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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일> 기의 분류적 성격(대의련법 중에)

작성자작약|작성시간13.02.14|조회수152 목록 댓글 1

 

●기의 분류적 성격

 

기는 정기와 전령과 신령으로 나뉩니다. 이런 것을 거칠게 기라고 통합해서 쓰기도 하는데 구분이 되는 것임을 보이려 한 것입니다.

 

◎ 정기

 

고체처럼 융통성이 없어요 제 길이 아니면 안가요 옆으로 새거나 앞서가는 것도 안 되고 차근차근 지나가요 거북이처럼 생략도 건너뜀도 없어요

요즘 기수련은 거의 이걸로 해요 그래서 이것이 아닌 신령 같은 걸로 하면 큰일 난줄 알기도 해요

대개는 이것을 기라고 합니다. 대개의 자천단체에서 하는 단전과 기운행, 주천화후 같은 것을 말합니다.

 

하단전에 축기해서 형성된 기이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기 관념이 전부 이것을 말합니다. 대단히 빡빡하고 느리며 이 정기가 생긴후 온몸을 돌아다니며 운행하는데 사람마다 속도가 더디고 빠름이 있는데 몸과 심리, 정신적, 그외 다양한 원인으로 신체 각 부위의 여건이 달라서이다.

 

이것이 운행하며 몸, 마음, 정신, 그외 다양한 변화와 합일을 이끌어야 온전히 자천진행에서 다음단계로 넘어가는 것이다. 자천하다보면 몸, 마음, 정신의 변화를 겪는데 이 정기가 제일 느리고 또 혈액이나 수액등 물질의 신체체계 바로 다음으로 물질에 가장 가까운 것이라 이 부분이 더디면서 그 활용성의 비밀이 있는 것이다. 즉 대강 혈액, 정기, 전령, 신령 이런 식으로 신비로워진다. 이렇게 물질에서 멀어져간다.

물질의 혈액과 비물질의 정기, 더 비물질인 전령, 더 더.... 이렇다. 

그리고 자천의 진행도 이런 순서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것은 기를 운행하여 자천하는 사람은 임독개통후 중맥이 열리기 전까지 자천하고 운행한 것이며 이 다음은 이것을 운기할 필요 없고 자연스럽게 내버려두면(사실은 처음부터 의념으로 할 필요 없었지만) 제갈길로 간다. 다른 전신주천이나 여러 운행을 인위적으로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점점 기운행적 자천에서 감성적 체험이나 각성의 진행으로 자천법을 바꾸어서 해야한다. 

 

이것이 온몸을 돌아다닐 때 정기가 가는 부위가 뜨겁거나 시원하거나 꿈틀대거나 저리거나 압박 같은 것을 느끼기도 하다.

이것을 느끼면 상당히 고통스러운 것도 있다. 본드나 꿀 같은 것이 흘러가는 것같아 대단히 강한 힘이 있는데 몸이 뒤틀리거나 통증과 마비까지 일어나기도 한다.이런 것도 느끼면 대단히 몸이 예민 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것에 맘두고 집착할 필요 없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 다른 방법의 자천을 해가야 하며 그전의 법대로만 계속하려고 한다면 순탄치 못할 수 있다. 자천과정의 진행과 그에 맞는 법의 변화를 함께 가져가야 한다.

 

☞여러곳에서 축기를 다양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만 여기서는 우리 신체활동이 에너지를 소모하면서 일상생활을 하는데 물론 그중에 성관계가 가장 크다고 옛부터 해왔지만 이것만 아니라 우리몸은 어떤 활동이든 소모가 일어나고 있다고 보고 이것을 꽃봉우리가 만개하는 것을 거꾸로 돌려 활짝핀 꽃이 꽃봉우리로 돌아가듯이 수렴하는 것을 하는 것입니다. 에너지가 소모되는 것을 완전히 막을수는 없지만 조금씩 이렇게 수렴하고 안으로 들이면서 단전부위로 거두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내기로 단전형성하는 방법이고 외기를 들이는 것도 있습니다.

 

◎ 전령

 

이것은 중맥이 열리고 두정으로 정계의 줄을 이었을 때 들어온 구올이 들어와 형성된 것이다.

물론 정기나 전령이나 신령이 원래부터 우리 몸에 있는 것이지만 그 활성도나 능력이 현저히 떨어져서 인식하지 못하다가 이때부터 여러 초월적이면서 사실은 누구나 조금씩은 경험하는 현상들이 이제 새롭게 힘을 얻고 활성화되어 자신의 본래 모습을 갖추어 가는 것이다.

가슴에서 나오고 돌아다니며 마음으로 조절하고 운행시키는  것인데 이것을 하는 사람은 못 보았다. 게다가 이 단계에서 운행시키거나 하는 사람은 정말 극소수이다.

그중에는 이 존재를 영상적으로 시각화하거나 감각적이거나 다른 식으로 경험하는 것을 본적 있는데 어느 수련서나 사람들도 이것을 설명하는 곳이 없어서 이해하는 사람들이 없다.

 

이후 한참을 자천이 진행된 후에 보거나 느끼며, 존재를 자각하게 된다. 대개는 대단을 전후해서 경험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것을 자유자재로 통제하는 것을 어려워 하는데 이것은 마음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의념만 사용해서 살아온 습관이 마음으로 사물을 제어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다. 연습하면 가능 할 것으로 보는데 이것은 형태도 있으면서 신묘하고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영성을 띠어서 스스로 생각과 감정을 가진다. 에너지처럼 무생물적인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사가 있는 개체이다.

자기의 의식외에 또 다른 의식이 내 내부에 있는 것을 극도로 거부하는 사람은 믿지도 않고 이런 것을 인정 못하지만 설명하고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직접 경험하고 체득하라는 것이다.

지혜를 즉, 혜인을 위해 따지고 파악해야 하지만 의심과 닫힌 마음으론 안된다.

 

이 전령이 검이나 새나 원숭이나 사람이나 여러 형상을 띠기도 하는 것인데 그 사람의 심리가 반영된 것이다.

 

또 용이나 얼굴처럼 보이기도 하고 애완동물처럼 스스로 반응하는 묘한 즐거움도 있다.

 

가슴에서 나오고 마음의 발현이니 전이하는 여러 감정과 소통과 교류가 일어나는 현상이 많아지고 상대의 감정 흐름과 오고가는 것도 알게 된다. 내 욕구의 움직임과 형태도 알고 내 마음의 통제와 외부 마음의 존재나 영향도 안다. 그리고 마주를 하여 마군을 하는 것도 한다.

 

이 전령은 감정의 변화와 활동에 지대한 영항을 하게 됩니다. 자천 전에는 이것이 활성화가 적어 별로 느끼지 못하고 살아왔지만 이것이 적극적이고 정상적으로 움직이면 내 감정의 변화에 많은 당혹함과 방황과 처음 겪는 감정으로 놀래서 힘들 수도 있습니다. 느껴지는 강도나 깊이나 다양성이 너무 놀라울 뿐입니다. 이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전령의 작용이고 자천의 결과라고 이해해야 합니다. 상대의 마음전이나 과거에는 느끼지 못한 사물, 동물, 사람에게서 어떤 감응이 느껴지고 수시로 변덕을 하는 감정과 생각만 했을 뿐인데 어떤 사건이 발생하는 것이나 내 생각대로 사람들이 움직이는 것이나 느껴지는 그 질적 찐함이 점점 남다른 세계로 진입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즉, 내 생각의 영향이 주변에 나타나는 것에는 이 전령의 작용이 있습니다. 이것이 마음이고 의지라서 무섭고 조심해야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칼을 품는다면 이 전령이 칼이되어 상대를 해칩니다. 아니면 앞으로 자천하면서 겪게되는 여러현상의 경향을 틀지웁니다. 이부분의 이해가 부족하면 의식으로 하는 생각이나 활동만 알고 자신의 심층의 작용은 모르게 되는 것이다. 자천하면 자신의 내면 깊은 곳의 움직임을 알아야 한다. 안그러면 자천이치를 명확히 알기가 쉽지 않다. 대부분의 자천과 일상의 현상은 이 심층에서 일어나는 근원적 힘의 결과이다. 이것을 외부존재로 알고 두려워 하기도 하는데 이해부족 입니다.

 

◎ 신령

 

이것을 보고 느끼는 것은 불가능하다.

보고 느끼고 확인할 수 있는 형체가 없다.  즉, 무형이다.

다만 이것의 작용으로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해서 이해를 할뿐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투시나  영안이나 이런류의 시각적 현상을 말하고 기타 여러 알거나 모르고 일어나는 정신적 초월능력을 말한다.

 

이것이 초월적인 것으로만 알려지고 있어서 이것을 탐하는 사람이 아주 많다. 하지만 이것은 서로 접촉하고 교류하며 생각을 이어주고 함께하며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다.

 

이 부분은 내가 확실히 언제 부터인지 말하기가 어렵다. 금단이 생긴 이후라고 해야 할 것인데 이것은 금빛은 정신과 관련된 것이고 각성의 신법이 전령과 합일해서 생성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천원계와도 관련된다고 본다. 그래서 신묘함으로 질적 향상된 신령으로 변한다. 그러면 보고 알게 되는 능력이 생기는데 이것도 극소수만이 하고 익숙하게 되는데도 쉽지만은 않다.

 

이건 애라유와 관련된다. 애라로 보고 애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애라의 이용과 이해가 부족한 것은 이런 이치를 몰라서라고 보는데 어쩔 수 없다.

이렇게 나가고 보고 하는 것을 신령 이라고 한다. 애라를 내보내고 들여보내는 것이 익숙해지면 굳이 애라출입을 하지 않고 신령을 내보내고 들이고 하면서 보고 알고 하는 것인데 정신만 나가서보고 아니면 안 나가고 육안을 정신의 눈으로 보는 것이다. 이런 요령이다. 

 

의념을 쓰는 것과 같다. 누구나 생각을 하면서 살지만 생각이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 잘 모르는게 문제인데  신체외부나 내부 어느 것이나 의념을 두고, 정신을  두고 그곳을 보고 느껴가는 것이다.

 

내가 정신을 바깥에 신경쓰며 그곳을 알려고 하는 것이며 이것을 시각화하면서 나가고 들어오는 작용이다. 그리고 이때 대개는 영의 작용을 보고 느끼는 것이다. 사물을 보는 것은 또 다른 연마이다.

정신이 보는 것이니 정신류가 보여야한다.

즉, 영이나 혼류가 보이고 알아지는 것이다. 근데 때론 물질현상이 보이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도 가능한 것이다.

이 신령을 자유로이 사용하는 것은 자천자의 마음이니 연마하고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다. 뭘 보고 어떻게 보는 것도 제각각이다. 

 

신령은 상호 접촉, 교류, 작용을 하는 것인데 대상을 보고 , 알고, 내 의식적 의도로써 대상을 제어하거나 통제나 기타 어떤 것을 하기도 한다.

이 신령의 작용을 깊이 이해하고 행할 수 있으면 별난 사람 취급을 받는다. 빙의 퇴치나, 간단한 결투나, 잡귀제거, 자천점검, 영안류나 등등 모든 능력들의 근간이다. 전령보다는 영향력의 힘은 부족하다. 다만 그만큼 운용의 자유로움이 있다.

 

가만히 있으면서, 즉 마음과 생각을 가라앉히고, 멈추고, 고요히하고 머리에 의식을 서서히 두고 있으면서 외부를 의식해 가거나 내몸을 의식하거나 하면 어떤 움직임이 감지되고 볼려고 하거나 느낄려고 하는 것에 집중하면 알 수 있는것이 있는데 이 신령이란 것이 다른 정기나 전령이나 기타 신묘한 것들을 인식해가는 그 현상이다. 신령을 보는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보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러한 작용을 보면 그것이 신령이다. 즉, 신령은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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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요시가와 | 작성시간 14.06.01 좋은정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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