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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면치료

<라즈니쉬 명상건강> 세라피(정화요법)와 최면과 명상에 대해

작성자작약|작성시간12.05.18|조회수47 목록 댓글 0

< 질문 : 최면(hypnosis)이 명상으로 변화하는 것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저는 세라피(therapy)와 명상 사이의 경계선이 사라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

 

 

 

 

 

 

최면이 명상에 이르는 문으로 인식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중세의 기독교는 마법과 함께 최면을 비난했다.

 

최면에 대한 비난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심지어 기독교인이 아니면서 자신도 모르게 기독교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도 최면에 대한 비난은 여전히 남아 있다.

 

왜 기독교는 최면에 반대하는가?

 

최면이 명상과 직접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기독교가 최면에 반대했다는 사실을 알면 그대는 놀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성직자도 필요하지 않고 교회도 필요하지 않으며 심지어 신조차도 필요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그것이 문제였다.

 

 

세상에 명상이 번창하면 어떤 종교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대는 존재계나 그대 자신과 직접 접촉할 것이기 때문이다.

 

브로커나 온갖 종류의 대리인들을 거쳐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그들은 아무 것도 모른다. 그들은 단지 박식할 뿐이며, 여러 해에 걸쳐 사람을 감화시키고 친구들을 설득하는 훈련을 받아 왔을 뿐이다.

 

 그들이 하는 일은 종교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숫자 게임일 뿐이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을 교회 안으로 끌어들이라. 사람들의 숫자가 힘을 주고 세력을 줄 것이다.'

 

최면은 성직 제도에 위협이 되었다 그런데 기독교는 처음부터 최면을 성직제도의 기초로 하고 있었다.

 

예수는 자신이 깨달았다고 선언하지 않았으며 예수 이후의 어떤 기독교인도 예수가 깨달았다고 선언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신의 독생자라는 터무니없는 선언을 했다.

 

신은 가설이며, 가설은 계속 아이들을 낳아 대는 인도인이 아니다.

 

가설은 번식 능력이 없어서 아무 것도 생산해 내지 못한다‥‥‥

 

 

기독교는 그대가 직접 존재계와 접촉하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는다.

 

그대는 사제와 교황과 신의 독생자를 거친 다음에 신에게 가야 한다

 

신과 그대 사이에는 많은 중개인들이 있다. 그래서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아무도 모른다‥‥‥‥

 

물론 그대는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대는 신과 직통 전화선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사제는 교황과 직통 전화선을 가지고 있고, 교황은 예수와 직통 전화선을 가지고 있으며, 예수는 신과 직통전화선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 번호는 전화번호부 책에 실려 있지 않다.

 

 

최면은 명상에 이르는 문이었으며, 지금도 명상에 이르는 문으로 남아 있다.

 

일단 어떤 사람이 명상의 세계로 들어가면 그는 너무 명료해지고 강해지며, 너무 많은 삶이 그에게 일어나서

 

하늘에 있는 어떤 신도 필요하지 않게 된다. 그는 자신을 위해 기도해 줄 성직자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게 된다.

 

그 자신이 기도가 된 것이다. 어떤 신에 대한 기도가 아니라 단순히 기도 자체가 된 것이다.

 

 

최면을 마치 악마에 의해 만들어진 것처럼 비난하는 것이 기독교에게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었다.

 

마찬가지 이유로 마법도 잔인하게 파괴되었다. 수백만 명의 여자들이 산 채로 불태워진 것이다.

 

교회라는 적절한 경로를 거치지 않고 그들 스스로 궁극의 것과 접촉하려 했기 때문이었다.

 

 

최면이 명상을 위한 것이 아닐 때, 최면 그 자체는 위험하게 쓰일 수도 있다.

 

최면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최면이 명상을 위해 쓰이지 않으면 어떻게 잘못 사용될 수 있는지 설명을 해야겠다.

 

 

최면(hypnosys)의 문자 그대로의 의미는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잠' 이라는 뜻이다.

 

인류의 3분의 1인 33퍼센트의 사람들이 최면의 가장 깊은 단계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33퍼센트는 이상한 숫자다. 왜냐하면 오직 33퍼센트의 사람들만이 심미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으며

 

33퍼센트의 사람들만이 감수성을 가지고 있고, 33퍼센트의 사람들만이 우정을 가지고 있으며,

 

33퍼센트의 사람들만이 창조를 하기 때문이다.

 

내 경험으로는 이 33퍼센트의 사람들은 같은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창조성과 감수성은 명상이며, 사랑이며, 우정이기 때문이다.

 

이런 것은 본질적으로 자기 자신과 존재계에 대한 깊은 신뢰를 필요로 하며, 수용성과 열린 가슴을 필요로 한다.

 

최면은 두 가지 방법으로 유도될 수 있다. 첫번째 방법은 타인 최면(hetero-hypnosys)이다.

 

바로 이 타인 최면 때문에 사람들은 최면이 위험하다는 기독교의 선전에 영향을 받게 되었다.

 

타인 최면은 다른 사람이 그대에게 최면을 거는 것, 다시 말해 최면술사가 그대에게 최면을 거는 것을 뜻한다.

 

여기에는 많은 잘못된 생각이 개입되어 있다.

 

그 중에서 가장 근본적인 것은 최면술사가 그대를 최면에 빠뜨릴 능력을 가고 있다는 생각이다. 이것은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다.

 

최면술사는 요점을 알고 있을 뿐, 최면에 빠뜨릴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대가 최면에 빠지려고 하지 않는 한, 아무도 그대를 최면에 빠뜨릴 수 없다.

 

그대가 알려지지 않고 탐험되지 않은 어둠 속으로 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 한, 어떤 최면술사도 그대를 최면에 빠뜨릴 수 없다.

 

그러나 최면술사들은 그들이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사람들을 최면에 빠뜨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을 최면에 빠뜨릴 능력이 없다.

 

오직 그대만이 자신을 최면에 빠뜨릴 능력이 있거나 혹은 다른 사람을 통해 최면에 빠지는 능력이 있는 것이다.

 

최면에 빠질 수 있는 능력은 그대의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통해 최면에 빠질 때 최면은 잘못 사용될 수 있다.

 

최면을 유도하는 과정이나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최면술사는 그대의 눈 앞에 수정(水晶)을 매단 끈을 늘어뜨리고 이렇게 말한다.

 

"눈을 더이상 뜨고 있지 못할 때까지 눈을 감지 마시오. 마지막 순간까지 눈을 뜨고 있으시오."

 

수정은 그대의 눈 앞에서 반짝이고 있다 눈은 건조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끊임없이 깜박거려야 한다.

 

눈은 신체 중에서 가장 섬세한 부분이다. 그대는 눈을 깜박이게 된다. 눈꺼풀은 자동차 유리의 와이퍼처럼 작용하기 때문이다.

 

눈꺼풀은 눈을 적셔 주고, 눈의 먼지를 제거해 주며, 눈에 들어온 이물질을 제거해 준다. 눈꺼풀은 눈을 항상 신선하게 적서 준다

 

최면술사는 이렇게 말한다. "눈을 깜박이지 말고 수정이 반짝이는 것을 응시하시오!"

 

반짝이는 것은 눈을 곧 피곤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유리 위에 매달려 있는 밝은 전등불을 바라보라는 지시를 받는다면 눈은 극도로 피곤해질 것이다.

 

그런데 그대는 눈이 저절로 감길 때까지 눈을 감아서는 안된다는 지시를 받았다.

 

이것이 최면의 첫 부분이다

 

나머지 부분은 최면술사가 '그대의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지며 눈은 극도로 피곤하다'고 끊임없이 말하는 것이다.

 

바로 그대 옆에서 최면술사는 '그대의 눈이 피곤해지고 있으며 눈꺼풀이 내려온다'는 말을 계속해서 반복한다.

 

그런데 그대에게는 반대의 명령이 주어졌다. 그래서 그대는 마지막까지 눈을 뜨고 있으려고 싸운다.

 

하지만 그대가 얼마나 견딜 수 있겠는가? 기껏해야 3분 이상을 버티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두 개의 과정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대는 눈을 피곤하게 하는 수정의 반짝이는 빛을 응시하고 있으며

 

최면술사는 매우 졸리는 목소리로 졸음이 그대를 엄습한다고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다.

 

이제 그대는 눈을 뜨고 있을 수 없게 된다.

 

그대는 잠에 저항할 수 없게 된다.

 

최면술사의 암시‥‥‥ 그리고 피술자의 저항. 피술자는 자신의 눈이 피곤해지고 눈꺼풀이 점점 더 무거워진다는 것을 안다.

 

그러다가 3분 이내에-결코 3분을 넘기지 못한다-눈이 감기도록 내버려두어야겠다는 유혹을 이기지 못하는 순간이 온다.

 

눈이 감기는 순간, 최면술사는 이렇게 되풀이한다.

 

"그대는 깊은 잠에 빠지고 있으며 오직 내 목소리만 듣게 될 것이오. 그대는 오직 내 말만 듣게 될 것이오."

 

그대는 끊임없는 암시에 의해 점점 더 깊은 잠에 빠지게 된다.

 

그러다가 최면술사가 졸리는 목소리로 "그대는 점점 더 깊은 잠에 빠지고 있다"고 말하는 소리만 들리는 순간이 온다

 

그때 최면술사는 그대가 깊은 잠에 빠졌는지 아닌지 시험해 볼 것이다. 그는 핀으로 그대의 손을 찌를 것이다.

 

그러나 그대는 깊은 잠에 빠져서 그 사실을 알지 못하며 통증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실제로 러시아에서는 수술에 타인 최면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마취가 필요없다.

 

적당한 조건이 주어지면 환자는 매우 깊은 최면에 빠진다.

 

매우 졸리는 분위기와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침침한 불빛, 환자의 눈에 강하게 비치는 반짝이는 빛,

 

방안에 울리는 잔잔한 음악 은은한 향기‥‥‥

 

이런 모든 것이 환자를 깊은 잠에 빠뜨려서 자신이 수술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게 한다.

 

그래서 최면술사는 몇 가지 시험을 해 본다. 그는 그대의 손을 들어올렸다가 내린다. 그러면 그대의 손은 아래로 떨어진다.

 

그대는 깊은 잠에 빠져서 손을 들고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잠을 자면서 손을 높이 들고 있을 수는 없다

 

그리고 나서 그는 그대의 눈꺼풀을 열고 눈을 쳐다본다. 이때 그대의 눈동자는 위로 올라가서 흰자위만 보이게 된다.

 

최면이 깊을수록 눈동자는 위로 올라가게 된다. 이런 일은 일상의 수면 속에서도 일어나며, 사람이 죽을 때도 일어난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즉시 눈을 감겨 주는 것이다. 완전히 흰자위만 남은 것을 보는 것은 끔찍스런 일이기 때문이다.

 

인도에서는 사람에게 죽음이 임박하면 눈동자가 서서히 위로 올라간다는 사실을 수세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눈동자가 위로 올라가면 그는 더 이상 자신의 코끝을 볼 수 없게 된다.

 

눈동자가 위로 올라가서 코끝을 볼 수 없게 되는 날, 그 삶은 기껏해야 6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그래서 최면술사는 눈꺼풀을 열고 눈동자가 위로 올라갔는지 보는 것이다.

 

그때 그는 그대가 더 이상 그말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수 없으며 더 이상 그에게 복종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한다.

 

이제 그대는 그가 무슨 말을 하건 그대로 따르게 된다. 그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그대의 돈을 모두 거네서 나에게 내놓으시오." 그러면 그대는 돈을 모두 꺼내서 그에게 줄 것이다.

 

그는 그대의 장신구를 빼앗을 수 있고 그대를 곤란하게 할 서류에 서명하라고 말할 수도 있다.

 

가령 그대의 집을 팔았다든지, 그대의 집을 기증했다든지 하는 서류에 서명하게 할 수도 있다

 

 

이해해야 할 것이 한 가지 더 있다. 이것은 매우 위험한 것인데, 최면술사는 그대에게 후최면(post-hypnotic) 암시를 줄 수도 있다.

 

후최면 암시란 예를 들면 최면술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열흘 뒤에 그대는 나에게 올 것이다.

 

그대는 모든 돈과 모든 장신구, 그리고 그대가 가지고 있는 모든 귀중품을 가지고 나에게 올 것이다.

 

그것들을 내 책상 위에 올려놓고 돌아가라."

 

24시간 뒤에 누군가를 총으르 쏘라는 후 최면 암시를 주는 것도 가능하다. 피술자는 이런 명령들을 수행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의식에 관한 한, 그는 깊은 최면 속에서 어떤 일이 진행되었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

 

깊은 최면은 그대의 무의식을 움직인다

 

 

이런 것들이 기독교가 과장해 대는 위험 요소들이다. 그들은 이런 것이 종교와 도덕에 위반된다고 말한다.

 

어떤 여자가 강간당할 수도 있지만 그녀는 알지 못할 것이다. 혹은 여자에게 이런 후최면 암시를 줄 수도 있다.

 

"그대는 나와 사랑에 빠졌다. " 그러면 그녀가 최면에서 깨어나는 순간 위대한 로맨스가 시작될 것이다.

 

그녀는 약간 주저할 것이다. 그녀의 의식적인 마음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식적인 마음과 무의식적인 마음 사이에서는 의사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무의식은 너무나 강력해서 무의식이 어떤 일을 하고자 할 때 의식은 이의를 제기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소용없는 짓이다.

 

무의식은 의식보다 무려 아홉 배나 강하기 때문이다.

 

이런 위험 요소들이 사람들 사이에 심하게 과장되어 퍼져 있다.

 

그러나 교회가 최면을 비난하는 것은 이런 위험으로부터 그대를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의 목적은 최면을 비난함으로써 아무도 최면을 통해 명상이라는 궁극의 영역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는 일에 있다.

 

기독교는 사람들이 또 다른 형태의 최면에 대해서는 완전히 모르도록 했는데 자기 최면(self-hypnosys)이 바로 그것이다.

 

오직 타인 최면만이 잘못 사용될 수 있다 자기 최면 혹은 자동 최면(auto-hypnosys)은 잘못 사용될 수 없다.

 

자기 최면에는 최면술사가 없다. 그렇지만 그대 스스로 최면을 걸 수 있다.

 

그대는 알람 시계를 맞춰 놓고,'15분 뒤에 알람이 울리면 깊은 최면 상태에서 깨어날 것'이라고 세 번 반복한다.

 

그후 최면을 거는 과정은 타인 최면과 동일하다.

 

그대는 빛을 쳐다보면서 최면술사가 했던 것과 똑같이 하면 된다.

 

빛을 쳐다보면서 "네 눈은 점점 무거워진다. 무거워진다. 무거워진다...나는 잠에 빠지고 있다.

 

나는 더 이상 눈을 뜨고 있을 수 없다. 나는 눈을 뜨려고 최선을 다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하고 되풀이하면 된다.

 

그대가 눈을 감기까지는 정확히 3분이 걸릴 것이다. 3분이 최대한이다.

 

2분 만에 눈을 감을 수도 있고 1분 만에 감을 수도 있다.

 

그리고 더 오래 저항할수록 최면은 더 깊어진다

 

 

자신의 가족을 괴롭히는 노인에 대한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많은 질병에 걸렸는지 손을 꼽아 헤아리곤 했다

 

의사들도 지쳤다. 의사들은 그에게 아무 질병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텔레비전의 의학 프로그램을 보고 질병의 이름을 배웠다.

 

그리고는 가족들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나는 이런 병에 걸렸고, 저런 병에도 걸렸다. 그런데 아무도 나를 돌보지 않는다"

 

이것은 단지 노인들이 관심을 얻기 위해 하는 일이다 아무도 노인들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러니 노인들은 관심을 끌 수 있는 자신들만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성미가 급해지며, 화를 잘 내며, 잔소리를 하게 된다. 그들은 관심을 끌 수 있는 자신들만의 방법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평생 관심을 받으며 살았지만 이제는 아무도 그들을 거들떠보지 않는다.

 

심지어 그들이 살아있는지 죽었는지조차 신경쓰지 않는다.

 

 

나를 좋아하는 인도의 가수 자그지트 싱(jagjit Singh)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런던에 사는 친구가 그를 찾아왔기에 친구에게 가 말했다. "그동안 잘 지냈나?"

 

친구가 말했다. "잘 지냈네."

 

싱이 물었다. "자네 부인은?"

 

"그 사람도 잘 지내고 있네." 친구가 대답했다.

 

"아이들은?"

 

"모두 잘 지내고 있다네. "

 

마지막으로 자그지트 싱은 이렇게 물었다. "자네 아버님도 잘 지내시나?"

 

그러자 그 친구가 말했다.

 

"우리 아버님? 물론 거의 4년 동안 별탈없이 잘 지내고 계시네."

 

4년 전에 그의 아버지는 죽었다.

 

그래서 그 친구는 자신의 아버지가 잘 지내고 계신다고, 4년 전부터 영원히 잘 지내고 계신다고 말한 것이다!

 

 

노인들은 관심을 끌기 위해 편두통이 있다, 배가 아프다 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그들이 사용하는 의학 용어가 많으면 많을수록 더 많은 관심을 끈다.

 

마침내 의사는 이렇게 말하면서 그를 거절하기 시작했다.

 

"그분은 정신이 이상해지신 겁니다. 아무 데도 아픈 데가 없고, 아무 병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여러 번 진찰해 보았습니다. "

 

그러나 아들은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 우린들 어쩌겠습니까? 우리는 의사를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

 

결국 의사는 최면술사가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최면술사를 데려오시오. 최면술사가 그분에게 최면을 걸어서 아무 이상이 없다고 말하게 하는 겁니다.

 

그것이 그분을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의 무의식이 자신에게 아무 이상이 없다는 생각을 받아들이면 아무 문제도 없을 겁니다. "

 

아들들은 매우 기뻐하며 최면술사를 불렀다. 최면술사는 가방과 진료 장비를 들고 왔다. 그는 마치 의사처럼 보였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같은 턱수염을 기르고 있었으며, 한 쪽 눈에 외알 안경을 끼고 있었다.

 

최면술사는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옷을 입어야만 강한 인상을 줄 수 있다.

 

최면술사가 노인에게 물었다. "어디가 아프십니까?"

 

노인은 많은 병명을 열거했다. 최면술사가 말했다.

 

"좋습니다. 여기에 누우십시오. 제가 반짝이는 추를 들고 있을 테니 눈을 이 추에 고정시키십시오.

 

그리고 더 이상 눈을 뜨고 있을 수 없을 때까지 바라보십시오."

 

노인들은 삶의 오랜 체험을 통해 교활해지고 매우 약아진다. 노인은 이렇게 생각했다.

 

"이 사람은 옷 입은 걸로 봐서 꼭 사기꾼처럼 보이는데 어떤 치료를 하려는 걸까?"

 

그는 3분까지 기다리지 않고 즉시 눈을 감아 버렸다.

 

그리고 최면술사가 최면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그의 손을 들어올렸을 때 그는 손을 힘없이 떨어트렸다.

 

그는 모든 수법을 알고 있었다

 

노인들이란‥‥‥

 

그는 세상의 모든 것들을 보아 온 것이다.

 

최면술사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이제 노인이 완전히 잠에 빠졌군 

 

지금부터 이 사람이 완전히 정상이고, 아무 병도 없다는 암시를 주어야겠어

 

그러면 걸리지도 않은 병으로 자식들을 괴롭히지 않을 거야!"

 

그러나 노인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아들들은 매우 기뻤다.

 

"왜 우리가 진작 최면술사를 생각하지 못했을까? 지금까지 우리는 의사들에게 많은 돈을 낭비해 왔다.

 

그런데 의사들은 고작 이렇게 말했을 뿐이다.

 

'당신들은 우리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당신들이 돈을 내기는 하지만 그래도 귀찮을 뿐입니다.

 

이 사람은 정말 아프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최면술사야말로 우리가 찾던 사람이다."

 

노인은 조용히 누워 있었다. 모든 암시가 끝나자 최면술사는 돈을 받았다.

 

그러나 노인의 아들 하나가 최면술사를 그의 차가 있는 곳까지 배웅하러 갔다가 미처 돌아오기도 전에

 

노인이 한 쪽 눈을 뜨고 이렇게 물었다.

 

"그 미친 사람 갔냐, 안 갔냐?"

 

 

피술자가 즉시 눈을 감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의식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때 최면술사가 무엇이라고 말하든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그는 무슨 헛소리를 하는가?

 

"당신의 눈이 무거워지고 있습니다 " 그대의 눈은 무거워지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깊은 잠에 빠지고 있습니다. " 그대는 잠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그대는 완전히 깨어 있다. 그리고 그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그는 그대에게 아무 병도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대가 자기 최면을 시도한다면 거기에는 아무런 위험도 없다.

 

그대는 단지 눈을 피곤하게 하는 반짝이는 물체를 보면서 최면 속으로 들어가면 된다.

 

그대는 최면술사가 반복했던 말을 속으로 반복하면 된다.

 

마침내 그대는 더 이상 눈을 뜨고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눈이 감기는 것이다 그대는 눈을 통제할 수 없게 된다.

 

눈꺼풀을 통제할 수 없다는 느낌은 그대가 깊은 잠에 빠지고 있다는 느낌으로 이어진다.

 

깨어 있는 동안 그대는 "나는 점점 더 깊이 들어간다" 하고 계속 반복해야 한다.

 

그러면 무의식 속으로 깊이 들어가게 되는 순간이 온다.

 

그러다가 10분이 지나면 알람이 울리고 그대는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대는 내면이 얼마나 젊고 얼마나 신선하게 느껴지는지 놀랄 것이다.

 

그대는 마치 시원한 산들바람이 불고 꽃으로 가득 찬 정원을 지나온 것처럼 상쾌하게 느낄 것이다.

 

 

그대는 자신에게 후최면(post-hypnotic) 암시도 줄 수 있다

 

후최면 암시는 눈이 감기고 그대가 더 깊이 들어간다고 느껴지는 마지막 순간에 주어야 한다.

 

최면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기 전에 이렇게 반복해야 한다.

 

"내일부터 나의 건강은 더욱 좋아질 것이다."

 

후최면 암시는 여러 개를 선택하지 말고 하나만 선택하라. 욕심을 내서는 안된다!

 

15일 혹은 3주간의 연습기간 동안 그대 자신에게 암시를 주어 보라‥‥‥‥

 

 

가령, 내일부터 명상이 깊어진다든지 하는. 그대는 명상이 깊어지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그리고 최면과 명상 사이에 매우 아름다운 연결 고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명상이 깊어지면 이렇게 암시를 줄 수도 있다. "내일 나의 최면은 한층 더 깊어질 것이다. "

 

그대는 무의식의 심연에 이르기 위해 명상과 최면을 모두 이용할 수 있다.

 

일단 무의식의 심연에 닿게 되면 두번째 암시를 줄 수 있다.

 

"비록 내가 어두운 무의식 속에 있지만 약간의 각성은 남아 있으므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

 

그리고 이렇게 반복하라. "미약했던 나의 각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그러면 어느 날 그대의 각성으로 인해 무의식이 환하게 빛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명상이다.

 

최면은 아무 두려움 없이 사용될 수 있으며,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한다.

 

신뢰하는 사람들이나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최면을 시도해 보라.

 

그러면 그들이 그대를 이용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사라지게 된다.

 

그대는 매우 친한 친구들과 함께 있다 그대는 그들이 자신을 해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안다.

 

그대는 자신을 열고 무방비 상태가 될 수 있다.

 

혹은 그대 스스로 최면을 시도해 보라‥‥‥‥ 혼자서라면 시간이 약간 더 걸릴 것이다.

 

두 명의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약간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녹음기가 있으므로 다른 사람은 필요하지 않다. 암시의 내용분을 녹음기에 녹음해 두면 된다.

 

녹음기는 암시된 내용을 오용할 수 없다.

 

녹음기에 녹음을 해 두지 않는 한, 녹음기는 그대에게 아내를 죽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때는 나라도 어쩔 수 없다.

 

녹음기는 그대의 녹음해 놓은 말만 반복할 것이다!

 

최면의 모든 과정을 녹음기에 녹음해 둘 수 있다.

 

잠에 빠진다는 암시, 눈꺼풀이 무거워진다는 암시, 최면으로 점점 더 깊이 들어간다는 암시를 녹음해 둘 수 있다.

 

그리고 그대가 깊은 최면에 들어갔을 때-깊은 상태에서 쉴 수 있도록 4∼5분의 간격을 둔 후에-

 

녹음기에서는 '오늘부터 명상이 점점 깊어지며, 사념과 싸우지 않아도 된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그대가 눈을 감는 순간 사념들은 흩어지기 시작할 것이다.

 

녹음기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거기에는 다른 사람을 신뢰해야 하는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그대는 아무 두려움 없이 녹음기를 신뢰할 수 있다.

 

그리고 아무도 그대의 녹음기를 가지고 장난을 하지 못하게 방문을 걸어 잠글 수도 있다.

 

그러지 않으면 누군가가 그대를 속일지도 모른다.

 

자기 최면은 명상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이것이 최면을 가장 훌륭하게 사용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최면은 건강에도 활용할 수 있고, 장수(長壽)에도 활용할 수 있으며, 사랑이나 우정, 용기에도 활용할 수 있다.

 

최면은 그대가 원하는 모든 것을 도와 줄 수 있다.

 

최면은 미지(未知)에 대한 두려움을 쫓아 버릴 수 있으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쫓아 버릴 수 있다.

 

최면은 그대가 홀로, 고요히, 평화롭게 있을 수 있도록 해 준다.

 

최면은 하루 24시간 동안 명상의 분위기를 지속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대는 이렇게 암시를 줄 수도 있다.

 

"내가 잠들어 있는 동안에도 작은 각성의 불꽃이 내 잠을 방해하지 않고 밤새도록 지속될 것이다. "

 

 

그대는 질문에서 "세라피(therapy)와 명상 사이의 경계선이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고 말했다.

 

그것은 나의 오랜 염원이었다. 세라피는 최면 속으로 녹아들어가야 하고, 최면은 명상 속으로 녹아들어가야 한다.

 

그때 우리는 과거에는 사용된 적이 없는, 깨달음을 위한 가장 위대한 힘을 만들어 내게 된다.

 

세라피는 결코 사용된 적이 없었다. 세라피는 그대의 모든 쓰레기를 치워 줄 것이며, 그대의 모든 조건화를 없애 줄 것이다.

 

세라피는 내면에 있는 모든 것과, 그대가 억눌러 온 모든 것을 정화해 줄 것이다.

 

세라피는 그 모든 것을 내던질 것이다.

 

세라피는 아름다운 정화 과정이며 정화된 마음은 아무 어려움 없이 쉽게 최면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쉽게 최면이나 자기 최면을 이용할 수 없는 사람들도-33퍼센트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도-세라피와 함께라면

 

최면을 이용할 수 있는 단계에 속하게 될지도 모른다.

 

세라피는 모든 사람들이 최면을 이용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그러므로 세라피는 서서히 최면 속으로 녹아들어가는 방법으로 이용되어야 한다.

 

그리고 최면은 명상으로 나아가는 단계로 이용되어야 한다.

 

세라피와 최면과 명상, 나는 이 세 가지를 나의 삼위일체로 제안한다.

 

성부와 성자와 성신‥‥ 이런 난센스는 잊어버리라. 이것은 삼위일체가 아니다.

 

삼위일체는 좀더 과학적이고, 그대 자신이 실제로 실행해 볼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 것이 아니라면 종교는 쓰레기로 가득 찬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본질적인 것은 잊어버리고 쓰레기에만 더욱더 관심을 갖는다.

 

사실 오랜 세월에 걸쳐 히말라야 같이 쌓여 온 쓰레기에 비한다면 본질적인 것은 너무 작아서 이제는 어디에 있는지 찾기도 어렵게 되었다.

 

 

내가 제안하고 있는 것은 매우 간단한 것이다 어떤 성직자나 교회의 성스러운 경전도 필요없다.

 

그대에게 필요한 것은 약간의 이해와 용기다.

 

세라피 속에서 완전히 정화하라. 그대는 얼마나 많은 쓰레기가 그대 안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

 

자신을 정화하기 시작할 때 그대는 알게 될 것이다.

 

"맙소사! 이게 나일까? 아니면 다른 사람일까?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

 

가끔 그대가 하는 말은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은 그대 안에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그런 말이 튀어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것이 명상에 장애가 되었고 앞으로도 깊은 최면에 들어가는 데 장애가 될 것이다.

 

그것이 중간에 끼어서 장벽을 만들 것이다.

 

그러므로 세라피가 첫번째 순서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두번째는 최면이며, 세번째는 두번째로부터 자연히 생겨날 것이며 그것이 바로 명상이다.

 

명상의 궁극점은 깨달음이다.

 

명상이 완성될 때 그대의 존재는 기쁨으로 가득 차게 되며, 축복과 엑스터시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OS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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