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이제 나이가 먹었다.
아직 노인의 반열에 들지는 않았는데
신체적인 불편이 심화되어가고 있다.
이도 나쁘고 무릎도 별로고 요통에 귀, 따지면 안아픈 곳이 없을거 같다.
나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여기저기 아픈 곳이 늘어날 것 같다.
의학적인 원인이야 뭐라하든
대부분의 병과 통증은 우리 자신의 정신적인 것이라고 본다.
이말은 꾀병이라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살고 경제활동을 해야하고 살아남아야 하는 경쟁에서 얻게된 신체적인 반응이다.
우린 너무도 강한 압박과 과도한 긴장속에 산다.
돈을 벌지 않으면 나와 가족이 어찌 될지 모른다는 처절한 불안감
남에게 지고 있고 퇴보되며 나만 소외되어 있는 상실과 열등감을 부추기는 사회적인 현상과 과장광고 미디어에 헤어나올 수가 없다.
대인관계는 그 어떤 것보다 우리를 아프게 한다.
회사에서 가정에서 학교에서 지하철에서 길에서 도로에서 우리가 경쟁하고 긴장하며 경계해야 할 대상은 인간이다.
나와 같은 사람들이 나에게 가장 강한 경계심과 두려움을 준다.
이러한 많은 사람과의 관계와 삶을 위한 투쟁속에서얼마나 우리의 신체가 힘들어 하고 고통받고 있는지 아마 놀랄 것이라고 본다.
우리 신체를 볼때 목의 뼈가 아픈 것이 심하면 목디스크도 된다고 하는데
이런경우 기대하는 일이 있어서이다.
좋은 일이나 하고 싶은 것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길어진 세월을 보냈거나 그러한 성격이라면 목에 이상이 생길 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질거 같은 희망이 보일 때 목은 더욱 아프다.
희망에 살고 잇으면 이렇게 되기가 쉽다.
목이 빠져라 뭔가를 기다리고 희망에 부풀고 그러면 목에 부담이 간다.
근데 목인 이유가 이러한 기다리는 것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드러내는 것이어서그렇다.
등은 먹고살기위한 어려움이 있어서이다.
등이 휘도록 일한다는 것과 비슷하다.
먹고살기위한 그 일에 대한 부담이다.
허리가 아픈 것은 뭔가와의 헤어짐이나 떨어지는 부담이다.
그 떨어지는 대상이 연인일 수도 잇고 부모 일수도 잇고 친구 일수도 있다.
또는 원하는 고향이나 지역을 떠나는 것이거나 회사를 떠나는 것이거나
뭐든지 안정적인 어떤 것에서 떨어지고 분리되는 것에서 허리가 아프다.
또 마음이 위축되면서 왼쪽으로 힘을 주는 위축되는 성격일 경우도 허리가 아프고 등이 비정상적인 휨이 일어난다.
위축하는 이유는 많다.
뭐든 위축하게 되는 것이어서 자신이 어떤 상황에서 위축하는지 알아야 한다.
다리는 화나 분노와 연관되는데
오른쪽은 화가난 것을 의미하며 왼쪽은 참고 있고 안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대개가 무릎이고 발이다.
발목은 어딘가에 소속되거나 끌려가거나 연결되는 것이어서 그에 따른 반응이다.
고관절은 연인과의 사이에서 마음아플때 아프게 되며
대퇴부는 의욕적으로 뭔가를 하려고 할때이다.
팔은 새로우면서 힘든 일이 시작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내 몸어딘가 아플때 그 부위와 연결되는 심리가 무엇인지 보고 그것이 지금 내가 고민하고 어려워하고 화나고 갈등생기고 고통스러워하는 부분과 관련되는 것을 찾아보면된다.
이런건 예일 뿐이다.
사람은 다양하게 통증을 느끼는데
그때 그 통증과 자기가 처한 어떤 회사나 사업이나 대인관계나 처리해야 하는 어떤 사안에 대한 것에서 오는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접근해보면 이러한 것이 있을 수 있다.
모든 병과 통증이 이러하다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것이 원인이 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오래 누적되면 더욱 이러한 것과 연관된 것일 수 있다.
병의 원인이 다양한데 아마도 생각보다 이러한 정신과 마음에서 오는 원인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삶의 투쟁에서 오는 부담이다.
그리고 통증이나 아프고 병든것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떤 병이든 병과 그 병을 어떻게 느끼고 받아들일지는 다른 것이다.
아프며 아플수록 더욱 그 고통은 나와 연관된 것이라고 생각할 필요 없다.
신체가 아픈 것이지 내가 아픈게 아니다.
내가 신체가 아닌한 내가 아퍼하는 것과 병이들고 통증이 유발되는 것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더 아파한다고 덜아픈 것도 아니고
신음소리내서 덜아플거 같으면 더욱 신음소리내고
아프다고 소리지를 수록 더욱 통증이 가라앉고 병이 낫는다면 더욱 그렇게 한다.
그렇지만 그러한 아픔과 병과 또 신음소리와 나는 별개이다.
이것이 이상한가?
아니다. 분명 육체가 나는 아니지 않던가
도 닦는 것에서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그렇다
나는 신체가 아니고 정신도 아니고 그러한 모든 것을 합한 그 이상이다.
병도 나의 일부이고 아파해야하는 것이며 절실한 삶의 과정이다.
구분하라고 버리고 내것이 아니니 베타적으로 하라는 것이 아니다.
아픈 것에 더욱 관심가질 수도 있고 아퍼서 다른 것에 관심가지는 것을 방해하면 외면할 수도 잇고 그러한 병과 고통과의 거리둠을 항상 잃지 ㅇ낳아야 한다는 것이다.
내 자유가 중요한 것이지 어떠한 것에도 압도 당하고 현혹되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다.
어떤 것도 나를 지나치게 두려움에 떨게 하지 않고
원하지 않는 불안감과 고통을 주지 않게 해야한다.
너무 안아플려고 하지도 않고
아프다고 지나치게 걱정하지도 않는다.
이런 글을 쓴는 것은
호흡하고 명상하고 호수외우면서 행공하면서
마음을 이와하고 긴장을 풀고 불안감을 누그려트리면서
그로인해 벙이 안들고 통증이 줄어들며 우울함도 줄고 소외감도 덜어들고 건강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우선 이러한 자천을 하면서 뭔저 해야 할게 마음의 안정감이다.
그 안정감이 일상에서 스트레스에 저항력을 주고 부담감을 해소하는 지혜를 주고
갈등을 느끼고 해결하며 능동적인 자세에 임하도록 해주는 것이어서이다.
평소에도 우린 호흡하고 마음을 다잡는 말을 떠올리며
일에서 취미에서 일상에서 더나은 결과를 만들려고 한다.
그러니 자기의 인생을 전체적으로 생각할 때 지금 한순간의 내 마음의 평화와 안정이
오래 지속되고 누적되는 인생에서 오랜 숙련이 되며
그로인해 덜 힘들고 아프며 병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결심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