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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난 의술인

천태종 중흥조 상월원각 박준동

작성자작약|작성시간15.03.11|조회수463 목록 댓글 0

 

상월원각 박준동

 

 

1. 탄생과 수학修學

 

 

 

 

상월원각 대조사께서는 19111128, 강원도 삼척군 노곡면 상마읍리 봉촌에서 부친 박영진朴泳鎭씨와 모친 삼척 김씨 사이에서 2대 독자로 탄생하였다. 본관은 밀양으로서 속명은 준동準東이고 상월上月은 법명이며 원각圓覺은 법호이다. 조부와 모친께서 범상치 않은 태몽을 꾸었고 탄생과정도 신비한데 그 부분을 <오도기략>에서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1128일 칠야漆夜 초경初更, 산모産母가 방문房門 밖에 나가고 싶었으나 안나가고 참고 있으니 누군가가 끌어내는 것 같아서 마당으로 밀려 나가니 큰 불덩어리가 하늘에서 쏟아지는 것을 보고 까무라쳐 정신精神을 차리지 못하였다. 산모産母도 모르는 사이에 옥동자玉童子를 분만分娩하였다. 아이의 울음소리도 듣지 못하고 비몽사몽간非夢似夢間에 눈을 뜨니 갓난 영아嬰兒가 걸어서 나가는 것을 보았다. 산모産母가 가는 아기를 급히 잡아서 안고 방에 들어와서 보니 그 아이의 두 눈에서 푸르고 맑은 불빛이 흐르고 있었다.

 

 

 

 

5세 되던 봄에 조부께서 동리 서당에 입학시켜 신동神童이라는 소리를 들어가며 13세까지 한문공부를 다 마쳤다. 그 사이 9세 때 조부께서 돌아가셨는데 대조사께서 하루 밤낮을 통곡하니 조부가 회생하여 1개월 동안 더 살다가 다시 돌아가시니 대조사께서 더 이상 울지 않았던 일도 있었다고 한다.

 

14세 때인 1924년에 삼척유지공장에 취직하여 세상 물정을 익혔다. 이 때 겪은 일제 치하의 여러 가지 사회 정황과 앞서 9세 때 조부가 돌아가셨을 때의 충격 등이 어린 소년을 구도의 길로 이끈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2. 각고刻苦의 수행

 

 

 

 

15세 되던 여름에 크게 발심하여 좁쌀 일곱 되, , , 바가지 등과 과도 한 자루를 지니고 삼척의 삼태산三台山에 들어가 용맹 정진하였다. 계곡의 연못 위에 통나무 다리를 두세 개 걸쳐놓고 그 위에 초막을 매어 그곳에서 거의 자지도 먹지도 않고 천수다라니千手陀羅尼를 염송하였다. 하루 밥 한 끼에서 시작하여 냉수만 마시기까지 점차 음식을 줄여가며 잡념이 일어나면 과도로 몸을 찌르고 졸면 연못으로 굴러 떨어지도록 하는 처절한 수행이었다. 이렇게 기약한 1백 일을 채운 뒤 여러 가지 신통력을 터득하게 되었다고 한다.

 

16세 때 잠시 귀가하여 있다가 모친을 하직하고 국내 명산 대찰을 두루 다니며 영험을 축적하였다. 이 때 법은法隱 스님이라는 분을 만났다는 기록도 있으나 전술하였듯이 그 근거를 확인할 수 없다. 또한 충북 지역에서 강백으로 이름 높던 김순관金順寬 화상을 찾아가 지도를 청한 일도 있다고 하는데, 전운덕 총무원장은 그것은 승적僧籍을 갖기 위한 방편이었지 배움을 받은 것은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20세가 되던 1930년부터는 오대산, 보타산 등 중국의 불교 성지를 순력하고 티벳과 몽고까지 다닌 뒤 1936년에 귀국하였다. 이후 강원도와 소백산을 중심으로 가난한 이와 병든 이를 구호하면서 수행을 계속하였다.

 

35세 때인 1945115일에 삼척의 소위 팔장사八壯士 집에 가서 장사들을 굴복시킨 뒤 대학 출신의 제자 둘을 거두어 현 구인사 너머의 여의생 마을에 들어갔다. 그곳의 홍승원洪承元씨 집 방 한 칸을 빌어 세 명이 천수다라니를 염송하며 수도에 전념하였다. 며칠 뒤 홍씨와 그의 부친, 같은 마을에 살고 있던 남익순南益淳(대충스님), 그리고 여학봉呂鶴鳳과 그의 딸(문성스님) 등이 문도로 귀의하였다. 그해 2월부터 현 구인사 법당 터에 소법당과 부엌을 갖춘 8칸집을 짓기 시작하여 다음 해에 완공을 보았다. 그리고 5월 단오날에 남자 신도 8명이 입사하니 이날을 구인사 창건일로 기념하게 된 것이다.

 

완공된 건물에서 신도들과 함께 옥수수죽을 먹으며 매일 저녁 6시부터 다음 날 아침 6시까지, 오전에는 8시부터 11시까지, 오후에는 점심공양 후부터 저녁공양 직전까지 일사불란하게 천수경을 독송하면서 5년간을 보냈다. 625전쟁 때는 잠시 공주의 마곡사麻谷寺로 피난하여 난민구제에 주력하다가 겨울에 되돌아왔다. 그러나 그 사이 공산군에 의해 건물이 모두 불타버려 다시 세 칸 짜리 초가집을 짓고 용맹정진에 돌입하였다.

 

 

 

 

3. 대도大道의 성취

 

 

 

 

피난에서 돌아온 뒤에도 쉼 없이 정진하던 대조사께서 큰 깨달음을 얻을 징조가 나타난 것은 41세가 되던 195112월이었다. 이 해 봄과 가을, 두 차례에 걸쳐 새벽에 소백산이 크게 울리는 상서가 있더니 1221일부터 대조사께서 우리 공부가 가장 깊게 되고 있으니 대중은 엄숙하라. 발소리도 내지 말고 기침소리도 내지 말라. 그리고 나를 보라.”고 하며 경각심을 일으켰다. 그리고 1228일 밤이 되자 밤하늘에 큰 빛이 있어 사내寺內가 대낮처럼 밝아졌다. 이 때의 정황을 <오도기략>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 28일 자정子正이 되자 천수경千手經을 치는 소리가 달라지고 안광眼光이 샛별같고 행동行動하는 것이 평소와는 판연判然히 달라졌다. 대중은 모두 이상하게 보고 있었으나 무엇인가 모르는 압박감壓迫感을 느끼고 있었다. 새벽 3시에 이르러 벼락같은 소리로 천수천안관세음보살千手千眼觀世音菩薩을 외치니 산곡山谷은 메아리치고 대중大衆은 허공虛空에 뜬 기분이었다. “나를 보라하고는 조사祖師가 입을 크게 벌리고 동천東天에 큰 별이 나타나서 내 입으로 들어오니 뱃속이 환하게 밝고 일월日月이 머리 위에 있으니 천지天地가 크게 밝도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사내寺內에 서광瑞光이 응결凝結되어 발광체發光體를 찾고자 하기도 하였다. “천상천하天上天下 유아독존唯我獨尊 내가 탄생誕生했다대성大聲으로 소리치니 산곡山谷이 메아리치고 대중大衆은 정신精神이 막막漠漠하였다.

 

 

 

 

이렇게 대각을 얻은 뒤에 아침 6시부터 3일 밤낮을 쉬지 않고 설법을 하였는데 대중들은 모두 침식을 잊고 설법에 빨려들었다는 것이다. 이 때 설법하신 내용 가운데 연화극락蓮華極樂 다시 오니 내 하나가 제일第一이다 삼천대천三千大千 세계조화世界造化 어느 누가 제도濟度하랴 내하나가 제일第一이다 삼세구품三世九品 조화造化하니 무량겁無量劫이 가이없다 춘화추풍春花秋風 끝없으니 부처님이 제일第一이다하는 구절이 남대충 대종사께서 읊어주신 대조사의 오도송悟道頌이다.

 

대조사께서는 이 한 구절마다 수 시간씩 해설을 하여 주었다. 때로는 노래하듯이 때로는 춤이라도 출 듯한 기분으로 설하시니 청중들도 환희에 싸여 들었다고 한다. 그 내용으로는 33천 이야기며 불교경전, 각종 신통과 천문, 지구에 대한 이야기 등 온갖 설법이 담겨 있었다. 또한 버스 3백대가 이 절 앞에 온다든가, “영춘까지 철마가 왕래한다는 등 당시로서는 믿기 어려운 예언적 말씀도 많이 있었다고 한다. >

 

이상이 <오도기략>을 통해 살펴본 대조사의 대도大道 성취 과정인데, 이 과정의 일부를 직접 지켜본 문성 스님께서 기억하는 시기가 이와는 달라 규명이 필요하다. 스님의 전언에 의하면 대조사께서 대각을 성취하여 3일 밤낮을 설법하신 때는 1956년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1951년도는 어떤 근거에서 나온 연도인가? 문성 스님은 대조사께서 여의생 마을에 들어가신 때부터 사중寺中의 시중을 많이 들었지만 출가하여 본격적으로 대조사의 공양을 전담하게 된 것은 195216세 때의 일이라고 한다. 때문에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그 전 해인 51년도에 밤하늘이 대낮같이 밝아지고 항아리만한 큰 별이 대조사의 뱃속으로 들어갔다는 말은 전해 들어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것을 당시에는 성불이라고 표현하였는데 그 이후에도 대조사께서는 피나는 정진을 계속하였다는 것이다. 그 때 보이신 대조사의 정진력은 범부로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것이었다.

 

대조사께서는 공양시간이 따로 없이 정진만 하였기 때문에 대조사의 공양을 책임지고 있던 문성 스님으로서는 잠깐 화장실에 다녀올 때에 맞춰 공양을 올려야 하는데 그 때를 놓치면 끼니를 그냥 거른다는 것이다. 또한 가을걷이 때를 제외하고는 1년 내내 휴식이 없고 여름에는 입고 있던 삼베옷이 썩어서 냄새가 날 정도로 수도에만 전념하였다고 한다. 그렇게 5년을 계속 정진하신 끝에 1956118일에 위에서 묘사한대로 대각을 성취하고 3일 밤낮을 설법하였는데 그 자리에 문성 스님도 함께 계셨다는 것이다.

 

앞 뒤 정황으로 보아 문성 스님의 기억이 정확하고 <오도기략>은 정리할 때 두 사실을 혼동한 것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인다. 실제로 <오도기략>에서 대조사께서 대각을 성취할 때의 묘사는 사건의 진행이 날짜나 시간 순서대로 되어 있지 않고 조금 혼란스럽고 애매하게 되어 있기는 하다. 불교의 수행에서 대각을 성취한다는 것은 가장 큰 일이므로 이 부분은 추후에 다른 이들의 증언을 더 청취하여 정확하게 밝혀놓을 필요가 있다.

 

이렇듯 대조사께서 대각을 성취한 뒤부터 1974427일에 열반에 드시기까지 중생제도를 위해 펼치신 행적은 다음 장에서 서술한다.

 

 

 

 

 

 

 

. 대조사大祖師의 업적

 

 

 

 

 

 

 

대조사께서 대각을 이루신 뒤에 각종 고통을 안고 찾아오는 신도들을 갖가지 지혜와 방편으로 구제해주신 사례들은 구전되는 것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하지만 여기서는 모든 중생들이 불법을 믿고 수행하여 이 땅을 청정 불국토로 만들기 위해 시설해 놓은 기간적基幹的 사업과 제도만을 고찰하고자 한다. 이 내용은 박형철 참의원장이 쓴 <불멸의 등명>이 주 자료가 되었다. 박원장은 1967년에 대조사 문하에 입문한 뒤 1968년도에 초대 중앙신도회장을 맡아 종단의 주요한 일들에 깊게 관여하였고 특히 1979년도에 기관지 천태종보를 창간한 때부터 편집주간을 계속 맡아 종단의 외형적 사업이나 행사에 대한 자료를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고 그것을 담아낸 것이 <불멸의 등명>이기 때문이다.

 

 

 

 

1. 천태종 중창重創 및 총본산의 건립

 

 

 

 

대조사께서 대각을 성취한 뒤 하화중생下化衆生을 위해 고안한 제도나 방법은 매우 많지만 첫 번째로 열거해야 할 것은 중생 구제행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종단과 총본산의 건립이다.

 

대조사의 중생구제행이 천태종이라는 틀로 자리잡은 것은 1966830일 종의회에서 종헌종법을 제정하여 천태종의 중창을 선포하고 다음 해 124일 정부에 종단등록을 마친 것이 기점이 된다. 천태종을 중창한다는 것은 단순히 고려 때 뛰어난 전통과 교리체계를 갖고 융성하였던 종단을 이 시대에 되살린다는 데에만 뜻이 있는 것이 아니다. 조선조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왜곡된 이 땅의 불교를 튼튼하게 재건하려면 뿌리부터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는 의미가 담긴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것은 기존의 자산이나 권위에 의존하지 않고 순전히 자신이 성취한 법력法力과 원력願力으로 불교의 큰 진리를 이 땅에 올바르게 구현하려는 시도이다.

 

또한 종단이 유지되기 위해서 그 외형적 토대가 되는 것이 바로 총본산 구인사이다. 구인사가 근본 도량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부지와 편리한 교통, 그리고 무엇보다도 뛰어난 지세地勢가 필수이다. 대조사께서는 일찍이 현 구인사의 터전인 구봉팔문九峰八門 연화지蓮華地가 불연지佛緣地임을 관찰하시고 첩첩산중이었던 이곳을 찾아 각고의 수행을 하였다. 그리하여 이곳에서 대도大道를 이룬 뒤 총본산 건립을 차근차근 진행하였다.

 

먼저 구인사와 영춘간 도로를 닦아 1967년도에 개통하고 영춘면까지 운행되던 정기노선 버스를 구인사까지 연장토록 추진하여 신도들의 왕래가 한결 수월하도록 하였다. 이어서 홍수가 져서 강을 건너지 못할 때를 대비하여 1973년도에 험준한 보발재에 도로를 개설하였다. 또한 시간 날 때마다 신도 대중들과 함께 황폐한 산에 나무를 심어 197346일에는 2백만 본 조림달성 기념식이 있었다. 이렇듯 꾸준하게 펼친 식수植樹 불사佛事는 이후 국유림이었던 임야를 구인사의 부지로 확보하는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한편으로는 신도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을 예견하고 이에 맞추어 대형 주차장과 건물들을 지어나갔다. 1967년 총무원 청사를 필두로 설선당, 조실, 판도암 등을 계속 지었는데 1969년 한 해 동안에만 10여 동의 각종 건물을 세울 정도로 급속히 건축불사가 이루어졌다. 이 불사는 그 위치와 건축양식, 구조 등이 모두 대조사의 구상에 의한 것이었다. 대조사 열반 뒤에 건축된 설법보전과 일주문, 사천왕문 등도 이미 재세시에 계획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대조사께서 열반에 들기 3년 전의 교세를 보면 신도수 158천여 세대에 건물 22개동 439, 임야 506정보, 경작지 42,500평으로서 대 종단으로 자라날 기반을 이미 다 갖추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2. 대승적 수행修行체계의 확립

 

 

 

 

중창된 천태종이 조선과 일제를 거치며 왜곡된 불교를 일신하고 현대에 맞는 불교를 정착하기 위해 새롭게 일으킨 종풍宗風의 핵심은 바로 새로운 수행 가풍에 있다고 할 것이다. 대조사께서 제정하신 천태종의 수행체계는 수지하는 계율과 참선의 방법, 그리고 일상의 생활방식에까지 모두 대승大乘의 사상에 입각하여 하나로 관통하고 있다.

 

우선 수지하는 계율이 대승계大乘戒이다. 종단에서는 19691월 설선당說禪堂에서 천태종도로서 지켜야 할 생활규범의 선서식을 가졌는데, 상월 대조사께서 10개 조의 규범을 설하고 이를 참석한 대중으로 하여금 지니고 지킬 것을 선서케 하는 의식이었다. 그 내용은 첫째, 모든 생명을 애호하고 자타의 생명가치를 존중한다. 둘째 남의 권리와 소유를 침해하지 않고 정의의 생활을 한다 아홉째, 성내거나 원망하는 마음을 여의고 인욕과 관용의 마음을 지닌다. 열째, 미망迷妄과 망견妄見을 버리고 인과의 도리를 믿으며 정리正理를 어기지 않는다는 것이니 바로 십선계十善戒를 수지토록 한 것이다.

 

현재 불교계에서 계율의 문제는 자못 심각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대다수 불교 종단은 대승을 표방하면서도 출가하면 비구 250, 비구니 348계의 구족계具足戒를 수지토록 하고 있는데 이것은 실정에 맞지 않는 소소한 부분까지 규정하고 있어 현실적으로 다 지킨다는 것이 불가능한 소승계율小乘戒律이다. 구족계를 지키기 위해서는 세간을 벗어나 두타행을 행해야 겨우 가능하고, 대중 가운데서 보살행을 하려면 구족계는 깰 수밖에 없는 모순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일찍이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열반에 드시기 전에 아난에게 사소한 계율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는데 아난은 사소한 계율이 무엇인지 확인하지 않아 그 복잡한 계율이 지금까지 내려오게 된 것이다. 하지만 십선계는 대승과 소승, 출가자와 재가자가 공통으로 수지하는 총상계總相戒로서, 불교 수행에서 지켜야 할 것은 다 포괄하고 있다. 대조사께서는 일찌감치 이 문제를 꿰뚫어보시고 승속僧俗이 함께 십선계를 지키도록 하여 지금도 천태종에서는 출가승들이 십선계를 수지하고 있다.

 

두 번째로 천태종에서는 대승의 수행인 관세음보살 염송을 하고 있다. 흔히 기도라고 부르는 관세음보살 염송이 참선과 다른 것이라고 오해하는 이들도 많은데 들어가는 방법의 차이일 뿐이지 깊은 삼매에 이르면 다 똑같이 마음자리를 관하는 것이 핵심인 대승선大乘禪인 것이다. 때문에 선경禪經에 보면 수행자의 근기가 낮고 죄업이 무거울 때는 염불삼매를 통해 성불成佛에 이른다고 하였고 천태대사는 염불수행은 공덕이 광대하며 제보살菩薩들이 닦는 수행이라고 밝히고 있다. 특히 관세음보살은 33응화신을 나투어 중생의 재난을 구제해 주는 보살로서 그 명호를 수지하는 것은 어려움을 이기는 방법으로서도 뛰어난 것이라고 <법화경> 등에 설해져 있다. 석가모니 재세시에도 다양한 선정법으로써 제자를 지도하였는데 대조사께서는 여러 가지 참선법을 연구하여 제자들과 함께 실천해본 끝에 관세음보살 염송이 가장 적합하다고 결론짓고 종단을 세운 이후에는 모두 이 수행법을 실천하고 있다.

 

그리고 이 관음수행은 출가자나 재가자의 구별 없이 똑같이 행하는 수행법이다. 우리나라 불교의 병폐 가운데 하나가 수행이란 출가자가 하는 것이고 재가자는 출가자와 불보살께 공양을 올리는 신도信徒, 즉 단가檀家라는 인식이 아직도 널리 퍼져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출가와 재가, 참선과 생활이 본래 다른 것이 아니라 마음의 차이에 불과한 것이라고 보는 대승불교에서는 그런 분별은 망상일 뿐이다.

 

세 번째로 천태종에서는 수행자와 신도의 구별 없이 모두 생활과 수행을 겸한다. 출가자들은 가정생활은 하지 않지만 낮에는 농장이나 목장, 사무실 등에서 일을 하고 밤에 수행하며, 재가자들은 사회의 생업과 가정생활에 종사하면서 역시 밤에 수행을 하도록 지도한다. 매일 하지 못하면 달마다 있는 특별 기도주간이나 연 2회 있는 안거주간에라도 정진을 하도록 권한다. 이렇듯 승속僧俗이 함께 주경야독晝耕夜禪을 실천하며 내가 닦아 내가 이룬다는 자력수행을 행한다. 이러한 것들은 새로운 방법이 아니고 모두 경전이나 불교의 전통 속에 있던 여러 가지 가운데 현대에 적합한 대승적 방편들을 취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앞서 종단 초기에 구인사 부지 확보를 위한 식수植樹 불사나, 도로관개건축불사 등은 대부분 대조사께서 직접 지휘하고 신도 대중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진 것인데 이것은 단순한 불사가 아니라 모두 수행의 일부분임을 대조사께서는 강조하였다. 참선參禪과 작복作福이 별개인 것이 아니라 일하는 과정 하나 하나가 모두 수행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중국 선종의 전통인 일하지 않으면 먹지 않는다[일일부작一日不作 일일불식一日不食]”는 정신과 같은 기저에 서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계율과 수행과 일상생활을 하나로 꿰고 있는 원리는 바로 대승적 사상으로서 그것은 보살들이 행하는 진속불이眞俗不二 처염상정處染常淨의 대승적 수행체계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3. 현대적 교화敎化제도의 수립

 

 

 

 

천태종의 교세는 신도나 말사의 숫자보다는 전 종도가 일체심을 갖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많은 이들의 지적이다. 그것은 물론 대조사의 깨달음에서 비롯된 위신력과 그 법통을 이은 종정 스님들의 지도력에 기인한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이를 체계적으로 전달하고 대중의 뜻을 수렴하는 조직이 받쳐주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교화체계의 기초는 대조사 재세시에 이미 다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 체계란 총본산을 중심으로 전국의 대도시에 지부가 있고 그 아래에 지회와 분회가 조직되어 상하왕래가 원활하게 되는 것이다.

 

지부, 지회 등 각급의 신도회는 자력으로 교통이 편리한 곳에 사찰과 회관을 건립하여 신행생활을 영위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또한 본산에서 법사를 초빙하여 정기적으로 법회를 실시함으로써 교학적 교양과 신앙의 깊이를 더해가는 제도도 갖추었다. 대조사께서는 60년대 중반부터 영월, 단양, 영주, 북평, 대구, 부산 등의 법회에 직접 참석하여 설법을 하였고 이후 법사들을 양성하여 법회에 참석토록 하고 있다. 법사는 스님 뿐 아니라 재가자들 가운데서도 일정한 교육과정과 시험을 거쳐 선발된다.

 

이와 함께 사부대중이 모두 참여하여 종단과 사찰을 운영하는 체제도 대조사에 의해 시작되어 다른 종단의 귀감이 되고 있다. 종단의 주요 사안을 결정하는 종회에는 출가자와 재가자, 남성과 여성이 모두 참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현재는 사부대중 가운데 우바이가 빠져 있으나 각 사찰을 운영하는 신도회에서는 여성들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는 이끄는 대로 무작정 따라가는 수동적 신앙이 아니라 직접 겪어보고 참여하는 적극적 신행을 유도하는 것이고, 아울러 여성들이 훨씬 능동적이 된 현대사회의 추세에 부응하는 것이기도 하다.

 

천태종의 신도가 강한 결속력을 갖고 신행생활에 적극 참여하도록 이끄는 장치로서 대조사께서 고안한 것 가운데 또 하나가 입교법회 및 신적信籍 제도이다. 과거에는 그냥 아무 절에나 마음 내키는 때에 가서 시주를 하거나 불공을 올리면 불자佛子라고 인식하였는데 천태종에서는 반드시 총본산인 구인사에 가서 입교법회를 치르고 신도카드를 작성토록 한다. 이를 통해 천태종의 기본교리와 종지를 교육받고 또한 스님의 지도에 의해 만3일간 관세음보살 염송을 직접 겪어보도록 하는 것이다. 이 교육이 끝나면 자신의 생활 터전에서 가까운 지역 말사에 소속되어 법회, 불사, 관음주송 등의 신행생활을 영위하는 것이다.

 

이밖에 전 종도들이 행하는 신년의 본산 참배, 부처님 오신날의 제등 행렬 등도 모두 대조사에 의해 창안되어 현재까지 이어져 오는 천태종 특유의 현대적 신행제도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현재 종단에서 언론기관과 연구교육기관을 설립하여 홍보와 불교 교육에 힘쓰는 것도 미래를 내다본 대조사의 혜안에 의해 모두 계획되어 있던 사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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