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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난 의술인

여호와의 증인 설립자 찰스 테일즈 러셀

작성자작약|작성시간14.11.14|조회수429 목록 댓글 0

 

찰스 테일즈 러셀

 

 

 

1870년, 열성적인 청년 찰스 테이즈 러셀(1852-1916년)은 그리스도교국의 전통적 가르침들에 대해 많은 질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청소년 시절에, 그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번창하는 산업 도시 알레게니(지금은 피츠버그의 일부)에 있는 아버지의 남성용 양품점에서 일했습니다. 그에게는 장로 교회와 조합 교회에 다닌 종교적 배경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정론이나 지옥불의 영원한 고초 같은 가르침으로 혼란을 느꼈습니다. 러셀이 일부 그리스도교국 종파들의 그 기본 교리에 대해 의문을 품은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영원한 고초를 받을 것을 미리 알고 예정해 놓고서 인간을 창조하는 데 자기 능력을 사용하는 하나님이라면 현명한 것도 사랑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의 표준은 많은 인간들의 표준보다도 낮은 것이다.”

 


 아직 십대 후반일 때, 러셀은 다른 청년들과 함께 그룹을 이루어 주간 성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영혼불멸 그리고 그리스도의 대속 희생과 재림 같은 그 밖의 주제들에 대한 성서의 가르침을 분석하기 시작했습니다. 1877년, 25세의 러셀은 아버지의 번성하던 사업 중에서 자기 몫을 처분하고 전 시간 전파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1878년에 러셀과 그의 동료 한 사람 사이에 심각한 의견 차이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그리스도의 죽음이 죄인들을 위한 대속이 될 수 있다는 가르침을 배척했습니다. 러셀은 그의 주장을 반박하여 이렇게 썼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음과 부활을 통해 우리를 위해 여러 가지 좋은 일을 이루셨다. 그분은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셨다. 그분은 의로운 분으로서 불의한 자들을 대신해서—모든 사람이 불의한 자들이므로—죽으셨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대신해서 죽음을 맛보셨다. ··· 그분은 순종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본이 되셨다.” 러셀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구속한다는 것은 도로 사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 무엇을 도로 사셨는가? 생명을 사셨다. 우리는 첫째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해 그것을 잃었다. 둘째 아담[그리스도]은 자신의 생명으로 그것을 도로 사셨다.”

 


 언제나 대속 교리를 확고하게 옹호한 러셀은 이전의 그 동료와 모든 유대를 단절하였습니다. 1879년 7월, 러셀은 오늘날 「파수대—여호와의 천국 선포」로 전세계적으로 알려진 「시온의 파수대와 그리스도의 임재의 전령」을 발행하기 시작했습니다. 1881년, 러셀은 다른 헌신한 그리스도인들과 연합하여, 비영리 성서 협회를 설립하였습니다. 그 협회는 시온의 워치 타워 책자 협회(Zion’s Watch Tower Tract Society)로 불렸으며, 오늘날에는 여호와의 증인을 대행하는 법적 기구인 펜실베이니아 워치 타워 성서 책자 협회(Watch Tower Bible and Tract Society of Pennsylvania)로 알려져 있습니다. 러셀은 맨 처음부터, 회중 집회에서 연보를 걷거나 워치 타워 출판물을 통해 헌금을 간청하는 일이 없을 것임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러셀과 함께 깊이 있는 성서 연구에 참여한 사람들은 단지 성경 연구생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성서 연구의 결과로, 러셀과 그의 동료들은 그리스도교국의 신비의 “성삼위일체,” 인간 영혼의 타고난 불멸성, 지옥불의 영원한 고초 등의 가르침을 배척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또한 신학교 교육을 받은 별도의 교직자 계급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배척하였습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자격을 갖춘 장로들이 봉급이나 보수를 염두에 두지 않고 회중을 인도하는 그리스도교 본래의 겸손함으로 돌아가기를 원했습니다.

 


 이들 성경 연구생은 하나님의 말씀을 조사하면서, “세상 끝”과 그리스도의 “임하심”에 관한 그리스도인 희랍어 성경의 예언들에 예리한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들은 희랍어 본문으로 돌아가서, 그리스도의 “임하심”이 사실은 “파루시아” 곧 보이지 않는 임재(臨在)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장래의 보이는 임하심에 관한 증거가 아니라, 마지막 때의 자신의 보이지 않는 임재에 관한 증거를 알려 주신 것이었습니다. 그 연구를 하면서, 이들 성경 연구생은 그리스도의 임재와 관련된 성서 연대를 이해하기를 갈망했습니다. 모든 세부점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러셀과 그의 동료들은 1914년이 인간 역사에서 획기적인 해가 될 것임을 인식하였습니다.

 


 러셀은 대규모 전파 활동이 수행되어야 함을 알고 있었습니다. 러셀은 마태가 기록한 이와 같은 예수의 말씀을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왕국의 좋은 소식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사람이 거주하는 온 땅에 전파될 것입니다. 그러면 끝이 올 것입니다.”  1914년 이전의 성경 연구생의 활동에는 긴박감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전파 활동이 그 해에 절정에 달할 것이라고 믿었으며,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이 “이 왕국의 좋은 소식”을 알도록 돕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침내, C. T. 러셀의 성서 설교는 전세계 수천 가지 신문에 실렸습니다.

 

 

 1916년, 찰스 테이즈 러셀은 미국을 횡단하는 전파 여행 도중, 64세의 나이로 갑자기 사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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