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
우리 몸에는 모든경락이 흐르고 있고 모든 구멍이 혈이 열려있다.
임맥이든 독맥이든 충맥, 대맥, 오행연기, 구궁기로 각종 단전운행등 어떤 운행이든 이미 하고 있다.
이중에 오행연기를 설명하면 사람의 마음이 명예나 권력등 남과 관련된 경우에 오른쪽 옆구리에 기가 모이고 나와 관련된 경우엔 왼쪽에 모인다. 만족하고 흥분하면 명치 끝에 기분이 저조하고 안 좋으면 모제 부근에 기가 모인다.
이는 감정의 변화에 따라 기가 모이고 흐른다는 것이다.
또 대맥은 배려와 내 소유나 내 책임의 일이나 상황에서 돈다. 이 운행과 다른 운행들도 그때의 상황과 필요에 따라 모이고 흐른다.
이렇게 감정과 상황, 사건, 몸의 변화에 따라 흐르고 모이는 것이 기이다. 천지간이든 인간이든 시간과 공간 여건과 다른것과의 관계에서 만들어지고 사라져가는 것이 기이고 인위적으로 단전에 모은 것이 기이다.(원래는 이것만 기라고 해야한다.)
이중에 단전에 의지와 의념으로 만든 기가 수련에서 중요하고 또 다른 자연적 기와 달리 내 의지가 깃들여진 기로 그 차원이 다르다.(이래서 이것만 기로 하는 것이다.)
이 달라진 기로 운행을 시작한다. 독맥이든 다른 단전운행이든....
그리고 독맥에서 임맥으로 운행을 할 수 있으면 이제 기는 빛으로 변한다. 또다른 차원이다.
그리고 수련이 또 진행되면 빛은 공으로 변한다.
이렇게 질이 달라지는데 수련중에 운행로를 열고 두정을 열고 하는 말을 하는데 이것은 막힌 것을 처음 여는것이 아니라 그 질이 달라진 것을 첫 운행한다는 것으로 어떤 운행을 한다고 그러니까 내주천을 한다고 중맥을 열었다고 두정을 열었다고 어떤 수련이 진행된 것처럼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고 더 중요한 것은 그 질이다. 그 운행하는 내용물이다.
아니면 그것을 열어 그 질이 달라졌다고 해야 한다. 어떤 질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도 설명하면 더좋고..
이미 모든 사람이 운행하고 있다. 막힌 구멍이나 경락은 없다. 나이들어 갈수록 막히고 좁아진다는게 아니다. 사람으로 살고 있는 한 막히지 않고 막히면 죽거나 불구이거나 이미 정상인은 아니다. 건강한 사람은 막히지 않았고 잘 돌고 있고 반응도 하고 있다.
그래서 어떤 운행을 한다고 말하기 보다 그 내용물이 무엇이라고 하는 것이 더좋다.
그 내용물은 그 사람의 마음의 총체이고 그 깨달음의 모습이기 때문에 이것으로 그 수련의 진행을 보아야한다.
환골탈태든 육근진동이든 두정이 열리든 신통력이 생기든 어떤것이든 이것은 느낌일뿐 하등의 중요성도 없다.
어떤 겉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무엇을 판단하기엔 불확실한 것일뿐 확실한 것은 그 안의 질이다.
수련의 질을 보려면 그 몸속의 질을 보아야하고 그것은 단전에 있고 경락으로 흐르고 있다.
이것을 보지 못하면 각 단계마다, 수련증상에 대해 왈가왈부 할 수 없다. 수련에 대해 단계를 나누고 수련 진도가 어떻고 잘 했고 못했고 말할 수 없다. 그 마음의 질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주천하는 것이 중요한것이 아니라 무엇을 주천하는가가 더 중요하다.
그래서 소약(광단)을 말하고 대약(공단)을 말하는 것이다.
어떤 경락을 타통한것이 중요한것이 아니라 무엇이 타통시켰는가이다. 무엇으로 운행하는가 그 내용물, 그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바른몸(원신, 법신, 양신)이 생기면 운행으로 수련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이때도 그 내용물이다. 그 바른몸의 질이 중요하다. 그전에도 주천으로 질을 변화시킨 것이 아니듯 이때도 당연히 어떤 주천이나 경락운행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깨우침이고 마음의 순수함과 크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