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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HO> 영적인 착취- 종교, 수련 사업의 원리

작성자작약|작성시간12.07.06|조회수56 목록 댓글 0

<질문 : 삭티파트라는 미명하에 영적인 착취가 행해질 수 있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그런 일은 왜 일어나는 것이며, 그런 일로부터 구도자를 보호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삭티파트라는 미명하에 얼마든지 영적인 착취가 행해질 수 있다.

 

사실 요구가 있고 선언이 있는 곳에는 항상 착취가 있기 마련이다.

 

어떤 사람이 무엇인가 주겠다고 선언한다면 그는 틀림없이 그 대가로 무엇인가 빼앗아 갈 것이다.

 

주는 것과 가져가는 것은 항상 같이 붙어 다니기 때문이다.

 

 

재산, 존경, 신뢰 등 어떤 형태로든 간에 그는 무엇인가 그대로부터 받아 갈 것이다

 

고집스럽게 주려고 하는 자는 분명히 무엇인가 받아간다.

 

무엇인가 준다고 주장하는 자는 그 대가로 더 많은 것을 가져간다.

 

그렇지 않으면 애초부터 무엇인가 주겠다고 소리지를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낚시꾼은 낚시 바늘에 벌레를 꿴다. 바늘만 있다면 물고기가 물리지 않을 것이다.

 

물고기는 낚시 바늘을 냉큼 물지만 그것은 미끼에 유혹당했기 때문이다.

 

그는 벌레를 먹으려고 낚시 바늘을 삼키는 것이다.

 

벌레가 미끼에 불과했음을 알게 되는 것은 이미 그것을 삼키고 난 후의 일이다. 이미 낚시에 걸려든 후의 일이다.

 

 

그러니 삭티파트를 행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지혜를 주겠다고 외치는 사람들,

 

그대를 삼매로 인도하겠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경계하라.

 

진실로 저 너머의 세계에 속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주장하지 않는다.

 

그대가 '당신 덕분으로 저는 은총을 경험했습니다.'하고 말하면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 그것은 나도 모르는 사실이다. 그대는 무엇인가 오해했다.

 

그 일은 나 때문이 아니라 신의 은총으로 일어난 것이다."

 

 

이런 사람은 그대의 감사함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매개체였다는 것조차 인정하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애에게 자격이 있기 때문에 은총이 내려온 것이다. 그것은 신의 자비였다. 내가 누구기에 그런 일을 하겠는가?

 

나는 그 일과 아무 상관이 없다."

 

 

예수가 한 마을을 지나고 있는데 병든 사람이 그를 찾아왔다. 예수가 그를 껴안자 병이 씻은 듯이 낳았다.

 

그가 말했다. "당신의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합니까? 당신께서는 저의 고통을 없애 주셨습니다."

 

예수가 말했다.

 

"그렇게 말하지 말라. 이 일을 행한 분에게 감사하라. 내가 누구기에 이런 일에 끼여든단 말인가?"

 

그 사람이 말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당신밖에 없습니다."

 

예수가 말했다.

 

"그대와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대는 그분을 보지 못하지만 모든 일이 그분을 통해 일어났다. 그분이 그대를 치료했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타인을 착취할 수 있겠는가? 착취하기 위해서는 미끼 속에 낚시 바늘을 숨겨야 한다.

 

그러나 이런 사람은 낚시 바늘은 고사하고 미끼로 쓸 벌레조차 갖고 있지 않다.

 

 

황금빛 결과를 약속해 주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그를 경계하라.

 

그대를 위해 이런저런 일을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벌레로 낚시 바늘을 가리고 있는 것이다.

 

그는 그대가 기대를 갖도록 부추긴다. 그는 그대를 선동하여 희망과 욕망을 갖게 한다.

 

그리고 그대가 욕망에 사로잡혀 '오, 존경하는 스승이시여, 그것을 주소서!'하고 말하면

 

그는 무엇인가 요구하기 시작한다.

 

곧 그대는 벌레는 미끼였을 뿐이고 그 안에 낚시 바늘이 숨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기적을 주장하는 삶이 있는 곳에는 그대의 발걸음을 조심하라. 그 곳은 매우 위험한 지역이다.

 

누군가 그대의 스승이 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길을 피하라.

 

그런 길에는 항상 복잡한 함정이 있다.

 

 

그렇다면 구도자는 어떻게 자신을 보호해야 하는가? 소리 높여 주장하는 사람들을 멀리 하라.

 

그것이 모든 악에서 그대를 구하는 길이다. 기적적인 결과를 약속하는 사람을 찾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그대는 곤경에 처할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함정을 만들어 놓고 누군가 빠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

 

영적인 이득을 챙기려고 하지 말라.

 

영적인 주장에 솔깃해 하지 말라.

 

그대가 해야 할 일은 전혀 다른 일이다. 그대는 내면으로부터 그대 자신을 준비해야 한다.

 

그대가 준비되기만 하면 반드시 해프닝이 일어날 것이다. 그 때는 어떤 매개체를 통해서건 그 일이 일어날 것이다.

 

매개체는 부차적인 문제다. 그는 옷걸이와 같다.

 

그대가 옷을 얻는 날 그 옷을 걸 수 있는 옷걸이가 준비된다. 옷걸이는 중요하지 않다.

 

옷걸이가 없으면 문에 옷을 걸 수도 잇다. 문이 없으면 나뭇가지에 걸어도 된다. 무엇이든지 옷걸이가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옷걸이가 아니라 옷이다.

 

그런데 우리는 옷이 없다. 그리고 여러 사람들이 '이리 오라. 내가 옷걸이다!'하고 외친다.

 

이 소리를 듣고 달려가면 그대는 함정에 빠질 것이다.

 

 

그대는 옷이 없다. 그러니 옷걸이에게 달려가서 무엇을 하겠는가? 그대 자신을 거기에 매달 위험성이 많다.

 

그대는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 자신의 능력을 길러야 한다.

 

은총이 찾아왔을 때 그 은총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그대 자신을 준비해야 한다.

 

스승을 찾는 것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것은 그대의 일이 아니다.

 

 

크리슈나가 아르주나(Arjuna)에게 말한 내용은 옳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최선을 다하라. 그리고 결과는 신에게 맡겨라."

 

행동의 결과에 대해 염려할 필요가 없다. 그런 염려는 장애가 된다. 그렇게 되면 온갖 혼란이 일어날 것이다.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낳을 지 노심초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염려가 그대가 이룬 모든 공적을 오염시킬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주된 관심사는 결과가 아니라 행동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자격을 갖추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의 노력이 완결되는 순간 모든 것이 성취된다.

 

이것은 하나의 씨앗이 꽃을 피우는 시점에 도달하는 것과 같다. 태양은 항상 꽃을 피울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다.

 

봉오리만 준비되면 된다. 그러나 우리는 봉오리를 갖고 있지 못하다. 이 때는 태양이 아무리 밝게 빛나도 소용없다.

 

그러니 태양을 구하지 말라. 그대의 봉오리를 성장시키는 일에 전념하라.

 

태양은 항상 거기에 있으며 영원히 거기에 있을 것이다.

 

 

빈 그릇이 되어라 그러면 즉각 채워진다. 사실, 수용적으로 되는 것과 채워지는 것은 두 가지 일이 아니다.

 

그들은 똑같은 일의 양면이다.

 

이 방 안의 공기를 모두 제거하면 밖으로부터 즉각 신선한 공기가 밀려들어와 진공을 채운다.

 

이것은 별개의 일이 아니다. 방안의 공기를 제거하자마자 바깥의 공기가 밀려든다.

 

 

내면의 법칙도 이와 같다. 우리가 준비를 갖추기만 하면 즉각 그 노력이 성과를 거두기 시작한다.

 

우리가 어려움에 처하는 이유는, 준비도 하기 전에 성과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허황된 요구를 하면 항상 허황된 것이 제공된다.

 

 

어떤 사람들은 참으로 나를 놀라게 한다.

 

한 사람이 내게 와서 '저는 마음이 불안합니다. 평화를 얻고 싶습니다.'하고 말했다.

 

그는 한 시간 반 동안 내게 이런 말을 하다가 자기의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은 아들에게 직업이 없기 때문이라고 고백했다.

 

그리고 아들이 직업을 구하면 마음이 편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이 사람이 마음의 평화를 구한다는 것은 구실에 불과하다. 그가 진짜로 원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그것은 마음의 평화와 아무 상관이 없다. 그는 아들의 취직을 원했다. 그렇다면 그는 사람을 잘못 찾아온 것이다.

 

 

종교 사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당신은 직업을 원하는가? 이리 오라. 내가 직업도 주고 마음의 평화도 주겠다.

 

여기로 오는 사람은 누구든지 직업을 구할 것이며 재산이 늘어날 것이다. 사업이 날로 번창하게 될 것이다."

 

이제 이 종교라는 상점에 모여든 몇몇 사람들이 그대에게 '내 아들이 직업을 구했다.'고 말할 것이며 ,

 

어떤 사람은 ' 돈이 마구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 이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이 종교 사업을 위해 고용된 사람도 아니고 알선 업자도 아니다. 그런 일은 없다.

 

천명이 취직을 원했다면 그 중의 열 명 정도는 직업을 구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제 나머지 9백 9십 명은 떠나고 열 명이 남는다. 이 열 명이 기적을 선전한다.

 

그리고 날로 군중이 모여 든다. 이렇게 모든 종교 상점에는 세일즈맨과 선전원들이 있다.

 

그들의 아들이 직업을 구했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다. 그들이 상점 주인에 의해 파견된 것도 아니다.

 

그들은 아들이 직업을 갖기를 원했으며, 마침내 어딘가에 취직이 되었다.

 

그리고 아들이 직업을 구하지 못한 다른 사람들은 그들의 욕망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다른 스승을 찾아

 

이미 오래 전에 떠났다. 그리고 욕망이 성취된 사람들은 이 상점의 단골 손님이 된다.

 

날마다 군중이 늘어가고, 이 '스승'이라고 불리는 사람의 주변에 그룹이 형성된다.

 

그 다음부터 그들이 말하는 모든 것이 반박할 수 없는 확실한 증거가 된다.

 

 

이런 말을 듣고 그대는 '이렇게 많은 사람의 소원이 이루어졌다면 내 소원도 성취될 것이다.'하고 생각한다.

 

이제 이것이 미끼다. 그대를 낚아채는 낚시 바늘은 미끼 안에 숨어 있다.

 

 

요구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걸려들 것이다. 그대 스스로 준비를 다하고 나머지 일은 하늘에 맡겨라.

 

때가 무르익으면 저절로 은총이 일어날 것이다.

 

만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대가 아직 준비되지 않은 것이다.

 

 

 

-OS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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