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 월간 정신세계의 주제가 ‘기 - 인간과 우주를 여는 열쇠’입니다. 기라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부터 말씀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우주는 ○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기(氣)작용에 의해 생성, 성장, 소멸을 하면서 운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氣)작용의 본질은 ‘도는 운동’으로써 소립자의 운동에서부터 은하의 운동에까지 공통되어 있어 우주생명의 숨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근대에 이르기까지 에너지의 세계는 ‘에너지 보존의 법칙’을 정립했고, 질량의 세계에서는 ‘질량불변의 법칙’을 정립하였으나, 아인슈타인의 등가원리(E=mc2 )에 의하여 에너지의 세계와 질량의 세계가 하나로 통합되면서 시간과 공간에 이르기까지 대통일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우주의 본질적인 운동이 도는 운동을 떠나서 설명할 수 없게 됨으로써 시간의 개념도 회귀 또는 회로(回路)의 개념을 도입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시공의 직선개념에서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베풀면 베풀수록 자신에게서 멀어져 버리고 돌아오지 않는 것이 되며, 설령 나쁜 짓을 저질러도 그에 상응하는 벌이 되돌아 올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베푸는 데는 인색하고, 저지르는 데는 과감하게 되겠지요.
그러나 시공의 회로 개념에서는 자기가 베푼 것은 반드시 돌아오고, 자신이 저지른 것은 어김없이 자신에게로 벌이 되어 돌아옵니다. ‘우주 만물이 다 돈다’는 회귀의 사상이야말로 혼돈하고 대립하고 인색한 자기 본위의 현대 인류를 넉넉하게 하여 이웃을 사랑하고 이해하고 베풀고 함부로 악을 저지르지 않게 할 수 있는 미래 사상의 요체라고 생각합니다.
이 사상이 인류에게 어떻게 기여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우주는 분화(分化)된 기(氣)작용의 간섭에 의해 진화(進化)합니다. ‘도는 운동’은 자장이 걸려 있고, 원심력과 구심력의 발란스에 의해 유지되고 있는 중심이 있어 수축과 팽창(호흡)을 반복하게 됩니다. 두 힘의 대립 또는 상보 관계는 기(氣)의 농밀을 좌우하여 자기진화(自己進化)의 바탕이 되며, 좌(左)회전 또는 우(右)회전이라는 양극(兩極)이 서로 상보, 대립, 조화를 이루면서 우주의 모든 것을 창조(創造)하는 동력(動力)이 됩니다.
이는 우리 인류가 대립하는 세계, 경쟁하는 세계의 양극을 대통합하여 창조의 동력이 되게 하는 것이 융합과 조화, 화해와 포용의 ‘회로’ 사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가 겪고 있는 불평등, 불균형, 기아와 공해, 범죄들로부터 나눔의 사상, 봉사와 사랑의 실천, 스스로 허물어지지 않고 우주적 진화에 동참하여 새 인류로의 도약, 새 세상의 개화(開化)에 기여하리라 생각합니다.
무엇을 추구하며 산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화두인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느냐?’라는 물음과도 통하는 것 같습니다.
우주는 빅뱅(Big Bang)이라는 빛의 대폭발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근원은 빛이며, 우주의 모든 것은 빛의 변형체인 것입니다. 그것을 바꾸어 말하면 빛은 물질이 아니고 각(角)을 지니고 있지 않으므로 각이 없는 ○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며, 물질은 각을 유지하고 있어 모양을 이루는 □로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에서 □로 왔다가 다시 ○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즉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는 형이 없는 무형(無形)에서부터 형(形)을 이루어 유형(有形)이 되었다가 다시 무형(無形)으로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한글에서는 ○에서 오는 것을 ‘옴’ 이라고 쓰고 물질계인 □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움’이라고 씁니다. 우리 모두에게 태초부터 내재하고 있는 우주의 본질, 우주의 ‘참’을 세상에서 바르게 움 틔워 진리를 실현하고 우주적 진화(進化)에 기여하는 것이 진리를 추구하고,도를 구하고, ‘참’을 실현하려는 자들의 목표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구도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각기 나름대로 자기의 길을 찾아가고 있는 것처럼도 보이고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도’라는 궁극의 자리를 향해서 제대로 가고 있느냐 하는 것을 스스로 알 수 있는 어떤 증거들이 있습니까?
구도를 한다는 것은 상당한 위험에 도전한다는 것입니다. 우선 미지의 것에 대해서 내 존재를 던진다는 것 자체가 위험인 동시에 기회이지요. 지금 주위를 둘러보면 곳곳에서 ‘이게 옳다, 저게 옳다’ 떠들고 있는 데가 너무 많습니다. 또 그것을 누군가가 판정해줄 어떤 공인된 무엇이 있는 것도 아니구요.
어떤 것이 옳은 것인가. 옳지 않은 것인가 그것은 참 구분하기 힘든 문제입니다. 다만 순리와 이치에 맞게 가는 길은 가장 저항이 적은 길입니다. 가령 내가 운동을 하는 데 가장 저항이 적은 길을 택한다면 태극권 같은 것이 되겠지요. 가장 이치에 맞으니 저항이 적으므로 나를 상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대자연 속에서 무엇이 바른 것인가, 무엇이 우주의 작용과 가장 조화로운 것인가를 찾는 길은 가장 저항 없는 길을 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항이 가장 적게 걸리는 곳에는 무엇이 있냐하면 우리의 양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도(修道)를 하는 데도 너무 억지 수도를 하면 좋지 않다고 봅니다. 자연스럽고 조화롭고 거리낌이 없고 저항이 없는 곳으로 가는 것이 가장 순하고 가장 좋은 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선 미지의 것에 대해서 내 존재를 던진다는 것
자체가 위험인 동시에 기회이지요.
자연스럽고 조화롭고 거리낌이 없이 저항이 없는 곳으로 가는 것이
가장 순하고 가장 좋은 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총재님께서는 단군사상과 한글 등 우리의 전통사상과 전통문화에 대해 조예가 깊으시고 관심이 많다고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전통사상이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조망될 수 있는지요. 또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에는 문화 전쟁, 영적 전쟁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말씀을 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점에 대해 말씀해 주시지요.
지금 이 시대가 이렇게 혼란에 빠져 있는 이유는 그것은 가치관에 대한 붕괴현상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무근지화(無根之花)의 모습입니다. 이제 우리는 뿌리를 새롭게 정립해야 될 때가 되었습니다. 현재 우리 민족에게 남아 있는 민족의 진정한 얼은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뜻 있는 사람들이 남아 있는 뿌리나마 찾아서 계승 발전시키려 하면 다른 쪽에서는 손가락질을 합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지금이라도 깨어있는 사람들이 나서서 민족의 정신문화에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렇게 계속 가거나 현 상태를 방치한다면 서양은 동양의 정신 문화를 본받으려고 찾아왔다가 ‘별 거 없군’ 하면서 돌아가게 됩니다. 그럼 그 사람들은 자기들의 새로운 정신문화를 구축하겠지요. 서양의 물질 문명에 짓밟혀 왔던 우리가 이제 정신문화 또한 짓밟히게 됩니다. 우리 것이 없으니까요. 벌써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수많은 생을 윤회와 환생을 거듭하며 진화하는 영혼들에게 한 생애에서 하나의 조건으로 부여받은 민족성이 어떤 역할을 할까, 하는 생각도 있는데요?
절대와 상대라는 개념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절대라는 개념을 현실의 상대적인 세계와 별개의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별개의 것이 아니고 상대계의 세계와 이어진 한 단계 높은 차원에 있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이어져 있는 것입니다. 분리되어 있다면 상대계에서 일어난 일이 절대계로 전달될 수 없고 또 절대계 또한 상대계로 전달이 안되겠죠. 절대계와 상대계가 서로 공명하고 전달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런 모습으로 이어져 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뿌리는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이어져 있으므로 내가 어느 민족에서 출발하고 어떤 사상에서 출발하여 절대계를 향해 움직였다는 것은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정신을 얘기하면 세상 사람들은 비과학적이다, 신비주의다, 근거가 없다 해서 도외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치를 깨닫지 않은 사람들은 보여주지 않으면 믿을 수도 없고 따를 수도 없거든요. 정신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이 바로 물질세계에 이렇게 연결돼서 일어난다는 것을 실제로 보여주신다고 듣고 있습니다.
정신세계를 이상하게 오도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가 쉽게 접하고 그 중심에 있는 근본 진리를 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산업을 일으키고 경제 활동을 하는 사람도 있어야겠지만 보이지 않는 영적인 부분을 처리해 가는 사람도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믿어야 할 것을 믿지 않아도 위험하고 믿지 말아야 할 것을 마구 믿어도 위험합니다. 그러면 어떤 것을 믿어야 할까요? 결과를 이루어 낼 수 없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미사어구로 치장되어 있더라도 의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에게 믿음을 강요하고 실제는 이루지 못하면서 끝내 그 속에 기대하고 살아가게 만드는 그런 신앙집단이 많습니다. 그런 곳에서는 이루어지면 오히려 이상한 거고 안 이루어져야 신비로운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추구한다는 것은 과학적이고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사고가 없다면 자꾸 이상한 허구의 세계로 빠져들어 갑니다. 그래서 위험합니다. 미지의 것을 추구한다는 많은 사람들이 전혀 엉뚱한 길로 빠져들거나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부호 투성이가 되고 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뭐든지 과학적으로 생각해라, 합리적으로 생각할 수 없으면 의심을 하라’고 말합니다. 모든 것을 파악할 때는 글자 맞추기 퍼즐처럼 가로줄, 세로줄이 다 맞아야 합니다. 가로줄은 답이 맞는 데 세로줄은 안 맞는다 하면 그것은 단편의 사실일 뿐 전체적인 진리가 아닙니다. 나는 내가 지금 추구하고 있는 것을 과학이라고 생각하지, 어떤 특별한 세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보이는 세계를 존재케 하는 보이지 않는 세계. 기(氣)라고도 보고 영(靈)의 세계라고도 보는데, 우리 인류가 더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개발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기 조정이라는 특별한 작업을 통해 세상의 변화를 이끄는 많은 일을 하고 계신 걸로 듣고 있습니다. 기 조정에 대한 전반적인 말씀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기의 세계라는 것을 사람들은 자꾸 지금 현실의 세계와는 별개의 것으로 이해하는 데, 우리가 존재하는 모든 근원에 기작용이 들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기는 별개의 세계가 아니고 바로 우리가 존재하고 우리가 활용하고 있는 모든 존재와 그것을 받쳐주는 모든 터전과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틀들, 모든 것에 다 존재하는 바로 우주 그 자체입니다.
나는 기운영이라든지 기조정이라든지 하는 것을 어렵게 생각지 않습니다. 내가 작은 것을 움직여서 커다란 결과를 일으키면 사람들은 이해를 잘 못합니다. 그것 가지고 어떻게 저런 현상을 일으킬 수 있느냐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모든 사물의 중심에 있는 힘, 즉 ○력이 크면 클수록 그것을 조금만 움직여도 미치는 파장은 엄청나게 큽니다.
○력에 대해 말씀하셨는데요. 기조정, 기운영은 ○력에서 나온다. ○력의 힘에 따라서 세상에 미치는 영향이 달라진다고 하셨습니다. 듣기로는 기 조정을 통해 기후도 조정하고, 세상에 좋은 기운이 퍼지도록 기운을 조정하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솔직히 이번 인터뷰에서는 그게 핵심입니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는지? 이치도 궁금하고 실제로 그러한가는 모든 사람이 궁금해하는 것입니다.
옛날 성인들이 사람들에게 무슨 행복을 심어주고 업적을 남겨주고 그렇게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옛 성인들의 무엇을 했습니까? 첫째 ‘나는 이렇게 깨닫고 이렇게 왔다.’ 라는 자신들의 강한 확신을 우리 인류에게 던져 주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나의 사상을 체계화하고 합리적으로 구체화하여야 후세의 인류가 보편적으로 이것을 쓸 수 있게 되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모든 사람은 각자가 자기 생명장(生命場)이라는 구(球)와 같은 것에 갇혀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사상의 지평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자기가 바라볼 수 있는 영역을 넘어가 버리면 모든 것이 일직선상이 되어 버립니다. 우리가 하늘의 별을 보면 전부가 하늘에 붙은 걸로 보이지요. 그렇지만 거기에는 빛의 속도로 만 년, 십만 년, 백 만년 가야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는 것들입니다. 그게 다 똑같은 거리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은 감각 인식이 수용할 수 있는 범위의 지평을 넘어서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지금 이 시대의 인식의 지평을 넘어서는 그 이상의 것을 얘기하면 무슨 그 허무맹랑한 소리냐고 나에게 손가락질을 할겁니다. 어떻게 세상 사람들 각자의 생명장을 확대시켜주거나 영적 해방(자기들을 가두고 있는 비누방울을 터뜨려 줌)을 맞이하게 해 줄 수 있을까 하는 것이 나의 숙제입니다.
선생님께서는 현재 한울정신문화원 총재와 한울그룹 회장으로 계십니다. 최근 몇 년 전부터 현실 안에서 여러 가지 사업들을 하고 계신데, 일각에서는 ‘도인이 무슨 사업이냐’ 하는 시선도 있을 수 있을 텐데요.
옛날 선가에서 심우도(尋牛圖)라 하여 우리의 본래 면목을 소에 비유하여 소를 찾고 얻는 순서와 이미 얻은 뒤에 주의할 점을 설명한 그림이 있는데 그 당시에는 대단한 설득력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닙니다. 법문이라는 것은 그 시대 그 사람들에게 진리를 가르쳐 주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는데, 옛날 농경사회 당시의 법문을 이 정보화 사회에 와서도 그대로 반복하고 있습니다. 현대 사회는 자기가 직접 보고 참여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바로 자기 창조의 시대입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는 어리석은 믿음을 지니고 오히려 행복해하면서 살아 왔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인류는 미래에 병들지 않고 영원히 죽지도 않는 무한 능력의 신(神)을 창조하려 하고 있습니다. (버클리 대학의 아톰2 프로젝트).
내가 한 동안은 스스로 공부한 것을 사람들한테 얘기해 주는 일만 쭉 해왔습니다. 근래에 와서는 현실에서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일을 해봅니다. 결국 나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어떠한 것도 현실에서 증명해 내지 못하면 그것은 허구일 뿐입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미사여구를 쓰더라도 실천에 옮기지 못하면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그래서 지금 내가 여러 사업을 벌리고 현실 안에서 사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부를 축적하겠다는 그런 개념보다는 내가 얘기했던 것들이 현실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입니다. ‘기(氣)를 이렇게 조정하면 이렇게 되고, 이렇게 조정하면 이런 결과들을 불러올 수 있다’고 했던 말들을 실제로 보여주기 위한 일입니다.
끝으로 정신세계 독자들에게 한 말씀 해주십시오.
예전에 우리 나라에 한 천재가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하고 그에게 물었더니 ‘선인(善人)는 적분(積分)하고 악인(惡人)는 미분(微分)하면 된다’고 하더군요. 그처럼 우리 미래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사람들이 많이 생기고, 악한 사람들이 적어지면 좋은 세상이 되고, 그 반대가 되면 좋지 않은 세상이 되겠지요. 그래서 사람들이 서로 북돋아 주고 끌어주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 갔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