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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족 |
동이 |
북적 |
서융 |
남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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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200년경 |
은 주 |
고조선,삼한 |
흉노 |
강 |
백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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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경 |
진 한 <위,촉,오> |
고구려,백제,신라,가야 |
흉노,선비 |
강,저 |
남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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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세기 |
송 |
고구려,백제,신라,가야 |
16국 |
16국 |
남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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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적<선비,흉노>과 서융<강,저>은 한족의 주 주거지였던 황하강북쪽으로 자신들의 나라를 세웠다. 한족은 이를 시작으로 오랑캐라 불렀던 민족들로부터 지배당하기 시작한다. 선비족은 전연,남연,후연,서연,서진,서량,북위등을 세워 가장 세력을 떨쳤으며 흉노는 하,전조,후량등을 세웠고 갈은 후조 강은 후진 저는 전진,후량등을 세웠다. 한족은 북연과 전량,서량을 세웠을 뿐이었다. 이렇게 한족이 지배권을 상실하자 고구려는 가장강성했던 북위를 누르고 백제는 요서와 산둥반둥등 중국동해안지방을 장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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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세기 |
수 당 |
고구려 발해,백제,신라 |
돌궐의 지배를 받음 |
토번 |
남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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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족은 황화강지역을 수왕조에 의해 수복한다. 하지만 동이족인 고구려에 100만대군을 이끌고 출전했다가 결국 패해 나라가 없어지고 그뒤를 이은 당도 고구려를 이간계로 겨우 공략하고 투르크족<돌궐>을 공략하기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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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세기 |
5대10국 송 |
고려,여진 |
요<거란:몽고계통> |
토번 |
대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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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3세기 |
송 |
고려,금 |
서요,몽골부족시대 |
토번 |
대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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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족의 말갈<여진>은 금나라를 세워 북쪽지역의 한족을 지배한다. (설에서는 금 태조 아골타의 선조인 김준 또는 김행이 그의 아들이라고 전한다.) 또한 금나라는 발해를 계승한다고 했으나 후에 중국의 흡수중화사상 때문에 동이족에서 한족에 흡수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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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기 후반 |
원나라의지배시대 |
고려 |
원나라 |
원나라의 지배시대 |
원나라의 지배시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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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적인 몽골족이 모든 민족을 지배했다. 이중 한족은 최하의 계층이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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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
명나라 |
조선 |
북원<타타르> |
티베트 |
명나라지배시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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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족의 마지막 반격으로 명나라가 세워진다. 남만<대리>는 이후 독립을 유지하지 못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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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
청나라지배시대 |
조선,청<후금> |
청과러시아의지배 |
청나라지배시대 |
청나라지배시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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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족의 마지막지배세력이던 명은 꺼지고 동이족의 청이 등장한다. 여기서 우리가 유념해야할 것은 청은 중국<한족>의 역사다라는 시각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그렇지 않다이다. 고조선, 고구려, 발해, 금, 청, 고려, 조선 고조선은 고구려가 명맥을 이었고 고구려는 발해와 고려가 발해는 금이 금은 청이 고려는 조선이 명맥을 잇고 있다. 이게 무슨 뜻인가? 청나라의 역사 여진의 역사는 우리와 같이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역사이고 중국<한족>의 역사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들에 흡수당해 누가 여진족인지 현재는 알아볼 방법이 없겠지만 여진은 동이족의 하위부족<피지배층>으로 우리민족의 역사이다.
주) 중국은 다민족 국가이므로 어느 민족의 명맥을 잇고 있다는 것은 의미 없는 논쟁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현재 중국의 가장 많은 민족의 분포는 한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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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초 |
일본의점령과군벌시대 |
일본점령시대 |
몽고 |
티베트 |
장족 인구감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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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
중국 |
남한,북한,간도:조선족자치주<한족지배> |
몽고,내몽고<한족지배> |
티베트자치주<한족지배> 인도에 임시정부 |
광시장족자치주<한족지배> | |
남만
한족의 그들의 특기인 엄청난 번식력과 오만한 중화흡수주의로 주변민족을 한족으로 만들기를 자연스럽게 진행했고 남만인
광시좡족의 자치주에는 주민의 3/1만 순수남만족만 있고 혼혈한족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이것은 그냥 보아서는 안된다. 무슨말인가 하면 일제시대때 우리가 겪은 창씨개명 우리말과 글을 없애고 일본인 만들기 또한
이스라엘인이 땅의 정당성을 확도하려고 지역에 더많은 자국민족을 살게하는 정책과 같은 것으로 지극히 오만하고 이기적인
것 인다.
이로서 광시좡족<남만>은 명나라<한족>의 지배를 받고난뒤 독립성을 잃어버리고 만다.
민족자결주의는 찾아볼수 없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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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적
외몽골로 불리는 몽고는 러시아의 지원으로 독립을 했으나 내몽골지역은 한족에 빼앗겼고 한족의 이주정책으로 내몽골자치주의
주민비율도 한족이 더욱 많아지게 되었다.
결국 한족의 의도대로 독립운동과 민족의식은 소멸되어 가고있다.
동이
남한과 북한은 알다시피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이념으로 분단된게 아니라 그주원인은 그당시 지역적 대립구도 때문에 일본이 아닌
한국이 분단되게 된다.
간도지역은 본래가 조선의 땅으로 넓은 의미의 만주는 영토분쟁이 힘들지만 간도는 조선족이 살고 있고 일본이 청에 넘긴 간도의
권리는 일본합방이 국제법상 무효이기 때문에 우리가 통일된다면 그다음으로 마무리져야할 일이다. 이것은 영토에 눈이 먼 것이
아니라 우리민족의 성지이자 일본때 빼앗긴 권리를 찾는것이다.
하지만 조선족은 한족의 동화정책에 조국을 중국이라고 생각하고있으며 동북공정에도 조선족 사학자들이 참여하고 있으니
뛰어난 번식력과 오만한 중화사상에 조선족의 한족화가 지금 일어나고 있는것이다.
대만
장개석의 한족세력이 공산세력에 패해 타이완에서 정부를 세운다 하지만 원주민인 고산족이 85%로 15%인한족보다 많다 그래서
독립움직임에 중국이 긴장하고 있다. 대만이 독립하면 도미노처럼 수많은 한족의 지배를 받는 민족들의 독립운동을 우려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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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구르
여진족은 중국에 거대한 제국(淸)을 형성했다. 1759년에 동투르키스탄의 위구르를 침략했고 1826년까지 지배했다. 이 기간 동안 위구르는 그들의 독립을 얻기 위해 만주의 통치에 대항해 42회의 탈환운동을 일으켰다. 1863년의 마지막 운동에서 위구르인들은 그들의 조국으로부터 청을 축출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1864년에 독립 왕국을 다시 세웠다. 이 왕국은 오토만 제국, 러시아 그리고 대영제국에 의해 인정되었다. 그러나 동투르키스탄을 향한 재정 러시아의 팽창을 우려하던 대영제국은 동 투르키스탄을 지배하려던 청을 설득했고 청이 동 투르키스탄을 침략하도록 영국은행이 자금을 댔다. 1876년 동투르키스탄을 침공한 청은 그 땅을 새로운 영토 또는 새 영지라는 의미의 신강(新疆)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1884년 11월 18일에 만주 청의 영토로 합병되었다. 1911년 국가주의자 한족들은 여진 세력을 점복하였다. 그리고 공화국을 세웠다. 위구르인들은 외세의 지배로부터 자유롭게 되기를 원했고 이 기간 동안에 중국 국가주의자들의 통치에 대항하여 몇 몇의 독립운들들을 계획했다. 1933년에 두 번째 운동이 있었다. 1944년 위구르인들은 동투르키스탄 공화국으로 새로이 독립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 독립된 공화국들은 소비에트 연방의 군사적인 중재와 정치적인 음모에 의해 점복되었다. 이 기간동안 소비에트 연방이 위구르의 독립운동을 방해한 것은 이미 증명된 것이다. 1949년에 국가주의 한족들이 한족 공산당에게 패배했다. 후에 위구르는 한족 공산당의 지배 아래에 들어갔다.
스크랩해온 본문에서는 한족에 대한 감정이 많이 담겨 있는 글이기 때문에 객관적인 시각으로
읽어주기를 바랍니다.