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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령의학

<OSHO> 심령의학의 가능성(사이킥 비젼의 가능성과 티베트 사자의 서, 아유르베다 관련 내용)

작성자작약|작성시간12.07.03|조회수168 목록 댓글 1

<질문 : 네 번째 차원에서 사이킥 비전(psychic vision)을 비롯하여 많은 능력을 얻은 사람들이 과학자들처럼 달과 태양,

 

지구에 대한 지식을 얻지 못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

 

 

 

이 점과 관련하여 서너 가지 이해하고 넘어갈 사항이 있다. 과학적인 사실 중 많은 부분이 이런 사람들에 의해 밝혀졌다.

 

예를 들어, 이 사람들이 제시한 지구의 나이와 과학자들이 밝힌 지구의 나이는 조금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리고 과학이 정확하다고도 말할 수 없다. 과학자들 스스로가 이 수치를 절대적으로 옳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지구의 형태는 영원히 변한다. 태양과 지구의 거리는 고대와 똑같지 않다.

 

달과 지구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아프리카는 예전과 똑같은 위치에 있지 않다. 한때 아프리카는 인도와 붙어 있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변화가 일어났으며, 지금도 여전히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끊임없이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이렇게 끊임없이 변화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오늘날 과학이 발견하고 있는 것들을

 

네 번째 차원의 사람들이 벌써 오래 전에 발견했다는 것을 알고 그대는 깜짝 놀랄 것이다.
 

 

또 한가지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네 번째 차원의 사람은 수학적인 언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비전(vision)의 언어, 이미지(image)와 심벌(symbol)의 언어를 갖는다. 그의 언어는 상징적이다.

 

꿈속에는 언어가 없다. 비전 속에도 언어가 없다.

 

낮 동안에 한 일을 밤에 꿈으로 재현한다면, 우리는 특정한 상징과 심벌을 매개체로 선택해야 할 것이다.

 

꿈속에는 언어가 없기 때문이다.
 

 

만일 그대가 다른 사람들보다 위에 서고 싶은 야망으로 가득 찼다면, 그대는 새가 되어 하늘을 나는 꿈을 꿀 것이다.

 

그대는 다른 새들보다 더 높이 나는 새가 될 것이다.
 

 

꿈속에서 그대는 자신의 야망을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따라서 꿈속에서는 언어 전체가 바뀐다.

 

이와 마찬가지로 비전의 언어는 말이 아니라 영상이다.
 

 

 

프로이트와 융(jung), 아들러(Adler) 이후로 꿈의 해석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이제 우리는 꿈의 의미를 알아 낼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네 번째 차원의 사람들이 말한 것들은 아직 해석을 기다리고 있다.
 

 

지금 우리는 꿈이라는 현상도 철저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사이킥 비전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사이킥 비전은 전혀 다른 현상이다.
 

우리는 네 번째 차원의 사람들이 비전을 통해서 보는 것들의 의미, 그들이 말하는 것들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다윈(Dawin)은 인간이 동물로부터 진화했다고 말한다. 이 때 그는 과학의 언어로 말한다.
 

그러나 힌두교의 화신에 관한 이야기를 읽어보면 우리는 이것이 다윈의 진화론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발견 할 것이다.

 

똑같은 이야기가 수천 년 전에 상징적인 형태로 말해진 것이다.
 

 

첫 번째 화신은 인간이 아니라 물고기였다. 다윈 또한 인간의 첫 번째 형태가 물고기였다고 말한다.

 

고대의 경전이 첫 번째 화신은 마트시야 아바타르(matsiya avatar), 즉 물고기였다고 말할 때, 이것은 상징적인 표현이다.

 

화신과 물고기! 이것은 과학의 언어가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부인한다.
 

그러나 생명의 원소가 첫 번째 물고기 안에 들어왔으며 그 다음에 다른 형상들이 뒤따랐다고 다윈이 말할 때,

 

우리는 이 말에 기꺼이 동의한다. 이 말이 합리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다윈의 방법과 탐구는 과학적이다.
 

 

비전을 본 사람들은 신(divine)이 처음에 물고기로서 탄생하는 것을 보았다. 비전을 보는 사람들은 우화의 언어로 말한다.
 

 

두 번째 화신은 거북이다. 이 피조물은 땅과 물 양쪽 모두에 속한다.

 

물에서 땅으로 올라오는 생명의 변천 과정이 갑자기 이루어지지 않았음은 분명하다.

 

과도기적인 중간 상태가 있어야 했다. 진화하는 모든 피조물이 물과 땅 둘 다에 속해야 했다.

 

그 다음에 거북의 후손들은 땅에 정착하여 살기 시작했고, 수중 생활과 결별하게 되었다.
 

 

힌두교의 화신에 대한 이런 이야기를 읽으면, 다윈이 발견한 것을 우리가 이미 수천 년이나 앞서 발견했다는 것을 알고

 

그대는 놀랄 것이다. 마지막 변화가 일어나기 전에, 반은 동물이고 반은 인간인 상태,

 

나르신 아바타르(narsin avatar)가 있다. 모든 동물이 단번에 인간이 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반은 인간이고 반은 동물인 중간 단계를 거쳐야 했다.
 

 

동물이 인간을 낳는 것은 불가능하다. 동물과 인간 사이에는 어떤 연결 고리가 빠져 있다. 그것이 '나르신(narsin)'이다.

 

반은 인간이고 반은 동물인 상태가 있었다.
 

 

이런 이야기들을 이해하면, 우리는 다윈이 과학적 용어로 말한 것을 네 번째 차원의 사람들이 이미 오래 전에

 

푸라나의 언어로 말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푸라나(Puranas) : 인도에서 베다를 연구하는 학파들에게서 운문과 시의 형식으로 전해져 오는 문헌

주로 세계의 주기적 창조와 해체, 신들과 성인들의 계보, 우주론, 법제론, 시학, 의학, 철학, 정치학, 문법학, 음악이론,

재례등의 다양한 주제를 담고 있다. 인도 민간 신앙의 형태를 아는 중요한 자료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 힌두의 신화적 경전들은 제대로 설명되지 못했다.

 

그 이유는 푸라나가 무지한 사람들의 손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푸라나는 과학자들의 수중에 있지 않았다.
 

 

 

또 하나의 어려움은 우리가 푸라나의 암호를 해독할 수 있는 열쇠를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암호 해독 시스템이 없다. 그래서 어려움이 따른다.

 


이제 과학자들은 인류가 기껏해야 4천 년 동안 지구상에 더 존재할 수 있다고 말한다.

 

푸라나의 여러 부분에서도 이 세상이 5천년 이상 유지될 수 없다고 예언한다.
 

과학은 다른 언어로 말한다. 그들은 태양의 빛과 열이 점점 감소하여 4천 년 안에 차갑게 식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 때는 지구상에 생명이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푸라나는 다른 언어로 말한다. 과학자들이 4천 년이란 시한을 제시하는 반면, 푸라나는 5천 년을 제시한다.

 

과학자들의 말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단정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그 시한은 5천 년이 될 수도 있다.
 

 

나는 푸라나의 예언이 옳을 것이라고 믿는다. 과학의 계산에는 오류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비전에는 결코 오류가 없다!

 

과학이 항상 자신의 이론을 개선해 나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과학은 오늘은 이렇게 말하고, 내일은 저렇게 말한다. 그리고 모레는 다르게 말한다.
 

과학은 날마다 변해야 한다. 뉴턴이 이렇게 말하면 아인슈타인은 다르게 말한다.
 

5년마다 과학은 다른 이론을 제시한다. 더 나은 이론이 출현하게 때문이다.

 

과학의 최종 결론이 푸라나의 비전과 다를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설령 이 둘이 일치하지 않는다 해도 지금 우리가 과학을 통해 알고 있는 것과 비전을 본 사람들의 말을 토대로

 

성급한 결론을 내릴 필요는 없다.
 

 

삶은 말할 수 없이 심오하다. 오직 비과학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들만이 성급한 결론을 내린다.

 

과학이 지난 백 년 동안 발견한 것들을 조사해 보면, 우리는 백 년 묵은 그 이야기들이 푸라나의 전설처럼 씌어 있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이제는 아무도 그 이야기들을 믿지 않는다. 시간의 과정 속에서 더 나은 발견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푸라나에 실린 진리를 해독할 암호문이 사라졌다.

 

예를 들어, 만일 3차 대전이 일어난다면, 그 첫 번째 결과는 교육받고 문명화된 사람들의 멸망으로 나타날 것이다.

 

이상한 일이지만, 오직 교육과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만 살아 남을 것이다.


아지바시(Adivasi), 코알(Koal), 브힐(Bheel)족처럼 인도의 깊은 산중과 정글에 사는 원시 부족은

 

아무 해도 입지 않을 것이다. 반면, 봄베이나 뉴욕에 사는 사람들은 아무도 살아 남지 못할 것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항상 가장 큰 도시가 파괴된다. 그런 도시가 공격당한다.
 

그러나 인도의 바스타르(Bastar) 지방에 사는 원주민은 살아 남을 지도 모른다.

 

그는 이이들에게 하늘을 나는 비행기에 대해 들려주겠지만 잘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분명히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보았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그 물체가 어떻게 하늘을 나는지, 왜 날아왔는지 설명할 수 없다.

 

그에게는 암호 해독문이 없기 때문이다. 그 해독문은 봄베이 사람들에게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죽었다.
 

 

한두 세대 동안 아이들은 어른들의 말을 믿을 것이다. 그러나 나중에는 ' 그 물체를 보았어요?'하고 의문을 표할 것이다.
 

그러면 어른들은 이렇게 답할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들었다. 우리의 아버지가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들 역시 선조에게 그렇게 들었다.

 

한때 하늘에 비행기가 날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큰 전쟁이 일어나서 모든 것이 파괴되었다."
 

서서히 아이들은 '비행기가 어디에 있어요? 그것이 어떻게 생겼는지 비슷한 모양이라도 보여 주세요.'하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2천 년이 지난 후에 아이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조상이 만들어 낸 상상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하늘을 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났다.
 

이 나라에서 사이킥 마인드(psychic mind)에 의해 얻은 모든 지식은 마하바라타(Mahabharata) 전쟁에서 소멸되었다.

 

이제 이것은 전설로 남아 있다.
 

이제 우리는 '라마(Rama)가 스리랑카에서 비행기를 타고 날아왔단 말인가?'하고 의심한다.

 

그 당시의 유물 중에 자전거 하나도 발견되지 않은 마당에 비행기라니? 이것은 전혀 불가능해 보인다.

 

어떤 책에도 비행기에 대한 언급이 없다. 사실, 마하바라타 이전에 존재했던 모든 지식은 이 전쟁을 통해 소실되었다.

 

그리고 기억으로 간직할 수 있는 것만이 보존되었다.
 

 

그러므로 고대의 지식을 분류하는 이름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스므리티(smuriti)'고, 다른 하나는 '쉬루티(shruti)'다.

 

'스므리티'는 '전통적으로 기억되고 나중에 씌어진 것.'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쉬루티'는 '전통적으로 구전되고 그 다음에 기록된 것.'이라는 뜻이다.
 

 

이것들은 기억되고 구전된 지식들의 종합이다. 증명되고 검증된 사실들이 아니다.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말하고, 그 사람 또한 다른 사람에게 말한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모든 것을 모아서 경전의 형태로 보전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그것들 중의 어느 것도 증명할 수 없다.
 

 

이 세상의 지성인은 아주 극소수라는 것을 명심하라.

 

아인슈타인이 죽으면 상대성 이론을 설명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을 찾기가 힘들다.
 

아인슈타인 자신이 '이 이론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열 명이나 열 두명 정도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열 두명 마저 죽으면, 많은 사람이 상대성 이론에 관한 책을 읽는다 해도 단 한 명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마하바라타 전쟁은 그 시대의 탁월한 인물들을 몰살시켰다.

 

그 다음에 남은 것은 모두 설화나 전설이 되었다.
 

이제 그 이야기들을 검증하기 위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인도인들은 불행하게도 이 방면에 대해 아무 연구도 하지 않고 있다.
 

 

최근에, 대략 4,5천 년 지난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가 발견되었다. 그 곳은 공항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런 장소에 대해서는 다른 추리가 가능하지 않다.

 

기계 장비가 없으면 도저히 건설이 불가능한 건축물들이 발견되었다.
 

 

실제로, 피라미드를 쌓는데 사용된 돌은 우리 시대의 가장 큰 크레인으로도 들어올리기가 불가능하다.

 

이 돌들은 인위적으로 그 곳에 놓여진 것이다. 이것 만큼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 돌들은 인간에 의해 들어올려진 것이다.

 

이 사람들은 우수하고 정교하나 기계 장비를 갖고 있었거나 아니면 네 번째 신체를 사용했거나 둘 중 하나다.

 


예를 들어, 한 가지 실험을 해 보라. 한 사람을 바닥에 눕히고 네 명이 둘러선다.

 

두 명은 바닥에 누운 사람의 양 무릎 아래에 손가락을 넣고, 다른 두 명은 어깨 밑에 손가락을 넣는다.

 

오직 하나의 손가락만 넣는다. 손가락만으로 그를 들어올리겠다는 확고한 결의를 가져라.

 

그리고 5분 동안 격렬하게 호흡하라. 그 다음에 숨을 멈추고 그를 들어올려라.

 

손가락만으로 그를 들어올리는 것이 가능하다.
 

 

피라미드의 돌은 거대한 크레인에 의해 올려졌거나 아니면 사이킥 파워(psychic power)에 의해 들어올려진 것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이런 사이킥 파워를 사용했을지도 모른다. 그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돌이 거기에 있고, 이 돌들은 인위적으로 쌓아올린 것이다.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사실은, 사이킥 파워의 적용범위가 무한하다는 것이다.
 

네 번째 차원으로 들어간 사람이 반드시 달에 대해 알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그는 이런 문제에 관심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는 이런 문제를 대단치 않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다른 문제에 관심을 가졌으며, 그 방면으로 연구를 완성했다.
 

 

예를 들어, 그들은 영혼이 존재하는지 알기를 열망했으며, 그 방면에서 앎에 도달했다.

 

이젠 과학도 영혼이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네 번째 신체에 도달한 사람들은 사후에 인간이 어떻게 되는지, 어디로 가는지 알기를 열망했다.
 

 

그들은 물질 세계에 거의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지구의 지름을 재는 문제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그들이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갖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어린아이가 어른에게 '아저씨는 유식하지 않아요. 아저씨는 이 인형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도 모르잖아요.

 

하지만 옆집에 사는 애는 인형에 관해 모든 것을 알아요. 그는 모르는게 없어요.'하고 말하는 것과 같다.
 

 

아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 말이 옳다. 그들은 인형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관심을 갖는다.

 

그러나 어른은 이런 문제에 아무 관심이 없다.
 

 

네 번째 차원에 진입한 사람의 탐구는 그 차원을 달리 한다. 그는 다른 것들에 대해 알기를 원한다.

 

그는 사후에 영혼이 어떤 여행을 하게 되는지 알기를 원한다.

 

인간은 죽어서 어디로 가는가, 그는 어떤 길을 여행하는가, 이 여행의 원칙은 무엇인가, 그는 어떻게 다시 태어나는가,

 

그의 탄생과 출생지를 점칠 수 있는가.
 

 

다섯 번째 차원으로 들어간 사람은 이런 것들을 알고 싶어한다. 그는 달나라에 가는 것에 관심이 없다.

 

이런 문제는 관심 밖이다. 깨달음의 길을 발견하는 것이 그의 열망이다. 그에게는 이것만이 가치 있는 일이다.

 

그는 아기가 잉태될 때 아트만이 어떻게 자궁 속으로 들어가는지, 올바른 자궁을 발견하도록 아트만이

 

어떻게 자궁 속으로 들어가는지, 올바른 자궁을 발견하도록 아트만을 돕는 것이 가능한지,

 

그리고 아트만이 태내로 들어가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등을 알고 싶어한다.
 

 

<티베트 사자의 서>라고 불리는 책이 있다. 티베트에서는 네 번째 신체에 도달한 사람들이 한 가지 과제에 열중한다.

 

어떻게 하면 사후의 인간에게 최선의 도움을 주느냐 하는 것이 그들의 과제다.
 

가령, 그대가 죽었다고 가정해 보자. 내가 아무리 그대를 사랑했다 해도 사후의 그대를 돕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티베트에는 죽은 사람을 도와주고 안내하는 방편이 있다.
 

죽은 사람이 특정한 자궁 속으로 들어가고 특정한 탄생을 취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완벽한 대비책이 마련되어 있다.
 

과학이 이것을 발견하려면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과학도 이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 그다지 큰 어려움은 없다. 
 

 

티베트인들은 이런 일의 타당성을 검증하는 방법도 발견했다.

 

달라이 라마(Dalai Lama)는 다음 생에 어디에 태어날 것인지, 사람들이 어떻게 그를 알아볼 수 있도록 어떤 상징을 남겨둔다.
 

그리고 그가 죽은 후, 나라 전역에 걸쳐 그의 환생을 찾는 조사가 시작된다.

 

이 상징의 비밀을 말하는 아이가 달라이 라마의 환생으로 여겨진다. 이 비밀은 그만이 알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달라이 라나 또한 이런 식으로 발견되었다.
 

 

전임 달라이 라마는 어떤 상징을 남겨 두고 죽었다. 나라 전역에 특별한 포고문이 발표되었으며,

 

이것을 설명할 수 있는 아이가 달라이 라마의 환생으로 인정받았다.

 

전임 달라이 라마의 영혼이 이 아이 안으로 들어갔다고 여겨졌다.
 

 

이 조사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마침내 상징을 해독할 수 있는 아이가 발견되었다.

 

그것은 아주 비밀스러운 공식이었다. 오직 진짜 달라이 라마만이 그 의미를 알 수 있는 것이었다.
 

 

 

네 번째 차원으로 들어간 사람의 호기심은 전혀 다른 방면으로 향한다.

 

우주는 무한하다. 이 우주의 신비와 비밀도 무한하다. 현대 과학이 발견한 것을 전부로 생각하지 말라.

 

앞으로 새로운 과학이 계속 출현할 것이다. 이 우주에는 수많은 분야가 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발견되었을 때 미래의 사람들은 우리를 비과학적인 세대였다고 말할 것이다.

 

그들이 알게 될 것을 지금 우리는 모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고대인들을 비과학적이라고 불러서는 안된다. 그들은 관심 분야가 달랐을 뿐이다.

 

관심을 갖고 탐구할 수 있는 분야는 무궁무진하다.
 

 

우리는 이렇게 물을 수도 있다.
 

 "우리는 병을 고치는 많은 치료법을 발견했다.

 

그런데 네 번째 차원으로 들어간 이 사람들은 왜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는가?"
 

 

그러나 아유르베다(Ayurveda)와 유나닉(Yunanic) 에 얼마나 많은 약초 요법이 기술되어 있는지 알면 그대는 놀랄 것이다.

 

이 사람들은 실험실에서 연구를 한 적도 없다. 그런데 어떻게 각 질병마다 적합한 치료법을 발견한 것일까?
 

 

이와 같은 일은 네 번째 신체를 사용함으로써 일어났을 가능성이 많다.
 

바이드야 루크만(Vaidya Lukman)에 관해 잘 알려진 이야기가 있다.

 

그는 식물에 가까이 갈 때마다 '너는 어디에 쓰임새가 있니?'하고 묻곤 했다.

 

이제 오늘날에는 이런 이야기가 터무니 없어 보인다. 식물에 말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허황된 것 같다.

 

50년 전만 해도 식물에는 삶이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과학도 식물에 삶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30년 전만 해도 우리는 식물이 호흡한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식물이 숨쉰다는 것을 인정한다.

 

15년 전까지 우리는 식물에 느낌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15년 이내 우리는 식물에 느낌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그대가 분노를 가지고 접근하면 식물의 상태가 변한다. 사랑을 가지고 접근하면 다시 변화가 일어난다.

 

그러므로 앞으로 50년 이내에 식물과의 대화가 가능함을 알게 된다 해도 전혀 허황된 일이 아니다.
 

 

이것은 점진적인 발전에 의해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루크만은 오래 전에 이것을 알았다.

 

그러나 이 대화 양식은 흔히 우리가 나누는 대화와 같지 않다.

 

식물과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네 번째 신체의 특성이 필요하다. 이 때는 식물에게 묻는 것이 가능하다.
 

 

나는 이 이야기를 진실이라고 믿는다. 그가 사용한 무수한 식물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거대한 실험실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당시에 그렇게 거대한 실험실이 있었다는 언급은 어디에도 없다. 그 식물 모두를 연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과학적으로 연구한다면 한 가지 식물의 비밀을 파헤치는 데도 평생이 걸린다.

 

그런데 루크만은 무수하게 많은 식물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제 과학은 그 중 많은 식물이 치료 효과를 갖는다고 인정한다. 이 식물들은 지금도 이용되고 있다.

 

과거에 이루어진 모든 연구는 네 번째 차원으로 들어간 사람들의 업적이었다.
 

 

이제 우리는 수천 가지 질병을 다루고 있다.
 

네 번째 차원에 도달한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질병이란 없다. 왜 그것을 치료하는가?"
 

 

이제 과학은 이것을 이해하고 대증 요법에서 새로운 치료법을 쓰고 있다.

 

미국의 일부 병원에서는 새로운 방법을 적용하고 있다.
 

가령, 똑같은 증세로 시달리는 열 명의 한자가 있다고 하자. 그 중 다섯 명에게는 물을 투여하고,

 

나머지 다섯 명에게는 통상적인 의학 요법을 사용한다.

 

그런 다음 결과를 보면, 두 그룹에서 동등한 치료 효과가 나타난다.
 

이것은 물을 투여받고 치료 효과를 본 사람들은 실제로 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

 

'나는 병에 걸렸다'는 환상에 빠져 있음을 보여 준다. 이런 사람들에게 통상적인 치료법을 쓰면 오히려 해가 된다.

 

그들에게는 아무 치료법도 필요 없다.
 

 

많은 질병이 불필요한 치료법 때문에 생긴다. 그리고 이렇게 생긴 질병은 치료가 어렵다.

 

그대에게 실제로 병이 없다 해도 그 병에 대한 치료 약은 어떤 식으로든 작용을 미칠 것이다.

 

그 약은 그대의 몸에 독으로 작용할 것이고, 이로 인해 그대는 새로운 치료가 필요하게 될 것이다.
 

 

병에 결렸다는 환상이 진짜 병을 안겨 준 것이다. 90퍼센트의 질병은 심리적인 것이다.

 

50년 전만해도 과학은 이것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현대 의학은 질병의 50퍼센트 정도를 심리적인 것으로 인정한다.

 

나는 그들이 40퍼센트를 더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과거에 네 번째 차원에 도달한 사람들은 많은 것을 알았다. 그런데 아무도 그것을 연구하지 않는다.

 

그들을 다시 해석하려고 시도하는 사람이 없다. 그들이 얻은 지식을 과학적인 개념으로 재조명하는 사람이 없다.

 

이것이 유일한 난관이다. 일단 그런 일이 행해지면 그 때부터는 아무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그들이 사용한 우화의 언어는 과학 개념과 크게 다르다.

 

오늘날 과학은 햇빛이 프리즘(prism)을 통과하면서 일곱 부분으로 나뉘어 진다고 말한다.

 

이런 식으로 일곱 가지 색깔이 나타난다.
 

 

그러나 베다의 리쉬(rish)들은 '태양의 신은 일곱 가지 색깔의 일곱 마리 말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이제, 이것은 우화의 언어다.

 

그들은 '태양은 각기 다른 색깔의 일곱 마리 말을 갖고 있으며 그 말들을 타고 다닌다.'고 말한다.

 

이 말은 태양빛이 일곱 부분으로 나뉜다는 것을 의미한다.
 

 

리쉬들의 말이 우화라면 프리즘에 의한 설명은 과학적인 해석이다.

 

오늘날 과학의 언어를 이해하듯이 우리는 우화의 언어 또한 이해해야 한다.
 

 

초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과학이 나중에 이해하는 것을 훨씬 앞서서 예견한다.

 

그러니 이 예언은 모두 상징적인 언어로 이루어진다.

 

이 예언이 현대의 일반 언어로 설명되는 것은 과학이 똑같은 사실을 발견하고 난 다음의 일이다.

 

그 전에는 마땅한 언어가 없다.
 

 

과학이 최근에 생긴 것이라면 언어와 수학은 훨씬 전에 생긴 것이다.

 

모든 방면에서 연구 조사를 계속한다면 그대는 이것을 알고 놀랄 것이다.

 

언어와 수학을 개발한 사람들은 어떤 수단을 갖고 있었을까? 그 측량 수단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은 지구가 태양의 주변을 한 바퀴 도는 데 1년이 걸리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이 공전을 기준으로 해서 1년이라는 시간이 정해졌다. 그들은 아주 어래 전에 이것을 발견했다.

 

과학보다 훨씬 앞서서 이것을 알았다. 1년을 365일로 나눈 것도 마찬가지다.

 

이 고대의 선각자들에게 과학적인 수단이 있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사이킥 비전이 있었다고 보는 것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아주 이상한 사실이 밝혀졌다.
 

한 아라비아(Arabia)인이 7백년 묵은 세계 지도를 갖고 있다. 이 지도는 세계 전체를 공중에서 내려다 본 모양으로 그려졌다.

 

땅 위에서 이런 지도를 그리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 이 지도에 대해서는 오직 두 가지 설명이 가능하다.

 

7백년 전에 이미 비행기가 있었거나-이것은 아무래도 불가능해 보인다-아니면

 

어떤 사람이 네 번째 신체를 이용해 그런 고도까지 올라가서 지도를 그렸다는 것이다.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하다. 그 당시에는 비행기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지도는 7백년 전에 만들어졌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고대의 명의인 차라크(Charak)와 수쉬루트(Sushrut)를 연구해 보면 우리는 경악을 금치 못할 것이다.

 

과학자들이 인체를 해부해 보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을 그들은 이미 오래 전에 상세하게 설명해 놓았다.
 

 

이런 것을 알기 위해서는 오직 두 가지 방법밖에 없었다.

 

하나는 수술이 행해진 증거도 남지 않을 만큼 교묘한 수술을 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의 수술 기구나 책이 발견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들은 인체의 아주 미세한 부분에 대해서도 설명해 놓았다.

 

이 고대의 의사들은 너무나 미세해서 과학이 오랜 후에야 발견한 부분들,

 

25년 전만 해도 과학자들이 그 실재를 부인했던 부분들까지 설명해 놓았다.
 

 

고대의 의사들이 이것을 알게 된 두 번째 가능성은

 

어떤 사람이 사이킥 상태에서 인간의 육체안으로 들어가 이런 부분들을 보았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엑스레이(X-ray)가 인체를 뚫고 들어간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만일 백년 전에 인체의 뼈를 사진으로 찍을 수 있다고 말한 사람이 있었다면 우리는 그의 말을 믿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이 말을 당연한 것으로 믿는다. 사실이 그렇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대가 모르는 사실이 있다. 네 번째 신체에 도달한 사람의 눈은 X선보다 더 싶은 곳을 볼 수 있다.

 

그리고 해부를 해보고 만든 것보다 더 완벽한 인체도를 말들 수 있다.
 

 

수술이 서양에서 발달한 것은 그들이 시체를 매장했기 때문이다.

 

인도처럼 화장이 행해진 곳에서는 수술의 발달이 불가능했다.

 

놀라운 사실이지만 이 수술에 대한 연구는 도둑들의 도움으로 행해졌다.

 

그들이 시체를 훔쳐다가 의사들에게 팔았고, 의사들은 이 시체로 연구할 수 있었다.
 

 

화장의 관습은 사이킥 차원에 도달한 사람들의 생각이기도 했다.

 

전생의 육체가 남아 있으면 영혼이 새 육체를 갖고 탄생하는 데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고 그들은 믿었다.

 

그렇게 되면 영혼은 낡은 육체의 주변은 배회할 것이다.


 

그러나 육체가 불타서 재가 되면 영혼은 이런 집착에서 벗어날 것이다.

 

일단 육체가 불타서 재가되는 것을 본 영혼은 다음 번의 육체에서 '내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결국은 소멸되는구나.'

 

하고 깨달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도에는 화장 관습이 있었다. 따라서 인체를 해부할 길이 없었다.

 

서양에서는 도둑들이 무덤에서 시체를 훔쳐다가 팔았고, 과학자들이 이 시체를 갖고 연구할 수 있었다.

 

이 사람들에게는 법률 문제를 비롯하여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시체를 도굴하는 것과 해부하는 것 둘 다 범죄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무수하게 해부하고 나서 알게 된 것을 3천년 전의 책들은 통하지 않고도 밝혀 놓았다.

 

이것은 과학적인 실험 외에도 다른 앎의 방법이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나중에 그대가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나는 이 주제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할 것이다.

 

 

-OS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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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작약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07.03 지금 나오는 QR코드 같은 것도 변환기가 없으면 무용지물인데 우리의 종교 신행이라는 것이 QR코드를 숭배하고 있는 행위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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