.

사물을 보는 눈이 넓어지고 마음도 훈훈해졌으며 사람됨됨이도 나아진 것

같다.

시어머니를 여성 농민으로 생각한 이후 나는 내 힘이 되는대로 시어머니와 시댁을 도우려 했다.지금도 경제적으로는 힘들어도 마음을 다시 잡아 잘 해보려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다.

 

이제 남편은 이런 나의 마음을 읽고 느끼고 있다.

존경한다는 말은 없었어도 그이의 눈빛을 보면 알 수 있다.

괜찮은 여자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존경의 길은 공동주의밖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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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작약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06.07 이글은 구성애님의 자천일지라 느껴지네요....
  • 답댓글 작성자감초 | 작성시간 12.06.07 그러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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