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뇌를 많이 사용하면 α파 상태를 만들 수 있다
뇌파가 α파일 때 뇌내 모르핀이 나온다. α파와 뇌내 모르핀이 하나의 짝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뇌파가 α파를 유지하는 상태는 깨어 있는 것도 자고 있는 것도 아닌 그 중간 정도의 상태다. 잠에서 깨어나 일상적인 행동을 하고 있을 때는 잔뜩 긴장하게 되므로 뇌파는 β파 상태가 된다. 반면에 깊이 잠들어 있을 때는 θ파, δ파 상태가 된다. 하지만 깨어 있는 상태에서도 잠을 자는 것처럼 뇌의 활동을 떨어뜨리면 매우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그러면 잠재 뇌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DNA에는 본능 이외에 선조의 경험이나 지혜는 물론 정보까지 입력되어 있다고 설명했는데, 바로 그것이 우뇌에 저장되어 있다. 편안한 상태로 긴장을 이완시키면 잠재 뇌가 활동하고, 그러면 우뇌 역시 활발해져 α파를 방출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역으로 뇌파가 α파 상태가 되어 β-엔돌핀이 분비되면 내부에서 잠자고 있던 재능이 활동하여 우뇌에 저장된 기억이나 정보를 자유자재로 이끌어 낼 수 있게 된다. β파 상태에서는 상상도 못한 능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α파의 최대 장점이라 할 수 있다.
뇌파를 α파로 바꾸는 요령은 좌뇌를 진정시키는 것이다. 우뇌와 좌뇌를 비교해 보면 평상시에는 좌뇌가 우위에 있다. 말이나 계산 논리를 관장하는 좌뇌는 말하자면 이성의 뇌이며, 사람이 잠에서 깨어나 활동하고 있을 때는 거의 좌뇌를 사용하게 된다. 좌뇌는 태어난 이후에 받은 모든 자극을 저장한다. 그러나 반복해서 동일한 자극을 받게 되면 그 자극이 우뇌로 입력되어 간다. 우뇌에 입력된 이것은 유전자에 새겨져 영구 보존된다. 천부적으로 그림을 잘 그린다거나 리듬 감각이 예민하다는 등의 천재적인 재능은 과거에 선조의 선천 뇌에 새겨져 있던 능력이 그 사람의 단계에서 발휘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누구의 선천 뇌에나 훌륭한 재능은 감추어져 있다. 소위 잠재 능력이 바로 이것이라 할 수 있다. 그 능력을 끌어낼 수 있다면 누구나 천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교육의 목적은 인간이 훌륭한 재능을 발휘하도록 돕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이 가지고 있는 무한한 재능을 계발하기는커녕 그 싹을 잘라 내 버리는 현재의 획일적인 교육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학교는 죽었다. 인간으로 하여금 자유롭고 활달한 분위기에서 자신의 독특한 개성을 계발하게 만드는 학교가 없기 때문이다. 획일적인 규격에 따라 평균 점수가 나오고 그 점수만 좋으면 괸다는 식이므로, 어느 특정 분야에 뛰어난 재능이 있더라도 다른 부분이 떨어지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다. 그런 교육은 전근대적인 기업에 도움이 되는 인간만 길러왔을 뿐이다. 그것은 좌뇌만 사용하는 효율적인 기계 부품을 만들어낸 것과 같다.
전쟁 후에 비로소 발전의 틀을 다지기 시작한 우리 현실을 볼 때 그것은 당연한 결과였는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 앞에 펼쳐진 세계는 그런 교육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의학적으로 볼 때도 우뇌를 많이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좌뇌는 의식적으로 에너지를 발생시켜야 하지만 우뇌는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지 않고 효율적으로 도파민을 작용시킬 수 있다. 사람이 개성을 가지고 자신의 최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면 이 세상은 더욱 살기 좋은 사회로 변할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뇌내 모르핀을 분비할 수 있는 교육, 뇌파를 α파 상태로 만들 수 있는 교육, 우뇌를 많이 사용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개인적으로 그런 상태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최근에는 뇌파계가 있어서 그것을 사용하면 자신의 뇌파 상태를 측정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기계를 이용해서 자신의 뇌파가 어떤 때 α파 상태가 되는지 파악한 다음, 그런 상태를 최대한 오래 지속하도록 훈련하는 방법이 좋다.
또 하나는 신념을 갖는 일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나름대로 신이나 절대적인 존재 혹은 동경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신념이라 부른다. 신념이 있으면 사소한 일에는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면 플러스 발상 역시 그만큼 쉬워진다. 이런 상태는 신앙심이 독실한 사람에게서 흔히 볼 수 있다. 종교에 깊이 빠지면 남이 보기에 이상하지만 본인을 무한한 행복을 느낀다. 어떤 종교든 나름대로 신자를 획득할 수 있는 이유는 믿음 그 자체로 뇌내 모르핀을 분비시킬 수 있다는 이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상태가 되려면 신앙심도 좋지만 신념이나 사명감을 갖는 것도 한 방법이다. 신념을 갖고 있으면 뇌를 컨트롤하기 쉬워진다. 현재의 교육제도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하는 이유는 바로 이같은 신념을 길러 주지 못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최근 교내 폭력과 동료 학대 문제가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이것은 신념이 없는 사회가 만들어낸 전형적인 피해의 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피해자에게 지나친 동정을 보이는 반면 가해자를 규탄하는 데 열중하고 있으나, 내가 보기에는 가해자 역시 피해자인 것이다. 교통사고의 가해자가 나중에 피해자 이상의 피해를 입게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교내 폭력도 이와 같다. 친구를 학대하거나 구타하는 아이들의 뇌 발육 과정을 보면 정신구조가 마즈로의 첫 번째 욕구 단계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아직 안전에 대한 욕구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마음의 안정에 대한 욕구는 거의 무방비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누가 보아도 잘못된 행위를 되풀이하고 있다는 것이 바로 그 증거다. 친구를 협박해서 돈을 빼앗다가 발각되면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행위를 태연하게 되풀이한다는 것은 일종의 자살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은 저급한 단계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자신을 망치는 행위도 서슴치 않는다. 그 욕구 자체가 어린이 당사자에게는 살아가는 보람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는 보람을 누리기 위해 무척이나 애쓴다. 그것을 추구하지만 충족시킬 수 없기 때문에 자포자기한 나머지 자기 학대를 향해 내닫기도 한다. 그러면 그럴수록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게 더욱 막막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극도로 초조해진다. 그러나 뇌가 좀더 발육하면 자기가 저지른 행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깨닫게 된다. 그러면 자연히 안전에 대한 욕구가 생겨 자신에게 마이너스가 되는 행위에 제동을 걸게된다.
최근에 교내 폭력이 증가하는 또 다른 배경으로 획일적인 교육 시스템을 들 수 있다. 학생들은 자신이 바라든 바라지 않든 아침부터 밤까지 공부를 강요당한다. 정말로 공부가 좋아서 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런 아이들은 공부를 하면 할수록 뇌내 모르핀을 분비할 수 있어 더욱 열심히 공부에 임할 수 있다. 부모들은 툭하면 '~ 를 봐라,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는지……'라고 말한다.
그러나 공부가 싫은 아이를 강제로 시키면 그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노르아드레날린과 아드레날린의 세계에 빠져들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어린이는 친구들과 놀면서 몸을 단련시키고, 인간 사회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규범을 배워 성인으로 살아갈 준비를 하게 된다. 운동 경기를 통해 다른 아이와 경쟁하면서 '나보다 뛰어난 아이가 있다'든가 '노력하면 그 나름의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체험하며 성장한다. 그런데 현대 교육은 절대적 가치 평가의 잣대만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상대보다 좋은 점수를 얻기만 하면 최선이다. 이런 경쟁 구조에서는 상대를 밀어내는 것이나 적대시하는 것밖에 배우지 못한다. 다시 말해 '나만 잘 되면 된다'는 이기적인 사고방식을 갖게 되는 것이다. 대체로 공부를 잘하면 좋은 대학에 사고 그러면 일류 기업에 취직할 수 있다. 그런 것밖에 생각하지 않는다는 자체가 발상의 빈약함을 뜻한다.
자신이 추구하는 인간의 유형과 인생에 대해 자유롭게 생각하는 즐거움을 완전히 빼앗기고 말았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이 너무 불쌍할 뿐이다. 어느 학급이든 학업 성적이 뛰어난 학생이 한두 명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동시에 성적이 형편없는 아이도 한두 명은 있을 수밖에 없다. 또 힘이 센 아이가 있는가 하면 친구를 잘 사귀는 아이도 있다. 갖가지 개성이 하나의 학급 속에 뒤섞여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학업 성적이 좋은 학생 이외에는 모두 쓸모없는 인간으로 규정하는 것이 현재의 교육 현실이다. 이런 학교에서는 학업 성적 이외의 재능을 가진 학생은 무척이나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자신의 개성을 정상적으로 발휘할 공간이 없어진 학생은 급기야 쇠막대로 부모를 때리거나 살인 강도 행위도 서슴치 않게 된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모두 다 우리 어른들의 책임이다. 수준을 한단계 높여서 우리 인간은 무엇 때문에 태어났고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인가를 가르쳐야 하는데, 그런 것을 가르칠 사람이 없다. 일반인은 물론 교사 자신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이런 문제점을 차분히 생각할 필요가 있다. 물론 반도체나 자동차를 잘 만들어서 수출하면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이것은 이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상당히 필요한 역할이다. 하지만 이런 부분에만 혈안이 된 나머지, 가장 중요한 인간 교육은 뿌리채 뽑혀나가고 말았다.
뇌내 혁명은 삶의 즐거움을 발견하는 것
노골적으로 말하면, 인간은 원래 쾌감 법칙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동물이다. 뇌내 모르핀을 분비하자는 이유도 이 법칙에 충실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저차원적 욕구만 채우기 위해 노력한다면 우리 인간은 파충류나 개나 고양이와 별 차이가 없는 존재로 전락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뇌내 모르핀이 뇌의 전두연합야와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전두연합야네는 인간의 예지가 들어 있어 이것이 에이 텐이라는 쾌락 신경과 연결되면 인간은 쾌락을 즐기면서 높은 차원으로 발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아이가 진흙땅에 넘어졌다고 하자. 이때 자신의 옷을 더럽히면서도 도와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모르는체 지나치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아이를 도와준 사람의 심리는 도대체 어떤 것일까. 옷을 더럽히면서까지 아이를 도와주는 행위는 어디로 보나 훌륭하다. 그러나 이것도 뇌가 그런 행위를 명령했기 때문이며 그 결과 그 사람은 그만한 쾌감을 느끼게 된다. 반면에 그냥 지나친 사람은 뇌가 그냥 지나치도록 명령했기 때문에 모른 척 한 것이다.
명령하지 않았는데도 의무감이나 책임감 때문에 아이를 도와준다면 노르아드레날린이 분비된다. 결국 원하지 않는 행위를 함으로써 정신적으로 커다란 손해를 입게 되는 것이다. 뇌내 모르핀을 잘 분비하는 훈련을 쌓은 사람은 어느 상황에서나 쉽게 쾌감을 느낄 수 있다.
인간은 누구나 각자 독특한 사명을 갖고 태어났다. 그것이 무엇인지 자각할 수 있을 때 신은 그 인간에게 뇌내 모르핀을 분비하게 해주고, 지칠 줄 모르는 활력과 성실함으로 발전적인 사고를 펼쳐나가게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파악하려면 DNA에 의존 할 수 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뇌파를 α파 상태로 만들어 잠재의식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뇌내혁명이란 바로 그런 것이며, 그것은 삶의 즐거움을 발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면 그 사람은 무한한 기쁨 속에서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