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재
대전광역시 대덕로 유성구에 위치한 한국천문연구원 박석재 원장을 찾은 날은 만개한 벚꽃이 전 국토를 뒤덮고 있었다. 한국을 상징하는 무궁화가 벚꽃만큼 자신의 위용을 자랑할 날이 과연 올까 씁쓸함마저 느껴지는 정오, 천문연구원 건물 중앙엔 눈부신 햇살을 받고 있는 조선시대 천체관측 기구 간의가 복원되어 있다.
유리문을 밀치고 들어서자 손님을 맞는 ‘천상열차분야지도’가 당당히 서 있다. 곧이어 바쁜 일정을 미루고 잠시 시간을 낸 박석재 원장을 만났다. 큰 학문인 우주를 연구하는 학자답게 그의 풍채가 듬직하다.
그는 한민족이 태초부터 ‘하늘의 자손’이었다고 말한다. 잠시 잊었을 뿐 지구에 살고 있는 생명체 중 우주에 속해 있지 않은 존재가 어디 있겠는가. 그에게 우주와 우주의 자손으로서의 비전을 듣고 나니 듣는 이의 마음도 우주만큼이나 원대해 진다.
우리는 누구인가
외국 유학 당시 한 이란 학생이 박석재 원장에게 ‘한국인의 공통정신은 무엇이냐’고 질문했다. 박 원장은 “우리나라에는 삼일정신, 새마을 정신, 국민교육헌장, 충무공 정신 등 아주 많이 있다”고 대답하려 했다. 그러나 막상 어느 정신이 그의 가슴을 채우고 있는지 알 수 없어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고.
반면 그에게 질문했던 그 이란 학생은 너무도 자랑스럽게 ‘페르시아의 영광을 재현하는 것’이 자신들의 국민정신이라고 당당히 말했을 때 박 원장은 한없이 부끄러웠다. 다른 한국 유학생들한테도 똑같은 질문을 던졌지만 어느 누구도 대답할 수 있는 학생은 없었다.
그때부터 ‘우리는 누구인가’하는 그의 고민은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자신 있게 ˝우리 민족은 하늘의 자손이며 공통된 민족정신은 우주와 하늘의 섭리를 따르는 ‘선비정신’이다˝고 확답할 수 있다.
“우리를 천손이라고 정의하고 나니 조상들이 추구했던 선비정신이 무엇인지 감이 왔다. 하늘의 섭리를 좇고 천벌을 두려워하며 자연의 섭리대로 치졸하지 않고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야 말로 선비정신이 아니겠는가? 정철 가사에 보면 국자 모양의 북두칠성으로 은하수를 퍼서 마신다는 내용이 등장하는데 얼마나 멋있는가. 은하수를 우유로 보았던 서양은 ‘밀키웨이’, ‘갤럭시’라고 했지만 우리는 은하로 보았기 때문에 ‘은하수’로 명명했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소중히 여기고 지켜갈 때 우리 것이 된다는 사실이다.”
일국의 천문대장이라 자부하는 박석재 원장은 요즘의 세태를 보면 갑갑증이 일어난다. 국민이 좀 더 넓고 멀리 내다 볼 수 있는 비전을 가져야 할 ‘우주시대’에 아직도 우리는 이 땅에만 급급한 것이 안타까운 것이다. 고개만 들면 하늘이 보이는데 말이다.해와 달과 별…“하늘이 열리는 날(개천절)을 국경일로 삼은 민족은 우리가 유일하다.“
˝우주에는 무엇이 있나요?˝ 아이들이 곧잘 그에게 하는 질문이다. 박 원장은 ˝언제나 해와 달과 별이 있다˝고 답한다.
달이 지구를 공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한 달이요, 지구가 해를 한 바퀴 공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한 해다. 이렇게 아름답고 의미심장한 ‘해’와 ‘달’과 ‘별’ 같은 우리말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도 우리 민족이 태초부터 우주와 하늘을 관찰해 온 민족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 나라의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옥토끼’가 달에서 방아를 찧는다는 이야기를 수없이 듣고 자랐다. 이것이 우리 민족 최초의 SF다.”
그런 멋진 이야기를 문화콘텐츠로 발전시키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는 박 원장은 실제 보름달 사진의 검은 얼룩부분을 보여주며 조상들의 이야기가 허무맹랑한 얘기만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국기에 천체를 사용하는 나라로는 일본과 중국이 있다. 하지만 ‘우주의 원리’를 바탕으로 국기를 만드는 나라는 우리가 유일하다. 심지어 몇 천 년 전 것으로 추정되는 고인돌에도 별이 새겨진 채로 발견된 것만 수십 개에 이르니 이것만으로도 지구상에서 우리 민족만큼 우주를 사랑하고 숭상해 온 민족은 없다고 했다.
“하늘이 열리는 날(개천절)을 국경일로 삼은 민족은 우리가 유일하다. 의미상으로 보면 국경일 중에서 이보다 더 중요한 날은 없다.”
고등학교 때 별이 쏟아질 것 같은 해변에서 친구와 이런 저런 고민을 서로 털어 놓던 그는 몇 천 개의 별이 떠 있는 밤하늘을 보게 되었다. 해변에 벌렁 누워 ‘임마, 하늘 좀 봐라’고 말했던 기억을 떠올리던 그는 별이 인간을 정화하는 힘을 가지고 있음을 그때 알았다고 말했다.
“요즘 세대가 별을 잊고 사는 것을 보면 불쌍하다. 하늘의 별이 몇 개냐고 물으면 이십 개나 삼십 개 이상을 생각 못하는 요즘 아이들이다. 세상을 사는데 있어 별이 이삼십 개 있다고 알고 크는 것이 유리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하늘에 별이 몇 천 개도 넘게 있다고 알고 크는 아이와 이삼십 개 있다고 알고 크는 아이의 꿈은 크기도 깊이도 다르다.이 차이는 비싼 과외로도 메워지지 않을 것이다.“
하늘의 지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
지난 4월 8일 8시 16분 35초.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기지에서 한국인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 씨를 태운 러시아 우주선 소유즈호가 발사됐다. 우주인 이소연 씨는 하늘의 지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와 보현산 천문대의 천체망원경이 그려진 새 만원 지폐를 가지고 간 것으로 알려졌다.
만원 지폐가 새로 발행돼 상용화된 지 이미 오래지만 지폐 뒷면에 하늘을 흠모한 우리 민족의 업적들이 그려져 있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그중 <천상열차분야지도>는 박 원장이 우리 민족이 하늘의 자손임을 제시할 때 거론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다. 이것은 고구려에서 유래된 천문도로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밤하늘의 모든 별을 돌에 새겨 만든 하늘의 지도다.
중국의 천문도와는 달리 1,460여 개의 별을 그 밝기에 크기를 다르게 새겨 넣은 과학적인 천문도로 평가받고 있다.
이처럼 의미가 깊은 <천상열차분야지도>를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온 국민이 땅의 지도인 <대동여지도>는 알면서 하늘의 지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모른다는 사실이 또 그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덕수궁에 있는 국보 228호 천상열차분야지도(1395)의 오른쪽 아랫부분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새겨져 있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당초 조선 태조에게 바쳐진 탁본의 원본이 평양성에 있었는데 전란 중 대동강에 빠졌다는 것이다. 즉 그 원본은 중국의 석각천문도 보다 대략 천 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박 원장은 ˝대동강 물속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천상열차분야지도 원본은 광개토대왕비 못지 않은 우리의 문화 유산이다. 광개토대왕비가 민족의 힘을 보여 준 것이라면 천상열차분야지도는 민족의 문화를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까운 장래에 원본이 하늘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천문학은 제왕의 학문이다
만원 지폐 앞면에는 임금이 정사를 했던 근정전 옥좌 뒤에 그려져 있는 <일월오봉도>가 새겨져 있다. 여기에도 깊은 의미가 있다. 박 원장은 ˝우주를 '백(Back)'으로 보좌에 앉았던 분이 바로 우리 민족의 임금이었다˝고 설명한다.
<일월오봉도>는 해와 달과 산 다섯봉우리를 그린 것인데 바로 '음양오행성'을 뜻한다. '일월'은 해와 달을, 다섯개의 봉우리는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과 같이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5개의 행성을 뜻한다.
별이란 태양처럼 스스로 빛을 내는 천체를 말한다. 박 원장은 우리 민족이 수성과 금성 등을 별이라 하지 않고 행성이라 한 데에 주목한다. 그는 선조들이 이 행성들을 몇 달에 걸쳐 관측해 보고 뭇별들 사이를 돌아다니는 특성까지 함축해 기가 막힌 이름을 붙였다며 감탄한다.
동북공정의 정신적 기조는 천자(天子)…중국은 아직도 중국의 왕들이 하늘의 뜻을 받아 책력을 펴고 천문현상을 널리 알리는 '춘절'을 성대하게 공휴일로 지낸다
중국에서 진행하고 있는 동북공정의 정신적 기조는 바로 '천자'다. 중심에 있는 나라라고 자부하는 중국(中國)의 천자(天子) 즉, 하늘의 아들은 연말이면 여러 나라에서 책력을 받으러 오는 사신들을 맞이한다.
하늘의 법칙을 아는 천자가 무지해서 하늘의 법도를 알지 못하는 나라들에게 책력을 베푸는 천자의 위치는 그야말로 대단했다. 중국은 아직도 중국의 왕들이 하늘의 뜻을 받아 책력을 펴고 천문현상을 널리 알리는 '춘절'을 성대하게 공휴일로 지낸다.
하지만 고구려 또한 스스로를 천손(天孫), 즉 하늘의 자손이라고 불렀다. 2007년 6월에 종영된 작가 이환경이 쓴 SBS 사극 <연개소문>의 대사를 보면 극중에서 강이식 장군이 미약한 영양왕에게 세 번이나 ˝책봉은 받와 와도 되지만 책력은 받아오지 말라˝고 세 번 이나 당부하는 장면이 있다.
나라가 힘이 약해 외교적으로 중국에서 책봉을 받아야 하는 수모는 어쩔 수 없다 해도 하늘의 법칙인 책력만큼은 천손인 고구려 왕으로서 받아올 수 없다는 말이다. 박석재 원장은 시청자의 1%도 작가의 의도를 알지 못했을 것이라며 '천손'이라는 긍지가 대단했던 이들이 바로 우리 민족이었음을 역설했다.
잠이 든 신하에게 자신의 용포를 벗어 준 인자한 임금이었던 세종대왕은 하늘을 숭상한 사람 중 하나였다. 어느 날 의관을 정제하고 일식을 기다렸던 세종은 천문대장이 예측했던 시간에서 무려 15분이나 늦게 일식이 일어나자 하늘의 법도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던 천문대장의 볼기를 친 일이 있다.
˝하늘이 내린 왕으로서 내 나라 하늘의 법도를 알지 못했다는 데 대한 한심함에 가슴이 아팠을 것이다. 전 세계가 공유하는 오늘날의 책력은 100년 뒤의 일식이나 월식도 초단위로 맞추는 세상이라 지금은 볼기를 맞을 일이 없지만 세종대왕 시대는 그렇지 않았다. 먼 나라 중국 북경에서 가져 온 책력이 조선의 하늘 법도와 맞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세종은 안타까워만 하지 않고 이순지를 시켜 <칠정산>을 만들게 한 위대한 왕이었다.˝
<칠정산>이란 해와 달과 오행성의 천체를 정확하게 계산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뿐만 아니라 장영실을 등용해 천체관측 기구인 ‘간의’와 ‘앙부일구’, ‘천평일구’, ‘규표’, ‘일성정시’ 등을 만들게 한 왕이 바로 세종대왕이다.
‘한글 창제’에 뒤지지 않는 업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중국의 시기와 간섭을 피하기 위해 중국사신이 올 때면 경복궁 안에 설치된 천문관측 기구를 모두 숨겼다고도 전해진다. 박 원장은 오늘날 세종대왕에 대한 평가가 그의 업적에 비해 너무 저평가되고 있다고 한탄했다.
˝우리나라 이름으로 책력이 나오기 시작한 시점이 1976년으로 그 전에는 천문대 자체가 없었던 캄캄한 시대였다. 흔히 첨성대 하면 돌을 쌓아 놓은 건축물만 생각하지만 첨성대라는 직제가 있어 서운관, 관상감 같은 민족의 천문대가 이어져 오다가 일제 강점기에 없어졌고 해방 후 먹고 살기 힘들어 회복되지 못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먹고 사는 것이 급했기에 혜성이 출현하든 안하든 관심을 두지 않다가 이제야 최초의 우주인이 등장하는 시대가 열린 대한민국. 시장에서 물건 파는 아줌마도 우주를 이야기 할 수 있는 시대가 된 요즘에서야 조상을 뵐 낯이 없어 웅크리고 있던 그의 어깨가 조금은 펴지는 듯하다.
우주시대에 어울리는 우주문화 육성해야… 왜 인천 앞바다 하면 사이다만 생각하고 혜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상상은 못하는가?”
그는 ‘하늘의 자손’, 심지어 ‘우주 민족’이라 일컬어져도 전혀 손색이 없는 나라가 한국 최초의 우주인이 세계에서 475번째라는 사실에 한탄한다. 그런 개탄할 일을 초래한 것은 ‘하늘의 자손’인 우리가 하늘을 잊었기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게다가 21세기는 ‘우주시대’라는 것을 누구도 부인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주시대에 어울리는 ‘우주문화’ 육성이 시급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지금 우리나라 국민이 보기에는 잘 먹고 잘 사는 것 같지만 문화적 면에서 보면 ‘졸부’일 뿐이다. TV에서 방영되는 드라마에 온 국민이 열광하지만 그 내용을 보면 기껏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갈등, 불륜, 삼각관계, 폭력배들의 싸움이나 비춰주고 있으니 한심하기 그지없다.“
“우리의 삶은 보고 배운 대로 살아지는 것이기에 더 걱정스럽다. 백인이 외계인을 만나면 당연하고 우리가 외계인을 만나는 드라마는 우리가 봐도 이상하게 여겨지는 것은 왜인가. 우리 공군은 UFO랑 교전하면 안 되고 우주에 가는 드라마는 왜 제작이 안 되는가. 멀더와 스컬리가 외계인을 추적하는 것은 멋있고 우리나라 정보원이 외계인을 추적하면 웃는다. 왜 인천 앞바다 하면 사이다만 생각하고 혜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상상은 못하는가?”
곧 우주 음악과 우주 미술 시대가 개막될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관심이 음악과 미술 분야에 쏠려 있으면서도 우주적인 관점으로 창조되는 예술은 아직 없다.
“우주 미술이나 우주 음악은 왜 없는 것인가. 작품의 제목에 <아인슈타인과 블랙홀>이란 제목은 왜 붙이지 않는가. 칵테일 이름에 ‘이브의 유혹’이란 이름은 잘도 붙이면서 왜 ‘화성에서의 하룻밤’ 같은 우주적인 이름은 생각해 내지 못하는가.”
그의 물음은 끝이 없다. 눈앞의 이익만 좇으며 좁은 시야를 극복하지 못하는 국민의 관심을 저 넓은 우주로 돌리기 위한 그의 노력이 눈물겹다.
로스앤젤레스에 가면 디즈니랜드와 유니버셜 스튜디오만 갔다 오지 그린피스 천문대와 시민천문대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작금의 현실이다. <이유 없는 반항>이란 유명한 영화를 찍은 곳이 바로 그린피스 천문대인데도 말이다.
하와이에 수많은 신혼부부들이 여행을 가지만 4,000m의 마우나 케아 화산 정상에 전 세계 최고의 천문관측소들이 모여 있는 것을 아는 이들은 별로 없다. 그곳에 있는 일본 천문대의 통 거울 망원경은 세계 최고로 일본의 자랑이다. 그러나 백제 때 일본에 천문학을 전해준 우리의 천문대는 그곳에 없다.
“우주론 국기를 가진 우리나라의 천문대가 이곳에 없다니 개탄할 일이다. 만일 축구경기에서 한국이 일본에게 5:1로 진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마 입에 거품을 물것이다. 그러나 천문학에 있어 터무니없이 뒤처지는 것에 대해서 개탄하는 국민은 없다.“
“오늘밤 서울 하늘에 기가 막힌 천문 현상이 일어난다 해도 부모자식 손잡고 하늘을 관측할 수 있는 시민천문대 하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지방 변두리의 사립천문대를 찾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96년도부터 대전 공무원들을 못살게 군 결과 겨우 지어진 것이 대전시민천문대다. 하지만 일본은 별을 보는 시민천문대만 300군데가 넘는다.”
전 세계 천문대 망원경의 거울크기를 보면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보현산 천문대의 1.8m 망원경은 세계적으로 50위권에도 들지 못한다. 그러나 고대 천문학은 어느 쪽이 더 훌륭하다고 말하기 힘들 정도로 우열을 가릴 수 없었다.
다만 천체망원경이 서양에서 나오면서 동양의 천문학이 뒤지기 시작한 것은 사실이다. 이에 대해 그는 “천체망원경을 만드는 기술이 결코 대단한 기술은 아니다. 다만 관심이 없기 때문에 안 만든 결과가 너무 클 뿐이다. 제일 가슴 아픈 것은 ‘별’도 국산이 아닌 외제망원경으로 봐야하는 현실이다”고 속내를 밝힌다.
‘별 짓’ 다하는 행복한 천문대장
어려서부터 별에 씌었다고 말하는 박 원장은 천문학이 뭔지 조차 모르던 시절 막연히 하늘을 연구하겠다고 결심했다. 꿈에 그리던 천문학을 전공하게 되면서 유독 블랙홀에 흥미를 느꼈던 그는 끝내 ‘블랙홀 박사’가 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까지 공부가 너무 어려워 여러 번 좌절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초등학교 시절 장독대에서 밤마다 별을 보며 만들었던 최초의 저서 세 권을 들여다보고 힘을 얻곤 했다.
그가 펴낸 과학저서 중엔 <블랙홀이 불쑥불쑥>같은 베스트셀러도 있지만 이 추억의 노트들이야 말로 지금의 ‘블랙홀 박사 박석재’를 만든 보물 1호라고 할 수 있다.
한국천문연구원의 임기를 마치고 순수한 과학인으로 돌아간다면 다시 블랙홀 연구에 몰두할 계획인 그는 “돈벌이가 안 되는 순수과학 분야인 블랙홀 연구를 하는 학자는 전 세계에서 100명도 채 안 되는 그야 말로 매력적인 연구 분야임에 틀림이 없다”고 말한다.
최근 그는 전공이 ‘별 짓’을 다 하는 것이다. 30년 기타를 친 경험을 살려 ‘Dr. Black Hole & Friends’라는 밴드를 결성해 직접 작사한 <천상열차분야지도>를 연주한다. 물론 천문학을 홍보하기 위한 노력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도 신나는 일이다.
‘한국의 세이건’이란 소리를 들을 때마다 굉장히 행복하다며 “내가 미국에 태어났다면 일국의 천문대장을 어떻게 했겠나. 대한민국에 태어났기 때문에 난 행복한 사나이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현재 시민천문대와 국내 아마추어 천문가들이 많이 증가한 것을 보면 국민의 관심을 다시 하늘로 돌리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공한 셈이다. 그의 노력으로 전국에 ‘별 축제’도 많이 생겼다.
국민의 의식 속에 우주를 심어 줘야 우주시대에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박석재 천문대장’은 나라가 바뀌는 것을 느낄 때가 가장 기쁘다. 바쁜 일정 중에도 공무원과 군인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는 시간을 쪼개서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라의 의식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깨어나야 국민을 깨울 수 있다는 생각으로 7~8년 강의했던 내용들이 이번에 쓴 <하늘을 잊은 하늘의 자손>이란 저서에 모두 녹아 있다. 우주과학에 대한 책을 20여 권이나 집필했지만 우리 민족의 현실과 미래의 비전을 제시한 것은 이 책이 처음이다.
천문학자들이 세계에서 제일 큰 망원경으로 수백억 광년을 관측하지만 인간이 우주를 알면 얼마나 알 수 있을까. 한국천문연구원 박석재 원장은 우주에 대해 알면 알수록 광활함만 깨닫게 된다고 말했다.
“현재 천문학자들이 관측한 우주를 지구의 크기만 하다고 가정할 때 지구는 과연 얼마만한 크기일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지구의 크기는 원자보다 작아서 현미경으로도 볼 수 없다.“
“이처럼 먼지 같은 지구에서 지구만한 우주를 보며 그 안에서 잘났다고 살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 인간인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측정할 수 있는 우주과학 기술이 겨우 지구만한 우주에 머물렀을 뿐 과연 우주가 지구만큼만 하겠는가?“
“그렇지 않다는 것이 학자들의 공통된 결론이다. 이처럼 광활한 우주를 깨우칠 때마다 우주가 나한테 ‘잔 꽤 부리지 마라’고 경고하는 듯 해 겸허해 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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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 일월오봉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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