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돌프 슈타이너
종교가들은 한결같이 우리의 일상적 감각세계의 배후에 있는 또 다른 세계나 신적인 세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들의 말이 타당하다면, 도대체 그들은 어떻게 그 세계를 알 수 있었을까. 왜 그 세계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그것을 알면 우리의 삶이 어떻게 달라질까. 옛날 사람들은 이런 의문들을 어떻게 해결했을까.
슈타이너는 이런 의문들에 대해 결코 비유적으로 아리송하게 말하지 않는다. 그의 어투는 매우 단호하다. 예컨대 어떤 것을 '가능하다'고 말했다면, 그 방법을 우리 시대의 언어로 명확히 설명한다. 때로는 그런 어법 때문에 의심이 들 정도이다. 어떤 영적 스승의 말과도 그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는 '할!'하고 고함을 치지도 않고, 지팡이로 무지한 우리 중생의 대갈통을 내리치지도 않는다. 선적(禪的) 풍토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너무도 낯선 철학적 개념어들을 나열하고, 비(秘)자가 많이 든 낱말들을 애용한다. 논리에 투철하고 도덕이란 말을 무척 좋아한다.
근대를 뚫고 인식의 과학화 주창
우리나라에 소개된 수많은 영적 스승들의 글과 비교해 보면 슈타이너의 이질성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이 세상에 널려 있는 수많은 서적을 읽고 그 내용을 머리에 쑤셔 넣은 천재일까, 아니면 자신의 내면적 체험을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그런 언어와 논리를 선택한 것일까. 아마도 슈타이너의 스타일도 스타일이겠지만, 그가 활동했던 시대의 분위기도 많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H.P. 블라바츠키가 창설한 신지학(神智學) 주변에는 모더니즘에 한계를 느낀 젊은 지성들이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비록 열광적인 지지자는 아니었지만, 레닌, 아인슈타인, 슈바이처와 같은 근대 지성의 대표적인 사람들이 신지학 근처를 오갔다. 오늘날 거의 인기 학문에서 자리를 감춰버린 신지학이 일시적이나마 근대 지성들의 관심을 끈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그들은 이 우주와 '나'의 비밀을 알고 싶었다. 그러나 근대 과학은 그 길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산업혁명 이후 서구 사회가 달성한 가치 체계가 그들의 숨통을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근대 사회가 내포한 모순이 극에 달하고 있었다.
그런 모순이 세계적인 차원에서 폭발한 것이 바로 제1차 세계대전이다. 가난한 가정에서 어렵게 공부해야 했던 슈타이너가 후일 노동자 학교에서 강연 활동을 한 것도 그런 모순에 대한 자기 표현이었을 것이다. 옛날 같으면 노예 신분이었을 노동자들이 알고자 하는 인식의 욕구를 표출하고 있고, 또 그 욕구를 지지해주는 지식인 계층이 있었던 것이다.
슈타이너는 그들(근대적 혼의 소유자)에게 알맞은 표현 방법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 슈타이너 자신이 그렇게 찬양했던 괴테가 철학자이며 문학가이며 과학자였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슈타이너는 여태 종교에 머물고 있던 세계를 인식하는 길을 과학화하려 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의 의식에 일어나는 사건들을 자연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묘사하는 것과 같은 언어로 정확히 기술하려 했다.
'아카샤’를 통한 초감각적 세계 탐구
슈타이너는 영시(靈視:영적으로 봄) 능력을 가진 사람과 비의(秘儀) 입문자를 구별하였다. 감각적인 눈으로 보는 것을 넘어 초감감적인 세계를 인식하는 행위라고 해서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영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많다. 가끔씩 그런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도 있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가능한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가 바라본 것의 의미를 정확히 해석해내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슈타이너는 『누가 복음서 강의 - 붓다와 기독교』에서 그런 영적 인식을 세 가지로 구분한다.
영시(靈視) 인식 - 영의 눈으로 본다
영청(靈聽) 인식 - 영의 귀로 듣는다
직관(直觀) 인식 - 신(神) 안에 선다
영시는 말 그대로 영의 눈으로 보는 것이다. 영시 인식은 영적인 존재와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따라서 영적인 존재가 하는 말의 의미를 알아듣는다. 직관 인식은 '신 안에 서는 것'이다. 그렇다고 신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신이 행하는 바를 그대로 알 수는 있다. 이렇게 영적 인식의 단계를 나눈 후에, 슈타이너는 마태, 누가에 의한 복음과 요한 복음서의 차이를 해설한다. 그 가운데 영시(Imagination) 인식에 투철한 복음서가 바로 누가 복음서이고, 요한 복음서는 영청과 직관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 쓴 복음서라 하였다. 그것이 바로 공관 복음서와 요한 복음서가 확연히 다른 이유가 된다.
그러나 슈타이너는 그런 영적인 인식을 가진 사람이 기록한 문헌을 영적 탐구의 지침으로 삼을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오로지 영적 탐구의 지침으로 삼아야 할 것은, 그런 영적 인식 능력으로 보고 들으며 사고해야 할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 영적 세계, 즉 아카샤(Akasha)이다. 아카샤에는 이 우주와 지구와 모든 개인의 삶이 기록되어 있다.
그 아카샤의 기록을 읽고 해석하면 인간의 비밀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그 기록을 읽으면,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나는 누구인가,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해답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인식의 길이다. 슈타이너는 그 '아카식 레코드'를 인식하는데 필요한 수행 방법도 제시하고 있다. 『어떻게 초감각적 세계의 인식을 획득할 것인가』(또는 『초감각적 세계 인식』)는 그 인식을 위한 수행 방법을 제시한 슈타이너 사상의 핵심 저술이다.
신념에 찬 복음 강의로 주목을 끌다
그렇다면 슈타이너는 그런 인식을 얻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일까. 슈타이너는 확신에 찬 어투로 {그렇다}고 말한다. 이런저런 방법으로 수행하면 이저저러하게 된다는 식으로. 그리고 슈타이너는 {나는 보았다}고 분명하게 말한다. 이 부분에서 근대적 사고방식에 젖은 우리는 혼란을 겪게 된다. 슈타이너는 자신의 의식에 뚜렷이 떠오르는 것을 이야기한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경험을 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누가 복음서 강의에서 슈타이너는 자신의 그런 영시 능력을 활용하여, 공관 복음서인 마태 복음과 누가 복음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어린 시절에 대한 기술상의 차이점을 들면서, 그것을 있는 그대로의 묘사라 인정한다. 그리고 한 인물에 대한 모순된 두 기술은 두 사람의 예수이기에 가능했다고 말한다. 또한 놀랍게도 조로아스터의 자아가 깃든 예수와 붓다의 자아가 깃든 예수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것을 슈타이너는 아카식 레코드 속에서 보았다고 한다. 어떻게 보았을까. 어떤 인식의 경로를 통하여 보았을까. 슈타이너의 어법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지 않은 사람에게는 반발을 일으킬 만한 내용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슈타이너는 성서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사실도 영적인 눈과 귀로 보고 들은 뒤 이야기해야 옳다. 그는 당연히 그렇게 했다. 『제5복음서』가 그것이다. 거기서 그는 두 명의 예수, 조로아스터의 자아가 흘러 들어간 예수와 붓다의 자아가 흘러들어 간 예수를 이야기하였다.(슈타이너가 세상을 떠난 지 이십 년 후인 1945년 말, 이집트의 나그 함마디에서 파피루스에 기록된 그노시스의 고문서가 발견되었다. 이것은 그리스어에서 콥트어로 번역된 고대의 사본으로 추정된다. 농부가 발견하여 불쏘시개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그 지방의 역사 선생이 입수하여 카이로의 암시장으로 흘러 들어갔다가 이집트 정부의 눈에 띄어 압수, 콥트 박물관에 소장되었다. 그로부터 십 년 이상이나 흐른 후에 칼 융의 제자 한 사람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는데, 콥트 박물관에 소장된 문서의 한 부분에는 예수가 그의 쌍둥이 동생 토마스에게 이야기한 말이 나온다).
지상에 뿌리 내린 인지학 창시자
슈타이너의 가르침에 따라 아카식 레코드를 영적 탐구의 대상으로 삼아 이 우주와 인간의 비밀을 알게 된 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슈타이너는 대승불교의 이치에 바탕을 둔 『초감각적 세계 인식』에서 이에 대해 논리를 편다.
영적 세계에 입문한 자는 단순한 영시자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다시 이 지상으로 내려와 굳건히 땅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고.
어떤 경우에도 이 지상에서 초월하려는 바람은 악이라고 슈타이너는 말한다. 슈타이너는 자신의 이러한 신념을 그대로 실천했다. 우주와 인간의 수수께끼를 인식한 사람으로서 그는 초인적인 정열로 교육, 의학, 유기농법, 음악교육, 색채론, 건축, 경제, 정치 등의 분야에 공헌했다. 모든 정열을 기울여 완성한 괴테아눔이 방화로 다 타버려도 용기를 잃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육체의 한계에 도달할 때까지 수많은 사람의 영적 계발을 위해 상담에 응해 주었다. 글쓰기와 강연 활동도 활발하게 진행해나갔다.
그가 창시한 인지학은 결코 종교가 아니다. 그는 오히려 어떤 형태의 독트린도 거부한다. 생전에 모든 분야에 심오한 시사를 던지고 제자들에게 더욱 발전시키도록 권장하면서도, 그는 결코 제자들의 자유로운 의사 결정에 간여하려 하지 않았다. 완벽히 자율적으로 자아의 욕구에 따라 살아가게 하였다. 전 세계적으로 퍼져 있는 자유 발도르프 학교의 보석 같은 교육방법도 슈타이너에게 자극 받은 제자들의 노력에 의한 것이다. 국내에도 소개되어 있는 겨우살이를 활용한 항암 주사액도 그렇다.
그는 자신의 사상과 발언을 그대로 실천한 보기 드문 영적 스승이다. 우리 나라에 소개된 현대의 서구나 동양의 위대한 구루들이 거의 자기 파탄의 광기에 빠져드는 현실을 동시대인의 눈으로 확인할 때마다, 영학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 가슴에 깊이 깊이 새겨야 할 이 지상의 과제와 생활인의 자세, 그리고 투철한 이상과 도덕심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게 한다. 또한 현실 인식에 기반을 두지 않은 기행과 광기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알게 된다. 신비로운 능력과 위대했던 전생의 자신을 막연히 꿈꾸거나, 깨달음을 얻었다고, 또는 공중으로 떠오를 수 있다고, 기를 배터지게 기르면 천기를 읽을 수 있다는 말에 얼을 빼는 내 이웃의 허망한 욕망을 접할 때마다, 나는 슈타이너의 사상을 곰곰이 되새겨 보곤 한다.
<글쓴이 : 양억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