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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죽음

<OSHO> 자살에 대해

작성자작약|작성시간13.09.27|조회수52 목록 댓글 0

 

 

<질문 : 저는 자살하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먼저 산야스를 받아라.

 

그러면 자살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산야스는 가장 위대한 자살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왜 자살해야 하는가?

 

죽음은 알아서 오고 있다.

 

왜 그렇게 서두르는가?

 

죽음은 어차피 찾아올 것이다.

 

죽음이 오기를 원치 않는다 해도 죽음은 결국 찾아 온다.

 

가서 죽음을 맞이할 필요가 없다.

 

죽음은 초대받지 않아도 올 것이다.

 

하지만 그대는 삶을 놓치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대가 자살하고 싶은 이유는 분노와 절망 때문이다.

 

내가 그대에게 진정한 자살을 가르쳐 주겠다.

 

산야신이 되어라.

 


평범한 자살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대는 즉각 어딘가 다른 자궁 속으로 태어날 것이다.

 

항상 어딘가에서는 바보 같은 커플들이 사랑을 나누고 있다.

 

명심하라... 그대는 또 다시 덫에 걸릴 것이다.

 

그대는 그렇게 쉽게 탈출할 수 없다.

 

세상은 바보 투성이다.

 

그대는 이 육체에서 탈출하지도 못하고 또 다른 그물 속에 걸려들 것이다.

 

그러면 그대는 또 학교에 가야 하고 대학에도 가야 한다.

 

이 점을 곰곰히 생각해보라!

 

그대가 겪었던 그 모든 불행들을 떠올려 보라.

 

그러면 자살할 생각이 없어질 것이다.

 


알다시피 인도인들은 쉽게 자살하지 않는다.

 

그들은 다시 태어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많은 서양인들이 자살하고, 자살에 대해 생각한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자살한다.

 

정신분석학자들에 따르면 자살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고 한다.

 

어떤 사람이 조사한 자료를 보면, 모든 사람은 일생에 최소 네 번 자살을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서양에 대한 얘기다.

 

동양에서는 다시 태어난다는 믿음이 있어서 아무도 자살을 원하지 않는다.

 

자살한다 해도 무슨 소용인가?

 

그대가 한쪽 문으로 탈출한다 해도 다른 쪽 문으로 다시 들어와야 한다.

 

그렇게 쉽게 빠져나갈 수 있는 게 아니다.

 


나는 그대에게 영원히 탈출할 수 있는 진정한 자살을 가르친다.

 

영원히 탈출하는 것,

 

이것이 붓다가 된다는 말이 뜻하는 바다.

 

붓다는 사마디 안에서 자살한 사람을 특별한 이름으로 불렀다.

 

붓다는 그를 아나가미(ANAGAMI), 즉 돌아오지 않는 자라고 불렀다.

 

가장 먼 피안으로 건너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그대를 아나가미, 돌아오지 않는 자로 만들 수 있다.

 

그러면 어떤 자궁도 다시는 그대를 가두지 못할 것이다.

 


그대는 왜 자살하고 싶은가?

 

삶이 그대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기 때문인가?

 

그러나 삶에 대해 자신의 방식과 의지를 강요하는 그대는 누구인가?

 

혹은 그대의 욕망들이 충족되지 않기 때문인가?

 

그렇다면 그 욕망들을 없애라!

 

왜 그대 자신을 없애려 하는가?

 

혹은 그대의 기대가 충족되지 않아 좌절을 느끼기 때문인가?

 

좌절 속에 빠진 사람은 무언가 파괴하고 싶어진다.

 

그 때 오직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다른 누군가를 죽이거나, 아니면 그대 자신을 죽이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죽이는 것은 더 위험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죽일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 역시 살인이기는 마찬가지다.

 


왜 자신의 삶을 파괴하는 대신 삶을 변화시키려 하지 않는가?

-OS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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