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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氣,기공,양생술

<김교빈> 일상언어에서 나타나는 기의 특성

작성자작약|작성시간14.06.20|조회수120 목록 댓글 0

 

 

 

기가 무엇인지 물었을 때 선뜻 답변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것은 서구 문물이 들어온 이후 우리의 전통이 대부분 무너지면서 기에 대한 생각 또한 전통적 사고와 단절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사실 옛 사람들과 다름없이 기에 대해 알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아무런 의식 없이 쓰고 있는 언어를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다.

 

언어란 하나하나가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각각의 언어가 지닌 의미에 동의하는 서로의 약속이 있기 때문에 의사소통이 가능해진는 것이다. 실제 우리의 일상 언어를 살펴보면 기와 관련된 말이 매우 많이 남아 있다. 다만 우리 자신이 항상 사용하면서도 그 언어에 담긴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기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용하는 말 가운데서 기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알아보자.

 

 

첫째, 기는 어디든 없는 곳이 없는 존재다.우리가 쓰는 말 가운데 '허공'이라는 단어가 있다. 허공이란 눈앞에 펼쳐진 빈 공간을 가리킨다. 하지만 우리는 이 빈 공간을 공기라고도 부른다. '공기'가 무슨 뜻인가?. '공기'란 비어 있는 것 같지만 기로 가득 차 있다는 뜻이다. 사실 이 세상에 빈 공간이란 없으며, 눈앞에 펼쳐진 공간 또한 빈 공간이 아니다.

 

이런 생각을 잘 드러내는 것이 동양화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여백의 아름다움이다. 하지만 동양화의 여백은 결코 빈 공간이 아니다. 서양식 사고방식에 따르면 동양화처럼 빈 공간이 있다면 완성되지 않은 그림일 뿐이다. 하지만 동양식 사고에서는 이런 여백이 없으면 죽은 그림이 된다. 동양화에서는 여백은 빈 공간이 아니라 기로 꽉찬 공간이다. 바로 이 공간 때문에 그림이 사는 것이며, 그안에 많은 의미를 함축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 모든 사물은 기로 이루어져 있으며 기는 만물의 본질이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모든 존재는 기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그 사물과 사물의 사이 또한 앞에서 보았듯이 기로 가득 차 있다. 기로 이루어진 만물 가운데 가장 큰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우주이며 다른 말로 표현하면 대기이다. '대기'란 기로 이루어진 것 가운데 가장 큰 것이라는 뜻이다. 그 대기 안에는 농도가 옅은 물질도 있고 짙은 물질도 있다.그래서 공기보다 농도가 진한 연기도 있고 액체에 가까운 증기도 있는 것이다.

 

만물이 기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에서 보면 사람 또한 기로 이루어져 있다. 사람의 기 가운데 가장 구체적인 표현은 혈기이다. 혈기는 그 강도가 다를 뿐 태어나서 늙어 죽을 때까지 우리를 지탱하는 힘이기도 하다. 사람의 성장 과정에 나타나는 기의 변화에 대해 전통의학에서는 혈기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간다고 한다. 애들을 키우다 보면 아이들이 집 안에서 뛰는 바람에 아랫집과 다투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뛰지 말라고 주의를 주기도 한다.

 

하지만 전통의학에서 보면 아이들이 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이들은 기가 다리 부분에 몰려 있으며, 그 기를 주체할 수 없기 때문에 짧은 거리도 뛰지 않고는 못 배긴다. 그런 점에서 애들이 뛰는 것은 건강하다는 증거이며, 오히려 뛰지 않고 걸어가는 아이가 이상한 것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기가 점점 위로 올라가게 된다. 그래서 다리에 힘이 빠지고 얼굴에까지 열이 오르며, 늙어서는 팔다리는 못 쓰면서도 기가 눈으로 몰려 눈빛만 반짝거리게 되는 것이다.

 

셋째, 기는 만물의 동질성과 차별성을 설명하는 개념이다. 앞에서 본 것처럼 만물이 기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기는 당연히 만물의 동질성을 설명하는 개념이 된다. 우리가 쓰는 말 가운데 '동기 同氣'라는 표현이 있다. '동기'란 형제를 가리키는 말이며 같은 부모에게서 같은 기를 받고 태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형제라도 성격이나 하는 짓이 똑같지 않은 것은 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런 차이를 기질 氣質의 차이, 또는 기품의 차이라고 한다. 이처럼 기는 동질성을 설명하는 개념인 동시에 차별성을 설명하는 개념이다.

 

 

넷째, 기는 느낄 수 있는 대상이다. 기를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대표적인 표현은 '감기 感氣'이다. 사실 우리는 기를 상당히 잘 느끼며, '감기'라는 말 자체가 기를 느꼈다는 뜻이다. 앞에서 보았듯이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것도 기이고 몸밖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도 기이다. 그리고 평소에는 물고기가 물 속에 있으면서도 자신이 물 속에 있다는 것을 느끼지 않는 것처럼. 또는 우리가 숨쉬는 것을 인식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 몸 밖에 있는 기가 내 몸을 이루고 있는 기와 다르다고 느끼지 않는다. 그런데 어느 날 몸이 오싹해지면서 내 몸 밖에 있는 기를 다른 기라고 느끼게 되면 감기에 걸리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느끼는 기는 매우 다양하다. 우리는 열기 熱氣나 한기 寒氣도 느끼고, 온기溫氣, 화기火氣,냉기冷氣도 느낀다. 그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살기 殺氣를 느끼기도 하고 정반대로 생기 生氣를 느끼기도 한다.

 

 

다섯째, 기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존재다. 사실 기는 한순간도 정지해 있지 않으며 쉬지 않고 움직인다. 우리가 쓰는 말 가운데 '기가 막혀 죽겠다'는 표현이 있다. 이 말대로 기가 막히면 죽을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기는 계속 움직이는 존재이므로 기가 막혀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면 죽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기가 끊어졌다는 뜻인 기절 氣絶도 '기가 막혔다'와 같은 표현이다. 그밖에 기의 움직임을 나타내는 말 가운데 '기운 氣運'이라는 표현도 있다. 여기서 '운 運'이란 '돈다'는 뜻이다. 따라서 '기운이 세다'는 표현은 기가 도는 힘이 좋다는 뜻이며 반대로 기가 느릿느릿 돌면 기운이 나쁜 것이 된다.

 

 

한의원에 가보면 한의사들의 전통적인 진찰 방법이 네 가지인데, 그 가운데 가장 많이 쓰는 진찰법은 맥진이다. 맥진이란 맥을 짚어 진찰하는 것으로서 서양 의사도 비슷한 진찰을 하지만 서양과 동양은 근본적으로 짚는 이유가 다르다. 서양 의사는 맥을 짚고서 단순히 맥박수룰 셀 뿐이다. 그러나 한의사는 맥을 짚고서 맥이 빠른지 느린지. 높은지 낮은지, 맑은지 탁한지를 살핀다. 이 진찰법으로 기가 도는 상태를 보는 것이다. 그밖에 '기가 약하다' '기가 살았다' 기가 꺾였다'는 표현들도 기가 도는 상태가 어떤지를 표현하는 말들이다.

 

 

여섯째, 기의 움직임은 모였다 흩어졌다 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기는 항상 쉴 새 없이 움직이면서 모였다가 흩어지고 다시 모였다가 흩어지는 과정을 되풀이한다. 흩어진 기를 모아주는 좋은 표현 가운데 군대에서 받는 '기합 氣合' 이 있다. ' 기합'이란 말 그대로 기를 모아주는 작업이다. 대개 기합은 '군기 軍氣'가 흩어졌다는 이유로 받게 되는데, '기합'을 받고 나면 동작이나 심지어는 눈빛마저 달라지는 법이다.

 

또 기가 모였다 흩어졌다 한다는 점을 잘 나타내는 말 가운데 '인기人氣'라는 말이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연예인이 '인기'가 많다면 그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그 연예인에게 기를 보내기 때문이다. 그 사람에게 기를 보내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인기'가 높아지지만, 반대로 사람들이 관심을 끊기 시작하면 보내는 기가 점점 적어져서 마침내는 '인기'가 떨어지고 만다.

 

 

일곱째, 기는 사람이 살아가는 힘이다. 사실 나는 기를쓰면서 이 글을 썼고, 독자 여러분은 기를 쓰면서 이 책을 보고 있다. 우리는 이렇게 모든 일에 기를 쓰면서 살아간다. 하지만 이렇게 기를 쓰기만 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 결과는 당현히 '기진맥진氣盡脈盡'해질 것이며, 마침내 수명을 다한 건전지처럼 죽음에 이를 것이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기를 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모으는 일도 중요하다.

 

 

그렇다면 기를 모으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기를 모으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잠을 자는 것이다. 그래서 『맹자』에는 '존야기存夜氣'라는 표현이 나온다. '존야기'란 밤의 기운을 보존한다는 뜻으로, 한의학에서는 자연의 순환과 우리 몸의 순환주기가 같기 때문에 밤의 기운을 잘 보존하라고 한다.

 

 

기를 모으는 또 다른 방법은 먹는 일이다. 그래서 옛날에는 먹을 것을 가리켜 '곡기穀氣'라고도 했다. '곡기'란 바로 곡식이 주는 기운을 뜻한다. 이처럼 우리는 먹는 일과 자고 쉬는 일을 통해 낮 동안 기진맥진해진 것을 다시 채우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잘 먹고 잘 쉬고 나면 '기력氣力'도 다시 회복할 수 있고 '활기活氣'도 생기는 법이다. 서양 사람들은 기가 지닌 바로 이런 점을 주복하여 기를 energy라고 해석했던 것이다.

 

 

여덟째, 기는 물질적인 것만이 아니라 감정이나 지혜 같은 비물질적인 개념이기도 하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 중에 '기분氣分'이라는 단어가 있다. '기분'이란 기가 나뉘어 있는 상태를 뜻하는 말로, '기분이 어떠신지' 묻는 것은 기가 온몸에 골고루 잘 나뉘어 있는지 아니면 어딘가에 뭉쳐 있는지 묻는 것이 된다. 어른들께 '심기心氣'가 편하신지 불편하신지 묻는 것 또한 비슷한 질문이 될 것이다.

 

 

이밖에 감정가 관련하여 '노기怒氣' '용기 勇氣'같은 단어를 쓰기도 하고 지혜와 관련해서는 '총기聰氣'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또한 '기고만장氣高萬丈.이라는 말도 있다.'기고만장'이란 기의 높이가 만 길이나 되어 하늘을 찌를 듯하다는 뜻으로, 기의 상태를 측정 가능한 길이의 단위로 표현해본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사람의 감정이나 지혜를 나타내는 기가 개인에게만 적용되었던 것은 아니다. 예전에는 집단의 기를 측정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춘추전국시대에는 전문적으로 적군의 기를 살피는'망기가'를 두었다. '망기望氣'란 적진 위에 떠 있는 적군의 사기를 살피는 일이며, 이를 통해 아군의 기가 적군의 기를 압도하는지 여부를 살펴 공격시점을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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