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수련 관련글(일반)

[스크랩] 승만경(勝鬘經) 해설

작성자작약|작성시간15.05.14|조회수30 목록 댓글 0

승만경(勝鬘經) 해설

 

-<승만경>의 사상적 위상-

출판사-민족사

譯-김호성

 

 

1. 머리말

 

<승만경(勝鬘經)>의 설법형식과 그 내용에 대한 의미를 살펴보면 첫째, 형식적 측면에서 재가의 여성불자인 승만부인이 설법하고 수기를 받는다는 특징을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이는 역사적 고찰을 통해서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내용적 측면에서 <승만경>에서 설해지고 있는 주된 교설은 무엇이며, 어떤 사상사적 위상을 점하고 있는지르 살펴보는 것이다.

 

2. 승만부인 설법의 두 가지 의미

 

1) 재가불자가 설한 경전

 

출가는 인도사회의 전통이었다.

바라문계급은 그들이 평생 걸어야 할 길을 이미 타고난다.

어려서는 스승을 찾아가 공부를 하고, 나이 들어서는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기르는 가정생활을 영위한다.

이러한 과정은 오늘 우리들도 경험하는 일이다.

우리와 다른 점은, 그들은 출가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고 가업을 자식들에게 물려준 뒤에 출가하여 숲 속으로 간다.

숲 속에서 명상을 행하며, 여기저기 유행(流行)한다.

그렇게 구도자로서 삶을 마치는 것이다.

불교 역시 인도에서 형성된 종교이기 때문에 이러한 출가의 전통을 이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불교에 이르러 출가의 전통은 더욱 강조되었다.

싯다르타의 출가는 위에서 말한 바라문교의 출가를 개혁한 것이었다.

가정생활을 마치고 노년이 되어 비로소 행하던 출가를 거부하고, 가정생활의 포기를 통한 출가를 이룩한 것이었다.

싯다르타 태자 역시 가정생활을 완수한 뒤 출가하라는 권유를 받았지만 이를 거부한다.

그는 우리 인간의 실존이 너무나 무상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기에는 우리는 너무나 짧은, 무상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불교는 출가의 종교로 출발하였다.

불교 교단은 출가 교단이었다.

수많은 우바새, 우바이의 신앙과 외호(外護)를 우리는 알고 있지만, 여전히 불교는 출가 중심이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그 한 증거로서 경전을 살펴보자.

부처님께서 설하신 수많은 법문 중 거의 대부분은 출가한 비구, 비구니를 청법(聽法)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다.

재가불자를 청법의 대상으로 삼았던 경우는 <선생경>, <옥야경> 등 윤리적인 차원의 경전들이 다소 있을 뿐이다.

초기불교의 이러한 측면은 부파불교에 이르러 더욱 심화되었다.

부파불교시대는 자기 부파의 이론적 정당성을 저마다 소리 높여 주장하던 때였다.

그러한 시대에는 전문적 학승들의 지위가 격상되고, 이론탐구에 경도된 당연한 결과로 사회현실을 살아가는 대중들과의 교섭은 줄어들었을 것이다.

부파불교는 재가불자를 위한 불교도 아니었고, 재가불자에 의한 불교도 아니었던 것이다.

따라서 재가불자들의 올바른 위상이 확보되기 위해서는 대승불교의 흥기를 기다려야 했던 것이다.

대승불교의 흥기는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한 탑파를 중심으로 한 재가불자들의 집단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으로 오늘의 연구 성과는 전하고 있다.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한 탑파를 중심으로 모여든 재가불자들은 찬불(讚佛)의 불전문학(佛傳文學)을 형성하는 등, 대승경전의 편집에 관여했을 것이다.

이제 재가불자들의 목소리는 경전의 내용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유마경>이다.

주지하다시피 <유마경>은 유마거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십대 제자를 비롯한 성문, 문수보살을 비롯한 대승보살들과 대화를 나누는 형식이다.

특히 소승의 십대 제자들을 꾸짖는 장면에서 출가에 대한 재가의 우위를 과시하고 있다.

<승만경> 역시 이러한 <유마경>의 재가주의를 계승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승만경>은 소승의 십대 제자들이 등장하지도 않으며, 그들에 대한 강력한 비판 역시 행하지 않는다.

애시 당초 문제 삼지 않는 것이다.

이미 <유마경>에서 그러한 작업이 완료되었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된다.

<유마경>은 초기 대승경전으로서 대승과 소승이 대립했던 저간의 사정[대, 소 대립의 입장]을 잘 반영한 것임에 반하여, <승만경>은 소승보다 대승 - 그것도 여래만이 길인 佛乘, 一乘 - 을 강조하면서도 소승까지도 섭수(攝受)하고 회통하려는 입장[대, 소 회통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 특이한 점이다.

내용면에서 특별히 재가주의적 입장을 설하고 있는 <유마경>과는 달리, <승만경>은 재가의 우바이인 승만 부인이 설법하고 부처님으로부터 수기까지 받고 있다는 점에서 재가주의의 경전으로서 고양된 재가불자의 위상을 잘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그 사상적 배경에는 <승만경>의 중심내용 중 하나인 여래장사상이 놓여 있다.

 

2) 여성주의

종교는 사회를 선도하기도 하지만, 때로 사회로부터 영향을 받기도 한다.

사회를 반영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평등하다. - 이러한 명제는 아직도 여전히 현실은 아니다. 그렇다고 선언적 의미만 있는 것도 아니지만, 여전히 사회 속에서 남녀의 벽은 높고 성차별은 계속되고 있는 형편이다.

우리의 경우만 그런 것은 아니다.

서양의 경우에도 여성에게 보통선거권이 주어진 것은 최근세의 일이라 하지 않는가.

동 서를 막론하고 여자에 대한 불평등의 역사는 뿌리 깊었던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불교 역시 시대적 한계를 안고 출발한다.

앞에서 우리는 불교가 출가의 종교라는 점을 살펴보았다.

출가 자체는 여자와의 관계를 배제하는 행위다.

여자와의 사랑과 결혼을 떠나는 것이 출가다.

그런 뒤 수행자들은 그들만의 출가공동체, 즉 승가를 이루는 것이다.

이러한 형편이므로 승가는 여자에 대해서 특별히 경계하여 수행자들이 욕망의 늪 속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보호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여자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평가를 내리고 있는 경전의 여러 가지 언급들은 모두 이러한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한 예로, <소부경전>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비구들이여,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단 하나의 형태로 여자보다 더한 것을 나는 알지 못한다. 다른 어떤 소리도 아니며, 다른 어떤 냄새도 아니며, 다른 어떤 풍미도 다른 어떤 축감도 아니다......”(<불교의 여성론>, p.29)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일, 그것은 수도를 방해하는 일이 될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이모 마하파제파티가 여성의 출가를 청원했을 때, 부처님이 거절했던 것도 여성의 출가로 말미암아 생길지도 모르는 남성 출가교단의 타락을 염려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이렇게 현실적인 문제로부터 도출된 불교의 여성관이 하나의 큰 도전에 직면하게 된 것은 역시 대승불교에 이르러서였다.

특히 누구나 부처님이 될 수 있는 씨앗으로서 여래장을 갖고 있다는 사상이 보편화되자, 여성의 성불이 하나의 문제로 제기되기에 이른 것이다.

종래 여성은 성불할 수 없다는 입장이 보편적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같은 정리된 입장을 <법화경>에서 사리불 존자의 입을 통해서 들을 수 있게 된다.

이른바 여인오장설(女人五藏設)이다.

“그대가 오래지 않은 동안에 위없는 도를 얻는다 함은 믿기 어렵다. 왜냐하면 여신(女神)은 때묻고 더러워서 법기(法器)가 아니니, 어떻게 능히 위없는 도를 얻겠는가. 불도(佛道)는 멀어서 무량겁을 지내도록 부지런히 고행을 쌓고 모든 바라밀을 구족하게 닦은 후에야 이루어지는 것이다. 또 여인의 몸에는 다섯 가지 장애가 있으니 첫째, 범천왕이 되지 못한다. 둘째, 제석이 되지 못한다. 셋째, 마왕이 도지 못한다. 넷째, 전륜성왕이 되지 못한다. 다섯째, 불신(佛身)이 되지 못한다. 어떻게 여신으로 성불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종래의 입장에 대해서 <법화경>은 진일보한 성불론을 제시한다.

즉 변성성불론(變成成佛論)이다.

일단 남자의 몸으로 되었다가 성불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실례로서 용녀(龍女)가 그렇게 성불했음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엄밀히 말하면 여성의 성불이라 말하기 어렵다.

성불한 주체는 남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한계는 극복할 수 없는가?

여성의 몸 그대로 성불할 수는 없는가?

<승만경>은 간접적인 방법이나마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있다.

그러니까 불교사에 있어서 남녀평등의 이념적 정립은 초기 대승경전인 <법화경>의 시대보다 더 내려와서 중기 대승경전인 <승만경>을 기다려야 했던 것이다.

<승만경>은 한 여성 불자인 승만 부인이 설법을 하며 부처님으로부터 장차 성불하여 보광(普光)여래가 될 것이라는 수기를 얻고 있는 것이다.

굳이 남자로 변하지 않더라도 여성의 몸 그대로 성불한다는 것이다.

여성즉신성불설(女性卽身成佛說)이다.

뿐만 아니라 <승만경>은 부처님에게만 사용하는 ‘사자후’라는 말을 여성의 설법에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승만경>이 페미니즘의 경전임을 알 수 있다.

 

3. 특징적 사상과 그 의미

 

1) 섭수정법, 일승, 여래장

 

구나발타라 번역의 <승만경>은 전체가 15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보리류지 번역의 <대보적경> 승만 부인회는 분장(分章)되어 있지 않다.

우리의 저본인 구나발타라 역을 중심으로 <승만경> 전체를 살펴본다.

Alex Waymann은 종래 <승만경>을 주석한 고승들 - 혜원, 규기, 길장, 성덕태자 - 의 과분(科分)을 소개하고 있다.(pp. 120~123).

이 중에서 혜원의 이해에 보다 공감을 느낀다.

혜원의 과분을 토대로 필자는 서분(序分), 정종분(正宗分), 유통분(流通分)으로 나누는 새로운 과분을 다음과 같이 마련해 보았다.

(예컨대, 숫자 1은 제1장 <여래진실의 공덕장>을 가리킨다.)

 

 

 

 

<승만경>의 정식 이름 <승만사자후일승대방편방광경>에 나타나 있는 바와 같이, <승만경>은 일승의 가르침을 설하고 있는 것이다.

인천(人天)의 무리 앞에는 인천의 선근이 놓여 있고, 성문, 연각, 대승보살 앞에는 각기 성문, 연각, 대승보살의 가르침이 놓여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가르침은 사실은 일승의 가르침을 갖가지로 설하고 있는 경전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주된 교설을 좀더 자세히 언급해 본다.

승만 부인은 열 가지 원 → 세 가지 원 → 하나의 원을 각기 세운다.

그러면서 보살이 세운 모든 원은 궁극적으로 하나의 원 속에 포함된다고 하였다.

그 하나의 원이 바로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법을 믿고 행하는 선남자 선여인은 모두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일은 어떤 일이겠는가?

이에 대한 <승만경> 자체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첫째,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행위와 올바른 가르침이 다르지 않다.

둘째,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일과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다르지 않다.

셋째,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일이 대승이다.

넷째,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일이 바라밀이다.

이렇게 <승만경>은 올바른 가르침을 대승이며, 또 대승의 바라밀이라 부르고 있다.

그런데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승만경>은 일승의 가르침이다.

그렇다면 대승과 일승의 관계를 어떻게 말하고 있는 것일까?

전통적으로 삼승과 일승의 관계를 설명하는 견해에 두 가지가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삼승의 대승 밖에 따로이 일승을 내세우는 입장과 삼승의 대승이 곧 일승이라는 입장이다.

이 중 전자를 사거가(四車家)라 하며, 후자를 삼거가(三車家)라고 한다.

<승만경>은 이 두 가지 견해 중에서 바로 후자, 즉 삼거가의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승만 부인은 말한다.

“대승은 곧 부처님의 길[佛乘]입니다. 그러므로 세 가지 길은 곧 하나의 길이므로, 하나의 길을 얻는 자는 위없이 바른 깨달음을 얻는 것입니다. 위없이 바른 깨달음은 열반의 세계입니다. 열반의 세계는 곧 여래의 법신입니다. 궁극적인 법신을 얻는다는 것은 곧 궁극적인 하나의 길을 얻는 것입니다. 법신은 여래와 다르지 않고, 여래는 법신과 다르지 않으니, 여래가 곧 법신입니다. 궁극적인 법신을 얻는다는 것은 궁극적인 하나의 길을 얻는 것입니다.”

위의 인용문은 ‘대승 = 불승 = 아뇩다라삼먁삼보리 = 열반 = 구경법신 = 여래’로 정리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이치를 인천이나 성문, 연각 등은 알 수 없는 것이 당연하리라.

오직 부처님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다.

그 다음, 무슨 근거로 ‘세 가지 길이 없으며, 세 가지 길이라 하는 것은 하나의 길에 들어가는 것’이라 말하는 것인가?

<여래장경>에서 설하는 바와 같이 모든 중생은 여래장이기 때문이다.

같은 여래장사상을 설하는 <부증불감경>은 여래장의 구조를 세 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첫째, 여래장은 청정한 여러 가지 덕성과 알 수 없는 예부터 함께 있으며, 또 그것과 본질적으로 결합하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여래장은 번뇌에 덮여 있는 청정하지 않은 여러 가지 덕성과 알 수 없는 예부터 함께 있으며, 또 그것과 본질적으로 결합하고 있지 않다.

셋째, 여래장은 영겁토록 견고 불변한 본성이 있다.

이러한 여래장의 세 가지 구조는 <승만경>에서도 그대로 나타나 있다. 위에서 말한 첫째는 여래장의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을 말하는 속에서, 둘째는 객진번뇌염(客塵煩惱染)을 말하는 속에서 각기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는 상주하여 변하지 않는다는 교설 속에 반복되어 있는 것이다.

영원히 존재하여 불변한다는 여래장은 법신과 동의어로서, <열반경>에서 설하는 상, 낙, 아, 정의 네 가지 덕을 그대로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래장이 법신과 동의어이면서 한편으로 생사의 뿌리가 된다는 점에 있다.

“생사라고 하는 것은 여래장에 의지하는 것”이라는 점도 사실인 것이다.

이렇게 여래장은 양면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성청정한 여래장이 어떻게 해서 객진의 번뇌에 오염되는가?

이 점에 대해서 <승만경>은 분명한 언급을 하지 못하고 있다.

단지 “본래부터 청정한 마음이면서 물드는 것은 가히 잘 알기 어렵다.”고 말할 뿐이다.

<기신론>의 유전연기문(流轉緣起門)의 설명을 기댜려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승만경> 역시 번뇌론을 설하고 있다.

간략히 살펴보면, 무명의 잠재적 번뇌가 네 가지 잠재적 번뇌를 낳는 것이며, 다시 그에 따른는 부수적 번뇌를 낳는다는 것이다.

이들 모든 번뇌의 뿌리는 무명의 잠재적 번뇌이다.

이것이 있으므로 네 가지 잠재적 번뇌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성청정심이 객진번뇌에 오염되는 것은 바로 이 무명의 잠재적 번뇌 때문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당연한 결과로서 이 무명의 잠재적 번뇌만 제거하게 되면, 모든 법의 자재로운 경지에 오를 수 있는 것이다. 그때,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부처님처럼.

“나의 생은 이미 다했으며

청정한 행은 이미 완성했으며

지어야 할 바는 이미 마쳤으며

미래의 윤회하는 삶은 받지 않으리.”

 

 

2) 여래장사상사 내의 위치

 

중기 대승경전인 <승만경>은 여래장사사상에서 볼 때, 어떠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해서 高崎直道는 다음과 같은 <여래장경전 계통도>를 그리고 있다.(<여래장계경전>, p.425)

 

 

이 중 <여래장경>, <부증불감경>, <승만경>을 ‘여래장삼부경(三部經)’이라 말한다.

<여래장경>은 여래장의 정의를 아홉 가지 비유를 들어서 설명하는 경전으로서, <승만경>에의 직접적인 영향을 추정하기는 쉽지 않다.

물론 여래장사상을 설하는 것이므로 <여래장경>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승만경>의 존재는 불가능했을 것이지만 말이다.

다음, <부증불감경>과 <승만경>의 관계에 대해서이다.

이들의 선후관계에 대해서 高崎直道는 <부증불감경>이 <승만경>에 앞선다고 하였는데, 근래 정호영 교수는 그의 저 <여래장사상>(p.58)에서 <승만경>이 <부증불감경>보다 선행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필자는 그같은 문제에 대한 판단을 할 만큼 연구가 충분하지 못하므로, 여기서는 <부증불감경>과 <승만경> 사이에 존재하는 유사성만 언급하기로 한다.

위에서 설한 바와 같이, 여래장은 여러 가지 덕성과 불가분의 것이며, 청정한 진여이며, 법계로서 불가사의한 자성청정심이라는 점 등은 <부증불감경>에서도 설해지고 있는데, 이는 양자가 동일한 사상적 입장이다.

<승만경>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여래장사상 계통의 경전으로 <능가경>이 있다.

<능가경>은 <승만경>을 이으면서도 여래장과 아뢰야식을 동일시하는 특유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능가경>은 선사상을 내포하는 등 보다 복잡하고 종합적인 교설을 다루고 있다. 이러한 <능가경>을 소의경전으로 한 <대승기신론>은 <승만경>의 여래장사상을 이으면서도 유식사상을 보다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승만경> 역시 무명의 잠재적 번뇌 등을 말하고 있지만, <기신론>은 보다 세밀하게 객진번뇌로부터 오염 당하는 과정을 논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승만경>을 보다 발전시킨 논서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외에, 중요한 논서로 <보성론>이 있다.

<보성론>은 직접 <승만경>으로부터 26회나 인용하고 있다.

‘섭수정법장’ 3회, ‘일승장’ 11회, ‘법신장’ 6회, ‘전도진실장’ 3회, ‘자성청정장’ 3회 등이다.

그런만큼 <보성론>은 <승만경>을 소의로 해서 지어진 논서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4. 맺음말

 

<승만경>은 여래장 사상을 설하는 경전으로서 후대에 큰 영향을 미친 경전이다.

모든 중생은 여래장의 존재라고 하는 새로운 인식에서부터 재가불자나 여성도 성불할 수 있다는 생각이 확립된 것이다.

그러한 입장이 형식적으로 표현된 것이 ‘승만 부인의 설법과 수기’라고 생각된다.

이와 같은 <승만경>이 우리 역사에 처음 전해진 것은 진흥왕 37년(576)에 안홍(安弘)에 의해서다.

안홍은 유학갔던 수나라로부터 귀국하면서 <승만경>과 <능가경>을 가져다 조정에 전했던 것이다.

이후 원효는 직접 <승만경소> 2권(혹은 3권)을 썼는데, 아쉽게도 현재 전하지 않는다.

다만 일본 응연(凝然)의 <승만경소상현기> 속에 인용되는 구절들이 남아 있을 뿐이다.

이를 김상현 교수가 집일(輯逸)하여서, 우리의 참고를 가능케 해주었다.

신라 중대의 불교계에는 이렇게 여래장사상이 크게 유행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그러한 토양위에서 신라 하대의 선이 전래할 수 있었을 것이다.

-병자년(1996년) 설 다음날 새벽

김 호 성 합장

다음검색
스크랩 원문 : 광룡정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