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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난 의술인

유마경의 성자 유마힐거사

작성자작약|작성시간15.03.24|조회수328 목록 댓글 0

 

 

 

 

유마경과 유마거사

 

<유마경>은 고대 인도의 상업 자유도시 바이살리에 살고 있던 재가신자 유마거사(維摩居士)를 중심으로 하는 희곡풍의 대승불교 경전이다.

 

유마(범어경 Vimalakiti)는 정명(淨名) 혹은 무구칭(無垢稱)으로 번역하며, 경전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이 경의 주인공인 유마거사는 발지국(跋祗國) 릿차비(Licchavi)족의 수도인 바이살리 성에 살았다고 하는 대부호이다.

 

유마의 인격에 대해서는 이 경의 제2장 부사의한 방편[方便品]에 그 면모가 어느 정도 드러나 있다.

 

그는 불교에서 말하는 소위 거사(居士)로서 불교의 깊은 뜻에 통달해 있었고 삼계에 대한 집착을 여의었으며, 처자를 거느리고 있으면서도 청정한 행을 닦는 일을 한시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가난한 이에게는 재물을 나누어 주고, 이교도를 보면 바른 가르침을 일러 주었으며,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서라면 술집과 노름판에도 끼어들었으나 정기(精氣)를 흩뜨리지 않았고, 궁중에도 들어가서 궁인들을 교화하는 등 이르는 곳마다 명쾌한 토론과 침묵의 법문, 불이법문(不二法門)으로 묘법을 전하는 일에 늘 힘썼다.

 

동진(東晋)의 승조(僧肇)는 그를 가리켜 “법신(法身)의 대사(大士), 그 권도(權道, 방편)가 변화무쌍하여 종적에 걸림이 없네.” 하고 찬탄해 마지않았다.

 

 

유마경의 줄거리

 

바이살리 시의 대부호인 유마거사가 병으로 몸져누워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병문안을 가게 된다.

 

그 무렵 그의 집에서 12킬로미터쯤 떨어져 있는 망고농원에 세존이 거주하면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고 있었다.

 

세존은 유마거사가 병으로 누워 있다는 소리를 듣고 사리불 등 십대제자에게 차례로 유마거사의 병문안을 가지 않겠느냐고 권유하지만 그들은 한결같이 ‘자신은 병문안 할 자격이 없다.’라고 사절한다.

 

그 이유는 그들은 전에 유마거사로부터 수행과 설법 등에 대하여 엄하게 잘못을 지적받기도 하고 때로는 질책받기도 하는 등 호된 지적을 받았기 때문에 도저히 문안 갈 자신이 없다는 것이었다.

 

세존은 마지막으로 문수보살(文殊菩薩)에게 권유한다.

 

문수보살은 “저도 유마거사를 상대할 법력은 없지만 세존의 성지(聖旨)를 받들어 문안을 가겠습니다.” 하고 어쩔 수 없이 세존의 청을 받아들인다.

 

문수보살이 문안을 가기로 결정되자 그 때까지 사절했던 많은 사람들은 유마거사와 문수보살의 불꽃 튀는 진지한 법담(法談)을 듣고자 모두 동행하겠다고 나섰다.

 

이어 유마의 거처에 도착한 문수보살은 먼저 세존의 위로 말씀을 전하고 나서 유마거사에게 병의 원인과 그 차도에 대해 질문한다.

 

이에 대해 유마는 “문수보살이시여, 이 세상에 어리석음이 남아 있는 한 그리고 존재에 대한 집착이 남아 있는 한 제 아픔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입니다.

 

모든 중생들이 아픔이 남아 있는 한, 제 아픔 역시 앞으로도 계속 될 것입니다.

 

혹시 모든 사람들이 병고에서 벗어나게 되면 그때 비로소 제 병도 씻은 듯이 낫겠지요.

 

문수보살이시여, 보살이 기꺼이 윤회 가운데 뛰어드는 것은 오직 중생을 위해서이며 제가 아픈 것도 사실

은 저 윤회가 원인입니다.

 

따라서 모든 사람들이 병고에서 벗어나게 되면 비로소 보살의 병도 씻은 듯이 낫겠지요.”라고 답한다.

 

또 문수가 병이라는 것에 대해 질문을 하자 유마는 이에 대해 “병이란 모양도 없고 볼 수도 없으며 몸을 벗어났기에 몸에서 생긴 것이라고도 말할 수 없고 마음도 벗어났기에 마음에서 생긴 것이라고도 말할 수 없다.”라고 답하고 있다.

 

이어서 “흙, 물, 불, 바람 네 가지(四大) 요소로 이루어진 이 몸 가운데 어느 곳에 병이 난 것인가.”하는 문수의 질문에 유마거사는 “문수보살이시여, 중생이라는 요소 모두에게 탈이 있으니 결국 그것이 제 병의 원인인 셈입니다.”라고 답하고 있다.

 

이어서 벌어지는 불이(不二)법문의 담론은 가히 <유마경>의 절정이라 할 만하다.

 

불이법문이란 어떤 것인가 하는 유마의 물음에 그 자리에 모인 32명의 보살은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한다.

마지막으로 문수보살이 불이법문에 대해 설명하기를 “어떠한 것도 논하지 않고 말로써 이야기할 수 있거나 나타내 보이는 것도 아니고 설하여 나타내 보이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말하지 않는 그것이 바로 불이법문”이라고 답한다.

 

이렇게 차례차례 32명의 보살들이 다 이야기를 마친 뒤 문수보살은 유마거사에게 “당신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하고 말한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유마거사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까 하고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유마거사는 눈만 멀뚱하게 뜬 채 묵묵부답 통 말이 없었다.

주위는 정적이 감돌고 있었다.

그러자 돌연 문수보살이 “정말로 훌륭하다. 문자도 없고 말도 없는 이것이야말로 불이의 법문에 들어가는 길이다.”하고 감탄한다.

 

유마거사의 침묵은 그대로 불이법문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이 침묵[一黙]은 많은 설명이 필요 없었다.

 

이러한 유마거사의 불이법문은 후대 중국의 선승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중국의 선종에서 유마경을 중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출처 : 민족사판 불교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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