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아주 천천히 늙어서 예컨대 삼백살까지 하는 마을이 있다고 상상해보자. 갓 태어난 평범한 아기를 이 마을에다 데려다 키우면 당신은 그 아기가 얼마나 오래 살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바로 이것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사람은 태어나자마자 기본 시나리오에 길들여지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건강이 나빠진다.' '몸은 노화되어 결국은 죽는다.' 물론 거기에다 일반적인 생리학적 원인도 있다.
그러나 트랜서핑 이론의 관점에서 노화과정을 바라본다면 그것은 유도전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한술 더 떠서, 노화야말로 가장 장기간에 걸쳐 일어나는 유도전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유도전이의 과정은 느리고도 확실하게 일어난다. 노화의 시나리오는 너무나 명백하고 익숙한 것이라서 그것을 의심하려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시나리오를 바꿔보려는 시도들은 결국 불로장생약을 만들어 보려는 온갖 시도로 귀결됐다. 하지만 약리학과 유전자 공학이 발달한 현대에 와서도 이렇다 할 만한 성과는 나오지 않고 있다.
그러니 우리는 노화의 원인 중 생리학적 요인은 단지 그 일부일 뿐이라고 볼 수 있다. 유도전이가 그중 몇 퍼센트 정도를 차지할지는 측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 역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노화라는 것이 어떻게 일어나는 지를 깨닫는 것이다.
아주 어릴때부터 우리는 사람이 늙어간다는 것을 피할 수 없는 과정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평생 동안 우리는 주변 사람들의 경험과 자신의 개인적 경험으로부터 이 믿음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넘치도록 수집한다. 생일이 돌아올 때마다 사람들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기를 빌어주곤 하지만 그것은 그저 형식적으로 빌어보는 희망사항일 뿐이며 노화의 시나리오는 바꿀 수가 없다는 것을 모두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오히려 그 소망을 사실의 언어로 번역하자면, 당신의 건강은 이미 예전 같지 않으며 세월은 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다는 뜻이다. 그런 소망은 사실은 파괴적인 펜듈럼으로부터 오는 약간의 진동,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희롱이다.
조만간 당신은 자신이 10년전에는 훨씬 더 기운 넘치고 힘이 셌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그 생각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진다. 당신은 곧 좋은 상대를 만나고, 당신과 그들은 마치 그것이 즐거운 일이라도 되는 듯이 열을 띠고 그 생각을 키워가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사람들 사이의 대화에서 질병에 관한 이야기는 날씨만큼이나 인기 있는 주제가 된다. 그런 대화에 끼어들 때 당신은 그 파괴적 펜듈럼의 주파수로 에너지를 방사하고 있다. 달리 말해서, 펜듈럼의 게임을 자진해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펜듈럼은 어떤 병이나 불편한 기분 등의 형태로 슬그머니 당신을 자극한다. 그러면 그것은 당신을 깊은 근심에 빼뜨려서 이렇게 생각하도록 만든다.
"내가 병들어 가는 것 같아." 이것은 펜듈럼의 진동 주파수에 대한 당신의 반응이다. 펜듈럼은 당신의 에너지를 받고 또다시 당신을 자극한다. 그러면 당신의 병은 더 깊어진다. 그래서 병원에 가면 의사는 병을 확인해주고, 그 결과 병은 더욱 악화된다. 펜듈럼은 당신의 에너지를 받아 더 크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병이 막바지에 이르면 펜듈럼은 이미 필요한 에너지를 모두 얻었으므로 당신을 내버려두고 떠난다. 그리하여 유도전이가 그 '먹이'를 폐인이 되는 인생트랙으로 던져버리지 않는다면 당신은 병에서 회복되기 시작한다.
여기서 당연히 이런 질문이 나오리라. 그렇다면 병원에 가지도 말고 약을 먹지도 말라는 말인가? 그리고 병을 몽땅 무시해버리라는 말인가? 아니다. 병이 이미 깊어진 상태에서 치료를 거부하는 것은 게임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이 아니라 무모한 태만이다. 내가 말하는 것은 게임에 끌려들지 말라는 것이다.
결근한 직장동료에게 당신이 물어본다.
"어제는 왜 출근 안 했어?"
그러면 그는 십중팔구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 몸이 아팠어."
그가 '낫고' 있었던 게 아니라 '아프고' 있었다는 점에 주목하라.
"안색이 안 좋은데 무슨 일 있어요?"라고 물으면 "몸이 아파요"라는 대답이 돌아올 것이다. 이 물음에 "몸이 낫고 있어요"라고 대답하는 것은 어쩐지 자연스럽지가 않다. 질병이라는 게임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서 병의 실질적인 회복은 목표가 아니라 게임의 부수 효과처럼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파괴적인 펜듈럼과의 게임은 당신이 병의 조짐을 넙죽 받아들일 때부터, 달리 말해서 유도전이의 나선의 끝을 붙잡을 때부터 시작된다. 병의 징후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태연히 물리치고 잊어버린다면 당신은 펜듈럼의 첫 번째 도발이 헛발질을 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잘 되지 않을 때는 적당한 예방조치를 함으로써 펜듈럼을 꺼버릴 수 있다. 만일 그래도 결국 아프게 된다면, '질병'게임을 하지 말고 '치유'게임을 하라.
질병 게임을 한다는 것은 수동적으로 고통에 시달리는 것이다. 이런 저런 통증과 증상을 놓고 사람들과 이야기 하고, 끙끙 앓으면서 아픔을 호소하고, 사람들이 마음 아파하고 돌봐주기를 바라면서 안달복달하는 것이다. 질병 게임을 한다는 것은 몸의 불편한 느낌을 자신의 불가결한 일부로 여기고, 마치 새 장난감을 얻은 아이처럼 악화된 건강을 놓고 호들갑을 떠는 것이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그 병에 관련된 정보를 닥치는 대로 다 끌어 모으는 것이다.
치유 게임을 한다는 것은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다양한 치유법에 관심을 두고 건강한 생활방식을 추구하며, 병이 찾아와도 유머감각을 잃지 않는다. 행복한 삶을 증진하는데 주의를 기울여 건강을 추구하고, 같은 생각을 지닌 사람들과 어울린다.
보라. 이 둘은 서로 완전히 다른 게임이지 않은가. 질병 게임에서는, 당신은 파괴적인 펜듈럼의 주파수로 에너지를 방사하면서 수동적 피해자의 역할을 맡는다. 유도전이의 깔때기가 당신을 안으로 빨아들인다. 그러나 치유 게임에서는 당신은 창조자의 역할을 한다. 당신은 적극적인 창조자이자 주인이다. 당신은 자신의 운명을 조종하는 사람이며 그래서 건강한 인생트랙으로 옮겨간다.
자, 이제 당신이 치유 게임을 하고 싶다면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보라. 나는 정말 진지하게 이 게임에 참여하고 있는가? 사실 당신은 자신을 속일 수도 있으며, 그런 일은 종종 일어나고 있다. 예를 들어, 당신은 건강한 생활방식에 따라 나쁜 습관을 버리고 운동을 하고 건강식을 해야 한다는 것을 온전히 인정하지만 실제로는 낡은 습관들이 아주 깊이 뿌리박고 있다. 당신은 단지 '그래야만 하기 때문에' 건강한 생활습관의 규칙을 따르려고 한다. 실제로는 정말 그렇게 하고 싶어하지는 않는 것이다.
이것은 순수한 게임이 아니다. 이 게임의 이름은 '내가 아프지만 다른 사람들이 나를 치료해준다'이다. 에너지 차원의 형국으로 본다면 이런 식의 게임은 질병 게임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다. 이 경우 당신은 자신의 확신에 따라 치유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어서 억지로 하는 것이다. 당신의 의도는 순수하지 않고 진정성이 없다. 그러니 결과도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이처럼 순수하지 못한 게임의 가장 보기 쉬운 예가 여성들의 살빼기 노력이다. 그들은 스스로 다이어트를 강요하면서 자신을 괴롭힌다.('내가 아프지만 다른 사람들이 나를 치료해준다') 그들은 자신의 몸무게와 생김새를 혐오한다. 아시다시피 그것은 몸무게와 생김새가 꼭 그 꼴인 인생트랙의 주파수로 에너지를 방사하는 아주 훌륭한 방법이다. 그들은 사실 다이어트를 싫어한다. 이전에 먹던 대로 먹고 싶어한다. 만일 당신도 이런 게임을 하고 있다면 이 어리석은 자기 강요를 그만두어라. 이런 행위는 기껏해야 일시적이고 보잘것 없는 결과만 가져다 줄 것이다. 자신을 강요하면 잠재의식은 두려워하며 저항한다. 그래서 결국 잠재의식이 당신을 압도하면 그 다음은 뻔한 얘기다. 당신은 다이어트를 그만두고 살이 더 찐다.
결론은 하나뿐이다. 건강과 아름다움을 얻고자 한다면 삶의 방식을 바꾸라. 이것은 낡은 습관을 버리고 새 습관을 가지라는 뜻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야만 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당신의 확신과 일치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의도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 의도는 순수해야 한다. 이전과 똑같은 방식으로 행동한다면 당신은 건강한 인생 트랙의 주파수로 의도 에너지를 방사할 수 없을 것이다. 즉, 그런 인생 트랙으로 옮겨가지 못하게 된다. 이 모든 것은 생각만큼 어려운 일이 아니다. 습관을 바꾼다는 것은 단지 의도의 문제,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그다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도 않을 것이다. 그것은 당신의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