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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즈니쉬 명상건강> 비만에 대해

작성자작약|작성시간12.05.29|조회수59 목록 댓글 0

< 질문 : 저는 비만이 있어서 오랫동안 이런저런 식사조절을 했지만 몸무게는 조금도 줄지가 않습니다. >

 

 

 

 

그대는 몸은 어떠해야 한다는, 그대는 어떠해야 한다는 아마 완벽주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그대에게는 극히 뚜렷한 목표가 있다. 그 목표 때문에 부족함을 느끼고 자신을 인정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거부하는 것이다.

 

그 거부로 인해 그대는 불행함을 느낀다. 그런 목표와 이상들을 무너뜨리라.

 

세상은 어때야 한다, 그대는 어때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라. 그런다 해도 아무 것도 잃을 게 없다.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에너지가 흐르기 시작할 것이다.

 

한번 그런 순간 속에 있게 되면 몸무게가 줄기 시작할 것이다. 몸을 살찌게 만드는 것은 몸에 대한 끊임없는 적대감이다.

 

몸을 계속 적대하면 몸은 불안을 느낀다. 그 불안 속에서 몸은 계속 먹게 된다.

 

그것은 엄마를 신뢰할 수 없는 아기와 같다.

 

만약 아기가 엄마를 신뢰할 수 없다면 아기는 엄마의 젖에서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언제 다시 젖을 먹을 수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불확실하기 때문에 아기는 젖을 먹으면서 안심할 수 없다. 그래서 젖을 놓으려 하지 않는다.

 

아기는 가능한 한 많이 먹으려 할 것이다.

 

미래가 불확실하기 메문에 채우려 할 것이다. 엄마가 자신을 사랑하고 언제 젖을 먹을 수 있다고 느끼면,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알면 아기는 채우려고 하지 않는다. 아기는 휴식할 수 있다.

 

아기는 순간에 필요한 만큼만 먹을 수 있다. 저축할 필요가 없다.

 

사실, 살찌는 것은 저축이다.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사람들은 계속 저축한다. 인간은 음식 없이도 석 달 동안 살 수 있다.

 

그만큼 에너지를 모을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낡고 오래된 생물학적 습성이다.

 

수천년 전 인간이 사냥꾼이었을 매 음식이 불확실한 시절이 있었다.

 

음식이 부족한 날도 있었고, 여러 날 동안 음식이 전혀 없을 때도 있었다.

 

인간은 이와 같은 생물학적 습성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불안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현대에는 문제가 없다.

 

적어도 미국에서는 그렇다.

 

처음으로 사회는 음식이 충분해졌다. 미국인들은 절대로 살찌지 말아야 한다.

 

인도인들은 음식이 불확실하므로 살찌는 것이 허용될 수 있다.

 

내 말은, 현대에는 언제든 맛있고 영양가 높은 음식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물질적으로는 더 먹을 필요가 없는데도 이젠 심리적인 불안감이 몸의 메커니즘을 건드려 몸이 불안해한다.

 

몸은 불안을 피하는 유일한 방법을 알고 있다. 그것은 더 먹는 것이다. 계속 먹어서 자신을 체우는 것이다.

 

그것은 빈 틈을 없앤다.

 

 

그런 관념들을 버리라! 그대가 개선해야 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대는 있는 그대로 완벽히 아름답다. 살기 시작하라!

 

완전해진 미래에 살겠다, 마음이 정한 이런저런 기준에 이르고 나면 살겠다고 생각하지 마라.

 

삶은 지금 여기에 있으며, 그대의 손에서 미끄러져 나가고 있다.

 

내일은 죽음이다. 오직 오늘 속에 삶이 있다‥‥‥‥ 삶은 항상 오늘이다.

 

살고 즐기라. 많이 즐길수록 덜 먹게 될 것이다. 참으로 행복한 사람은 많이 먹지 않는다.

 

과식은 불행과, 아픔과, 공허함에서, 음식에라도 매달리고 싶은 허전함에서 나온다.

 

몸은 많은 지혜를 축적해 놓고 있다. 몸은 아주 지혜롭다. 너무 많이 먹으면 몸은 말한다. "그만!"

 

마음은 지혜롭지 않다. 마음은 말한다. "맛이 좋군. 더 먹어."

 

만약 그대가 마음의 말을 듣는다면 마음은 이런저런 방법으로 몸을 망가뜨리게 된다

 

마음의 말을 듣는다면, 마음은 어리석기 때문에 "계속 먹어" 하고 말할 것이다. 마음은 자기가 뭘 말하는지 모른다.

 

마음은 신생아이고, 배우지 않았다. 마음은 지혜롭지 못하다.

 

마음은 아직 어리석다. 몸의 말을 들으라.

 

몸이 "배고파" 하고 말할 때 먹으라. 몸이 "그만"이라고 말할 때 그만두라.

 

마음의 말을 듣는 것은 어린아이가 노인을 이끄는 격이다. 그들은 스스로 함정에 빠질 것이다.

 

마음의 말을 들으면 먼저 지나치게 감각 속에 있게 되고 그리고 나면 질릴 것이다.

 

모든 감각이 그대에게 불행을 가져다 줄 것이다 그러면 모든 감각이 그대에게 더 많은 걱정과 갈등을 가져다 줄 것이다.

 

너무 먹으면 고통이 오고 구토가 일어날 것이다. 그래서 몸 전체가 교란될 것이다.

 

그때 마음은 말한다. "먹는 건 지독한 일이야. 그러니 단식해." 단식 또한 위험하다.

 

만일 그대가 몸의 소리를 듣는다면 절대 과식하지 않을 것이다. 절대 부족하게 먹지 않을 것이다.

 

몸은 그저 도를 따를 것이다.

 

몇몇 과학자들은 이 문제를 가지고 연구하여 아주 아름다운 현상을 발견했다.

 

어린아이들은 배가 고플 때마다 먹는다. 그들은 잠이 올 때만 잔다.

 

그들은 몸의 소리를 듣는다. 그런데 부모가 방해한다.

 

그들은 강요한다. '저녁 먹을 시간이다. 점심 시간이다. 잘 시간이다. 빨리 자라!'등등등...

 

그들은 몸의 소리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실험자는 아이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내버려두었다.

 

그는 25명의 어린이들을 실험했는데 그들을 억지로 자게 하지 않았고 억지로 일어나게 하지 않았다.

 

그들은 6개월 동안 아무런 강요도 받지 않았다.

 

그 결과 깊은 이해가 왔다.

 

아이들은 잘 잤다. 그들은 꿈을 덜 꾸었고, 악몽을 꾸지 않았다.

 

악몽은 그들을 강요하는 부모로부터 온 것이었다. 그들은 먹는 것을 즐겼고 때로는 전혀 먹지 않았다.

 

몸에 느낌이 없을 때는 먹지 않았지만 결코 먹는 것 때문에 병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도 예기치 않았던 한 가지를 이해하게 됐는데, 그것은 기적과도 같은 발견이었다.

 

오직 승찬(僧璨)만이 이것을 이해할 수 있다. 노자나 장자만이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은 도의 스승들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굉장한 발견이었는데, 아이들은 병이 나면 특정한 음식을 먹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연구자들은 왜 그 음식을 먹지 않는지 알아내려고 노력했다.

 

그 음식들을 분석해 본 결과 그 병에는 그 음식들이 해롭다는 것을 발견했다.

 

어떻게 아이들이 그런 걸정을 할 수 있었을까? 바로 몸 때문이다.

 

 

아이가 자라고 있을 때에는 언제나 성장에 필요한 것을 더 많이 먹는다.

 

그래서 분석해 본 결과, 그 안의 성분들이 성장에 도움이 되는 것들이었음을 알아냈다

 

필요가 바뀌면 음식도 바뀐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필요한 것이 바뀐 것이다.

 

같은 어린이가 어느 날엔 어떤 음식을 먹고 다음날엔 먹지 않았다. 거기서 과학자들은 몸의 지혜를 느꼈다

 

 

몸이 자신의 말을 하도록 허락한다면, 그대는 정도(正道)를, 훌륭한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음식에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이것은 모든 삶에 적용된다. 그대의 성(性)이 잘못돼 가는 것은 마음 때문이다.

 

그대의 위가 잘못 돼 가는 것은 마음 때문이다. 그대는 몸에게 간섭한다.

 

간섭하지 말라! 설령 그대가 그것을 석 달 동안 할 수 있을지라도 간섭하지 말라.

 

그러면 문득 그대는 아주 건강해질 것이고, 편안함이 찾아을 것이다.

 

 

 

-OS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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