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마크리슈나는 붓다의 신성을 받아들였고 그의 가르침과 우파니샤드의 내용의 유사성을 지적하곤 했다. 또한 자이나교를 창설한 티르탄카라와 시크교의 위대한 열 명의 구루들에게 커다란 존경심을 표명했다. 그러나 그들을 신의 화신이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스승은 시크교의 구루들이 고대 인도 자나카 왕의 환생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방에 티르탄카라 마하비라의 작은 조상과 그리스도의 초상을 두고,
그 앞에서 아침 저녁으로 향을 피웠다.
그들의 교리에 정식으로 입문하지는 않았지만 라마크리슈나는 이렇듯 힌두교 이외의 종교들의 신을 실현했다. 그는 어떤 교리도 따를 필요가 없었다. 그는 세상 여러 종교들의 사상과 신에 관한 한, 권위를 갖고
말할 수 있는 종교의 대가가 되었다.
그는 말했다. "나는 모든 종교-힌두교, 이슬람교, 기독교-를 두루 실천해 보았다. 그리고 여러 힌두교 종파들의 길도 따라가 보았다. 그리하여 모든 종교가 저마다 길은 다르지만 그들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동일한
신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대들도 한 번은 여러 종교를 시험해 보고 각기 다른 길을 걸어가 보아야 한다.
나는 도처에서 힌두교도나 이슬람교도, 브라만교도, 바이쉬나바 그리고 여타의 종교인들이 종교의 이름으로 서로 투쟁하는 것을 본다. 그러나 그들은 크리슈나라고 불리는 존재가 곧 시바이며, 원천적인 에너지요, 예수이며 또한 알라이고, 무수한 이름을 불리는 동일한 라마임을 결코 생각해 볼 줄 모른다.
예컨대 수원지로 통하는 여러 길이 있다. 그 한쪽 길에서 힌두교도는 주전자에 물을 담으며 그것을 잘(Jal)이라고 부른다.
다른 쪽 길에서는 회교도는 가죽 주머니에 물을 담으며 그것을 파니(pani)라고 부르고, 또 다른 길에서 기독교인은 그것을 워터(water)라고 부른다.
이때 우리는 물을 잘이 아니라 파니 혹은 워터라고 말해야만 할까?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인가! 본질은 하나요, 그를 부르는 이름은 여럿이다.
모두가 본질을 찾고 있다. 기후 풍토와 성질과 이름만 다를 뿐이다. 각자 자신의 길을 걷게 하라. 만일 그가 진지하고 열렬하게 신을 알기만 원한다면, 그에게 평화가 깃들지니! 그는 틀림없이 신을 구현할 것이다."
라마크리슈나가 기독교의 길에서 그리고 이슬람의 길에서 명상을 할 때 그가 힌두교의 종교적 의식, 이를 테면 날마다 신전을 방문하는 일, 힌두교 신들의 이름을 낭송하는 일, 그밖에 헌신의 행위들을 일체 수행하지 않았다는 점은 자못 흥미롭다. 그는 심지어 자기 방에서 힌두교의 신과 여신들의 그림도 모두 치워버렸다. 이렇듯 그는 독실한 이슬람교도 혹은 기독교인도 자신의 영적 수행에 대한 성실성에 의해 신의식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해 보였다.
1867년, 라마크리슈나는 수행 생활에 지친 몸을 회복하기 위해 카마르푸쿠르로 돌아왔다. 평화로운 시골, 소박하고 꾸밈 없는 어린 시절의 친구들, 그리고 깨끗한 공기가 그에게 커다란 유익이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명랑하고 재치있고 다정하고 진실한 가다다르(라마크리슈나)를 다시 만날 수 있어서 즐거웠다. 물론
그들은 라마크리슈나가 캘커타에서 보낸 세월 동안 그를 덮쳤던 커다란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다.
이제 열네 살이 된 그의 아내 사라다 데비가 곧 카마르푸쿠르에 도착했다. 그녀의 영적 진보는 나이를 훨씬 웃도는 것이었고 즉각 남편의 영적 경지를 이해했다.
그녀는 그로부터 신에 대해 배우기를 열망했고 그의 시중을 들며 그와 같이 살기를 바랬다. 스승은 기쁜 마음으로 그녀를 제자로서 그리고 영적 반려로서 받아들였다. 이 며칠 간의 경험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줄곧 내 마음속에 지복으로 가득 찬 주전자가 놓여 있는 것처럼 느꼈습니다.
그 기쁨은 말로 다 할 수가 없어요."
<출처 : 책 라마크리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