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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2014 제주 향묻다-'_' -이재은 한호진 주제글

작성자장효경|작성시간26.06.23|조회수0 목록 댓글 0

1.서울 노즈탈지아

 

20대의 주인공이 어린 시절의 기억을 불러 일으키는 보물지도를 발견해서 일행과 함께 제주도로 가게 된다.

즐거운 추억여행으로 시작한 보물찾기는 여러 감각적인 기억들의 단서를 따라가다보니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여정으로 바뀌어가고 흩어졌던 기억의 퍼즐을 하나씩 맞춰간 끝에 보물섬에 도착한 이들이 마침내 발견한 것은...?

개인의 기억에서 출발해 제주의 역사와 설화까지 이어지는 제주 고유의 오감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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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시놉이었고

 

아래는 전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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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호진의- "추억의 향기(香記)..이 제목은 서울전시의 것이고 제주 작가의 글에 맞춰서 바쓀 예정

 

침대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고 차가운 아침 공기를 마신다. 마치 오늘 아침은 어제와는 다르다는 듯이 햇빛, 바람, 나뭇잎의 냄새는 한 번도 같은 적이 없다.

꿈을 꾸었다. 따뜻하고 포근한 어둠의 세상에서 갑자기 빠져나오게 된 순간,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강한 빛과 함께 차고 싸아 한 것이 코를 통해 허파로 마구 밀려든다. 낯설다. 당황스럽다. 울음이 터진다. 하지만 곧 익숙한 그 무엇이 공기 속에 섞여 있음을 안다. 뭘까. 엄마의 익숙한 그 품에 안기고 나서야 나는 다시 안전하다고 느낀다. 세상에 나와서 제일 처음, 우리는 코로 숨을 쉰다.

커피를 내리고 토스트로 대충 아침을 때운다. 갓 지은 쌀밥에 구수한 된장찌개가 보글거리는 식탁이 그립다. 왜 엄마가 해 주는 밥을 먹을 수 있을 때는 그게 사치가 될 줄 몰랐을까...욕실에 들어가 박하맛이 나는 치약을 칫솔을 짜서 물고 생각한다. 재개발 구역이 되면서 이사를 가게 생겼는데 오래된 집이라 구석에 쌓아둔 물건들이 많다. 박스 하나를 열면 그 자리에 눌러 앉아 시간여행을 할지도 모르지만 그러면 또 어떤가. 당장 쫓겨나는 것도 아니고.

안방에는 낡고 삐걱거리는 장롱 같은 옛날 물건들이 많다. 그 방에 들어가면 아스라한 졸음 속에 녹아드는 기분이다. 냄새와 기억의 미지근한 공기 안에서 천천히 헤엄치며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집 안에서 온종일이라도 놀 수 있었던 때, 우리 집은 아주 크고 넓은 냄새의 세상이었다. 장독대와 빨래가 나란히 있던 베란다, 숨바꼭질을 하다 잠들어버리기 딱 좋은 옷장, 엄마의 화장대. 화장을 하는 엄마를 나는 좋아했다. 아니, 싫어했다. 향긋함에는 왠지 모를 불안함이 스며있다. 이마에 눈썹을 그리고, 뽀뽀를 해주고 엄마는 하루치의 기다림을 놓고 다녀온다.

내 이름이 쓰인 노랗게 변한 라면박스를 찾았다. 초등학교 때 쓴 교환일기장이며 공깃돌, 색연필, 학을 접어 넣은 유리병이 있었다. 향기 나는 물건들은 희미하지만 아직도 그 향기를 갖고 있었다. 보라색에서는 포도향이 주황색에서는 오렌지향이...그 아이에게서는 무슨 향기가 났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아이 집은 다른 냄새가 났다. 포근하고 따뜻하고 햇볕이 잘 드는, 현관을 열었을 때 아무도 없어도 안정감이 느껴지는, 엄마가 있는 집. 그 집의 냄새가 나를 사로잡았다. 그 애가 이사를 가고 아무도 살지 않는 그 집 앞을 지나며 한 동안 나는 초인종을 눌렀던 기억이 난다. 현관문이 열리기를, 그래서 따뜻한 그 냄새를 다시 한 번 더 맡게 되길 바라면서.

 

붙박이장을 열었는데 스커트가 툭 떨어졌다. '교복을 아직도 가지고 있었던거야? 그것도 세탁까지 말끔히 해서는...'

깨끗하게 빨아서 다린 셔츠와 스커트에서 나는 은은한 향기는 수험생의 월요일 아침, 울적한 기분을 달래주었다. 마치 매일 똑같은 등굣길에도 기대감을 불어넣어주는 수학선생님의 향수냄새처럼 그것은 소소한 일상의 기쁨이고 설렘이었다.

사회에 나오고 나서야 알았다. 난생 처음 보는 수많은 사람들에게서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향기가 날 수 있다는 것을. 후각에 대한 시각의 명백한 배신이자 비밀스럽게 간직했던 내 추억을 빼앗겨버린 느낌. 문득 생각했다. 세상의 수많은 향기 중에 어떤 것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 따라 그것은 그 사람만의 향이 되는 거라고. 아이가 말문이 터지듯 자기만의 세상에 눈을 뜨는 것이며, 곧 향을 깨치는 것이라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서 그 향수 냄새가 나든지 나에게 그 향기는 이미 수학선생님 냄새인 것처럼.

향에 관심을 가지면서 나의 호기심은 시향이나 향 수집 같은 취미에 그치지 않고 조향공부에까지 미쳤다. 조향사가 되고 싶은 건 아니지만 내 느낌을 담은 향을 직접 만들어 갖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책상 위에 놓인 작고 네모난 스프레이 병. 친구가 운영하는 소규모의 조향수업을 들으면서 내가 처음 완성한 향수다. 나에게 삼촌을 되찾아 준 향수, <노스텔지어>.

‘추억의 향기’라는 테마를 가지고 나만의 향수를 만들어 보려고 좋아하는 향기들을 섞었다. 겨울에 동생들하고 뜨끈한 방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서 게임하고 책보고 수다도 떨고 있으면 바가지에 한 가득 담아와 나눠 먹던 상큼한 귤 냄새와 내가 미워하고 그리워하고 사랑했던 엄마한테서 풍기는 은은한 화장품 냄새. 그것만 있으면 나의 추억의 향기가 완성될 거라 생각했는데...왠일 인지 영 따로 노는 느낌이었다. ‘이게 아니잖아. 이상하다. 이건 분명히 훨씬 더 좋은 향기여야 하는데...뭐가 부족한 거지?’

“탑과 베이스 사이에 연결고리가 없어서 그런 것 같아. 네가 쓴 아이디어 노트를 보니까 이 향이 어울릴 거 같은데 어때?”

한참을 고민하고 있는 때 조향사친구가 와서 권하는 것이 ‘담배’ 향.

 

“아니, 이렇게 좋은 향에 왜 담배 같은 걸 넣어서 엉망을 만들어? 싫어.”

친구는 웃으며

“너 담배가 싫구나? 아버지가 담배 피우셔?”

“아니...... 삼촌이.”

삼촌 방은 늘 담배냄새가 진동했다. 엄마가 아무리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해도 워낙 방 전체에 냄새가 가시지 않아 세를 내놓기 위해선 벽지를 전부 뜯고 새로 발라야 했다. 서울에 취직을 하면서 우리집에 샛방살이를 하게 된 그 사람은 우리 집안에 먼 친척이 되는데 엄마는 그냥 '삼촌'이라고 부르라고 했다. 주섭 삼촌은 학원에서 문학을 가르쳤다. 저녁부터 밤늦게까지 입시학원에서 강의를 하고 집에 돌아오면 방에 처박혀서 줄곧 담배를 피웠다. 책상 앞에서 불을 밝히고 연기 속에서 뭔가를 끊임없이 쓰고 또 쓰고. 나는 삼촌이 웃는 걸 거의 본 적이 없다. 이마에는 주름이 패어있어 가뜩이나 어두운 얼굴에 그늘을 더 했다. 무엇보다 삼촌의 역한 담배냄새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견디기 힘들었다. ‘도대체 얹혀사는 주제에 어떻게 저런 민폐를 끼칠 수가 있어?’ 가뜩이나 사춘기라 더욱 예민했던 나는 '삼촌이 방에서 나오지 않았으면, 아니 아예 우리 집에 안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가 부모님에게 호되게 혼이 난 적도 있었다. 그런 내 말을 삼촌은 들었던 걸까. 그 날 이후로 삼촌은 나와 거의 마주치는 일이 없었다. 하루는 야간자율학습을 끝내고 집에 들어오는데 삼촌이 대문 옆 골목에서 슬리퍼 바람으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모른 척 하고 들어가려했는데 갑자기 삼촌이 불러 새웠다.

“지원아... 담배냄새가 싫지? 미안하다.....하지만 이 녀석은 나한테 애인보다 더 소중한 친구야.”

“담배가 뭐가 친구라는 거에요? 담배 피우다가 죽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세요?”

그리고 나서 서둘러 집 안으로 뛰어들어 왔다. '담배 따위가 무슨 친구라는 거야...'

어느 추운 겨울, 삼촌은 담뱃불을 붙이며 길을 건너다가 빙판에 속력을 못 이겨 미끄러진 차에 받혀 쓰러졌고 머리를 다쳐 병원에 누워있게 되었다. 오래도록, 아주 오래도록... 지금까지도. 무서웠다. 내가 한 말들 때문에 삼촌이 그렇게 된 것 같아서. 그 때 이후로 ‘담배’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물건이 되었다.

 

친구는 자신이 직접 조향한 샘플을 묻힌 테스트지를 건냈다. ‘어? 이건 뭐지? 내가 표현하고 싶은 추억의 느낌이었다.

 

“나한테는 좋은 향 나쁜 향은 없어. 그냥 향이 있을 뿐이지. 향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것들을 어떻게 조화롭게 선택해서 원하는 향기를 만드느냐가 조향사가 하는 일이거든. 그리고 사실 향수에 쓰는 담배향은 담배연기냄새는 아니야. 말린 잎담배 냄새, 풀냄새거든.”

향수를 만들어가지고 온 날. 나는 삼촌이 세 들어 살던 방문을 열어보았다. 지금은 사람의 온기가 남아있지 않은 창고방이 되었지만. 주섭삼촌이 쓰던 노트들은 모두 시골로 보내버린 줄 알았는데 아버지 서재에서 미처 보내지 못한 한 권이 남아 꽂혀 있는 걸 발견했다. 일기도 소설도 편지도 아닌 시를 쓰고 있었던 삼촌. 소박하고 담백하여 아름다운 시편들이 남루한 모습의 삼촌이 쓴 거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삼촌의 내면에 이런 세계가 있었던 걸까? 이게 원래 삼촌의 모습이었을까? 내가 미워했던 담배냄새가 원래는 이토록 좋은 향기였던 것처럼.

 

담배냄새를 멀리하면 기억에서도 나의 죄책감에서도 멀어질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제 한 꺼풀의 두꺼운 외투를 벗은 것처럼 후련하면서도... 아직은 춥다. 아픔으로 남은 기억조차도, 자랑스럽든 부끄럽든 지나온 것은 전부 내 모습이다.. 어쩌면 그 때의 철없던 나를 여태껏 미워하며 벌을 받고 있던 걸까. 노스텔지어를 만들면서 나는 향수 뿐 아니라 나의 기억을 조향할 수 있었다. 함께 어우러졌을 때 한층 풍부하고 깊은 향기가 완성된 것처럼 희극과 비극이 함께 있는 그 모두가 어우러진 지금의 내가 소중한 거라고.

 

어릴 때 엄마 손을 잡고 갔던 재래시장이 생각난다. 그곳에 기거하는 온갖 삶의 냄새. 생선 젓갈의 비릿하고 짠 바다 내음, 그 맞은 편의 푸릇푸릇한 푸성귀며 과일냄새, 떡방앗간에서 진동하던 진한 참기름향, 진열대 위 새 신발의 빳빳한 고무냄새,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뜨끈한 순대와 부침개 냄새...생은 향취나 악취가 아닌 동등한 무게로 나의 오감에 육박했고 지금도 그 맛과 빛과 소리를 영화 속 필름처럼 돌려볼 수 있다. 날것들이 출처를 숨기지 않는 적나라함으로 말하던 것,'모두가 애초에 이러하단다.'

자연스러움으로 혹은 무구함으로 그들이 여전히 내 발길이 닿는 지척에 활기를 간직한 채 숨쉬고 있다는 게 문득 위로가 되는 오늘이다.

 

창문을 열자 골목 저편에서 막 담배를 피워 문 남자가 걸어온다, 그 시절의 삼촌 또래로 보이는. 의식적으로 숨을 참고 창문을 닫는다. 그래도 희미하게 매캐한 연기가 감도는 공기. 휴우, 숨을 내뱉으며 생각한다. 담배연기는 여전히 못 참겠고 매스껍지만 적어도 저 사람이 미운 마음이 없다. 예전의 나라면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을 담배 피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서슴없이 비난할 수도 있을 텐데. 더 이상 내 안에 혐오감이 올라오지 않는다. 담배는 그저 향이다. 그걸로 된 것이다. 내 안에서 저 ‘담배냄새’와 같은 것들이 또 얼마나 많을까. 카레라이스나 액션영화처럼 사소한 취향부터 직장 동료와의 인간관계, 사회적 이슈에 이르기까지 난 좋고 싫은 게 참 분명한 편이다. 하지만 단지 내가 정한 기준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싫다고 단정지어버리고, 겉으로 보이는 모습 때문에 그 내용이나 사연을 알려고 하지도 않은 채 밀쳐냈던 많은 것들, 떠나보낸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내가 ... 꼭 그래야만 했을까? 돌아보게 된다. 사실은 그저 나의 주관적인 판단으로 내가 보고자하는 면만을 보고 느끼고자 하는 쪽으로만 느꼈을지도 모르는데. 틀렸다고 말하는 자신이 틀린 줄을 모른 채로. ‘틀리다’를 ‘다르다’로 바꾸고 나자 마음이 열리고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이 떠진 느낌이었다. 그리고 십년 만에 삼촌을 다시 만났듯이, 내가 잃어버린 많은 것들과 다시 만나게 될 거라는 예감이 든다.

 

+

 

이삿짐을 거의 다 꾸렸을 때쯤, 지원은 가지고 있던 책을 마을 도서관에 기증하기로 마음 먹는다.

마른 걸레를 쥐고 한 권씩 먼지를 털어 내는데 낡은 포켓 앨범 한 권이 손에 잡힌다.

첫 장을 넘기자 지원은 젊은 시절 부모님의 모습을 한 눈에 알아본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샛노란 유채꽃밭 안에서 나란히 어깨를 감싸 안고 찍은 사진. 아주 어릴 적에 본 기억이 나는 듯도 했다.

 

지원은 그 흔한 수학여행으로도 제주에 여행을 간 적이 없었다.

기억으로는 동생이 태어났던 여섯 살 쯤에 아버지를 따라 몇 달을 지내다가 온 게 전부였다.

지원의 아버지 쪽 친척들이 꽤 제주에 살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이상하리만큼 발길이 뜸했던 셈이다.

그 이유가 가끔은 궁금할 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아버지는 “가고 싶으면 언제든 갈 수 있다,

다녀올래?” 고 되물었고 지원은 그저 싱겁게 고개를 저었을 뿐이다.

문득 지금 그때 아버지가 했던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았다.

예전과는 조금 다른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손에 잡은 김에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아 앨범을 뒤적이다가 지원은 가고 싶으면 언제든 갈 수 있는 그 곳에 가봐야 할 이유를 곧 발견하고야 말았다.

 

누렇게 바랜 갱지에 연필로 삐뚤빼뚤 그래도 꽤 거창하게 그려놓은 지도 한 장,

 

“제주도 보물 지도 - 김지원 꺼”

 

어차피 떠났다가 돌아오곤 하는 것이 지원의 일상이었고, 떠나는 데 대단한 이유가 필요치도 않았다.

 

하지만 어쩌면 이번엔 좀 다를지도 모른다. 명색이 보물을 찾아 떠나는 모험이니까.

 

2.제주

[제목]

 

바람을 묻다

 

 

 

[요약글]

 

어차피 제주 역시 떠남을 위한 땅이었다. 방랑의 경유지. 구천을 떠돌듯 땅에 발을 디디지 못한 유약한 영혼의 행로. 하지만 이곳 섬땅은 자꾸만 나를 끌어내려 삶과 마주하게 만든다. 바람은 이 땅의 차사가 되어 나를 압송해 온다.

 

 

 

[본문]

 

제주는, 섣부른 기대의 땅이 아니다. 사변적 중얼거림에 젖어 부유하는 땅이 아니다. 지리멸렬한 도시의 환상을 받아주는 그런 땅이 아니다. 향수란 그리고 향수의 향유란 실제를 떠난, 실체와 나 사이의 간극에서 - 그 틈새에서 - 비로소 생성되는 그림자일 뿐이므로. 제주는 그렇게 향수를 풍미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 오히려 야멸차리만치 삶을 맞닥뜨리게 하는 비몽의 땅이다.

 

 

 

제주는 바람도 바다도 그리고 저 푸르고 창연한 녹음도 삶과 맞닿아 있다. 어느 한 곳도 여백 없는 삶 자체이다.

 

무섭게 내지르는 바람은 사람들의 말을 토막 내고, 그렇게 잘라진 말투와 퉁명스런 표정을 그들의 얼굴에 새겨놓았다. 고립무원의 사해바다, 절망과 같은 의지로 밀쳐낸 거센 파도는 모래톱을 핥듯 물질하는 잠녀의 살결을 겹겹이 패이게 했다. 사람보다는 산천초목이 주인인 섬땅에 생명과 같은 씨앗을 뿌리고 씨앗보다 빨리 번지는 넝쿨을 걷어내는 사이 손발의 매무새는 말라버린 나무등걸만큼이나 투박해졌다. 그런 제주, 제주의 삶이다.

 

 

 

향수를 묻어버린다. 환영을 살라버린다. 독백처럼 내뱉는 그리움들을 조각내버린다. 삶과 괴리된 몽환적 사유는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다. 이곳 제주에선.

 

 

 

처음 제주는 그런 곳이었다. 담아지지 않는 현실을 잠시 봉인시키는 밀랍. 달큰하고 부드러운 위안, 그러나 미세한 불씨로도 금세 녹아내리는 불완전한 도피. 그랬다. 그렇게 가장된 견고함을 의지해 나는 제주로 왔다. 취해 있었다. 어쩌면 취하고 싶었다. 실재하지 않는 어떤 것에. 살아가는 내내 실제로는 살아있지 않았던, 그리하여 언제나 지금이 아닌 것 내가 아닌 것에 대한 향수로만 채워왔던 ‘죽어가는 삶, 살아있는 죽음’ 앞에서.

 

 

 

짙은 안개가 일순 섬을 뒤덮는다. 섬은 저의 쓸쓸한 맨몸을 감추듯 나의 시야에서 겹겹이 돌아눕는다. 마치 짧은 동안 허락되는 환영의 결계처럼. 젖은 찔레꽃향만이 저와 내가 이곳에 함께 살아있음을 일깨워준다. 축축한 안개와 함께 묻어오는 생경한 찔레향.

 

그렇다. 내가 삶의 환영에 사로잡힐 때마다 이처럼 낯선 어떤 것들이 나를 제자리로 붙잡아 오곤 했다. 그렇게 순간순간 붙잡혀 온 과거들이 안개를 헤치고 줄지어 놓이기 시작한다.

 

 

 

벗어나야 하겠다. 날이 선 바람결에 얼굴을 돌린다. 차라리 모든 것, 흩어버리는 편이 낫다. 섬바람은 저의 거칠디 거친 손마디로 내 멱살을 자꾸만 흔들어댄다. 집요하게 삶에 대한 나의 허상을 부숴버린다. 지금 너는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삶을 향수하고 있을 뿐이라며.

 

 

 

어차피 제주 역시 떠남을 위한 땅이었다. 방랑의 경유지. 구천을 떠돌듯 땅에 발을 디디지 못한 유약한 영혼의 행로. 하지만 이곳 섬땅은 자꾸만 나를 끌어내려 삶과 마주하게 만든다. 바람은 이 땅의 차사가 되어 나를 압송해 온다.

 

 

 

바람. 바람을 빼놓고 제주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제주의 바람은 제주 그 자체이다. 바람은 섬의 향기를 끊임없이 실어 날라 오감을 자극한다. 먹먹하고 여릿한 봄안개의 냄새, 검은 돌투성이의 푹푹한 여름바다 냄새, 눈이 따갑도록 투명한 가을 햇살의 냄새, 그리고 차가운 겨울 오름과 광활한 초원의 냄새까지. 바람은 제가 간직한 원시의 흔적들을 시시각각 싣고 온다. 섬땅 어느 곳, 어느 때에라도 바람에 묻어오는 생명의 향기에 취기가 오른다. 나는 그 향기 너머의 어떤 것에 자꾸만 빨려들어간다. 그것은 무엇일까.

 

 

 

찔레꽃향이 다시 코를 찌른다. 이미 오래전 잊었다 여겼던 기억들이 저항할 틈도 없이 코끝을 타고 빨려들어온다. 후각은 빠르게 다른 감각들을 정복하며 기억의 편린을 복원해 나간다. 아, 이것은 어느 때의 일인가. 따스함이 스며드는 계절. 봄볕이 살갓을 간지럽힌다.

 

아이들 몇몇 오래된 무덤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삐죽이 올라온 여린 삘기를 뽑고있다. 금세 작은 손 가득 채울만큼 봄의 새순은 흔전하다. 무리 중 하나였던 어린 나. 마음이 흡족해질 만큼 삘기를 뽑고 나서야 움켜쥔 손 안에서 가장 두툼한 놈 하나를 고른다. 껍질을 벗기자 부화되기 전 병아리마냥 축축하게 웅크린 솜털 줄기가 드러난다. 여린 속살을 꺼내 한 입 깨물자 날카로움과 포근함을 함께 지닌 봄날의 그것처럼 쌉싸름하면서도 달짝한 향이 입안 가득 번진다. 봄은 그제서야 몸 속까지 스미기 시작한 것이다. 어린 정복자들이 휩쓸고 간 자리, 이제 며칠은 지나야 다시 새순을 올릴 수 있으리라.

 

아이들은 자신이 얻어낸 전리품을 한껏 뿌듯해 하며 조금 더 깊숙한 숲으로 잠입해 들어간다. 겨울의 고비를 넘긴 숲은 생명으로 충만하다. 나무 그늘 사이를 지나자 찔레덩굴 군락이 나타났다. 미처 가시를 세우지 못한 찔레순은 아직 길을 정하지 못한 채 서로 고개를 부딪히고 있다. 줄기 끝까지 물길을 끌어올리며 고군분투 중인 여린 순. 나는 여물지 않은 가시를 지그시 누르며 살진 줄기 하나를 툭 꺾는다. 붉은 피를 흘리듯 신선한 수액 몇 방울이 튕긴다. 손톱 끝으로 조심스레 껍질을 벗기자 드러나는 물기 가득한 연초록의 속살. 찔레속은 씁쓸하면서도 신선하다. 며칠 정도는 심심한 입을 달랠 수 있겠지, 하는 생각에 흐믓해진다.

 

작은 가슴을 가득 채운 흡족함은 갑작스런 소란스러움에 금세 흩어져 버렸다. 무리 중 한 녀석이 의기양양한 얼굴로 아이들을 불러 세웠기 때문이다. 보란 듯이 내민 녀석의 손에는 제 키만큼이나 되는 찔레 가지가 들려 있다. 그래, 제일 긴 찔레를 꺾기로 우린 내기를 했던 터였다. 저 녀석은 어디서 저렇게 곧고 실한 놈을 찾아낸 걸까. 어떻게 이렇게 빨리 찾아 낸 거지? 마치 본래 내 것이었던 물건을 빼앗겨 버린 것처럼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 싫다. 저런 승리감은 네 것이 아니야. 내 것이다!

 

얼마의 시간이 흘러갔을까. 어렴풋하다. 아이들이 정신을 팔며 숲을 뛰어 노는 사이, 나는 상장처럼 나무에 진열해 두었던 찔레 가지를 어딘가에 감추어 버렸다. 승리의 증거를 약탈당한 녀석은 속상함에 울먹거렸고, 영문을 모르는 아이들은 서로를 두리번거리기만 했다. 나는 가슴을 두근거리며 끝까지 시치미를 뗐다. 어린 나의 욕망은 그렇게 비밀에 붙여졌고, 결국 그 녀석도 나도 찔레의 주인이 되지는 못했다. 나는 며칠동안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찔레향을 가득 품은 봄바람이 희롱하듯 얼굴을 찰싹 때린다. 이제 그만 깨어나라는 듯 자욱했던 안개도 걷어낸다. 결계가 풀리자 거칠고 척박한 섬땅이 오롯이 드러난다. 몽환을 걷어낸 삶이 본래 그러한 것처럼.

 

섬 바람은, 묻는다. 너의 부유(浮遊)는 어쩌면 삶에 대한 강한 집착 때문이 아닐까. 찔레 줄기를 훔쳤던 봄날의 어린 너처럼 아무것도 빼앗기기 싫어 아예 모든 것을 갖지 않으려는 비겁함이 아닐까, 하고. 그리고는 내 뱃속을 이제 다 들여다 보았다는 듯 머리카락을 흩뜨리며 유유히 떠나간다. 상념 어린 찔레향도 흔적없이 내 곁에서 쫓아버린다.

 

 

 

바람은 그렇게 섬의 향기를 품고 내게 다가왔다 떠나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때마다 다른 모습을 하고, 우격다짐처럼 내 안을 파고들어, 지금껏 피해왔던 것들과 끊임없이 대면시킨다. 향기 너머의 그 ‘무엇’으로 나를 흔들어 댄다. 섬땅 어느 곳, 어느 때에라도 나는 피할길 없이 그 그물에 포섭당할 뿐이다.

 

 

 

제주는 지금껏, 아름다운 자연도 비극의 역사도 거치른 땅도 그리고 투박한 삶의 모습도 분간 없이 품어냈던 것처럼 서툰 나의 삶마저도 묵묵히 보듬고 있는 것일까. 제가 그러하듯 나도 그리하길, 그리하여 저와 내가 온전히 마주할 수 있기를 바라며. 피상의 삶, 죽어가는 삶 대신 진정 살길, 그리하여 날 것의 삶을 잉태하길 고대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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