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 센나(이븐 시나)
아비센나1)는 이슬람의 의사이며 철학자로, 이슬람 시대의 아리스토텔레스 학문의 대가였으며, 중세 유럽의 의학과 철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아비센나는 라틴어 이름이며, 본명은 이븐시나이고, 존경의 표시로 '의사들의 영주'라 불리기도 했다.
그는 유럽에서 현대의학이 시작되기까지 거의 700년 동안 누구나 인정하는 권위자였다. 그는 980년 오늘날 러시아 최남단에 위치한 부카라 부근의 아프샤나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압둘라는 발흐 출신이며, 그의 가문은 시아파의 이맘 이스마일의 자손이다. 아비센나는 어린 시절부터 학문에 두각을 나타내 11세에 이미 코란 정본과 아랍 고전을 섭렵했으며, 후에 이슬람의 법학과 철학, 자연과학, 논리학, 기하학, 의학 등 거의 모든 학문에 관심을 갖고 공부한 천재이다.
아비센나는 18세에 이미 의사로서 명성이 자자했고, 당시 통치자 만수르2)의 주목을 받아 궁정의사로 임명되었다. 아비센나의 치료법에 감탄한 만수르는 많은 희귀본들이 소장된 왕실의 도서관을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는 권한을 그에게 주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부카라로 돌아갔으며, 후에 새로운 후원자를 찾아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
아비센나는 잠시 키바의 통치자 마아문의 후원을 받았으나, 곧 카스피해 연안 주르잔의 통치자 카부스의 후원을 받게 된다. 이 시기에 아비센나는 논리학과 천문학을 가르쳤으며, 그의 첫 저서인 『의학규범』3)의 일부를 저술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오늘날의 테헤란 근방 레이로 이주해 의학 연구에 몰두 하였다. 특히 그는 하마단의 군주 아미르4)의 병을 치료한 뒤 신임을 얻었고, 그의 후원을 받아 『치유의 서』5)를 완성하였다.
아비센나는 아미르가 사망한 후 이스파한으로 이주했으며, 여생을 이스파한의 통치자 알라 알-다울라6)의 후원을 받으며 학문 연구에 전념했다. 그는 주위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학문 연구에 몸을 아끼지 않았으며, 결국 1036년 비교적 젊은 58세의 나이에 과로로 사망했으며, 하마단에 안장되었다. 아비센나는 중세시대 의학자로 큰 명성을 얻었고, 철학적인 관점에서도 동방 아랍의 최고봉이었으며,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 플라톤의 사고를 받아들여 이슬람 신앙을 새로운 철학적 개념으로 해석하였는데, '개인의 영혼은 영원히 멸하지 않는다.'는 그의 주장이 하나의 사례이다.
의학규범(1484년)
그의 『치유의 서』는 철학백과사전과 같은 것으로 윤리학과 정치학을 제외한 모든 영역을 포함하였으며, 논리학에서의 제l지향과 제2지향의 해석은 보편논쟁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그가 심리학에서 영혼의 기능을 분류한 것은 스콜라 철학에서 표준이 되기도 하였다. 그 밖에 의학과 철학, 신학, 기하학, 천문학 등에 관한 21개의 정본과 24개의 사본이 전해지고 있다. 대부분의 저서는 아랍어로 쓰였으나, 철학서의 일부는 모국어인 페르시아어로 기술하였다.
1020년 그가 집필한 『의학규범』은 갈레노스의 개념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바탕으로 편집한 책으로, 아라비아와 그리스의학의 집대성이며, 해부학과 관련된 위대한 업적은 갈레노스를 능가하였다. 『의학규범』은 라틴어로 번역되어 12~17세기에 걸쳐 유럽의 여러 대학에서 의학 교과서로 활용되었으며, 제35판까지 발간되었고, 중세 시대에 가장 널리 애용된 뛰어난 의학서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아비센나(이븐시나) - 의사, 철학자, 『의학규범』 (인물로 보는 해부학의 역사, 2015. 10. 15., 정석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