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 설명되는 세계관의 특징
지금까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개념을 중심으로 기에 대한 우리의 기본적인 이해를 살펴 보았다. 그렇다면 이 같은 이해를 바탕으로 기로 설명되는 세계관의 특징을 정리해 보자.
첫째, 기는 미시세계와 거시세계를 일관되게 설명하는 틀이며, 분자적 설명과 시스템적 설명을 함께 담고 있는 유기체계다. 기는 앞에서보았듯이 사물의 차별성을 설명하는 용어인 동시에 사물의 보편성을 설명하는 용어다. 대기나 자연 같은 큰 덩어리도 기라는 용어로 설명하고, 구체적인 아주 작은 사물까지도 기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그리고 독립된 사물 하나하나를 기로 설명하기도 하지만 우주자연의 변화나 사물과 사물 사이의 관계처럼 부분과 전체 및 그 관계 메커니즘까지도 기로 설명한다.
이 경우 보편자와 특수 자체에 대한 구분 없이 똑같이 기라는 한 가지용어만을 사용하여 설명하는 것은 당연히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고민은 옛 선인들도 했을 것이며, 그 때문에 기를 중시했던 화담 서경덕은 기라는 용어를 쓰면서도 다시 보편자를 뜻하는 일기라는 표현을 사용했고, 율곡 이이 같은 성리학자나 하곡 정제두 같은 양명학자도 일반적인 기와 구분되는 근원자로서의 기를 가리켜 원기, 정기등르로 표현했다.
둘째, 기는 물질과 비물질, 구체와 추상을 일관되게 설명하는 개념이다. 앞에서 보았듯이 기는 물질뿐 아니라 정신이나 감정 같은 비물질적인 것들까지도 포괄하는 개념이다. 서구의 시각으로는 이러한 기의 존재 양태를 이해하지 못한다. 서구적 관점에서보면 어떤 하나의 존재가 물질이면서 동시에 비물질일 수는 없으며 따라서 기는 물질과 비물질 둘 중의 하나여야만 한다. 그리고 물질이라면 부피, 무게, 크기가 있어야 하고, 운동을 해야 한다. 이 같은 서구의 물질 개념에 비추어보면 기는 물질이 아니다.
1985년 쓰꾸바대학에서 있었던 모임을 예로 들어보자. 심리학, 종교학, 철학, 생리학 등 다양한 연구자가 참여한 여러 날에 걸친 이 모임의 행사 가운데 일본 전통무술 시범이 있었다. 시범에 참여한 사범과 제자들의 머리에 뇌파 측정기구를 붙인 다음 멀리서 사범이 제자들을 향해 손을 펼쳐 보엿다. 이른바 기를 보낸 것이다. 그러자 제자들이 자지러졌고 사범과 제자 양쪽 모두에게서 알파파가 엄청나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현상을 놓고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해진다. 하나는 무엇인가가 사범에게서 제자들에게 옮겨간 것이 분명하다면 이는 비록 보이지 않지만 물질 개념이 지닌 운동의 특성에 해당한다고 보는 주장이다. 그러나 또다른 견해는 무엇인가를 보내겠다는 생각이 먼저였기 때문에 기는 물질이 아니라 관념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같은 논쟁은 역설적으로 기가 물질과 비물질 모두로 설명할 수 있다는 반증이 된다.
또 다른 예는 중국에서 행해진 실험들이다. 실험 가운데 기공사가 쓰촨성에서 2천 킬로미터 떨어진 베이징의 칭화대학교를 향해 기를 보내는 실험이 있었다. 칭화대학교 실험실에 준비된 두 개의 실험접시에 똑같은 방사성 동위원소를 담아놓고 실험을 했는데, 기공사가 한 접시를 염두에 두고 기를 보내면 그 접시에 담긴 방사성 동위원소가 화학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고, 기를 보내는 작업을 멈추면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이런 종류의 실험은 매우 많다. 두 실험 접시에 같은 양의 대장균을 넣고서 한쪽을 향해서는 '빨리 죽어라'는 생각을 하고, 다른 한쪽을 향해서는 '빨리 자라라'는 생각을 하면서 기를 쬔 뒤2시간 동안 배양한 결과를 보면, 한쪽의 대장균은 엄청나게 증가하고 다른 한쪽은 거의 그대로 있었다는 것이다. 이 경우 또한 기를 물질이나 비물질 양쪽으로 설명이 가능하게 하는 실험이다.
사실 동양에서는 정통적으로 기를 물질과 비물질로 나누지 않았다.
기를 중시한 화담 서경덕은 「귀신사생론」이라는 글에서 귀·신·사·생 모두를 기로 설명했다. " 이글을 잘 기록해 후대에 동방에도 이런 학자가 있었음을 전하라. 이것은 예전 성인들도 다 밝혀내지 못한 것을 내가 밝힌 것이다." 라고 서경덕이 대단한 자부심을 보였던 이글은 기가 구체와 추상, 물질과 비물질을 넘나들면서 양자를 통일적으로 설명하고자 했던 개념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셋째, 기는 그 자체를 구체적으로 느낄 수는 없지만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개념이다. 앞에서 보았듯이 우리는 열기와 냉기, 심지어는 살기나 생기까지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구체적으로 그 존재를 증명하지는 못한다. 존재란 일반적으로 감각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기 자체를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을 수가 없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객관적으로 존재한다고 보면서도 그 존재를 증명하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이 점은 한의학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의학에서는 기가 온몸을 흐르고 있다고 보고, 그 흐름 가운데 중요한 지점을 설정하여 침이나 뜸으로 치료한다. 하지만 그런 혈 자리들을 인체를 해부해 증명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기가 흐르는 통로인 경락을 가리켜 객관적으로 증명이 안 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신체기관이라는 뜻에서 '준 신체'라고도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