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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난 의술인

교성요법, 명심의학의 저자 김병항

작성자작약|작성시간20.04.02|조회수387 목록 댓글 0





文字속에 숨겨진 비밀 의학(醫學)


김병항 / 인터뷰 김흥숙


50을 훨씬 넘긴 나이(56세)에 뜻밖의 동기로 병리 연구에 심취하게된 김병항 (金炳恒)씨. 그후 그는 20여년 세월 동안 혼신의 정력을 쏟아 <교성요법(橋性法)>과 <명심의학(明心醫學)>이라는 책을 펴냈으며 최근 <암백서(癌白書)>를 새롭게 완성했다. 질병(疾病)과 질환(疾患)은 육체의 병이 아니라 마음의 병이라고 말하는 김씨는 한자 속에 숨겨진 비밀을 통해 새로운 문자의학(文字醫學)의 지평을 열어가고 있다.

 

20여 년 동안 자연의학 연구에 몰두해 오고 계신데, 그동안의 경험에서 얻은 자연의학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의학은 병을 고치는 학문인데, 요즘 와서는 학문이 아닌‘방법’, 즉 자연 속에 있는 초근목피를 이용해 치료하는 것을 자연요법이라고 많이들 표현합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자연요법이란 저절로 낫는 거거든요. 모든 환자들이 병이 생길 무렵에는 정신적인 고뇌를 겪게 됩니다. 마음이 상하는 일, 기분 나쁜 일이 지속적으로 자신을 괴롭히는 가운데 인체의 기를 소실케 함으로써 생기는 것이 병이란 말이죠. 마음이 상해서 생긴 병이기 때문에 신앙을 통해서건 수양(수련)을 통해서건 그동안 내가 잘못된 생각, 관점을 가지고 삶을 살았구나 깨닫고 나면 그에 대해서 해탈을 할 수 있게 되겠죠. 그렇게 깨닫게 되면 마음의 평화가 오고 그 결과 덤으로 병은 저절로 낫게 되어 있습니다.

바이러스성 병이나 유독성에 의한 외적인 요인이 아닌 심인성 병은 마음의 평화만 회복하게 되면 저절로 낫게 됩니다. 이처럼 자연식품이든 양약이든 한약이든 약을 전혀 쓰지 않고 내면의 변화를 통해 저절로 병이 낫는 것, 그게 바로 진정한 자연의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평범한 사업가에서 자연의학 연구가로 변신하신 특별한 사연이 있으신지…


저는 의학, 의료와는 전혀 인연이 없는 사업가였는데 50대 중반에 크게 파산을 해서 좌절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정말 우연한 동기로 두서너가지 의문이 생기더군요. 병원에서는 완전히 사형선고를 받았던 사람들이 종교에 귀의해서 기적적으로 병이 낫는 경우가 과거에는 참 많았어요. 그럼 그 원리가 무엇인가. 왜 낫는가. 또 한 가지 의문은 환자마다 각기 다른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이었어요. 같은 암이라도 어떤 사람은 폐에서 생기고 어떤 사람은 간에서, 위에서 생긴단 말입니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이러한 의문을 계기로 병리학에 묘한 매력을 느끼고 연구하기 시작했죠.


연구 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은 우리 인체의 생리체계가 신묘할 정도로 완벽하게 합리적이고 사리적인 체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체라는 것은 마음과 육체의 일체, 심신일체의 생명체거든요. 그래서 마음의 모습이 곧 육체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육체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은 곧 마음의 현상이라. 좀 더 쉽게 설명하면 얼굴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의 개성이 어느 정도 짐작이 되고 또 그때그때 감정의 변화가 얼굴에 나타나거든요. 즉 마음의 모습이 그대로 얼굴에, 육체에 반영이 되는 거죠.


그리고 제가 의학 연구에 결정적으로 심취하게 된 의문이 또 하나 있었습니다. 10여년 전 88올림픽이 있던 해 어느날 앉아서 생각을 하는데 문득 그전에는 전부 병이라고 하던 것을 현대에 와서 질병이란 용어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어요. 그게 무슨 말인가. 그래서 병질(疾)자를 해독해보니 화살과 바위집과 얼음 세 가지를 합해서 질이라고 했단 말입니다. 그러면 왜 이것을 모아 병 질자라고 했는가. 그래서 글자의 훈, 풀이를 찾아보니, 급(急; 급할 급)야라, 환(患; 근심 한)야라,원(怨; 원망할 원) 야라, 증(憎; 증오할 증)야라, 악 (惡; 악할 악)야라, 속(速; 빠를 속)야라, 그 여섯 가지로 설명이 되어 있어요. 그렇게 밝히고 보니 병질자를 만들게 된 의미가 그 속에 다 들어 있는 겁니다. 질(疾)자는 심리 상태를 표상한 글자거든요.

 

어떤 심리 상태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십시오.


급(急)야는 분노거든요. 칼도(刀) 밑에 맷돼지 괴( )자와 마음 심(心)자. 멧돼지는 저돌적으로 덤벼드는 형상이고 칼은 공격하는 무기인데, 즉 분노를 의미한 거죠. 근심(患)이라는 것은 입술(..) 두 개를 싹 꿰어놓았으니 말은 못하고 혼자 꽁꽁 앓는 거죠. 원망할 원자.원망하는 것, 남을 증오하는 것, 남한테 악하게 하는 것, 즉 남을 상하게 하는 공격적인 심리예요. 그리고 병 질자에 쓰인 화살 시(矢)자도 남을 상하게 하는 공격적인 무기잖아요. 그리고 얼음 빙( )자 는 차가운 얼음, 바위집 엄( )자는 바위를 의미하는데 이것을 심리 상태로 보면 얼음처럼 차고 냉정하고 바위처럼 고집스럽다는 뜻입니다. 고집스러운 성격, 냉정한 성격, 공격적인 성격을 표상한 글자가 병질 자예요. 병의 원인이 마음이 상해서 난다는 것이 병 질자에 다 설명이 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현대의학뿐 아니라 한의학에서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단 말입니다. 그걸 확인하고 나서 저 는 혼자서 춤을 췄어요. 문자를 만든 고대의 생명과학자들은 모든 이치를 정확 하게 알고 있었구나. 상상도 못할 일이죠. 이렇게 심오한 것을 고대의 생명과학자들은 훤히 알고 있었는데, 우연히 내가 알게 되니까 속으로 춤이 나오더군요.


문자 속에 전부 다 있구나. 그래서 그 다음에는 병들 병(病)자를 해부해 보고, 그 다음에 병나을 유(癒), 병고칠 료(療), 병이 낫는 원리가 글자 안에 설명이 다 되어 있는 겁니다.

 

얼음처럼 차고 냉정하고 바위처럼 고집스럽고 화살처럼 공격적인 사람이 질병에 걸린다면 그것을 치료하는 원리는 무엇인지 병나을 유, 병고칠 료자에 비유해서 설명해 주십시오.


병이 냉정하고 고집스럽고 공격적인 성격에서 출발했으니 오로지 병이 나으려면 인간적인 따뜻하고 유순한 성격을 회복해야 될 거 아닙니까. 병나을 유자가 바로 그걸 설명하고 있거든요.


병나을 료자를 보면 뜰에 세울 불밝힐 료(燎), 옛날 전기가 없을 때 집안의 대사를 치르거나 농사철에는 마당에 횃불을 놓았거든요. 그것은 사방을 밝게 하면서 따뜻하게 하는 것이죠. 사람이 병이 난 것은 마음이 차갑게 굳어져서 생긴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따뜻하고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횃불을 밝혀야 됩니다. 그러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밝아지잖아요. 료자는 차갑고 고집스러운 성격을 따뜻하고 밝고 부드러운 마음으로 고쳐먹으면 병이 낫는다는 것을 설명한 글자입니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결국 온기(溫氣)가 최고의 자연치유력, 면역력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약(藥)자 속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 궁금합니다.


양약(藥)자를 풀어보면 풀초( ) 밑에 즐거울 락(..)이 있잖아요. 즐거움이 자라나는 것이 곧 약이다라는 의미거든요, 풀이라는 것은 자라나는 것을 상징하는 글자거든요. 즐거움이 자라나는 것이 약입니다. 오늘날 음악요법도 바로 그런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음악을 들으면 감정이 즐거워지니까 약이 되는 것이고, 향기요법도 좋은 향기를 맡으면 기분이 좋아지니까 약이 되는 거죠. 약의 진리가 바로 이 속에 담겨 있습니다. 아주 심오한 심리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즐거운 마음이 병을 낫게 한다는 것은 납득이 가지만 즐거움이 우러나려면 어떤 마음을 가져야 되는지는 또 다시 의문이 드는군요.


간단합니다. 즐거울 락자에 다 설명이 되어 있어요. 흰 백(白)자는 깨끗한 것을 의미하죠. 그리고 어릴 요( )자인데, 어린이는 천진하고 순진무구하고 때 묻지 않았습니다. 또 한 글자는 모양은 같아도 곡조 요( )자인데, 노래나 기악, 성악 같이 음악하는 것이 곡조 요자거든요. 마음이 깨끗하고 어린이처럼 순진하고 음을 즐길 때와 같은 좋은 감정이 배어나는 심리 상태라야 진심으로 즐거움이 우러나는 겁니다. 거무칙칙하고 깨끗하지 못한 야심이나 감정 또는 어른들처럼 추악한 판단분별이 있는 심리 상태에서는 즐거움이 우러날 수가 없어요.

그러면 밑에 나무 목(木)자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무는 뿌리를 의미합니다.(.)이 땅, 그 밑으로 뻗은 것( )이 뿌리인데 마음의 바탕, 뿌리가 깨끗하고 순진하고 순수하고 노래할 때와 같은 감정상태라야 진정으로 즐거움이 우러난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일상생활 속에서 좋은 감정을 회복하면 병은 자연적으로 낫게 되어 있습니다.

 

실제 선생님의 이론을 적용해서 질병을 치료했던 사례를 소개해 주십시오.


20년 전에 발등은 정상인데 양발바닥이 새까맣게 썩은 사람을 모종교단체에서 만났어요. 현대의학에서는 그런 증상을 당뇨에 의한 증상이라고 규정지어 절단을 권하죠. 제가 그 사람을 만났을 때 병의 원리를 설명했습니다. 신학적인 측면에서 말하면 조물주가 인간의 발을 만들 때는 두 발을 가지고 필요한 곳에 가라고 만든 것이지 불필요한 곳에 가라고 만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또 우리 몸을 몸집이라고 하거든요. 인간의 신체를 집으로 봤을 때 다리는 기둥이고 발은 주춧돌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가족 구성원에 비유하면 남편은 기둥이고 아내는 주춧돌과 같은 존재인데 주춧돌에 해당되는 발바닥이 새까맣게 썩어가고 있다면 그 가정의 아내 마음에 멍이 들어 있는 상태고 남편은 그 발을 가지고 가서는 안될 곳이나 먼 곳으로 갔을 것이다 하는 이치를 설명해 주었죠. 그 사람이 가만히 듣고 있더니 대뜸 하는 얘기가 자기 아내는 천하악녀라고 하며 분노를 표시하는 겁니다. 몇 년 전 자기 몰래 아내가 아들을 이민 보내면서 재산을 다 날린 일로 아내와 크게 싸움을 한 후 그 길로 집을 떠나 5년 동안 돌아가지 않았답니다. 그 후 점점 발이 악화되어서 완전히 썩게 되었는데 병원에 가니까 무조건 자르라고 하더랍니다. 두발을 자르고는 살아갈 자신도 없고 해서 자르지는 못하고 있던 차에 집나온 지 5년만에 본부인이 어떻게 알고 그 사람 있는 곳을 찾아온 겁니다. 소실을 얻어 살고 있던 터라 더럭 겁이 났는데, 본처가 원망은 하지 않고 병든 사람 보살피느라 고생 많았다고 오히려 소실을 위로하더랍니다. 그 후 두 여자가 상의를 해서 그때 제가 머물던 모 종교단체에 치료하러 왔다고 하더군요.

 

그 분을 만난 모 종교단체에 선생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가셨는지 궁금합니다.


나는 병이 낫는 원리를 공부하기 위해 그곳에 갔었죠. 당시 그곳에서는 환자치유를 위한 3개월 수양과정이 있었는데 저는 그 무렵 20일 정도 남겨두고 있었습니다. 뭔가 지식을 얻으려고 꾸준히 참고 있었는데, 그때 그 사람이 왔던 거죠. 이 사람이 나의 진단과 자신의 인생이 딱 들어맞으니까 탄복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당신이 병을 고치러 왔으니 이곳의 수행을 열심히 하면 틀림없이 낫는다고 얘기해 줬죠. 그랬더니 그 사람이 순진하게 어린 아이처럼 잘 따르더군요. 병원에서는 무조건 두 발을 자르라고 했는데 이곳에서 발을 고칠 수 있다는 확신과 기대, 그리고 부인도 회개를 한 후 마냥 잘해주니까 하루하루의 삶이 행복했던 겁니다. 제가 수양 기간을 끝내고 서울로 올라가기 전날 그곳 사람들 이 송별회를 한다고 제 방으로 술과 안주를 들고 모여들었어요. 그날 술자리에서 그 사람이 자기 발이 궁금하지 않느냐고 묻더군요. 그리고는 양말을 벗어 보이는데 새까맣던 발이 말갛게 새살이 돋아난 거예요. 즐거운 마음이 병을 낫게 한다는 것을 직접 확인한 순간이었죠.

 

그 외 체험한 사례를 한 가지만 더 소개해 주십시오.


84년도에 제가 <교성요법(橋性..法)>이라는 책을 썼는데 성격을 고치면 병이 낫게 되어 있다는 내용이었죠. 그 책을 보고 찾아온 아가씨가 있었어요. 20대 초반으로 고등학교 때부터 얼굴 한쪽 볼에 거무르스름한 반점이 생겼답니다. 눈 밑에 사방 1센티 정도의 크기로 아무런 통증도 없고 마치 한지에 먹물 떨어뜨린 것과 흡사해요.


그 아가씨는 어릴 때부터 주변에서 예쁘다, 총명하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랐는데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반점이 생겼다는 겁니다. 인간의 심리라는 것은 남이 자꾸 추켜세워 주면 자만심이 생기고 자만이 오만으로 변하고 오만이 교만으로 발전하게 되어 있거든요. 사람이 교만해지면 안하무인격이 되어 대인관계에서 상대방에게 말을 함부로 하기 쉽습니다. 남에게 함부로 말한다는 것은 그에게 상처를 주고 얼굴에 먹칠을 하는 거나 마찬가지거든요. 상대방의 마음에 멍이 들게 한단 말입니다. 그 아가씨가 그런 심리상태, 개성을 가지게 된 원인은 잘 생긴 외모에 있거든요.


내 얘기를 가만히 듣던 아가씨가“저는 전문대학을 나와서 물리치료 교육을 받고 국내에서 제일 큰 체육관에서 물리치료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곳의 관장님이 저희들에게 약속한 것을 이행하지 않아 항의한 적이 있는데, 그것도 죄가 됩니까?”하고 묻는 겁니다. 그래서“약속을 안지킨 사람이 잘못이고 또 불이익을 당하면 항의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 그러나 다른 동료들도 많은 데 유독 아가씨가 대표로 나서서 사장님한테 항의를 한 것은 내가 똑똑하다는 자부심, 교만심이 있어서 그런거 아닌가요. 아무리 사장이 잘못했더라도 직장 상사에게 젊은 여직원이 면박을 준다면 사장의 얼굴에 먹칠을 한거나 마찬가지지요. 남의 얼굴에 먹칠하는 습관이 평소에 있기 때문에 그런 마음의 모습이 그대로 육체에 반영이 된 것일 뿐입니다.”하고 말해 줬더니 그 아가씨가 꽤나 놀라더군요.

 

원인이 그렇다면 고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모든 병적 증세는 냉해서 생기는 냉화작용의 현상입니다. 남의 얼굴에 먹칠하거나 마음을 멍들게 하는 사람은 따뜻한 사람이 아닙니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은 절대 그런 짓을 못하죠. 그래서 제가 그 아가씨한테 그동안 말 한마디 잘못해서 거리가 멀어진 친구가 있을 텐데 그 친구를 찾아서 마음을 풀어주고 용서를 구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마음이 따뜻해지는 연습을 하면 저절로 낫는다고 말했더니 기분이 굉장히 좋아서 돌아갔어요. 그런데 2, 3개월 뒤에 다시 저를 찾아왔어요.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는 겁니다. 얼굴 반점에서 까만 색은 없어졌는데 빨간 색이 난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피부라는 것은 죽으면 검어지고 되살아나면 혈색이 돋아 오르기 때문에 빨개지는데, 지금 죽었던 세포들이 살아서 새살이 돋고 있는데 뭐가 고민이냐고 면박을 줬죠. 그랬더니 좋아서 머 리가 땅에 닿도록 인사하고 돌아가더군요. 사실 그때 저도 놀랬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한자속에 숨어있는 이치를 통해 질병치료의 핵심을 발견하신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책에 보면 한자를 동방어라고 표현하셨는데, 그 배경은 무엇입니까.


제가 연구하고 있는 것은 전부 한자에서 얻은 지식을 토대로 한 학문이기 때문에, 한국이라는 국소적인 측면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동방어라는 용어를 썼습니다. 동쪽의 나라들-동북아시아 표의문자 문화권-중국, 한국, 일본, 몽고, 원남, 태국 등 지금은 여러 나라로 분산되어 제각기 권역을 만들어 국가라고 하지만 수천 년 전으로 올라가면 그 당시는 사람의 수치도 적었고 골격, 피부색, 언어, 생활습관이 같은 한겨레, 동족이었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단순하게 중국의 글이다 한국의 글이다라고 구분해서는 안 됩니다. 요즘은 피부 색깔이 다른 이민족도 한 나라에서 살아야 하는 시대인데, 하물며 생 활습관만 조금씩 다를 뿐 같은 문화권이잖습니까. 이제는 우리가 너무 국가차원의 관념에 사로잡혀서는 안 되고 그것에서 탈피할 수 있는 폭넓은 인식을 가져야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자에 대한 것을 정확히 알아야 되겠죠. 이것은 한국 것이니 중국 것이니 하기 이전에 동방민족 고대의 선각자들이 만든 글이기 때문에 동방의 우리 철학이고 동방의 생명과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조들이 이미 알고 문자 속에 진리를 담아 한자를 완성했다는 말씀이군요.


당연하죠. 모르고야 어찌 그토록 정묘하게 맞아 떨어지게 만들 수 있겠어요. 예를 들어 나라 국(國)자를 풀어볼까요? 나라라는 것은 국경(口)으로 둘러싸인 것 아닙니까. 그리고 그 안에 창 무(武)자가 있어요. 옛날에는 무기의 대표적인 것이 창이였거든요. 입 구(口)는 인구 국민을 의미하고 하나(一)는 통일을 의미 합니다. 즉 내가 점령하고 있는 권역 속에 있는 국민들을 총칼로서 하나로 만든 것이 국가입니다. 지금도 우리나라 경우 남북한이 총칼로 대립해 제 각기 국가를 이루고 있잖습니까.

 

일반 사람들은 증명된 것만을 배워왔고 그것만이 믿을만 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한문에 대한 선생님의 의견이 과연 무엇을 통해 증명될 수 있는지 확인 하고 싶어할 것 같습니다.


오늘날 그게 가장 심각한 문제예요. 일반 사람들은 노소 유무식을 가릴 것 없이 의학이라면 의학을 공부한 사람만이 할 수 있고, 의학의 학설이라는 것은 무조건 검증된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공부를 해본 사람들은 검증된 의학설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의학설은 5년도 못가서 쓸모가 없어지고 말거든요.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러한 것들도 전부 가설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5년도 못가서 쓸모가 없어지는 학문을 배운 의사는, 10년전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어쨌든 과거에 배운 것을 가지고는 써먹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동양의학책도 보고 서양의학책도 보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의과대학생들이 혈액에 대해서 공부를 합니다. 기초의학 교과서, 생리학 교과서에 보면“혈액을 유리면에 접촉시키면 빨리 응고가 일어난다. 그런데 유리면에 파라핀을 입히고 그 면에 접촉시키면 응고되지 않거나 응고되더라도 시간이 많이 걸린다.”라고 설명되어 있어요. 그것은 직접 실험해본 것을 기록한 내용이겠죠.


더욱 재미있는 것은 응고가 빨리되거나 늦어지는 원인이‘접촉하는 물체의 표면이 매끄러운지 거친지의 상태에 따라 차이가 있다.’고 써있어요. 유리면은 매끄럽고 파라핀을 입힌 것은 거칠단 말이죠. 거기에 원인이 있는 것으로 의학자들은 풀이를 해놓았습니다. 그것까지는 좋아요. 고온에서는 빨리 응고되고 저온에서는 응고가 지연된다고 적고 있어요. 이것은 상식적으로 반대거든요. 혈액을 비롯해 물을 포함한 모든 물질은 온도가 높을수록 액체화되고 용도(鎔度)가 높고 저온이 될수록 고체화가 된단 말이죠. 그러니까 지금 의과대생들이 배우고 있는 생리학 교과서에는 반대로 써놓고 있는 겁니다. 유리면에는 빨리 응고가 되고 파라핀을 입히면 늦게 응고되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유리는 찬 냉성입니다. 따뜻한 혈액이 냉성물질에 접하면 빨리 응고가 되겠죠. 그러나 파라핀을 입히면 파라핀이 유리의 냉성을 차단해 줍니다. 파라핀은 성격상으로 불이 붙는 온성물질이거든요. 그들의 교과서를 보고 제가 깜짝 놀랐어요. 아, 이렇게 형편없는 것을 배우고 있구나. 사리에 어긋나면 그것은 이론이 아닌 겁니다.


그렇지만 혈액을 보관할 때는 냉동 보관하지 않습니까. 그것은 오래 보관하자니 부패를 막기 위해서 그러는 거죠. 생체 내에 있는 피는 농도가 묽을수록 순환이 잘 되잖습니까. 체온이 떨어지면 혈액이 찐득해지고 체온이 높아지면 용도(鎔度)가 높은 것은 자연의 원리입니다.

 

서양의학에서 기초의학 교과서들은 전부 생리학 또는 병리학으로 되어 있어요. 생리학, 병리학은 의학인데, 실제 책을 들여다보면 의학은 하나도 없고 전부 해부학과 증상학.병이 났을 때 나타나는 증상들에 대한 내용들, 그리고 병명에 대한 겁니다. 원리를 찾아보면 하나도 없어요. 원리, 원인과 이치를 알아야 병을 고칠 거 아닙니까. 원인과 이치를 모르는데 어떻게 병을 고칩니까. 오늘날 서양의학이 한계를 느끼고 뭔가 다른 의학으로 대체해야겠다고 손들고 나선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어요. 실제 의학계 내부에서도 의학교과서를 다시 써야한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거든요. 더욱 한심한 것은 서양의학에서는 암세포를 돌연 변이 세포라고 주장한다는 사실입니다. 본래 그 학설을 내놓은 의학자의 논문 맨 앞머리에 이런 말이 쓰여 있어요.


“평소에 국법을 잘 준수하던 선량한 시민이 어느날 갑자기 무법자로 돌변하듯이, 평소에 신체의 생리질서를 잘 지키던 세포가 어느날 갑자기 무법자 같은 세포로 돌변을 해서…”그 학설이 지금까지 통용이 되고 있는 겁니다. 돌변이라면 갑자기 변했다는 뜻인데 세상에 갑자기 되는 게 어디 있습니까?

 

그렇다면 선생님께서는 암이라는 질병을 어떻게 해석하고 계신지…


암세포는 악성세포가 아닙니다. 선량한 시민이 무법자로 돌변하듯이 악질적으로 돌변한 세포가 아니예요. 생리학적으로 인간의 감정이 상하면 신체 세포들 의 기가 죽습니다. 기가 죽으면 세포들이 제기능을 다하지 못하죠. 암에 걸린 사람들은 대부분 뭔가 근심, 걱정, 고민을 지속적으로 안고 있음으로 해서 병이 깊어진 거거든요. 마음이 상해 있기 때문에 몸의 체온도 떨어지고, 또 마음이 상하는 집안에는 제각기 어떤 문제가 있는데, 그 문제와 관련된 장기(臟器)가 먼저 상하게 됩니다. 온기를 빼앗겨서 세포가 병인자로 변한 것이므로 그 세포는 언제든지 온기만 회복하면 저절로 낫게 되어 있습니다. 요즘 케일이나 알로에, 미나리, 시금치, 인삼 등이 좋다고 하는 이유가 그 안에 병을 고치는 특수성분이 있어서 좋은 게 아닙니다. 그것을 파는 사람들은 무슨 특수 성분이 있어서 좋다고 하지만, 그런 게 아니고 실제로는 좋은 약은 열량이 풍부합니다. 과거에 인삼이나 녹용, 벌꿀을 최고의 선약으로 쳤던 것은 굉장히 열이 많기 때문입니다. 몸이 냉해져서 병이 난 것이니만큼 그걸 고치려면 몸을 따뜻하게 해줘야 될 것 아닙니까.

 

하지만 그런 음식들도 오히려 열이 많은 사람에게는 독약이 되기도 하잖습니까? 물론 그것을 가려야 되겠죠. 과유불급(過猶..及)이라 뭐든지 과하면 해롭지요. 하지만 아무리 양체질도 몸이 허하면 보기(補氣)가 필요한 겁니다. 우리의 모든 생명체는 태양열, 즉 빛으로 이룩되어 있습니다. 그 빛이 광선인 것 같아도 점으로 이어져 있거든요. 점점의 연속이 선으로 보이는 거죠. 그 빛이 물질화되는 과정이 색화되는 겁니다. 초목들의 싹이 빛을 보기 전에는 하얗다가 빛을 보기 시작하면 노랗게 되고 차츰 파랗게 변합니다. 콩나물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녹색은 태양열이 물질화 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어요. 색은 곧 물질이거든요. 그래서 녹색이 짙을수록 열량이 풍부한 겁니다. 은행잎이 좋은 약재로 알려져 있는데, 파랄 때는 약이 되지만 노랗게 변하면 약성이 없어집니다. 파란 색소가 우리 인체 내에 들어가면 그것이 열을 발산해 주거든요. 그러한 열들이 인체를 따뜻하게 하는 연료로 쓰이고 질병을 극복하는 추진력이 되는 겁니다.

 

녹색의 열이 몸 속에서 태양열로 환원이 된다는 말씀이군요. 앞에서 선생님께서는 관련된 문제에 따라 해당 장기에 암이 발생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예를 들어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십시오.


먼저 간암을 예로 들죠. 간(肝)이라는 글자가 방패 간(干)자와 달 월(月)로 이루어져 있는데, 달 월은 살 육(肉)자를 의미하면서 장기를 말한 것인데, 왜 하필 간이라는 장기를 방패 간자로 만들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의문 때문에 각 장기의 명칭을 완전하게 해독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현대의학에서도 밝혀진 사실은 간에서 모든 병균이나 독성물질이 해독된다는 사실입니다. 내 몸을 해치는 요소로부터 막아내는 역할, 방패역할을 하는 거죠. 간암이나 간경화에 걸린 사람들을 보면 공통적으로 전부 자기 몸을 굉장히 아끼고 약 준비를 많이 해둡니다. 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가족들에게 확인한 바로는 자기 몸을 끔찍히 아끼고 몸에 좋다는 것은 마구 사다놓는다는 겁니다. 자기 몸을 지키고자 하는 욕구가 남보다 강한 사람들이죠. 병균이나 내 몸을 해치는 침해로부터 막아내려는 의식이 투철한 사람이 간암에 걸릴 확률이 높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충 설명을 하면 간은 혈액의 창고거든요. 그러면 혈액은 우리 몸의 영양소로서 가정에 비유하면 재물에 해당됩니다. 재산을 침해하는 요인이 생기면 이로 인해서 마음이 상하고 괴로운데, 서양의학에서 말하는 스트레스가 우리말로는 곧 상심(傷心) 이거든요. 이때 간에 집중적으로 스트레스가 쌓이다 보니 간경화, 간암으로 발전하는 겁니다. 그걸 막아야 내 재산, 재물을 지키겠는데, 이것을 막기 위해 속이 상하고 마음이 상합니다. 내가 이 이치를 가지고 간암환자들을 대상으로 문진(問診)을 해보니까 전부 들어맞더군요. 다시 한 번 우리의 선조들, 고대의 생명과학자들이 완벽하고 오묘하게 이치를 만들어 놓았다는 걸 깨닫고 감탄했습니다.

 

지금까지 선생님께서 연구해온 학문은 어느 정도 진척이 되었습니까?


한 20년쯤 되니까 거의 완성단계에 접어들어서 이제는 세상에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의학자는 아니지만 제 연구결과가 알려진다면 수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고 의학계도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또한 수많은 환자들이 자신의 병을 스스로 고칠 수 있을 뿐 아니라 예방의학으로서도 기여하는 바가 클 겁니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어려움을 극복해 왔습니다. 저의 학설은 학문적으로 몸의 병을 고치는 의 학인 동시에 인간다운 삶을 살아야 건강하게 살 수 있음을 밝혀 놓은‘인간학’이 라고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


지금 제가 외람되지만 노벨상 심사 청구 논문을 작성중입니다. 노벨상의 역사가 1901년에 시작을 했으니 100년이 됐어요. 그동안 동양인으로서는 의학분야에서 수상자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특히 동양의학으로서는 아예 시도조차 한적이 없습니다. 제가 반드시 전문집단만이 도전하는 의학 분야를 비전문인으로서 세계 최초로 도전해 보려고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병을 고치고 예방한다는 차원을 넘어서 그동안 병들어 있는 인간의 의식과 삶에 변화를 일으켜 건강한 미래 사회를 구현하는데 초석이 되리라 믿습니다. 제가 발견한 소박한 학문을 통해서 그게 가능하다고 봅니다.


제가 매년 노벨상 받은 의학논문을 검토하고 있습니다만 그 윤곽을 보면 국소적 부분을 가지고 한 거거든요. 저처럼 암에 대해 전체적으로 접근한 논문은 유사이래 지금까지 없었어요. 그리고 수많은 전문인들이 천문학적인 연구비를 투입해도 발견하지 못한 것을 저는 밝혔습니다. 완전히‘문자의학(文字醫學)’이 예요. 동양의학에서 문장화된 의학을 한의학이라고 한다면 제가 밝힌 것은 비문장화된, 문장의 근본이 되는 낱글자, 즉 동양의학의 근본이거든요. 거기서 동양의학이 나온 겁니다.

 

그야말로 의학의 뿌리를 찾아내는 작업이었군요.


사람들이 문장화된 것만 볼 줄 알았지 문장을 구성하는 글자 하나하나 속에들어 있는 뿌리는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던 거죠. 96년도 제 강의를 들은 수강생 중의 한 사람이 강증산이 유일하게 남긴 책 <현무경(玄武經)>을 소개해 주더군요. 현무경의 의통장에 보면“조선국에 천하의 성인들이 만들어 놓은 가장 앞선 위대한 의학이 있다. 그것은 문자계의(文字啓醫)이다. 문자로서 사람을 훈계하여 병을 고치는 위대한 근본 의학이다.”이런 구절이 있어요. 강증산 교도들이 전국에 엄청난 수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말의 진정한 의미를 몰랐던 겁니다. 수강생이 저의 강의를 듣고 나더니 강증산이 한 말의 의미를 알겠다고 하더군요. 강증산은 90년 전에 죽었는데, 그가 죽고 제가 1988년에 발견했으니까 80년 만에 발견하게 된 셈이죠. 좀 거창하게 얘기하자면 이미 하늘이 설계해 놓은 준비된 의학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나름대로 해봅니다.

 

노벨상 논문을 준비중이신데, 검증 절차를 밟았더라면 더욱 효과적으로 될 듯한데…

과거의 논문도 그들끼리의 연구였지 공개해 놓고 대중의 검증을 받아서 쓰지는 않았거든요. 논문이란 건 이론 아닙니까. 이론이 맞아 들어가야 되고 실증이 되어야 하는데, 나는 많은 실증을 가지고 있어요. 문제가 있다면 일반인이나 환자들의 인식이“병은 약으로 고치는 것이다.”라는 인식, 그리고“물리적인 방법, 서양의학식으로 하면 수술로 고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어요. 그리고 최근에는 교육으로 병을 고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병에 대한 고정된 정보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정보’라는 미명하에 세뇌를 당하고 있는 거죠. 이러한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한은 저의 이론이 먹혀들어가질 않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용기를 가지고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때로는 고달프기도 하고 지치기도 했지만 과학사책에 보면 서문에“과학의 역사는 박해의 역사인가.”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학문의 개척자나 문명 이기의 발견자 대부분 이 전문지식층이나 사회로부터 박해받거나 비방을 받기도 하고 조소, 외면을 당하기도 하면서 수십 년 오랜 세월을 살아온 역사라고 쓰여 있습니다. 피타고라스가 지동설을 내놓은 지 2500년이 되었지만 200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인정 을 받았거든요. 모든 과학자들이 그런 역경을 겪었다는 걸 알고 나서는 용기를 얻었습니다. ‘나도 그들과 같은 길을 가고 있구나.’

 

선생님의 용기와 인내의 세월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부디 선생님의 이론이 국내 의학계가 성장해 가는데 밑거름이 되길 소망합니다. 지금까지 말씀 감사합니다.



*출처: 미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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